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버프로 무림정복-109화 (109/115)

제109화.

“언니들은 귀주성 곳곳에 흩어져 있어요.”

“……흉가에?”

“네.”

[흉가탐방]

내용 : 귀주성 곳곳의 흉가를 돌아다니며 한령령의 언니들을 제압하고, 설득해서 귀왕의 위치를 알아내보자.

분류 : 일반

진행률 : 해당 없음

보상 : 정보

주의 : 이 퀘스트는 남성은 진행하기 어렵습니다!

남성은 진행하기 어렵다는 게 도대체 무슨 말인데…….

‘섭혼술 때문에 그런 건가?’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한령령이 강력한 섭혼술을 구사하는 걸 보면, 나머지 처녀귀신들의 섭혼술도 어마어마하게 강력하겠지.

하지만 난 예외다.

난 이성이 가하는 모든 종류의 매혹 관련 효과에 면역이니까.

근데, 이거 좋아해야 하는 거 맞아?

아니면 슬퍼해야 하는 거야?

주르륵.

아무래도 슬퍼해야 하는 게 맞는 거 같다.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오는 걸 보면.

“귀왕의 위치를 아는 언니를 만날 때까지 흉가를 찾아다녀야 한다 이거지?”

“맞아요.”

한령령이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들은 어떤 사람들인데? 다 너처럼 피해자들인 거야, 아니면…….”

“반반이에요.”

그래도 솔직하게 말해 주는 걸 보면 확실히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다.

“어떤 언니들은 아버지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하고, 살인을 즐겨요. 남자들의 정기를 빼앗기 전에 운우지락을 즐기는 것 또한 좋아하죠.”

“……하하하.”

“하지만 어떤 언니들은 저처럼 괴로워해요. 운우지락은커녕, 어쩔 수 없이 입맞춤으로만 정기를 빨아내죠.”

“아하?”

“언니들 성격은 제가 알고 있으니까, 같이 가서 물어봐요.”

“같이?”

“저 나무 밑에 제 유품이 있어요.”

한령령이 천하제일문 마당 한가운데에 자리한 커다란 고목(古木)을 가리켰다.

“저는 귀신이라 살아생전 가장 아끼던 유품이 자리한 주변에만 나타날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저 고목에서 유품을 캐면 같이 다닐 수 있다는 거지?”

“네, 맞아요.”

“그럼 낮에는?”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곳이나 음기가 강한 곳이라면 나타날 수 있어요.”

“알겠어.”

이쯤 알았으면 됐지.

아, 하나 더.

“귀왕이 널 만나러 오면 어떡해?”

“아버지는 적어도 3개월 동안은 오지 않아요.”

“만약 오면?”

“그럼 술법을 부려서 저를 고통스럽게 만들겠죠. 시간이 길어지면 저는 그대로 사라질 테고요.”

“알겠어.”

일단 들어볼 만한 정보를 다 들었으니, 궁금한 게 있으면 나중에 더 물어보기로 했다.

“들어가 있어. 내가 필요하면 부를게.”

“알겠어요.”

한령령이 절뚝거리며 고목을 향해 다가가더니, 이내 곧 자취를 감췄다.

절뚝거리는 걸 보니 다리가 부러진 게 맞나 보네…….

“연 소협.”

유건명이 물었다.

“그럼 그 귀왕이란 자를 잡으러 가실 겁니까?”

“그래야지.”

감히 무적일맥의 보물을 훔쳐간 놈이니, 쫓아가서 응징하고 보물을 되찾아오는 건 인지상정이다.

천하제일문이 우리 무적일맥의 하부조직쯤 되니까, 천하제일문의 보물이 무적일맥의 보물이지 뭐.

“헌데 연 소협.”

“응?”

“갑자기 왜 말투가 달라지신 건지…….”

“아, 그거.”

그래, 너 말 한번 잘했다.

“일단 가서 얘기해. 다 모아 놓고 얘기하게.”

“아, 알겠습니다.”

짜식이 눈알 굴리는 것도 어리바리해 보이네.

넌 뒈졌어.

아주 정신교육을 혹독하게 시켜서, 무적일맥의 방계답게 만들어줄 테니까.

* * *

우선 고목 밑에 묻혀 있던 한령령의 유품부터 꺼냈다.

당연히 내 손으로 안 팠다.

“헉헉헉!”

유건명이 열심히 삽질하며 한령령의 유품을 캐내는 동안 자전혈망의 고기를 구워 먹었다.

아까 천하제일문 놈들이 하도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어 대는 바람에 음식이 손도 못 댔던 것 때문이었다.

자전혈망의 고기를 다 먹고 실내 수련장으로 가서 운동을 하고, 전날 고여 있던 빗물로 몸까지 씻어냈다.

캬.

개운하다.

“연 소협! 여기 은장도가 묻혀 있습니다!”

유건명이 자그마한 은장도를 흔들어 보였다.

“수고했어.”

[알림: <한령령의 은장도>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한령령의 유품을 회수하자마자 즉시 햄찌를 타고 돼지촌으로 돌아갔다.

“사부님! 조사님을 뵈었습니다!”

“음?”

“보물창고 안에 걸려 있던 족자에서…….”

유건명은 돼지촌에 도착하자마자 헐레벌떡 뛰어가 양봉길에게 사부님을 뵈었단 이야기부터 했다.

……넌 기절했잖아.

“그, 그게 정말이냐? 정말로 조사님을 뵈었단 말이냐?”

“예! 사부님!”

“허어! 조사님이 네게 뭐라 하시더냐?”

“그, 그것이.”

유건명이 땀을 삐질 흘리며 대답했다.

“제자가 너무나도 놀라서 기절하는 바람에…….”

“허어?”

“연 소협이 조사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았습니다. 아니 그렇습니까? 연 소협?”

유건명이 날 돌아보았다.

“연 소협, 이게 어찌 된 일이오? 정말 보물창고에서 조사님을 뵌 것이오?”

“음.”

이걸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하나…….

“여러분들이 조사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무적천존 맞으시죠?”

“그렇소이다. 천하제일문은 파천황께서 세우셨으니, 파천황에게 가르침을 내려주신 분은 고금제일인이신 무적천존이시오.”

“그분이 제 사부님이십니다.”

“그, 그게 무슨 말이오?”

눈 껌뻑이는 거 보소?

“그분이 제 사부님이시라고요.”

“아니, 연 소협.”

양봉길이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어찌 그리 말도 안 되는 말씀을 하시오? 내 연 소협을 그리 보지 않았거늘.”

“흠.”

예상했던 반응이라 딱히 놀랍지는 않다.

새파란 애송이가 무적천존의 제자라니, 나 같아도 못 믿을 테니까.

“직접 보시죠.”

간단하게 필멸무참진을 전개해 보였다.

이러면 믿으려나?

“……!”

양봉길의 눈이 크게 뜨였다.

“이것도.”

보란 듯 초월무극도 켜 줬다.

“아, 아악!”

양봉길이 날 무슨 귀신 보듯이 바라보면서 삿대질까지 했다.

“저, 정녕 그 무공인 것이오? 정말로?”

무공은 실전됐어도 건너건너 이야기를 들은 게 있어서 알아보긴 하는 것 같다.

그래도 무적일맥의 일파답게 최소한의 보는 눈은 있네.

“피, 필멸ㅁ…….”

“무참진. 그리고 초월무극.”

“……!”

“이만하면 믿으시겠어요?”

“악!”

어어?

너무 놀랐는지, 양봉길이 뒤로 넘어가 풀썩 기절해 버렸다.

뭐야.

유건명도 기절하더니 양봉길까지 기절해?

이놈의 문파는 기절이 종특이야?

* * *

“사부님! 정신 좀 차려 보세요! 사부님!”

“사부님!”

“사부님! 괜찮으세요?”

천하제일문의 제자들이 황급히 양봉길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피, 필멸… 무참진… 초월… 무극…….”

깨어난 양봉길이 정신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헤헷.

어지간히도 충격이 심했나 보네.

“여, 연 소협.”

겨우 정신을 차린 양봉길이 내게 물었다.

“그대가 정녕…….”

“맞다니까요. 또 보여 드려요?”

이거 천지개벽까지 보여 줘야 하나?

그랬다간 돼지촌이 무너져 내리겠지?

하하.

“그, 그럴 필요 없소이다. 눈으로 똑똑히 보았소.”

“그럼 다행이고요.”

“전설의 필멸무참진과 초월무극을 살아생전 볼 수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소이다.”

“하하.”

“아니, 이럴 게 아니지.”

양봉길이 제자들을 돌아보았다.

“너희들은 무엇 하느냐? 어서 나를 부축하도록 해라!”

“예! 사부님!”

양봉길이 제자들의 도움을 받아 몸을 일으키더니, 내게 넙죽 엎드려 절했다.

“무적일맥의 일파 천하제일문의 장문인 양봉길이 사조님의 제자 분을 뵙습니다.”

“헉!”

양봉길이 그 불편한 몸을 이끌고 꾸역꾸역 세 번을 절을 올렸다.

“이러지 마세요. 몸도 불편하신데.”

“아닙니다. 사조님의 제자 분을 어찌…….”

양봉길이 납작 엎드려 말했다.

“본문의 개파조사이신 파천황께서도 감히 그분의 정식 제자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천하제일문의 제자로서, 조사님의 정식 제자 분께 예를 갖추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러지 마세요. 이러자고 말씀드린 거 아닙니다.”

겨우 양봉길을 진정시키고, 조용히 타일렀다.

“저는 어차피 다른 세계에 속한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너무 그러지 말아 주세요. 부담스럽습니다.”

“허나…….”

“우리 편하게 하죠, 편하게.”

양봉길에게까지 깍듯하게 대접받고 싶지는 않아서, 대충 두리뭉실하게 서열을 정리하기로 했다.

“그냥 편하게 사제라고 불러주시죠.”

“어, 어찌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남들이 들으면 이상하게 생각하니까, 대충 그렇게 정리해요. 그래도 같은 무적일맥이라는 울타리 안에 계신 분인데, 저보다 나이 많은 사람한테까지 대우받고 싶은 생각 없습니다.”

“허허.”

“저를 어떻게 생각하시든 마음속으로만 그렇게 생각해 주시고, 겉으로는 사제라고 불러주세요.”

“그, 그렇게 하겠습니다.”

양봉길은 영 내키지 않는 눈치인데, 내가 시키니까 따르겠단 것처럼 보였다.

하긴.

손님이 왔다니까 이런 형편에도 의관부터 가다듬을 정도로 예의 있는 사람이니까, 그러려니 한다.

“니들은 앞으로 대사형이라고 부르면 돼.”

천하제일문의 제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예, 대사형.”

“예, 대사형.”

“예, 대사형.”

어쭈.

이것들 목소리 봐라?

빠직!

이마에 힘줄이 돋았다.

무적일맥의 일파란 놈들이 목소리가 고작 이따위밖에…… 헉.

문득 옛날이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처음 사부로부터 가르침을 받던 날.

‘똥이라도 마려운 것이냐? 아님 오늘부터 계집애가 되기라도 한 게냐? 사내새끼 걸음걸이가 왜 그렇게 당당하질 못한 게야! 남자답게! 당당히 걸어야 한다!’

‘예, 사부님.’

‘어허! 목소리 봐라!’

‘예! 사부님!’

‘남자답게! 당당하게 걸어라!’

‘예!’

‘진정한 강자는 걸음걸이에서부터 티가 나는 법이니라! 알겠느냐?’

‘예! 사부님!’

‘어깨 딱 펴고! 복근은 활시위처럼 팽팽하게! 눈빛은 매섭게! 표정엔 여유가 넘쳐야 한다!’

피식, 나도 모르게 자조 섞인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래, 그랬지.

걸음걸이부터 ㅈ밥 같아 보인다고 2시간 동안이나 갈굼을 먹었지.

그때는 사부님을 별걸 다 가지고 갈군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대사형의 입장이 돼 보니 사부님 심정이 이해가 갔다.

‘도대체 얼마나 답답하셨던 겁니까.’

새삼스레 사부님이 더 대단하게만 느껴졌다.

그때의 난 정말로 ㅈ밥이었었는데…….

삶을 거의 포기하기 직전이었으니까, 얼마나 엉망진창이었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지금 천하제일문 제자 놈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못하지는 않았을 거다.

‘그건 그거고.’

그래도 해야 할 일은 해야겠지.

사부님께 받은 명령이 있으니까.

“목소리들 봐라. 다시.”

“예?”

유건명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시 하라고.”

“아, 예!”

천하제일문 제자들이 다시 인사를 올렸다.

“대사형을 뵙습니다!”

“다시.”

“대사형을 뵙습니다!”

“다시.”

“대사형을 뵙습니다다아아아아아아!!!”

흠.

이제 좀 낫네.

“뀨! 주인놈아! 사제들 생겼다고 벌써부터 기강 잡는 거냐! 적당히 해라! 뀨우!”

“구! 구구구!”

햄찌와 꼬꼬가 끼어들어 저마다 한 마디씩을 떠들어댔다.

“시끄러, 이것들아. 니들은 빠져 있어.”

어디서 축생들 주제에 남의 집안 문제에 끼어들어?

“니들 앞으로 목소리, 표정, 눈빛, 걸음걸이 싹 다 바꿔. 알겠냐.”

“예! 대사형!”

“목소리가 그거밖에 안 나와?”

“예!!! 대사형!!!”

“이번 건만 해결하고 나면 본격적으로 갈ㄱ…… 본격적으로 가르칠 테니까, 다들 그렇게 알고 각오 단단히들 하고 있어. 알겠냐.”

“예!!! 대사형!!!”

“그리고 이거.”

인벤토리에서 은자가 든 주머니를 꺼내 사제놈들에게 하나씩 나눠 줬다.

대사형이 되어 가지고 용돈은 잘 챙겨줘야지.

암, 그렇고말고.

“……!”

“……!”

“……!”

눈빛들 변하는 거 보소?

하도 가난하게 살아서 그런지 돈만 보면 아주 눈이 도는 모양이다.

“감사합니다!!! 대사형!!!”

뭐, 뭐야?

방금 사제놈들의 눈에 달러 마크($)가 떠오른 거 같은데?

내가 잘못 본 건가?

그래, 잘못 본 거겠지.

아무리 게임이라도 그렇지, 어떻게 사람 눈에 달러 마크가 떠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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