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3화.
“급급여율령! 급급여율령! 급급여율령…….”
귀왕이 계속해서 수인을 맺으며 주문을 외웠지만, 술법은 여전히 발동하지 않았다.
그래, 그러시겠지.
어디 백날 천날 주문 외워 봐라 술법이 발동되나.
네 입만 아프지.
감히 디버프 마스터 앞에서 술법을 쓰려고 해?
[압제신기]
분류 : 액티브
레벨 : 1
범위 : 반경 15미터
재사용 대기시간 : 120초
지속시간 : 60초
효과 : 적의 기 흐름을 억제하고 방해해 스킬 사용을 봉쇄합니다.
술법가들에게는 매우 치명적입니다.
디버프 마스터가 마법사들을 잡 잡 이유는 이 스킬 하나 때문이었다.
무인들이야 기본적으로 스킬 보단 평타의 비중이 크니까, 그래도 좀 나았다.
그러나 마법사들의 경우 스킬 비중이 99% 이상이니까, 엄청나게 치명적이다.
이 압제신기 하나만 있으면 100레벨이 넘게 차이 나는 마법사도 손쉬운 사냥이 가능하니까, 디버프 마스터야말로 마법사들의 천적이라도 봐도 될 거다.
실제로 판타지 서버에서도 마법사들은 내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했고, 허무하게 죽곤 했다.
“술법가가 술법을 못 쓴다라…….”
“……!”
“그럼, 맞아야겠지?”
콰앙!
귀왕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커헉!”
나가떨어진 귀왕.
쾅! 쾅! 쾅! 쾅! 쾅!
곧장 귀왕을 덮쳐 광속폭력타를 날렸다.
“컥! 커헉! 그, 그만! 악! 크아아아아아악!”
눈 깜짝할 사이에 귀왕의 얼굴이 처참하게 뭉개졌다.
오.
보기 좋네.
“그놈의 손이 문제지.”
뽀각, 뽀각!
“크아아아아아아악!”
두 개의 팔이 부러진 귀왕의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며 고통스러워했다.
“말해.”
귀왕의 목을 움켜쥐고 물었다.
“어떻게 처녀귀신들을 해방시키는지.”
“크, 크윽!”
“말 안 하면 목 부러뜨린다.”
“바, 방울… 컥!”
귀왕이 힙겹게 대답했다.
“방울을… 파괴하면…… 커헉!”
“이거?”
“그, 그렇…… 커헉!”
귀왕의 말대로 방울을 파괴했더니, 고통스러워하던 처녀귀신들이 자유를 되찾았다.
“제발… 제발 살려 주… 커헉!”
“천하제일문 건물에 있던 보물들, 다 어딨어. 그거 내놓으면 살려 준다.”
“이, 이 주머니에…… 다 들어 있…… 크윽!”
귀왕이 자신의 허리춤에 매달린 검은색 복주머니를 가리켰다.
“허공보합은?”
“그, 그 안에…… 컥!”
우선 검은색 복주머니를 꺼내 안에 허공보합이 있나 확인해 보았다.
‘있네.’
다행히 아직 어디 팔아먹지는 않은 모양.
“이, 이제… 살려 주… 크윽!”
“그래.”
약속은 지켜야지.
“살려는 줄게.”
“쿨럭! 쿨럭쿨럭!”
슥 물러나 자리를 지켜주었다.
“이 개새끼야!”
“갈기갈기 찢어서 죽여 줄게!”
“감히 우릴 속이다니!”
처녀귀신들이 두 눈에서 귀화(鬼火)를 뿜어내며 귀왕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 이건 약속이 다르지 않소!”
귀왕이 악에 받쳐 소리쳤다.
“분명 살려 준다고 하지 않았소이까? 어찌 죽이려는 것이오?”
“내가 살려 준다고 했지, 쟤들은 너 살려 준다고 한 적 없을 텐데?”
“그, 그게 뭔 개 같은!”
“나는 살려 준다니까?”
“야 이 개새끼야!”
귀왕이 쌍욕을 내뱉으며 항의했다.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치다니! 이 씨발놈아!”
“거 나는 거짓말한 적 없다니까 그러네. 히히히.”
히죽 웃으며 귀왕을 조롱하는 사이.
“죽어어어어어어어!”
“이 개 같은 놈아아아아아!”
“죽어! 죽어어어어어엇!”
처녀귀신들이 귀왕을 산 채로 갈기갈기 찢어발기기 시작했다.
“헉.”
그 모습이 너무 끔찍해서, 차마 눈 뜨고 지켜보기가 힘들 정도다.
“우, 우린 자리 좀 비켜 주자.”
“뀨우, 알겠다.”
“구, 구구구.”
햄찌와 꼬꼬도 살벌한 풍경에 기가 질렸는지, 나를 따라 현장을 벗어났다.
* * *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귀왕의 비명을 배경음악 삼아서, 검은 주머니를 다시 자세히 살펴보았다.
안에 든 내용물은 다음과 같았다.
- 허공보합 × 1
- 칠지도 × 1
- 뇌전신공 비급 × 1
- 옥보단 × 1
- 건괘 × 1
(중략)
- 소수마공 비급 × 1
- 주작익선 × 1
한때 천하제일 문파의 비밀창고에 있던 물건들이라 그런지 딱 봐도 좋은 것들이 가득하다.
그중에 관건은 역시나 허공보합.
‘드디어.’
귀왕이 어딘가에 팔아 버렸다면 피가 거꾸로 솟을 뻔했는데, 얌전히 가지고 있어 준 게 천만다행이라면 천만다행이랄까.
‘뭔지 한번 볼까.’
호기심을 못 참고 허공보합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허공보합]
하늘이여!
땅이여!
바람이여!
설명 : 건(乾), 곤(坤), 손(巽)
분류 : 보패 (1회용)
등급 : 신화
내구도 : 무한
효과 1 : 주변 지역을 비춰줄 뿐더러, 누구든지 원하는 사람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효과 2 : 팔괘를 찾는 데 필요한 실마리를 줍니다.
- 비어 있음
- 비어 있음
- 비어 있음
주의사항 : 팔괘 중 건, 곤, 손괘를 보패의 빈 공간에 끼워넣지 않으면 허공보합을 완전하게 사용할 수 없습니다.
“……씨바.”
입에서 욕이 절로 나온다.
그러니까, 이 허공보합이라는 보패는 그냥 사용하는 게 아니라 건괘, 곤괘, 손괘라는 돌멩이를 끼워 사용하는 아이템이었다.
[알고 계셨나요?]
‘팔괘’란 신화 속에 등장하는 신인 ‘복희’가 만들어 냈다고 전해지는 여덟 가지 신비로운 문자를 뜻합니다.
팔괘의 종류는 다음과 같습니다.
- ☰ 건(乾) 하늘
- ☷ 곤(坤) 땅
- ☱ 태(兌) 늪
- ☲ 리(離) 불
- ☳ 진(震) 번개
- ☴ 손(巽) 바람
- ☵ 감(坎) 물
- ☶ 간(艮) 산
아까 보니까 건괘가 있던데, 괘 8개를 다 찾진 않더라도 최소한 곤괘와 손괘를 찾아서 끼워야 한다는 뜻.
즉, 허공보합을 찾았다고 해서 카렐을 찾는 여정이 끝난 게 아니란 소리다.
“후우.”
한숨이 푹 나왔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건가.”
나머지 곤괘와 손괘를 찾는 여정도 그리 쉽지는 않을 게 뻔해서, 벌써부터 눈앞이 캄캄하다.
“뀨! 주인놈아! 그런 나머지 곤괘랑 손괘 찾아야 하는 거냐!”
“그래야 할 듯?”
“뀨! 주인놈 또 뺑뺑이 돈다! 뀨우!”
“어쩔 수 없지. 8개 아닌 게 어디야. 3개면 양반이지.”
“뀨! 그건 그렇다!”
“그나저나 얘는 벌써 뒤졌나? 비명이 안 들리네?”
“뀨우?”
“있어 봐. 보고 오게.”
더는 귀왕의 비명이 안 들려서, 안으로 들어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나 확인해 본 결과.
“어, 어우야.”
들어가 보니 처녀귀신들은 온통 피칠갑이고, 웬 시뻘건 고깃덩이가 널브러져 있었다.
바닥에는 피가 흥건하고, 살점들과 피부 조각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서…….
“윽.”
한때 귀왕이었던 것의 잔해를 보고 나니 속이 안 좋다.
갈가리 찢어 놓겠다더니, 진짜로 찢어 놨네…….
* * *
상황이 종료된 후.
[알림: 레벨이 올랐습니다!]
[알림: 96레벨 달성!]
[알림: 97레벨 달성!]
[알림: 98레벨 달성!]
귀왕을 제압한 것에 따른 보상으로 레벨이 3이나 올랐다.
처녀귀신들이 갈기갈기 찢어놔서 땅콩을 못 수확한 게 조금 아깝긴 한데, 이만하면 스탯 조금 손해 본 건 생각도 안 났다.
사내새끼 그거 보는 게 딱히 좋은 일도 아니고.
“연 소협.”
한령령이 나서서 내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정말 고마워요. 연 소협이 아니었다면 저희는 계속해서 귀왕의 노예 노릇을 하고 있었겠죠.”
“에이, 뭘 이런 걸 가지고. 서로 돕고 사는 거지.”
사정이 워낙 딱해서 그런지 도와주고 나니 나름 뿌듯하다.
귀왕이 허공보합을 가지고 있었던 게 동기긴 했지만,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도와줬을 테지만.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이건 저희의 성의입니다.”
“으응?”
“저희에게는 필요치 않으니, 연 소협께서 가져가셔요.”
한령령과 처녀귀신들이 귀왕에게 주려고 모아 두었던 정기를 내게 건네주었다.
우웅!
포식대법이 저절로 발동되는가 싶더니, 처녀귀신들이 건네준 정기가 흘러들어오기 시작했다.
[알림: 내공이 올랐습니다!]
[알림: 내공이 올랐습니다!]
[알림: 내공이 올랐습니다!]
(중략)
[알림: 내공이 올랐습니다!]
‘이건!’
내공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알림: 처녀귀신들이 당신을 축복합니다!]
[알림: 레벨이 올랐습니다!]
[알림: 99레벨 달성!]
[알림: 100레벨 달성!]
(중략)
[알림: 110레벨 달성!]
레벨도 덩달아 쭉쭉 올랐다.
[알림: <벽력일섬> 스킬이 해금되었습니다!]
[알림: <만천화우> 스킬이 해금되었습니다!]
“캬!”
이번엔 내가 즐겨 사용하던 액티브 스킬 두 가지가 동시에 해금되었다.
베기 스킬인 벽력일섬.
그리고 투척 스킬인 만천화우.
두 가지 다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가진 스킬이라, 있고 없고의 차이가 엄청나다.
그간 레벨이 낮아 스킬이 몇 개 없어서 답답했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해결된 거다.
역시 사람은 착한 일을 해야 한다니까?
“연 소협께 감사드려요.”
“연 소협께 감사드려요.”
“연 소협께 감사드려요.”
처녀귀신들이 꾸벅 인사를 남기고 성불했다.
단 한 사람.
한령령은 성불하지 않았다.
“넌 안 가?”
“네, 전 안 가요.”
“왜???”
“저, 부탁이 있어요.”
“어떤 부탁?”
“마지막으로 정인을 보고 싶어요.”
“아.”
“염치없지만… 꼭 부탁드려요. 먼발치에서나마 뵙고 싶어요.”
한령령이 간절한 목소리로 부탁했다.
[알림: <한령령의 부탁>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그래, 알겠어. 뭐 어려울 일이라고.”
“감사해요, 연 소협.”
귀왕의 집안을 싹 다 털어서 챙길 건 챙기고, 집에 불을 질렀다.
화르르르르르르르르!
“이야. 잘 탄다.”
“뀨! 주인놈아! 이제 방화범으로 전직한 거냐! 뀨우!”
“내가 뭔 방화범이야! 쓰레기 같은 놈 집에 불 지른 거 가지고!”
“뀨우?”
“됐고, 다시 천하제일문으로 가자.”
“뀨! 알겠다!”
허공보합도 찾았겠다, 우선 천하제일문으로 향했다.
* * *
다음 날.
“대사형을 뵙습니다!”
로그인하자마자 사제 녀석들이 우렁찬 목소리로 인사를 박았다.
‘좋네.’
좀 갈궜다고 확 달라진 사제 녀석들의 목소리가 꽤나 마음에 든다.
“다들 짐 싸.”
“예?”
“다시 가야지, 천하제일문으로.”
“……!”
“귀신도 없어졌겠다, 돌아가야 할 거 아냐.”
“드디어!”
천하제일문 제자들의 얼굴이 환히 빛났다.
“정말 총단으로 다시 돌아가는 겐가? 사제?”
“예, 장문인.”
양봉길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여기서 계속 지낼 순 없잖아요. 수리할 곳이 많을 것 같은데, 그건 천천히 하고, 우선 이사부터 하죠.”
“오오!”
“준비부터 하시죠.”
“알겠네.”
워낙에 짐이 없어서, 이사를 준비하는 데 2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햄찌야.”
“뀨?”
“니가 수레 좀 끌어라.”
“캬아악!”
햄찌가 털을 곤두세우며 반항했다.
“햄찌가 무슨 소냐! 짐수레 왜 끄냐!”
“너밖에 없는데 어떡해? 그럼 다 들고 가냐?”
“뀨우, 알겠다. 대신 맛있는 거 사줘야 한다! 뀨!”
“맛있는 거라…….”
마침 생각나는 음식이 있었다.
“끝나고 짜장면 먹자.”
“뀨?”
“이사하는 날에 짜장면 먹는 거 국룰 아니냐?”
“뀨! 그렇다! 이사하는 날에는 짜장면 먹어 줘야 한다!”
“이따 시켜 먹자고. 여기도 짜장면 파는 객잔이 하나쯤은 있을 거 아냐.”
“뀨! 알겠다!”
햄찌와의 협상을 끝내고, 짐을 잔뜩 실은 수레에 양봉길 장문인과 함께 올라탔다.
“얘들아.”
“예, 대사형.”
“지금부터 총단까지 뛰어와라.”
“예?!”
사제 녀석들이 그게 무슨 개소리냐는 듯 눈을 크게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