제106화.
“정말 그 흉가 아래에 있다고요?”
“그렇소이다.”
“딱히 보물창고라고 할 만한 곳은 없던데요?”
뭐지?
나, 보물창고 잘 찾는데…….
심지어 칭호도 있고.
[삼류 보물 사냥꾼]
처음으로 보물창고를 발견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칭호.
분류 : 칭호
등급 : 희귀
효과 :
- 보물창고를 발견할 확률 +20%
참고 : 발견한 보물창고의 횟수가 누적될수록 칭호가 강화됩니다!
아직 삼류 보물 사냥꾼이라서 못 찾아낸 건가?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계속 보물창고를 찾아내다 보면 칭호도 업그레이드될 테고, 성능도 좋아지겠지?
“허허. 비록 몰락했을지언정 본문의 무가지보(無價之寶)를 쉽게 내줄 정도는 아니오. 나름 꽁꽁 잘 숨겨 두었으니, 발견하지 못한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오.”
“그렇군요.”
“헌데 본문에는 이미 방문하신 것이오?”
“예. 어제 갔다 왔죠. 아무도 없어서 돌아오긴 했지만.”
“소협께서는 고강한 무공을 지니셨나 보오.”
“예?”
“본문의 총단은 각종 귀물(鬼物)들에 의해 점거당한 상태. 고강한 무공을 지닌 게 아니라면 어찌 살아 돌아오실 수 있었겠소이까?”
“하하하.”
“허면, 연 소협께서는 본래 있던 세계에서 도가의 내공을 쌓으신 것이오?”
“예?”
“그곳에 있는 처녀귀신의 섭혼술은 사내라면 당해낼 자가 없소이다. 고강한 무공을 지닌 고수들조차 그 악독한 처녀귀신의 섭혼술에 당해 정기를 빨려 죽었소.”
“그래요?”
“소협도 사내인데, 정순하고 지고지순한 내공과 공부를 쌓지 않고서야 어찌 섭혼술을 뿌리치고 처녀귀신을 쫓아낼 수 있었겠소이까?”
“그, 그렇죠! 그런 셈이죠! 하하하하!”
“고자가 아닌 이상 그 처녀귀신의 섭혼술을 이겨낼 사내는 정말이지 드물 것이외다.”
뜨끔!
‘호, 혹시 눈치챈 건가?’
괜히 의심이 든다.
설마 무림 서버 NPC들은 유독 눈치가 빠르게 설정돼 있는 건 아니겠지?
에이, 아닐 거야…….
난 눈치 빠른 놈들이 싫다고.
곽말풍 놈처럼 너무 없어서 문제겠지만.
“처녀귀신을 아신다면…….”
일단 화제를 돌리자.
“그렇소.”
양봉길이 씁쓸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몰락했다 한들 어찌 총단을 버리고 이런 움막에서 살고 싶겠소이까? 부끄럽게도 그 처녀귀신과 귀물들에게 총단를 빼앗기고 말았소.”
“아.”
“선대의 무공이 실전되는 바람에 대항할 힘이 없었다오.”
양봉길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천하제일의 무공이 이렇듯 허망하게 명맥이 끊기니, 참으로 아쉽고 서글픈 일이오.”
“…….”
“선조들께서 부디 이 못난 후학들을 굽어 살펴주셨으면 좋겠거늘…….”
“그럼 주화입마도…….”
“어떻게든 선대의 무공을 복원해 보려다 이리되었다오. 부족한 깨달음으로 절세무공의 복원을 시도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요. 뱁새가 어찌 황새를 따라가겠소. 그저 급한 마음에 몸부림이라도 쳐보려다 제 발등을 찍은 것이지.”
알 것도 같아서 절로 숙연해졌다.
어떻게든 천하제일문을 일으켜 보려고 자기 목숨까지 거는 그 마음이…….
‘나도 그랬었는데.’
안 되는 걸 되게 만들어 보겠답시고 온몸을 비틀며 발버둥 치던 시절이 있었지.
물론 나야 내 개인적인 문제였지만, 양봉길은 장문인으로서 몰락한 문파를 일으켜 보려던 것이니 경우는 다르겠지만.
“장문인의 주화입마는 제가 따로 한번 봐 드리겠습니다.”
“음?”
“제게 작은 재주가 있습니다.”
어쩌면 천하제일문의 실전된 무공을 복원해 줄 수도 있겠지.
우주근원진기는 그 복잡한 심법인 규화보전까지도 수정이 가능하니까.
“이따 장문인의 상태를 한번 봐 드리겠습니다.”
“연 소협께서는 의술에 능통하신 것이오?”
“그건 아니지만 심법을 조금 압니다. 도움을 드릴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겠습니다.”
정 안 되면 당괴괴 영감님이라도 불러다가 치료하면 되겠지.
완치는 안 되더라도 불편한 몸을 가눌 수 있을 정도는 되지 않을까?
“그게 정말입니까? 연 소협?”
“정말론 사부님께서 입으신 내상을 치료할 수 있는 건가요?”
유건명과 초아란도 절박한 표정으로 물었다.
“예, 일단은 봐야 아는 거니까 나중에 따로 말씀 나누죠.”
“정말 그리 해 주신다면 감사할 것 같소이다.”
“사해(四海)가 동도라는데 서로 돕고 살아야죠. 저 역시 허공보합이 절실한 상황이니, 최선을 다해 도와드려야 사람 된 도리죠.”
“허허.”
양봉길이 웃으며 말했다.
“좋소. 내 연 소협께 허공보합을 빌려드리겠소이다. 총단에 자리한 보물창고의 위치를 알려 드리겠소.”
“감사합니다.”
“보물창고의 위치는…….”
속닥속닥.
양봉길이 내 귓가에 보물창고를 찾아내는 방법을 속삭였다.
* * *
보물창고의 위치를 듣자마자 즉시 길을 떠났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꼭 지금 가야겠소?”
“예?”
“이곳 정안현은 치안이 매우 나쁜 곳이오. 비록 연 소협이 처녀귀신을 퇴치했다 한들, 밤중에 산속을 돌아다니는 것은 매우 위험하오. 차라리 날이 밝으면 그때 가서 가져오시는 게 어떻겠소이까?”
“저는 괜찮습니다.”
보물창고를 어떻게 참아?
당장 달려가서 털어먹…… 이 아니라.
가서 가져와야지!
허공보합!
“부디 조심히 다녀오시오.”
“예, 장문인.”
“받으시오.”
양봉길이 특이하게 생긴 열쇠를 건네주었다.
[알림: <천하제일문 보물창고 열쇠>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알려준 곳으로 가서 그 열쇠를 사용하면 허공보합을 찾을 수 있을 것이오.”
“예, 장문인.”
“그곳에 본문의 다른 보물들도 있으나, 본인은 연 소협이 그것들을 건드리지 않을 것이라 굳게 믿소이다.”
내가 워낙 진정성 있게 얘기를 잘해 줘서 그런지, 양봉길은 나를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 눈치다.
어휴.
이분 사기 잘 당하겠네.
내가 착한 사람이라서 망정이지.
나쁜 맘 먹고 접근했다면 홀라당 털어먹었겠네.
“감사히 잘 먹겠…….”
헉.
말이 헛나왔네.
헤헤헤.
“절대 안 건드릴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이 친구를 데려가죠.”
유건명을 가리켰다.
“좋소.”
양봉길이 미소를 지었다.
“건명아.”
“예, 사부님.”
“너는 연 소협과 함께 본문의 총단으로 가서 허공보합을 가지고 오너라. 차마 면목이 없다마는, 조사님들의 위폐에 향이라도 피우고 절이라도 하고 오도록 하여라.”
“예, 사부님.”
“연 소협께서 처녀귀신과 귀물들을 몰아내 주셨으니, 며칠 내로 다시 총단으로 돌아가 그때 정식으로 제를 올릴 것이다.”
양봉길이 희망에 가득 찬 표정으로 유건명에게 명령했다.
“그리 하겠습니다, 사부님.”
유건명이 듬직한 미소를 지으며 그 명령을 받들었다.
“그럼, 가시죠.”
“예, 소협.”
유건명과 함께 발걸음을 옮겼다.
“거리가 좀 되니까 타고 가죠.”
“예? 서생원을 타고 가도 되는 것입니까?”
유건명이 햄찌를 힐끔 쳐다보더니 불안하다는 듯 대꾸했다.
하긴.
쥐새끼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어디 흔하겠어?
“일단 타 보시죠.”
“아, 예.”
“꽉 잡으시고.”
유건명을 돌아보며 히죽 웃었다.
“얘, 엄청 빠르거든요. 순식간에 도착할걸요?”
“어찌 서생원이 그리 빠르…… 헉!”
햄찌가 축지법을 써서 내달리기 시작하자 유건명의 얼굴이 시퍼렇게 질렸다.
“여, 연 소협! 너무 빠릅니다! 으아아아아악!”
유건명이 속도에 적응하지 못하고 비명을 질러 댔다.
후후.
거봐.
엄청 빠르다니까?
“하하하! 오빠아아아! 달료!!!”
“뀨우우우우! 달린다! 달려!”
햄찌도 그런 유건명의 반응이 신이 나는지 더욱 빨리 내달렸다.
“뀨우! 빠라빠라빠라밤~!!!”
야, 그게 언제 적 효과음인데.
뭐, 어쨌든.
빠르면 됐지!
* * *
눈 깜짝할 사이에 천하제일문 총단에 도착해서, 양봉길이 알려 준 대로 가 보았다.
어떻게 어떻게 지하로 내려가는 비밀통로를 찾아 밑으로 쭉 내려가서 보물창고 앞에 도착했다.
했는데.
“……이게 뭐야.”
보물창고 입구가 완전히 박살 나 있었다.
족히 15센티미터는 될 것 같은 두꺼운 철문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있는 걸 보면…….
“털렸네.”
천하제일문의 보물창고는 누가 이미 신나게 털어먹은 뒤였다.
“마, 맙소사. 본문의 무가지보들이…… 아아!”
유건명이 보물창고가 털린 걸 보고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았다.
“뀨우. 주인놈아. 이미 털렸다. 누가 선수 쳤다. 주인놈 한발 늦었다. 뀨.”
“하.”
살다 살다 남이 이미 털어먹은 보물창고에 오기는 처음…… 은 아니네.
아, 맞네.
맹호채 보물창고도 백련도 놈들이 이미 털어갔었지.
어째 무림 서버에서는 타율이 안 좋네…….
흑흑.
나도 이제 퇴물 다 된 건가.
“후우.”
한숨을 푹 내쉬며 보물창고 안으로 들어가 봤다.
텅텅~
안은 텅 비어 있었다.
고풍스럽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장식장 같은 것들이 남아 있는 걸 보면, 확실히 보물들이 있었던 것 같기는 한데…….
“진짜 쥐뿔도 없네.”
텅텅 비다 못해서 목소리마저 메아리칠 지경.
남은 것이라고는 웬 노인이 그려진 족자 하나만 덩그러니 걸려 있었을 뿐.
딱히 잘 그린 그림도 아니고, 여기저기 헤지고 낡아 빠져서 건드리면 푸석! 하고 바스러질 것만 같다.
보나 마나 돈이 안 될 것 같으니까 내버려두고 간 거겠지.
근데 저 노인 어디서 본 것처럼 익숙하네…….
그림이 하도 빛바래서 알아보기가 힘들지만.
‘발자국.’
성인 남성의 것으로 보이는 발자국을 발견하고,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이미 보물창고를 털어간 범인의 발자국이겠지?
스윽.
발자국 위로 쌓인 먼지를 살펴보니 하루 이틀 지난 것 같지가 않다.
못해도 1~2년 정도는 지난 것 같은데…….
‘진짜 ㅈ됐네.’
눈앞이 캄캄하다.
보물창고를 털어간 놈이 누군지 알고 추적을 해?
어쩐지 쉽게 풀리더라니.
또 ㅈ뺑이 치게 생겼네.
아아.
가시밭길 인생, 아니 겜생이여.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는 노릇.
내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을 꼽자면, 누가 뭐래도 근성.
절대 포기하지 않는 그 근성과 집요한 집념 하나만으로 여기까지 온 나다.
칠전팔기 같은 표현은 날 위해서 존재하는 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귓가에 브금이 들리는 것 같다.
일곱 번 넘어져도~ 일어나라~
울지 말고 일어나~
피리를 불…… 요즘 애들은 이런 노래 알까 모르겠네.
흠흠.
‘우선 돼지촌으로 돌아가서 장문인한테 보물창고에 어떤 보물들이 있었는지 물어보고, 물건의 행방들을 추적해 보자. 만약 암시장 같은 곳에 풀렸다면 추적이 불가능하진 않을 테니까.’
두고 보자.
어떻게든 찾아내고 말 테니까.
근데, 이번엔 개방이 아니라 하오문을 찾아가야 할 것 같다.
암시장 같은 건 하오문의 전문분야일 테니까.
‘어떤 놈인지 딱 걸리기만 해라.’
으득.
감히 내 보물을 먼저 털어?
‘아주 그 손모가지를 잘근잘근 부숴서 두 번 다시는 도둑질을 못하게…….’
으응?
뭔가 느낌이 쎄하다.
방금 족자 안에 있는 노인의 눈이 움직인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설마…… 귀신?
오싹!
소름이 끼쳤다.
‘이건 게임이야, 게임. 게임 속에 귀신 같은 게 어딨어.’
정신줄을 꽉 붙들고 침착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기분 탓일 거야.
기분 탓.
어서 여길 벗어나야지.
절대 무서워서 그런 건 아니다.
절대로.
‘아니겠지. 어떻게 그림 눈이 움직여.’
혹시나 싶어 곁눈질로 족자를 힐끔 봤는데.
“히, 히익?!”
우, 움직였다!
움직였다고!
방금 분명히 움직였다고!
“누, 눈이 움직…….”
심장이 철렁! 하고 내려앉는 것 같던 그 순간.
“이 고얀 놈 같으니.”
족자 안의 노인이 고개를 15도 정도 꺾으며 입을 열었다.
“하늘같은 사부의 존안을 뵈었으면 넙죽 엎드려 절부터 박을 것이지, 애써 못 본 척 외면을 해?”
어?
“네놈이 정신교육을 받은 지 오래돼서 감을 다 잃었나 보구나? 흐으…… 이게 다 한동안 네놈 기강을 안 잡은 본좌의 불찰일 터.”
“사, 사부님???”
사부님께서 왜 거기서 나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