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디버프로 무림정복-114화 (114/115)

제114화.

“귓구멍에 뭐라도 박았냐?”

“예……?”

“뛰어오라고. 총단까지.”

“하, 하지만 거리가…….”

돼지촌에서 천하제일문 총단까지는 걸어서 5시간은 걸리는 거리.

그 먼 거리를 뛰어오라는 건 어쩌면 가혹행위일 수도 있었다.

“강해지기 싫어?”

“그, 그건 아닙니다!”

“그럼 닥치고 뛰어와. 아니면 포기하고 평생 ㅈ밥으로 살던가.”

연오랑이 냉정한 말투로 딱 잘라 말했다.

‘이 자식들 체력이랑 정신상태 좀 보려면 일단 뛰게 만들어야지. 그래야 알지. 누가 체력이 얼마나 되고, 누가 정신력이 센 편인지.’

연오랑은 가혹행위를 시킨 게 아니라, 사제들의 현재 상태를 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체력은 얼마나 되는지, 체력이 떨어지더라도 얼마나 더 뛰는지, 포기를 하는지 직접 보고 싶었던 것이다.

“할래, 말래.”

연오랑이 유건명에게 물었다.

“하겠습니다!”

“준비.”

“악!”

유건명이 달리기 자세를 취했다.

“악!”

나머지 제자들 역시 유건명을 따라 달리기 자세를 취했다.

“뛰어~ 갓!”

“악!”

그러자 제자들이 총단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햄찌야 우리도 대충 속도 맞춰서 천천히 가자.”

“뀨! 알겠다!”

그렇게 천하제일문 총단까지 달리기가 시작되었다.

“헉헉!”

“헉헉! 헉헉헉!”

“헉헉헉!”

천하제일문 제자들은 가쁜 숨을 헐떡이며, 이를 악물고 총단을 향해 뛰었다.

“어어? 느려져? 너 퍼져? 포기해!”

연오랑은 수레 끝에 걸터앉아 천하제일문 제자들을 갈궈 댔다.

물론 일부러 괴롭히려고 갈궈 댄 건 아니었다.

단지 제자들의 동기부여를 위해 자극한 것일 뿐.

“사제, 뭐 하는 건가?”

양봉길이 연오랑에게 물었다.

슥슥, 슥슥슥.

연오랑은 그 와중에 빈 서책과 붓을 꺼내 들고, 뭔가를 적어나가고 있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유건명 : 체력 좋음. 의지 뛰어남. 뒤처지는 제자들을 챙김. 대제자로서 모범을 보이는 모습이 엿보임.

초아란 : 가장 체력이 뛰어남. 의지 역시 뛰어남. 유건명과 같이 뒤처지는 제자들을 챙김.

진영인 : 아직 어리지만 체력도 좋고 근성이 뛰어남. 절대 포기하지 않을 놈. 문제는 성질머리가 급해서 의욕이 앞선 경향이 있음. 그 증거로 초반에 제일 앞서나가 금방 뒤처짐.

하후림 : 제일 어림. 의지는 있지만 체력이 너무 약함. 성장기인데 잘 먹지 못해서 그런 것 같음. 딱 봐도 근골이 가장 떨어져서, 무인보다는 술법가나 문사 체질에 어울려 보임.

왕춘식, 고덕룡 : 체력은 좋지만 의지가 다소 약함. 근성도 그리 뛰어난 편은 아님.

“아, 이거요.”

연오랑이 대답했다.

“애들 상태 보는 겁니다.”

“음?”

“현재 체력이 얼마나 되는지, 의지력은 얼마나 강한지. 자세히 적어 두려고요. 그래야 애들 수준을 파악할 수 있으니까요.”

“허어! 그런 뜻이?”

“사실 애들 영양상태도 별로고, 거리도 먼데 뛰어가라는 건 말도 안 되죠.”

“그, 그렇지.”

“그래서 시킨 겁니다. 중간에 퍼지더라도 이를 악물고 거기까지 가는지, 못 가는지. 그걸 보고 싶어서요.”

“음! 무리한 수련이라는 걸 알면서도 시켰다는 겐가?”

“예.”

연오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만 이렇게 시켜 놓고, 다음부터는 각자 체력 수준에 맞춰서 수련시켜야죠.”

“좋은 방법일세. 사제는 다 계획이 있었구먼.”

“그럼요.”

연오랑이 씩, 웃으며 말했다.

“무식하게 정신력만 강조하는 건 머저리들이나 하는 짓이죠. 수련은 체계적이고 계획적으로 해야 하는 겁니다.”

“내 아무 걱정 안 해도 되겠구먼. 허허허.”

“장문인께선 당분간은 몸을 회복하는데 집중하셔야죠. 사천당문에 사람을 보내 놨는데, 언제 올까 모르겠네요. 늦으면 나 화날 거 같은데.”

연오랑은 기다리는 게 제일 싫었다.

* * *

놀랍게도, 제자들은 누구 하나 포기하지 않고 그 먼 거리를 기어코 완주해 냈다.

“헉헉!”

“우웨에에에엑!”

“으어어어어!”

물론 도착하고 나서는 완전히 퍼져 버려서, 드러눕고 토하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지만.

‘생각보다 다들 기본 체력도 좋고, 근성도 뛰어나. 가르칠 맛이 나겠어.’

연오랑은 결과에 만족했다.

다들 영양상태가 나빠 의지와는 상관없이 완주에 실패할 줄 알았는데, 누구 하나 포기하지 않고 완주해 낸 것이 꽤나 놀라웠다.

그 와중에 유건명과 초아란은 연오랑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뒤쳐지는 제자들을 어떻게든 챙기면서, 뒤에서 밀어주고 앞에서 끌어주는 등 사형으로서의 역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던 것이다.

‘대충 파악했으니까. 앞으로는 거기 맞춰서 수련시키면 되겠네.’

첫 수련은 거기까지.

“다들 짐 정리하고. 좀 쉬었다 청소부터 하자.”

“예, 대사형. 헉헉. 헉헉헉.”

유건명이 숨을 헐떡거리며 대답했다.

“꼬꼬야.”

“꾸륵?”

“너는 객잔 가서 짜장면 좀 시켜.”

“구! 구구구!”

꼬꼬가 푸드덕! 객잔을 향해 날아갔다.

“드디어……!”

양봉길은 총단에 도착하자마자 눈시울을 붉혔다.

처녀귀신들과 귀물(鬼物)들 때문에 본의 아니게 돼지촌으로 이주해야 했는데, 이렇듯 다시 돌아오니 감정이 복받쳐 올랐던 것이다.

‘나중에 정식으로 사과부터 시키든지 해야지, 원.’

연오랑은 한령령이 성불하기 전에 양봉길에게 사과를 시켜야겠다고 생각하며, 총단 건물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수리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네. 이걸 언제 다 고치냐. 하아. 돈도 엄청 많이 들어갈 것 같고.’

천하제일문 총단은 문파가 망한 걸 증명이라도 하듯 당장에라도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지금 당장 수리하지 않으면, 몇 달 내로 폭삭 주저앉을 것만 같았던 것이다.

‘지금 가진 돈으로는 턱도 없겠는데?’

문제는 자금.

‘어디서 돈 좀 벌어 오든지 해야지.’

드넓은 총단 건물을 수리하려면 돈이 얼마나 들어갈지 가늠이 안 됐다.

나름 무적일맥의 문파인데, 대충 수리할 수도 없고…….

‘어디 하늘에서 호구 하나 안 떨어지…….’

그때.

“오랑아! 잘 있었느냐! 껄껄껄!”

저 멀리서 당괴괴가 웬 청년을 데리고 오는 게 보였다.

‘떨어졌네.’

연오랑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 * *

“오? 엄청 빨리 오셨네요? 사천에서 여기까지 오는 데 한참 걸렸을 텐데?”

“껄껄!”

당괴괴가 별것 아니라는 듯 웃으며 대답했다.

“네 녀석이 부르는데 어찌 천천히 올 수가 있겠느냐? 가문에서 제일 빠른 말을 타고 쉴 새 없이 달려왔지!”

“좋습니다. 근데 옆에는…….”

“여긴 본가의 소가주인 당석영이란 녀석이다!”

“아?”

“앞으로 네 녀석을 곁에서 도울 녀석이니 잘 지내도록 해라! 껄껄껄!”

그러자 당석영이 기다렸다는 듯 포권을 취해 보였다.

“연 소협을 뵙습니다. 사천당문의 소가주인 당석영이라 합니다.”

“그래, 난 연오랑.”

“아, 예…….”

“똘똘하게 생겼네. 후후.”

“예?”

“아냐, 아무것도.”

연오랑은 당석영을 보곤 속으로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부려먹기 딱 좋네. 명문가의 자제라 나름 끗발도 날릴 거고. 이것저것 아는 것도 많겠지. 집안에 돈도 많고. 소가주라니까 나름 강할 테고, 할 줄 아는 것도 많을 거야.’

당석영을 바라보는 연오랑의 시선은 딱 ‘머슴’이었다.

정작 당석영은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를 테지만…….

“마침 잘 오셨네요. 여기 천하제일문의 장문이십니다. 인사들 나누세요.”

연오랑이 양봉길을 당괴괴에게 소개해 주었다.

“당괴괴라 하오.”

“당석영입니다.”

그러자 양봉길 역시 포권을 취하며 자기를 소개했다.

“천하제일문의 문주 양봉길이라 하외다. 고명하신 사천당문의 손님들을 맞게 되어 영광으로 생각하오. 비록 누추하지만 머무시는 동안 부족함이 없도록 대접하겠소.”

양봉길은 당당했다.

비록 망해 버렸지만, 천하제일문의 자부심만큼은 어디 가지 않은 것이다.

‘크. 역시 이래야지. 사천당문 따위 앞에서 주눅들 필요 없지.’

연오랑은 그런 양봉길의 모습이 썩 마음에 들어서, 은연중에 미소를 지었다.

“오랑아.”

당괴괴가 연오랑을 돌아보았다.

“여기 네 녀석이 부탁한 물건들이다.”

“아?”

“한번 보려무나.”

당괴괴가 연오랑에게 사천당문에서 제작한 아이템들을 보여 주었다.

“오!”

연오랑이 가장 먼저 살펴본 물건은 역시나 투척 무기인 표창.

안 그래도 갓 만천화우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는데, 때마침 잘 됐다 싶었다.

[혈화비접]

사천당문 최고의 대장장이인 천품명장(天品名匠) 당도철이 자전혈망의 비늘을 이용해 만들어낸 표창.

1,000개의 표창으로 이루어져 있다.

분류 : 투척 무기 (표창)

등급 : 희귀

효과 :

- 적중시킨 적을 감전시킴.

“어떻게 사용할지 몰라 소맷자락 안쪽에 숨기는 방향으로 만들기는 했다만, 1,000개를 한꺼번에 사용하기엔 쉽지는 않을 게다.”

“쉬운데요?”

“엥?”

“줘 보세요.”

연오랑이 혈화비접이 가득 든 팔토시를 낚아채 양팔에 끼웠다.

[알림: <혈화비접> 아이템을 획득하셨습니다! (×1,000)]

“만천화우를 배우고 싶다고 하셨죠?”

“그, 그랬지?”

“일단 한번 보시죠.”

다음 순간.

촤라락!

연오랑의 소맷자락 안에서 1,000개의 표창이 일제히 터져 나왔다.

그게 시작이었다.

촤락!

촤라라라라라라라라락!

무려 1,000개나 되는 혈화비접들이 마치 나비 떼처럼 편대를 이루어 하늘을 수놓는가 싶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연오랑의 소맷자락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만천화우(滿天花雨).

비록 완전하진 않지만, 사천당문의 최고 비기인 절세무공이 반짝! 하고 모습을 드러냈다가 다시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그 광경을 본 당괴괴와 당석영은…….

“악!!!”

“으아아아아악!!!”

당괴괴와 당석영이 비명을 지르며 나자빠졌다.

* * *

“마, 만천화우!”

“맙소사! 만천화우를 실제로 보게 되다니!”

사천당문에서 그토록 재현하려던 절세무공이 눈앞이 보란 듯 펼쳐졌으니, 당괴괴와 당석영이 놀라 자빠지는 건 당연한 일!

“저, 정말로 만천화우를 할 수 있구나? 정말로 만천화우를 해냈어……!”

당괴괴가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간다는 듯 정신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사실 정신이 반쯤 나간 게 맞았다.

만천화우가 실전된 게 어언 100여 년.

이 시대에 만천화우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전설 속의 무공이었다.

그 무공을 두 눈으로 보게 되었으니, 당괴괴가 정신이 나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

“오랑아! 오랑아아아!”

당괴괴가 연오랑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애원했다.

“만천화우… 만천화우를 가르쳐줄 수 있겠느냐? 으응? 제발 가르쳐다오! 제발! 내 이렇게 엎드려 빌겠다!”

쿠웅!

당괴괴가 땅바닥에 머리를 찧었다.

“연 소협… 아니 연 대협! 저도 이렇게 빌겠습니다!”

당석영도 덩달아 땅바닥에 머리를 쿵! 찧으며 만천화우를 가르쳐달라 애걸복걸했다.

그건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었다.

이런 절세무공을, 그것도 가문의 실전된 무공을 배울 수 있다면 머리를 찧는 게 아니라 가랑이 밑으로 기어가는 게 뭐 대수겠는가?

당장 가주인 당천위, 아니 사천당문의 혈족들 전체가 천하제일문으로 달려와 엎드려 빌어도 모자랄 판국이었다.

“오랑아! 제발 부탁이다! 가르쳐다오!”

“정말 가르쳐드려요?”

“그, 그걸 말이라고! 제발 가르쳐다오!”

“그럼…….”

연오랑이 씨익, 웃으며 당괴괴에게 물었다.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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