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버프로 무림정복-110화 (110/115)

제110화.

다음 날 아침.

로그인하자마자 사제들을 불러 놓고 당부했다.

“어제 준 용돈들 있지?”

“예! 대사형!”

사제들이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걸로 옷도 사 입고, 맛있는 것도 사 먹고 있어. 사부님 잘 모시고.”

“예! 대사형!”

음.

좋군.

간밤에 기합들이 바짝 들었어.

용돈을 줘서 그런가?

“다녀와서 무공도 가르쳐 줄 테니까, 각오들 단단히 하고 있어.”

“예! 대사형!”

대답은 마음에 드는데…….

‘과연 니들이 하루, 아니 한 시간이나 버틸 수 있을까? 후후.’

사제들을 괴롭힐…… 이 아니라.

사제들을 수련시킬 생각을 하니까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무적일맥의 수련은 가혹하다.

물론 진짜배기 무적일맥이 아니라 방계니까, 그 수련 강도는 10퍼센트도 채 되지 않겠지만.

하지만 그 정도만 해도 녀석들을 한 시간 내로 걸레짝으로 만들어 놓을 자신이 있었고, 그렇게 될 거였다.

강한 힘을 얻으려거든,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겠지.

타고난 게 아닌 이상.

“나 다녀오면 이사부터 가고, 그 후에 수련이 시작될 테니까 미리 몸이라도 좀 풀어들 놔.”

“예! 대사형!”

“다시 한번 말하지만, 각오 단단히 해. 차라리 죽여 달라고 빌게 될 테니까.”

“예! 대사형!”

대답은 잘해요.

하긴.

지금 녀석들은 꿈에 부풀어 있다.

어떤 고된 수련이든 다 이겨내고 강해질 생각에 부풀어 있겠지.

그 옛날 파천황, 아니 사부님의 무공을 이어받아 초절정고수가 될 꿈에.

‘안 부서지고 버티면 그렇게 되겠지. 만약 부서지면…… 평생 ㅈ밥으로 살면 되는 거고.’

물론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두진 않을 거다.

‘뒈지면 저승까지 쫓아가서 멱살 잡고 데려온 다음에, 다시 반쯤 죽여 놔야지. 흐흐.’

나 역시 각오를 단단히 다졌다.

사부님이 직접 내리신 명령이니만큼, 이 녀석들을 천하제일로 만들어 놓지 않으면 내 목이 달아날 테니까.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조심히 다녀오게, 사제.”

양봉길이 녀석들과 함께 날 배웅해 주었다.

“아, 그리고.”

아차차.

양봉길한테 미처 못해 준 말이 있어서, 해 주고 가기로 했다.

“주화입마 후유증은 다녀와서 한번 봐 드릴 테니까, 무리하지 마시고 밥 잘 드시고 계세요.”

“그, 그게 무슨 말인가? 사제? 주화입마의 후유증을 봐 주다니?”

“무적일맥의 심법을 잘못 건드려서 생긴 문제니까, 제가 봐 드리면 좀 다르지 않을까요? 형편이 어려우셔서 약도 좋은 걸 못 쓰셨을 테고, 마침…….”

문득 당괴괴 영감님의 뱀 같은 얼굴이 떠올랐다.

그래, 그 영감님이 있었지.

“실력 좋은 의원을 하나 알고 있기도 하고요.”

“정말인가? 정녕 주화입마의 후유증을 치료할 수 있단 말인가? 사제?”

“일단 봐야 알겠지만 지금보다는 훨씬 좋아지겠죠? 아마도.”

“오오오!”

양봉길이 구세주라도 만난 표정을 지었다.

물론 구세주인 것도 맞지만.

“내 몸만 움직일 수 있다면 아주 소원이 없겠네! 사제! 무공은 고사하고 제자들에게 짐이 되지는 않아야 할 것이 아닌가!”

양봉길은 몸이 불편해서 늘 제자들의 수발을 받는 게 못내 마음에 걸리고 미안했던 모양이었다.

확실히, 없이 살아도 사제지간의 정도 돈독하고 다들 좋은 사람들인 게 분명했다.

우리 무적일맥은 이렇게까지 사람 냄새 나는 착한 사람들이랑 거리가 먼데…….

“일단 봐야 알겠지만 서도, 지금보다는 나아지실 것 같으니까 희망을 가지세요.”

“알겠네! 내 희망을 가짐세!”

양봉길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는 걸 보니까, 그간 몸이 불편해서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이 갔다.

‘영감님 오실 때 약재도 넉넉히 가져오라고 해야겠다. 내 돈 쓰면 아까우니까.’

만천화우 때문에 내 말이라면 간이고 쓸개도 몽땅 빼 줄 기세였으니까, 온갖 비싼 약재란 약재는 다 들고 오겠지?

“이거 사천당문에 지금 바로 붙여주세요. 표국은 북풍표국으로 하시고, 제 이름으로 된 돈도 좀 있을 테니까 다 찾아오시고요.”

즉석에서 편지를 써서 양봉길에게 건네주고 발걸음을 옮겼다.

“저어, 사제?”

“예?”

“표국을 통해 서신을 전달하는 것이야 흔히들 사용하는 방법이네만…… 자네는 전서구가 있지 않나? 전서구 뒀다가 어디 쓰나?”

아차.

나 전서구 있었지?

“얘는 데리고 다니는 게 좋아서 어지간해선 일 안 시킵니다. 후후.”

“팔자 좋은 전서구로구먼. 허허허.”

“다 주인 잘 만난 덕…….”

“구! 구구구!”

꼬꼬가 또 내 주변을 맴도는 파리들을 잡아먹고 있는 게 보였다.

“파리 잡아먹지 말랬잖아!!!”

“캑! 캑캑캑!”

“사료 처먹어! 사료! 비싼 사료 냅두고 왜 더러운 똥파리나 잡아먹냐고!”

애초에 벌레 같은 것만 잡아먹는 놈이면 그러려니 할 텐데, 평소에 사람 먹는 음식이란 음식은 다 먹는 주제에!

하여간 식탐 하나는 끝내주는 놈이라니까?

* * *

천하제일문 제자들의 배웅을 받으며 길을 떠났다.

딱히 행선지는 없었다.

그저 귀주성 내에 인적이 드문 곳에 자리한 흉가들을 찾아다니며 귀왕의 딸들이 있는지 없는지만 확인하면 되는, 간단하면서도 노가다성 짙은 여정이었다.

그래도 햄찌를 타고 돌아다닌 덕분에 이동하는 데 큰 불편함은 없었다.

소리가 모양 빠져서 그렇지, 성능 하나만큼은 어지간한 탈것 못지않다.

그렇게 정안현을 한참 벗어나 달리던 중.

“뀨! 주인놈아! 저기 흉가 있다!”

햄찌가 가리킨 방향을 바라보니 외딴곳에 커다란 장원 하나가 버려져 있었다.

버려져 있었는데…….

“……뭔 사람이 저렇게 많아.”

명색이 흉가 앞인데, 거의 수십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득실거리고 있어서 딱히 귀신이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재건축 공사라도 하는 건가?”

“뀨우?”

“그거 돈 좀 많이 되는데. 나도 무림 서버에 땅이나 사서 재건축 대박이나 노려봐?”

현역 시절 부동산 투자로 큰돈을 번 기억 때문인지, 게임 속 세상에서까지 부동산에 관심이 간다.

“뀨우! 주인놈아! 헛소리 말고 무슨 일인지 알아나 봐라!”

“미, 미안.”

햄찌를 타고 흉가에 가까이 다가가 보니 무슨 상황인지 대강 파악이 됐다.

흉가 앞에 몰려 있던 사람들은 재건축을 위한 인부들이 아니라, 나와 같은 게이머들이었다.

거의 50여 명에 달하는 게이머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전의를 불사르고 있었다.

“……뭔 흉가탐방이냐.”

순간 어이가 없었지만, 이내 곧 게이머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이유를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 같은 게이머들에게 있어 흉가는 곧 사냥터.

경험치와 아이템을 수급할 수 있는 장소라, 흉가 앞에 게이머들이 모여 있는 건 놀랄 만한 일도 아니었다.

“자! 갑시다!”

“돌격!”

“고고고!”

미처 말릴 사이도 없이, 게이머들이 우르르! 흉가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비록 흉가지만 꽤 큰 장원이라 그런지, 거의 50명이나 되는 게이머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갔음에도 딱히 붐빈다는 느낌은 안 들었다.

“……저러다 다 죽을 텐데.”

“뀨우?”

“쟤네 다 남자잖아.”

하필 성비가 끔찍하게 망해 버린 파티라, 얼핏 봤을 때도 여성 게이머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는 말은, 앞서 흉가로 쳐들어간 게이머들의 미래가 불 보듯 뻔하다는 얘기.

“으악!”

“으아아아아악!”

“사, 살려 줘! 으아아악!”

아주 백주대낮에 흉가 안쪽에서부터 처절한 비명이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더니, 이내 곧 잠잠해졌다.

“으악! 으아아아악!”

겨우 한 명이 살아서 흉가 밖으로 도망쳐 나왔다.

“ㅆ발! 지, 진짜 ㅈ될 뻔했네! 으어어어어!”

“……괜찮으세요?”

“와. 안에 장난 아니에요. 진짜 눈 깜짝할 사이에 몰살당했어요. 으으.”

“그러게 딴 데를 가시지. 아님 여성 게이머들이라도 좀 모셔 오던가.”

“그, 그러게요. 밀어붙이면 될 줄 알았는데. 후우.”

“근데 여긴 굳이 왜 오는 겁니까? 섭혼술 때문에 엄청 힘들지 않아요? 패턴도 까다롭고?”

“그건 그런데.”

게이머가 대답했다.

“흉가 경험치가 엄청 크잖아요. 그 탈모귀의 두피랑 무면귀의 가면이 꿀템이고.”

“꿀템?”

“모르셨어요? 그걸로 인피면구 만들거나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데. 엄청 많이 모아야 하지만.”

“헉!”

“그거 모아서 귀주성 장의사들한테 찾아가면 만들어 주잖아요. 하나 만들기도 엄청 힘들긴 하지만. 모을 자신 없으면 내다 팔아도 쏠쏠하고요.”

“꿀팁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하. 그나저나…….”

게이머가 아련한 눈빛으로 흉가 안쪽을 바라보았다.

“랜덤드랍 아이템 엄청 많이 떨어져 있을 텐데.”

“……!”

“다음 파티는 진짜 대박이겠네. 누가 주워 갈지는 모르겠지만.”

“아, 안 가세요? 또?”

“저까지 죽을 순 없죠. 쩝.”

게이머가 입맛을 다시며 대꾸했다.

“저도 먹고는 싶은데, 들어가면 무조건 죽을걸요. 나름 술법가 비율 높여서 갔는데도 이러네요. 흉가 사냥터는 여성 게이머들 없인 도저히 안 되겠어요.”

“하하하.”

“아무튼, 저는 갑니다. 수고하세요. 나중에 파티 모아서 가시던 성비 5:5는 맞춰서 가시고요.”

게이머가 나름 조언을 해 주고 떠났다.

“저 안에 떨어져 있는 랜덤드랍 아이템들이 다 내 거라 이거지? 후후후.”

씨익-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 * *

한편, 사천당문은 어떻게 하면 연오랑과 빠르게 재회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만 궁리하고 있었다.

가문의 미래가 걸린 일이니만큼, 연오랑에 대한 사천당문의 기대감은 어마어마하게 높았다.

그래서 사천당문은 어떻게 하면 연오랑에게 접촉할까, 어떻게 하면 더 친해질까, 어떻게 하면 더 자주 만날 수 있을까, 하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가주! 가주우우우!”

당괴괴는 연오랑이 보낸 서신을 받자마자 부리나케 가주인 녹안독군 당천위를 찾았다.

“녀석이 이 늙은이를 불렀네! 가주!”

“그게 정말이십니까!”

당천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렇다네! 녀석이 이 늙은이의 의술과 본가의 영험한 약재들을 필요로 한다는구먼!”

“오호! 정말 잘된 일입니다! 이게 다 숙부님 덕입니다! 숙부님의 드높은 의술을 덕분에 그 연오랑이란 소협과 연을 맺게 되지 않았겠습니까? 크핫핫핫핫!”

“껄껄껄껄! 암! 그렇고말고! 아직 이 늙은이가 쓸모가 있는 모양일세!”

“여부가 있겠습니까? 숙부님이야말로 본가의 큰 어른이십니다! 하하하하하!”

“껄껄껄껄! 과찬일세!”

당괴괴가 헤벌쭉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정작 연오랑과 시비가 붙어서 관계가 좋아지기는커녕, 철천지원수가 될 뻔한 건 까맣게 잊은 모양이었다.

“하면, 직접 가실 예정이십니까?”

“당연히 그래야지!”

“그럼, 부탁드립니다. 숙부님의 노고를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늙은이만 가선 곤란한 일일세.”

“예에?”

“이 늙은이야 여기저기 불려 다니는 몸이라 한곳에 머물러 있기가 힘들지 않은가?”

“그건 그렇지요.”

“그러니 우리 당문의 직계혈족 하나를 파견해 녀석의 곁에 바짝 붙여놓는 것일세. 만천화우의 완성도 지켜볼 겸 독무를 뿜어내는 구결도 얻어 배울 겸 말일세.”

“허어!”

당천위가 당괴괴의 제안에 탄복했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역시 숙부님이십니다! 어찌 그런 좋은 생각을!”

“껄껄껄! 뭘 이런 걸 가지고! 껄껄!”

“그러면 누가 좋겠습니까?”

“그야…….”

당괴괴가 잠시 고민하더니 대답했다.

“아무래도 소가주가 직접 가는 게 낫지 않겠는가?”

“……!”

“본가에서도 소가주쯤 되는 뛰어난 후기지수를 보내야 구색이 맞지 않겠는가? 녀석의 가르침을 받을 인재라면 역시 소가주밖에 더 있겠나?”

“역시 숙부님이십니다! 크핫핫핫!”

당천위는 망설임 없이 당괴괴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때마침 소가주인 당석영이 폐관수련을 마치고 갓 출도(出道)한 시점이었기에, 강호 경험도 쌓을 겸 중요한 임무도 맡을 겸 연오랑의 곁으로 보내는 게 여러모로 나은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혹시나 소가주가 만천화우의 심득이나 독무의 무공이라도 배워 오기라도 한다면, 훗날 가주에 올랐을 때의 위상도 더 드높아지리라는 것은 두말하면 입 아픈 소리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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