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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버프로 무림정복-108화 (108/115)

제108화.

“꺄아아아아아악!”

피겨 포 레그락에 걸린 한령령이 자지러지듯 비명을 질러 댔다.

탁탁탁탁탁!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는지, 손바닥으로 땅바닥을 계속해서 내리치기까지 했다.

탭을 치는 건가?

설마?

항복의 의미로?

이곳 무림 세계에서도 서브미션 기술에 걸렸을 때 손바닥으로 바닥을 치는 행위가 항복을 뜻하나?

나중에 물어봐야지.

“여, 연 소협!”

유건명이 소리쳤다.

“너무 심한 거 아닙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런 기술은…….”

“뭐가 심해?”

얘가 아직 정신 덜 차렸네?

하여간 착한놈들은 이래서 문제다.

물러 터져 가지고는.

그렇게 당하고도 너무 심하단 소리에 입에서 나와?

솔직히, 내가 나쁜 놈이라 그런지 착한 놈들의 사고회로가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

‘딱 두고 봐. 앞으로 차근차근.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놈의 사고회로부터 싹 바꿔 줄 테니까.’

후후.

저 착한 녀석이 나한테 물들어서 악독해지면 얼마나 재밌을까?

두근두근!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아주 희대의 대(大) 악당을 만들어놔야지.

저놈 포함해서 천하제일문의 제자 놈들 전부 다.

“그, 그만해! 제발! 아파! 그만하란 말야!”

“흐흐흐! 싫은데?”

“꺄아아아악!”

“제, 제발! 그만해 줘! 아파아! 그마아아안!”

“흐으! 넌 아프지? 난 좋아.”

“흐아아앙!”

“뒈져 버려어어엇!”

“흐아아아아아아아앙!”

한령령의 다리를 부러뜨릴 기세로 아주 힘껏 조였다.

으드득!

이러면 못 도망치겠지.

후후후.

“여기가 어디라고 또 기어오냐? 뭐 주워 먹을 게 있다고? 또 지나가던 남자들 정기 빨아먹으려고 기어왔냐?”

“꺄아아아악!”

“아직도 정신 못 차렸지? 어?”

“꺄아아아아악!”

어제 그렇게 혼쭐이 났으면 당분간은 얼씬도 안 할 법도 한데.

나 같으면 이쪽으로 오줌도 안 누겠다.

뽀각!

결국, 한령령의 다리가 부러졌다.

이제 풀어줘야지.

죽이지만 않으면 제 발로는 못 도망칠 테니까.

‘아닌가? 귀신이라서 도망칠 수 있나?’

사람이 아니라 귀신이라서, 어떻게 붙들어 놔야 할지 감이 안 오긴 한다.

좀 물어볼 것도 있고.

“두, 두고 보자!”

한령령이 풀려나자마자 버럭 소리치더니 깽깽이발로 도망치려 했다.

……그래 가지고 어디 도망치나 치겠냐.

귀신이면 좀 귀신답게 도망을 쳐.

날아갈 정도로 강한 귀신은 아니라서 그런가?

“어딜 도망가!”

“꺅!”

기회를 틈타 도망치려는 한령령의 뒷덜미를 낚아챘다.

맘 같아선 머리채를 붙들고 싶었는데, 짧아서 붙들 머리채가 없었다.

아, 맞다.

어제 단발로 만들어 버린 게 나였지.

근데, 한령령 얼굴에는 길게 늘어뜨린 장발보다 이렇게 짧은 단발이 더욱 어울리긴 한다.

나…… 미용사로 전직해야 할지도?

“그냥 보내 줄 줄 알았냐?”

“놔! 놓으라고! 이 고자새끼야!”

또 선 넘네?

사제 앞에서?

“너 오늘 잘 걸렸다. 내가 세 번, 아니 여러 번 죽여 줄게.”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어제 일 때문이 아니다.

천하제일문.

감히 무적일맥에서 흘러나온 방계인 천하제일문의 총단을 점거하고, 문도들을 쫓아낸 거.

오직 그거 때문이다.

고자새끼라고 욕해서 이러는 거 절대로, 절대로 아니다.

진짜로.

* * *

1시간 뒤.

“흑흑… 흑흑흑…….”

엉망진창이 된 한령령이 내 앞에 꿇어앉은 채 서럽게 울었다.

운다고 봐줄 것 같아?

“야.”

“네에… 흑흑… 흑흑흑…….”

“손들고 무릎 꿇고 서 있어.”

그러자 한령령이 무릎을 꿇고 손을 두 귀에 붙였다.

“손들고 무릎 꿇고 서 있으라고.”

“했잖아요!”

“손들고 무릎 꿇고 서 있으라니까?”

“손들고. 무릎 꿇고. 서 있…….”

한령령이 내 말을 곱씹어 보더니 뭔가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무릎 꿇고 어떻게 서 있어요……?”

“그건 니가 알아서 해야지.”

“…….”

“욕하지 마라.”

“네?”

“지금 내 욕했잖아. 그게 뭔 개 같은 소리냐고.”

“헉!”

“다 아는 수가 있어?”

눈에 다 쓰여 있다는 걸 모른다니까?

“빨리 손들고 무릎 꿇고 서 있어. 더 처맞기 싫으면.”

“네에…….”

한령령이 무릎을 꿇은 상태로 부웅! 하고 공중 부양했다.

……이게 되네?

이건 예상 못했다.

쩝.

무릎 꿇고 못 서 있는 거 구실 삼아서 더 패려고 했는데.

“야.”

“네에…….”

“너, 여기 쭉 있었지?”

“네에.”

“그럼 저 안에 보물창고 있는 것도 알겠네? 여기 쭉 있었다며.”

“그, 그건.”

역시.

제대로 짚었다.

왠지 얘라면 알고 있을 것 같아서 물어본 거였는데.

“말해라. 좋은 말로 할 때.”

“…….”

“보물창고 누가 털어갔어.”

“…….”

“니가 털어간 건 아닐 거 아냐.”

귀신이 뭐 쓸 데가 있다고 허공보합을 포함한 천하제일문의 보물을 털어갔겠어.

경우의 수는 두 가지.

제3자가 털어가는 걸 봤거나, 그게 아니라면…….

‘맞네.’

반응을 보니까 감이 온다.

“너.”

“……네.”

“보물창고 니네 아빠가 털어갔지?”

“…….”

“맞잖아. 귀왕인가 뭔가 하는 니네 아빠가 털어간 거.”

처음 얠 봤을 때 심안으로 봤던 내용들을 떠올려 보니 답이 나왔다.

소속 : 귀왕문(鬼王門)

신분 : 귀왕의 딸

슬슬 전성기 시절의 촉이 돌아오기 시작하는 모양이다.

여러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며 주르륵 정렬되는 걸 보면.

“왜 대답이 없냐. 니네 아빠가 털어간 거냐고.”

“아빠 아니에요.”

응?

“그냥 그가 저를 수양딸로 삼은 것뿐이죠.”

이건 또 뭔 소리야?

“그래서 보물창고는 귀왕이 털어갔다?”

“맞아요.”

“그 새끼 어딨어?”

“…….”

“아, 빨리 말해. 그 새끼 어딨냐고.”

“그냥 도망가요.”

“도망가라고……?”

“나 같은 꼴이 되기 싫으면, 그냥 도망가라고요.”

한령령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뭔가 사연이 있는 모양인데, 반응을 보니 대충 감이 왔다.

‘자의가 아니라 강제로 이러고 있는 거였네.’

어쩌면 이 한령령이라는 처녀귀신…… 괜찮은 애일지도?

“뭔데.”

“…….”

“무슨 일인데 그래. 말해 봐.”

“흑흑…….”

한령령이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흑흑… 흑흑흑…….”

“말 좀 해 보라니까. 말을 해야 알지.”

“흑흑… 흑흑흑…….”

“뚝!”

“뚝…….”

한령령이 애써 눈물을 머금고는, 힘겹게 입을 열었다.

“사실…….”

띠링!

그러자 한령령의 머리 위에 황금색 느낌표가 떠올랐다.

[알림: <성불>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 * *

퀘스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성불]

내용 : 처녀귀신 한령령의 사연을 들어보자.

분류 : 일반

진행률 : 해당 없음

보상 : 정보

참고 : 슬픈 이야기가 될 것 같으니 미리 손수건을 준비해 두는 게 좋을 것 같다.

퀘스트를 수락하고, 한령령의 사연을 들어보기로 했다.

“뭔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

“저는 귀주성 흥인현에 살던 기녀였어요. 비록 술과 웃음을 파는 기녀이지만…… 몸을 파는 창기(娼妓)가 아니라 예술을 파는 예기(藝妓)였고요.”

조선시대 기생 같은 느낌인가?

홍랑이나 황진이 같은.

유흥업소 같은 데를 드나들어 봤어야 알지.

뭐, 아무튼.

“그런데?”

“제게는 정인이 하나 있었죠. 비록 기녀였지만…… 정절을 굳게 지키면서 정인이 과거에 급제해서 돌아오기만을 기다렸죠.”

“으음.”

“정인을 기다리던 중에 병에 걸렸어요. 그리고 죽었죠.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정인의 얼굴은 보고 눈 감고 싶었는데.”

“아이고오.”

“한(恨)을 품고 죽은 게 원인이었나 봐요. 눈을 떠 보니 귀신이 되어 있었고, 아버지의 수양딸이 되었어요.”

“귀왕?”

“네.”

뭐 하는 놈이야?

“아버지는 술법가에요. 아주 법력이 높은 사람이죠.”

“사람이라고? 귀신이 아니라?”

“사람과 귀신 사이. 그 어디쯤 되는 존재에요.”

“네크로맨서 같은 건가?”

“네?”

“아냐, 아무것도.”

무림 서버의 처녀귀신이 네크로맨서를 알 리가 없지.

“그래서?”

“아버지는 저를 비롯한 딸들에게 섭혼술을 가르쳐주며 일을 시켰어요.”

“남자들의 정기를 빨아오라고?”

“맞아요.”

한령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만 하면 기억을 고스란히 지닌 채 환생시켜 주겠다고 약속했죠.”

“……!”

“하지만 말을 듣지 않으면 더욱 기구한 팔자와 비참한 운명을 지닌 환생하도록 해 버리겠다고 저희를 협박했어요. 환생은 바라지도 않아요. 누군가를 해쳐서 환생하느니, 차라리 하지 않고 말겠죠. 다만 무서웠어요. 또 비참하고 기구한 운명으로 살아가게 될까 봐.”

이 쓰레기 새끼!

이거 완전 포주나 다름없잖아?

꽈악!

듣고 보니 열 받는다.

심지어 거짓말까지.

한을 품고 죽은 사람들을 귀신으로 만든 것으로도 모자라 악행을 저지도록 이용까지 해 먹는다?

아주 천하의 개쌍놈이 따로없을 지경이다.

고인능욕도 이 정도면 사형감이고.

“그걸 믿냐?”

일단 진실부터 말해 주기로 했다.

“네……?”

“그걸 믿냐고.”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한낱 술법가 주제에 뭐? 기억을 지닌 채 환생을 시켜 줘? 기구한 팔자와 비참한 운명을 지닌 채 환생하도록 해? 그게 되겠냐?”

“그,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게 쉬운 일이겠냐고. 막말로 그 귀왕이란 놈이 정말 강한 술법가라고 치자. 근데 그게 뭐? 지가 신이라도 된대? 제깟 놈이 무슨 수로 사람 환생에 관여를 해? 뭔 능력이 있다고?”

단언컨대 한낱 술법가 주제에 사람 환생을 좌지우지하는 건 절. 대. 로. 불가능하다.

그 정도 권능을 발휘하려면 아무리 적게 봐 줘도 998레벨 이상은 돼야 하는데, 그쯤 되면 세계관 내 최종보스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정도 체급 되는 놈이 악행을 저지르려고 마음을 먹으면, 이런 너저분하고 구질구질한 일이나 벌이고 있을 리 없다.

처녀귀신들을 시켜서 정기나 빨아 오라고 시키는 놈이 998레벨일 리가.

풉.

지나가던 개가 웃을 노릇이다.

“속을 걸 속아야지. 어휴.”

“저, 저는 단지. 무서워서… 무서웠을 뿐이에요.”

이해는 간다.

눈 떠 보니 귀신이 되어 있고, 웬 놈이 환생을 가지고 협박한다면 판단력이 흐려지기 딱 좋은 상황일 테니까.

“정말인가요? 정말로 아버지가 거짓말한 건가요?”

“거짓말이야. 절대로 불가능해.”

“말도 안 돼… 그 말만 믿었는데… 그 말을 믿고 사람들을… 흑흑… 흑흑흑…….”

한령령이 오열했다.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다들 정말로 미안해요… 흑흑흑…….”

자신이 죽인 희생자들을 향해 용서를 빌면서 목 놓아 우는데, 참 처량하고 불쌍해 보인다.

“뀨우. 예쁜 누나. 울지 마라. 뀨우우.”

“구, 구구구.”

“소저, 그런 사연이 있었구려.”

햄찌, 꼬꼬, 유건명이 그런 한령령을 측은하다는 듯 위로해 주었다.

“복수할 수 있게 도와줄 테니까, 그 새끼 어디 있는지만 말해 줘.”

한령령도 한령령이지만, 천하제일문의 보물창고를 털어간 것도 귀왕이란 놈일 테니까 쫓아가서 박살을 내줄 이유는 충분하겠지.

“저, 저도 몰라요.”

“모른다고?”

“그는 항상 이곳저곳을 돌아다녀요. 언제 찾아올지, 언제 만날 수 있을지 모르죠.”

“음.”

“언니들 중에서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요.”

“아, 너 하나가 아니랬지?”

“맞아요.”

“언니들은 어딨어?”

“그것도 몰라요.”

……아는 게 도대체 뭐야.

조금 있으면 자기 이름도 모른다고 하겠네.

“대신 언니들이 있을 만한 곳들을 말씀드릴게요.”

“언니들이 있을 만한 곳이라…… 설마.”

너 나한테 그거 시키려고?

띠링!

퀘스트창이 떠올랐다.

[알림: <흉가탐방>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아, 제발.

나 무섭단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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