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셉 (2)
강우진이 지금 전화 건 상대인, 어제 ‘슈퍼액터’에서 만난 송만우 PD를 상기했다.
‘뭐 딱히 기억에 남는 것이 없는데?’
그나마 선명한 건 턱수염을 기른다는 것? 그리고 거물 PD라는 것도. 물론, 이 부분의 출처는 친구인 김대영이었다. 어쨌든 거물 송만우 PD가 우진에게 전화 걸 이유는 적었다.
아니, 없다 해도 무방했다. 근데 왜 전화했지?
이때.
‘아.’
짧은 순간 우진의 머릿속에 뭔가가 스쳤다. 혹시 ‘슈퍼액터’ 2차 예선을 출연해달라는 요청인가? 예능 내부 사정이야 모른다만 송만우가 심사위원이었으니 가능성은 있었다.
‘귀찮은데.’
그나마 다행인 건 강우진은 현재 어제의 수치심이 들지 않는다는 것. 자신의 연기가 쓰레기가 아님을 알았으니까. 곧, 턱을 슬슬 긁던 우진이 작게 목을 가다듬었다.
‘일단, 컨셉질은 유지하는 게 낫겠지.’
그랬더니 무척 건조한 말투가 튀어나왔다.
“먼저 이유를 알려주시는 게 순서 같은데요.”
핸드폰 너머 송만우 PD의 대답은 바로 들렸다.
“아아, 그렇지.”
“‘슈퍼액터’는 출연 않겠다 말씀드렸습니다. 그 메인 PD분한테.”
“아니아니, 그거랑은 딴 얘깁니다. 전혀 달라.”
“그럼 어떤?”
“음- 이걸 전화로 하기는 좀 뭐하고. 가능하면 우진씨 얼굴을 보면서 했으면 싶은데. 어렵겠어요?”
어우, 좀 부담스러운데. 강우진이 속으로 읊조림과 동시에 송만우 PD가 다시 말했다.
“디자인한다고 했었죠? 보통 몇 시에 퇴근해요? 디자인 계열이라 야근도 많고 그렇겠다만.”
“아니요. 회사는 최근에 그만뒀습니다.”
“······역시.”
역시? 여기서 역시가 왜 나와? 그에 관한 답 역시 송만우 PD가 뱉었다.
“마음을 먹었어, 그렇죠?”
송만우 PD의 말 속뜻은 존재감을 드러낼 결심을 했냐는 거였지만, 강우진은 잠시 멍때렸다.
‘뭔 마음을 먹어. 이 아저씨 계속 혼자 뭐라는 거지?’
당최 이해가 안 갔으니까. 명백한 입장차이 덕분이었고, 우진은 일단 근엄하게 침묵했다.
“······”
“어쨌든 회사를 그만뒀다면 당장 오늘 봐도 괜찮지 않겠어요?”
정답. 강우진은 현재 백수. 남는 게 시간이었다.
하지만.
‘너무 넙죽 받는 것도 좀 없어 보이지.’
강우진은 대수롭지 않게 컨셉을 유지했고.
“오후 4시. 그때만 시간이 날 것 같습니다.”
그것을 핸드폰 건너편 송만우 PD가 덥석 물었다.
“오케이! 4시! 장소는 미안한데 나 말고 몇몇이 더 있어서. 주소 보내면 찾아 와줄 수 있습니까?”
“누가 더 있는 겁니까?”
“아아, 관계자 몇 명.”
“상관없습니다.”
“고마워요, 그럼 주소 보낼 테니까 4시에 봅시다.”
“알겠습니다.”
-뚝.
그렇게 송만우 PD와의 통화가 끝났다. 동시에 강우진이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8시 30분쯤. 오후 4시까지는 꽤 여유가 있었고, 우진이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면서 작게 혼잣말을 뱉었다.
“근데 그 송만우란 PD 얼마나 유명한 거지?”
거물이라는 말은 김대영에게 들었었다. 다만, 연예계 쪽에 큰 관심이 없었던 우진이었기에 가늠이 안 됐고.
-스윽.
그가 검색사이트에 송만우 PD를 검색했다. 검색결과는 신속했으며 강우진이 놀라는 것도 빨랐다.
『[연예계이슈]SBC 간판 PD, 송만우 PD의 움직임에 탑배우들이 줄선다/사진』
『스타들이 만났다! 송만우 PD와 박은미 작가가 손잡았다는 소식에 누리꾼들 들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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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만 수십 페이지에 내용을 얼추 확인해도 위용이 대단했다. 덕분에 입 벌린 강우진이 작게 읊조렸다.
“···이런 사람이 나한테 만나자고 한 건가?”
왜지? 왜 불렀을까? 그러다 강우진의 관심이 급격하게 식었다. 고민해봤자 의미 없으니까.
“가보면 알겠지.”
이어 송만우 PD의 생각을 사뿐히 뒤로 미룬 우진이.
-슥.
핸드폰을 내리고 책대본을 집었다. 아직 약속 시각까지는 넉넉하니 대본을 읽을 심산. 우진은 어제로 ‘우아한 장녀’는 다 완독했고, 지금은 ‘건달 검사’를 읽는 중이었다. 그것도 벌써 반은 넘겼다.
-팔락, 팔락.
뭐랄까, 희한했다.
“이게 또···나름 재밌단 말이지.”
엎드려 누운 강우진은 대본 읽는 게 퍽 재밌었다. 이건 분명 이상했다. 평소 우진은 TV도 잘 안 봤었으니까. 그에겐 드라마나 영화 등의 컨텐츠는 영 흥미가 없었다.
보더라도 거의 중간에 그만뒀었다.
그런데 대본 읽는 것은 달랐다. 집중도가 상당했다. 속도도 빨랐고. 영상보다 수십 배는 즐거운 상태.
“내가 원래 글이 체질이었나?”
아니면 느닷없이 발생한 그 괴랄한 아공간 때문일지도 모르지. 뭐가 됐든 강우진은 대본 읽는 것에 속도를 높였다. 그렇게 우진은 점심 1시쯤 받아온 대본과 시나리오를 전부 읽었다.
물론, 작품들의 내용을 전부 세세히 기억할 순 없으나 적당한 맥락은 파악했다. 그런 강우진이.
“으음-”
팔짱 낀 채 읽은 작품 중 기억나는 배역 하나를 적당히 골랐다.
그런 뒤.
-푹!
검은 사각형을 찔러 아공간에 진입했다. 이젠 이 과정이 꽤 자연스럽다.
“보자보자.”
끝없이 컴컴한 아공간에서 우진이 4개의 흰 사각형 앞으로 움직였다. 그가 선택한 것은 두 번째 사각형이었다.
-[2/대본(제목: 우아한 장녀 1부), E급]
-[*완성도가 매우 높은 드라마 대본입니다. 100% 리딩이 가능합니다.]
망작으로 막을 내린 ‘우아한 장녀’였다. 곧, 흰 사각형 밑으로 새로운 문구들이 나타났다. 느낌은 쪽대본 때와 비슷했다.
다만, 다른 점은.
-[2/대본(제목: 우아한 장녀 1부)을 선택하셨습니다.]
-[리딩(경험) 가능한 인물을 나열합니다.]
-[A:심형우, B:장태산, C최기섭, D고두석······]
리딩 가능한 인물이 많다는 것. 8명은 넘어 보였다. 당연했다. 정식 대본이니 쪽대본보단 훨씬 많겠지. 여기서 우진이 깨달은 것 하나.
“역시 남자만 가능해.”
성별은 같아야 했다. 뭐, 이 부분에 대해선 강우진도 인정했다. 갑자기 사망하는 것만큼 여자가 되는 것도 사양이었다.
이어.
-스윽.
강우진이 나열된 인물 중 미리 결정해 놓은 이름을 터치했다. 제일 끝에 있었다. 그러자 갑작스레 여자 목소리가 아공간 전체로 울렸다.
정적이며 로봇 같은 음성.
[“‘J:카페 남자 점원’ 리딩 준비 중······”]
선택이유는 심플했다. 분량이 매우 짧을 것. 어차피 실험을 위한 것일 뿐이었으니까.
어쨌든 우진은 말없이 기다렸고
“······”
여자 목소리가 다시 들리는 것은 금방이었다.
[“······준비 완료. 완성도가 매우 높은 대본이나 시나리오입니다. 구현도는 100%입니다. 리딩을 시작합니다.”]
그대로 강우진은 커다란 회색에 빨려 들어갔다.
이후.
아공간에 있던 강우진이 자신의 원룸으로 돌아왔다.
“후-”
한숨을 뱉으며 짧은 머리를 쓸어넘기는 그의 모습엔 긴장이나 당황은 없다. 거기다 멍한 모습이나 이성이 흐릿하지도 않았다. 뇌 작동도 정상.
쪽대본 때와는 달리 또렷했다. 적응은 끝났으니까.
“처음엔 왜 그렇게 몽롱했었지?”
팔짱 낀 강우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어차피 아공간 너머 저쪽이나 원룸인 이쪽이나 같은 현실이었다. 두 쪽 다 강우진이 직접 겪는다. 그렇다면 어젠 왜 그랬을까? 이쯤 우진이 대강 답을 내렸고.
“뭐, 처음이라 몸이 거부한 거겠지.”
천천히 자신의 현 상태를 파악했다. 뇌부터 마음속까지 구석구석. 이내 느낄 수 있었다. 직접 경험한 터라 생생한 것은 당연했고.
“‘카페 남자 점원’의 대사들까지 하나 빠짐없이 기억나.”
몇 줄 안 되는 대사까지 완벽히 기억났다. 마치 수천 번 외운 단어들처럼. 각인이라고 할지. 이건 짧아서 외워진 수준이 아니었다.
물론, 다른 쪽도 상황은 비슷했다.
인물의 오감부터 감정, 생각, 기분 등등. 강우진이 선택한 ‘카페 남자 점원’의 모든 것이 스며들어 있었다. 이 역시 쪽대본과 같았다. 소화하는 과정도 없으며 적응하고 받아들인다.
거부감 없는 장기 이식처럼.
즉, ‘카페 남자 점원’은 강우진에게 이식됐다. 이미 이건 연기라기보단 빙의한 배역을 강탈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어.
“······와- 씨.”
아공간의 능력에 강우진이 새삼 감탄했다. 뭐, 배우가 되는 건 그렇다 치고, 아공간에서의 뭐든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가치는 높았으니까.
아니, 그렇잖아?
계속 사용해봐야 알겠지만, 만약 어떠한 조건이 없다면 정말 무엇이든 경험할 수 있었다. 대본이나 시나리오에 따라 하늘을 나는 것은 기본에 마법을 쓸 수도 있을 거다.
‘물론, 배역에 따라 짧고 한시적이긴 하다만. 와중에 배우도 하면 되는 거고. 하는 김에 탑스타 정돈 노려봐?’
이 순간 우진의 마음속에는.
‘뭐가 됐든 완전 다른 인생 한 번 살아보자. 개재밌겠네.’
평소 상상조차 안 해봤던 배우 또는 연기가 가득 차기 시작했다. 그 상태로 강우진이 단편 시나리오인 ‘흥신소’를 집었고.
“그나저나 이거 ‘B급’도 확인을 해보긴 해야 하는데-”
읊조린 강우진이 시계를 힐끔했다. 슬슬 약속시간이 도래했기에.
“일단은 씻자.”
몇 시간 뒤, 오후 4시쯤.
삼성역 부근의 한 커다란 건물 앞에 강우진이 도착했다. 복장은 어제와 같았다. 패딩에 청바지. 그런 그가 높디높은 건물을 올려봤다.
“겁나 높네, 5층이라 그랬지?”
그대로 건물 로비로 들어선 우진은 입구 쪽의 인포메이션 표지판을 확인했다. 5층부터 7층까지는 제작사 ‘씨블루 스튜디오’가 쓰고 있었다.
이곳이 강우진의 도착지였다.
오면서 검색해 봤을 땐 씨블루 스튜디오는 국내서 대형으로 속하는 제작사였다.
“뭐, 크든 작든 나랑은 별 상관없긴 하지만.”
대강 혼잣말 뱉은 우진이 큼큼 목을 가다듬었다. 낮은 톤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뒤로 송만우 PD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가 받는 것은 금방이었고.
“아 우진씨. 도착했습니까?”
“네. 1층입니다.”
“바로 사람 보낼게요.”
몇 분 뒤 강우진에게 어려 보이는 여자가 다가왔다.
“강우진씨 맞으시죠?”
그녀는 조연출이었다. 곧, 강우진은 조연출을 따라 5층 씨블루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이어.
“PD님은 안에 계세요.”
한 회의실 문 앞까지 우진을 안내한 조연출이 손짓했다. 안으로 들어가라는 뜻. 덕분에 우진은 컨셉을 상기하며 기탄없이 문을 열었다.
-끼익.
회의실의 내부는 꽤 넓었다. 중앙엔 ㄷ자형 책상이 보였고 거기에 앉은 인원이 대여섯 명. 모조리 방금 입장한 강우진에게 시선을 붙였다.
물론, 그중에서는.
“강우진씨, 또 보네요.”
턱수염 송만우 PD도 있었다. 퍽 서글서글 웃으며 강우진을 맞이하는 그. 과연 거물 PD답게 자리는 대여섯 명 중 가운데였다.
이때.
“!!!”
강우진이 속으로 화들짝 놀랐다.
‘허헐! 홍혜연?!’
천사인 탑여배우 홍혜연이 눈에 들어왔으니까. 뭐냐 이거 홍혜연이 있네?? 우진은 자신의 눈을 부비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더불어 악수를 청하고 싶었다. 또 보네요? 하면서. 하지만 참았다. 진짜 필사적으로 참았다.
탑재된 쎈척에선 경망 따윈 있을 수 없으니까.
그 덕에 홍혜연과 눈을 마주쳤음에도 강우진은 무심한 얼굴을 유지할 수 있었다. 송만우 PD의 목소리가 들린 것은 이다음이었다.
“사람이 좀 많아서 당황스럽죠?”
어, 무지. 애초에 홍혜연이 있는 거면 처음부터 말을 해달라고. 속으로 칭얼거린 강우진이었으나 겉으로는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그따위 거 아무런 상관없다는 식으로.
“이유가 있겠죠.”
이어 건조한 톤으로 읊조린 강우진이.
-드륵.
가까운 의자를 꺼내 앉았다. 다리 정돈 꼬는 게 좋겠지? 애써 여유를 챙긴 우진이 반대편 인원들을 대충 훑었다. 떨리니까 홍혜연은 건너뛰고. 긴 파마머리의 중년 여자와 기타 등등의 남자들이 우진을 빤-히 보고 있다.
약간 가시방석.
그즈음.
“음- 우진씨.”
앉은 강우진 반대편의 턱수염 송만우 PD가 몸을 살짝 앞으로 당겼다. 표정은 진중하다.
“갑자기 본론입니다만 너무 궁금해서요.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고. 우진씨 정도면 독백 연기 한둘은 가지고 있죠? 대사를 좀 보고 싶어서. 어젠 대사 위주가 아니었으니까.”
독백 연기란 배우가 상대역 없이 대사를 치는 것. 보통은 대사가 긴 편. 그렇기에 배우 지망생들은 오디션을 위해 독백 연기 하나 정돈 외워 둔다.
허나 강우진에게 그런 게 준비돼 있을 리 만무했다.
‘독백 연기? 이게 뭔 쌉소린지?’
고작 하루 전에 연기란 걸 접한 그였으니까.
‘여기선 일단······입을 다물자.’
덕분에 우진의 선택은 침묵이었다. 그랬더니 송만우 PD가 멋대로 일을 진행 시켰다.
“아니면 이걸 보고 해줘도 돼요. 해석은 우진씨 편한 대로 하시면 되겠고.”
-스윽.
말을 마친 송만우 PD가 강우진의 앞으로 검은색 태블릿을 천천히 밀었다. 태블릿 화면에는 얼추 10줄은 넘어 보이는 글자들이 박혀 있었다.
독백 연기의 대사들이었다.
뭐가 됐든 저들은 지금 강우진에게 연기를 부탁하고 있다. 어쩌면 배우로서의 첫걸음인 순간. 그것을 이해한 우진의 얼굴은 무표정. 다만, 태블릿을 지긋이 내려보는 그의 속은 당황으로 가득했다.
‘망할, 저건 안 뜨나 보네.’
대본이나 시나리오와 달리 태블릿 옆엔 검은 사각형이 안 떴으니까. 아공간으로 넘어갈 통로 말이다. 이러면 낭패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준비되면 시작하셔도 됩니다.”
진지하게 읊조리는 송만우 PD. 반대로 강우진의 티 안 나는 불안은 가중됐다.
‘아- 이러면 나가리잖아?’
아공간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야 뭐든 준비할 수 있었다. 그러나 태블릿 옆엔 검은 사각형이 안 뜨는 데다 주변엔 대본이나 시나리오도 없다.
즉, 모든 것이 속된 말로 뽀록나기 직전이었다.
잠시간 고민을 해보는 강우진. 그러다 순간 의욕상실이 떴다. 뭐, 찾으면 방법이야 있을 테지만.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컨셉에 목숨 걸 필요도 없다. 세상은 넓으니까. 그래, 호주 워킹을 가도 됐다. 곧, 강우진은 태블릿을 내려보며 속으로 읊조렸고.
‘몰라, 대충 씨불이고 집에나 가자.’
강우진의 입이 열렸다.
“오늘 말이야. 길을 걷는데 갑자기 고양이가 덤벼들었어. 난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말이지. 걔 입장에선 이유가 있긴 했겠지만······”
이 순간.
“엥?”
“······?”
“???”
잔잔히 대사를 뱉는 우진을 보던 모든 이가 미간을 팍 찌푸렸다. 송만우 PD와 홍혜연 포함, 대여섯 명 모두가.
이유야 심플하잖아?
지금 우진이 보이는 연기가 세상 쓰레기였으니까. 그러니 당황할 수밖에.
특히.
‘뭐, 뭐지?’
강우진을 정면으로 보는, 두 눈에 당황이 가득한 턱수염 송만우 PD가 심했다.
그는 지금 혼돈에 빠졌으니까.
‘배우 지망생보다 못한 수준······어제랑 180도 다르잖아??’
긍정적이 아닌 극히 부정적이었다. 저건 연기라 말하기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국어책 읽기보다 어색하달까? 만약 여기가 정식 오디션장이었다면 5초도 안 돼 컷당할 정도.
이 순간에도 강우진은 덤덤하게 대사를 치고 있다.
“그래서 일단 난 그놈을 붙잡았어. 미친 듯이 저항하긴 하더라. 그래도······”
미치도록 뻔뻔했다.
하지만 강우진은 일말의 표정 변화 없이 쓰레기 연기를 이어간다. 그럴수록 송만우 PD의 혼란은 수십 배 가중됐다. 어째서? 왜? 난 대체 뭘 보고 있나? 저놈이 어제 내가 본 걔가 맞나?
이때.
-스윽.
대사를 읽던 강우진의 시선이 반대편 송만우 PD에게 닿았다. 눈빛에 불만이 섞였다.
‘다 뽀록났는데 대충 그만하고 보내주지?’
그런데.
“······!!!”
우진과 시선을 나눈 송만우 PD가 대뜸 두 눈을 크게 떴다. 거물 송만우 PD가 강우진의 눈빛에서 지멋대로 뭔가를 깨달았다.
‘그래···그렇군, 연기 못하는 연기를 하고있는 거야 지금.’
오류가 심각한 깨달음이었다. 또는 착각.
곧, 송만우 PD가 손을 올려 우진의 연기를 끊었다. 그리곤 조심스레 물었다.
“우진씨. 왜 연기 못하는 연기를 보여주는지 이유를 물어도 됩니까?”
그러자 살짝 멈칫한 강우진이 턱수염 송만우 PD를 지긋이 약 10초간 바라봤다. 그런 우진이 무표정으로 답했다. 낮고 냉정한 말투였다.
“앞뒤 설명 없이 무턱대고 연기를 하라고 하셔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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