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1)
17일, 월요일 아침. 강우진의 원룸.
주말 내내 ‘프로파일러 한량’의 수십 스탭들이나 엔터 등등은, 이름 모를 배우의 등장으로 난리였지만 정작 주인공인 강우진은.
“흠-”
전혀 이를 알지 못했다. 그저 머리가 산발인 채 양반다리로 노트북을 응시하고 있을 뿐. 현 시간은 9시를 조금 넘겼다. 우진이 눈을 뜨자마자 노트북으로 확인하고 있는 것은, 며칠 전 친구 김대영이 톡으로 링크를 보내온 영화 커뮤니티였다.
사실, 강우진은 주말 동안 몇 번의 서치를 하긴 했다.
지금은 모아 둔 정보를 잠시간 정독하는 중이었다. 뭐, 워낙에 잡스런 정보까지 나오는 커뮤니티라 단편 영화 ‘흥신소’에 관한 것도 꽤 있었다.
다만.
“이것들이 증명된 건 또 아니지.”
이 커뮤니티에 올라온 정보들이 전부 사실이라 믿기도 힘들었다. 요즘 워낙에 커뮤니티가 많고 그만큼 헛소리도 넘쳤다. 그러니 우진은 잡스런 정보들보단 가장 믿음직스러운 글에 집중했다.
-영화 정보: 제목 흥신소(단편)/ 푸른시선 영화사(독립전문)/ 신동춘 감독(무명)
-제작 확정 소식 돌고 있음! 연극하는 아는 누나가 오디션 본다는 거 보니까 거의 확실한 듯.
나름 세세하며 조회수나 댓글도 가장 많은 글이었다. 하지만 정보가 많지는 않았다. 그 흔한 번호도 없고. 뭐, 커뮤니티니 이 정도로 만족해야 되나?
속으로 읊조린 강우진이 마우스를 움직였다.
-스윽.
일단, 검색 사이트에 ‘흥신소’부터 신동춘 감독을 검색했지만 나오는 건 개뿔 없었다.
“그럼 영화사는 나올라나?”
다음 우진이 검색한 게 푸른시선 영화사. 다행히 이쪽은 검색되는 게 있다. 허나 이쪽도 많은 정보는 없었다. 그저 영화사의 위치와 단편 영화 전문이라는 소개글이 전부.
“보통 전화번호 정돈 적어두지 않냐??”
영화사가 영세한 탓인지 이쪽도 번호는 없었다. 일전에 김대영에게도 비슷한 말을 들은 우진이었다. 독립, 단편 또는 예술 영화 쪽의 현실이 매우 퍽퍽하다고. 어쨌든 결과적으로 얻은 건 회사 주소와 좁쌀만 한 정보가 다였다.
“흠- 앉아서 손가락 빨아봐야 의미 없고. 이건 그냥 영화사로 찾아가 봐야 되겠네.”
우진이 ‘프로파일러 한량’에 합류가 확정됐음에도 단편 ‘흥신소’에 관심을 가진 건 간단했다. 시나리오 자체가 꽤 재밌기도 했지만 아공간 관련 실험도 포함됐다. 드라마야 시청률이나 뭐 가늠할 수치가 있다만, ‘흥신소’는 개봉도 안 할 단편 영화였다.
그럼에도 아공간에선 ‘B급’을 표시했다.
-[4/시나리오(제목: 흥신소), B급]
즉, 호기심이 가장 컸다. 단편이라는 ‘흥신소’의 제작 환경 등등도. 추가로 단편이라 부담이 적은 것도 있었다.
‘탑배우들 인터뷰하면 다 그러드만, 자기들은 엄청 협소한 작품부터 시작했다고.’
어렴풋이 어느 배우의 인터뷰를 상기한 우진이었지만, 이건 또 나름 정답에 가까웠다. 반짝 또는 라이징 스타로 뜨는 배우들도 있긴 하다만 그들은 불꽃이었다. 생명력이 짧다. 증거로 한때 난리여도 현재는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배우들이 많다.
반면에 저 밑바닥부터 필모를 탄탄하게 쌓아 올린 배우는 뿌리가 단단하기에 오래간다.
직감 또는 본능에 가깝긴 했지만, 강우진은 생명력이 긴 쪽의 길을 가려는 중이었다.
‘대형 드라마 하나 확정됐으니까, ‘흥신소’ 이쪽은 소소하게 진행해도 되겠지. 뭐, ‘흥신소’에 자리가 없으면 어쩔 수 없고.’
시간도 꽤 남았다. 보통의 배우라면 지금 이 시기에 ‘프로파일러 한량’ 대본에 파묻혀 살겠지만, 강우진에겐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극단적으론 촬영 전날 아공간에 수백 번 들어가도 됐다.
뭐가 됐든 강우진은 난생처음 경험하는 업계를 스펀지처럼 쭉쭉 빨아들이고 있었다.
이쯤.
-스윽.
노트북 보던 강우진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복사해둔 ‘흥신소’ 시나리오가 있었고, ‘흥신소’ 시나리오의 옆엔 당연하겠지만 검은 사각형이 붙어 있다. 강우진이 ‘흥신소’ 시나리오인 종이뭉치를 말없이 집었다.
“······”
그는 ‘흥신소’ 시나리오를 읽어보긴 했지만, 아공간에서 직접 경험 또는 리딩을 하진 않았다. 최근 아공간 실험에다, ‘프로파일러 한량’ 건으로 이래저래 정신이 산만해서였다. 모르긴 몰라도 정신적 피로감이 없진 않았겠지.
그러나 어느정도 정리된 지금은 아무 문제 없었다.
따라서.
-슥.
검지를 든 우진이 검은 사각형을 찌르려던 찰나.
-우우웅, 우우우웅.
그의 핸드폰이 진동을 뱉었다. 발신자를 확인하니 욕이 표시되고 있다.
-엿.
‘엿’으로 저장된 상대는 우진의 유일한 혈육인 여동생이었다. 몇 년간 전화 한 통 없던 게 난데없이 전화해온다?
‘100% 엄마한테 소식 들었겠지.’
갑작스런 강우진의 폭탄선언. 배우가 되겠다는. 분명, 저 전화를 받으면 혈육의 놀림이 우르르 쏟아질 게 빤했다. 그래서 우진은 전화를 사뿐히 무시했다. 그러나.
-우우웅, 우우우웅.
다시금 울리는 진동. 이번에도 전화. 곧, 강우진이 엿을. 아니, 여동생을 떠올리며 짜증 냈다.
“아 이게 진짜 돌았나.”
여기서 재밌는 것은.
“응?”
핸드폰 화면에 표시되는 번호가 ‘엿’이 아니라는 것. 저장 안 된 번호가 뜬다. 혹시 여동생이 핸드폰을 빌려서 전화했나? 싶기도 한 우진이었지만 일단은 핸드폰을 귀에 붙였다.
“네, 여보세요.”
그러자 핸드폰 너머로 익숙하면서도 낯선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분명 혈육은 아니었다.
“저예요, 홍혜연.”
“······”
어? 방금 누구라고? 호, 홍혜연? 무려 탑여배우 홍혜연이 강우진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이 순간 우진은 자리서 벌떡 일어났다. 더불어 실화냐! 라고 외칠 뻔했다. 하지만 외치는 건 정말 가까스로 참았다.
침착해라, 강우진. 넌 지금 컨셉질을 유지해야 되잖아. 속으로 몇 번의 주문을 외우자 우진의 냉정한 말투가 다시 장착됐다.
“안녕하세요.”
아침이라 목이 잠겨 더욱 차가운 음성이 뱉어진다. 이건 의도한 건 아닌데. 어쨌든 핸드폰 너머 홍혜연이 다시 말했다.
“···반응이 좀 미적지근한 거 아니에요?”
“놀라야 했습니까?”
“그, 그런 건 아니지만.”
“놀랐습니다.”
“됐거든요. 여튼 우진씨 ‘박대리’ 역 확정하셨다고 들었어요.”
“예.”
“지금 스탭들 사이로 꽤 시끄러운가 봐요. 아무래도 예정에도 없던 배우 합류라 더 그래요. 헛소문도 꽤 퍼지는 거 같고. 다들 엄청 궁금해하는 눈치?”
순간, 강우진은 두 눈을 끔뻑였다. 그런 일이 있었다고? 우진은 전혀 모르는 일이었으나 차분히 대화를 이었다.
“그런가요?”
“네. 그 박대리 역이 워낙 뜨거운 감자였고 이슈기도 했어요. 어쨌든 이대로면 첫 대본리딩 때 우진씨 인기 스타 되겠는데?”
“······”
“근데 봤더니 쌩판 본 적도 없는 배우가 앉아 있네? 재밌긴 하겠다.”
핸드폰 너머로 홍혜연의 옅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전 우진씨 처음부터 봐왔으니까 이슈도 전달할 겸 전화해 봤어요, 그럼 대본리딩 때 봐요.”
“고생하세요.”
“뭐야, 마지막 인사. 나 억지로 일 시키지 마요. 지금 쉬고 있으니까.”
부드러운 홍혜연의 웃음을 끝으로 통화가 끝났다. 이어 우진이 핸드폰을 천천히 내리며 낮게 혼잣말을 뱉었다.
“와···시발.”
며칠 전만 해도 그저 그런 우진의 핸드폰이었다. 그런데 지금 탑여배우 홍혜연의 번호가 저장됐다. 어제까진 TV에서나 보던 여신이 친숙하게 이름까지 불러줬다.
점점 인생이 요지경으로 변하는 강우진이었고.
“이 핸드폰 김대영한테 팔면 수억은 받을 수 있겠네.”
미소가 번진 우진이 ‘흥신소’ 시나리오 옆의 검은 사각형을 찔렀다.
-푹!
그대로 강우진은 아공간으로 빨려 들어갔다.
같은 날 늦은 오후. 한 건물.
건물 자체가 오래됐는지 복도부터 연식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그런 복도의 끝 위치한 철문엔 약간 헤진 명패가 붙어 있었다.
-푸른시선 영화사.
그리고 사무실의 안은 역시나 좁았고 사무실 중앙 책상엔 남자 두 명이 마주 앉았다. 한쪽은 눈이 작은 편의 남자, 그 반대편에는 턱이 사각인 남자가 앉았다. 나이는 둘 다 40대 어디쯤.
표정을 보니 둘 모두 매우 어둡다.
이미 대화는 진행 중이었는지, 사각턱 남자가 긴 한숨을 쉬며 머리를 긁었다.
“하- 그럼 결국 걔를 남주 시켜달라는 거네요. 거기다 기타 조연들 자리에도 자기네 신인을 몇 써주고.”
그러자 건너편의 눈 작은 남자가 단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뭐, 예상은 했잖습니까.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합시다. 감독님 시나리오를 그쪽에서 좋게 봤기 때문에 이 상황까진 온 겁니다.”
읊조린 눈 작은 남자가 바로 앞에 놓인 종이뭉치를 검지로 툭툭 때렸다. 종이뭉치 표지엔 이런 타이틀이 크게 적혀 있다.
-‘흥신소’
그러거나 말거나 감독이라 불린 사각턱 남자는 한 손으로 얼굴을 쓸었고, 눈 작은 남자가 난감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감독님, 솔직히 저도 빡치긴 합니다. 근데 상황 자체는 나쁘지 않아요. 엎어질 뻔한 거 기적적으로 제작할 수 있게 됐잖습니까.”
“···그래도 후- 대표님, 제가 어떻게 자금을 더 마련하면.”
“그 소리 몇 달 전에도 하셨습니다. 보통 독립이나 단편은 그 소리 하다가 엎어지는 게 수두룩하고요.”
“······”
“좋게 생각합시다, 감독님. 어차피 이 바닥에 돈으로 배우 들이미는 거야 흔한 일이고, ‘흥신소’는 상업 영화가 아닌 단편입니다. 그쪽에선 배우 조건만 확정지어 주면 투자금까지 전부 책임진답니다. 이런 기회 흔치 않아요.”
곧, 감독이 어금니를 강하게 물었다.
“근데 그쪽이 남주로 미는 배우가 과거 구설수에.”
“예. 박정혁. 과거에 꽤 큰 폭행 사건이 있었죠. 그거로 한 2년 쉬었고, 지금은 단편이나 독립을 기웃거리는 중. 그러다 우리 작품을 컨택한 거고.”
“누가 봐도 이건 빨래질 아닙니까?”
“맞습니다. 박정혁은 ‘흥신소’로 세탁할 속셈이 맞아요.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하겠다.’ 뭐 그런 느낌으로. 근데 감독님, 우리가 맑은 물 구정물 따질 땝니까? 진창 속이라도 일단 영화는 찍어야죠.”
그러나 사각턱 감독은 복잡한 듯 양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그래도···이건 아니지 싶은데.”
“아닌 게 어딨습니까. 단편, 독립영화 시장이 원래 이렇습니다. 드라마 PD 하던 시절에 들어보시긴 하셨을 거잖아요? 자, 감독님 침착하시고 긍정적으로만 봅시다. 투자금, 배우들이 한큐에 정리되는 겁니다.”
읊조린 눈 작은 남자가 다시금 ‘흥신소’라 적인 종이뭉치를 두드렸고.
“그쪽, GGO 엔터에선 감독님만 오케이하면 제작 스톱된 거 바로 진행 원합니다. 투자금도 바로 쏴준다 했고요.”
“······”
감독은 머리를 감싸 쥔 모습 그대로 멈췄다. 아마 생각이 많은 듯. 그런 그를 가만히 보던 눈 작은 남자가 작은 한숨을 뱉었다.
“생각할 시간은 많지 않습니다, 감독님. 길어야 며칠. 그 안에 결론 내리셔야 합니다. 그리고 내일쯤 해서 그쪽 GGO 엔터 박실장이라고 저번에 보셨죠?”
“···예.”
“그 친구가 조연으로 밀 신인 몇몇 여기로 데려올 겁니다. 연기를 보여준다네요. 박정혁은 감독님 결정 뒤에 보실 거고. 일단, 생각하시는 와중에 내일 약속만 좀 소화해 주세요.”
“후-”
곧, 머리 헝클어진 사각턱 감독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10분 뒤.
허름한 푸른시선 영화사를 나온 사각턱 감독이 굳은 얼굴로 복도를 걸었다. 여러모로 현실이 각박한지 초마다 한숨을 쉬어댄다.
그러다.
-스윽.
감독이 음침한 계단을 내려갈 때였다.
-♬♪
그가 입은 롱패딩 속 주머니에서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덕분에 계단에서 멈춘 그가 핸드폰을 꺼내 발신자를 확인했다. 약간 밝아지는 얼굴. 감독이 바로 전화를 받았다.
“네, 형님. 안 그래도 전화할까 했다가 말았습니다.”
핸드폰 너머론 남자 목소리가 답했다.
“왬마, 왜 하려다 말았어?”
“아니, 형님 요즘 바쁘시잖아? 한창 정신없죠?”
“그렇긴 해도 좀 더 지나면 더 지옥인 거 모르냐? 어디냐?”
“신사역 쪽입니다.”
“잘됐네, 내일 미팅 있어서 길게는 못 하고. 간단하게 소주나 하자.”
이어 사각턱 감독이 건물을 나와 지하철 방향으로 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죠. 늘 가던 닭발집?”
그렇게 약 1시간이 흘렀을 쯤.
시간은 밤 9시를 넘겼다. 사각턱 감독은 양재역 부근의 한 닭발집에서 찾을 수 있었다. 닭발집은 원래도 맛집인지 월요일 밤임에도 사람이 퍽 많았다.
그 사이.
“······”
미리 도착한 감독이 시킨 소주를 혼자 마시고 있다. 안주는 밑반찬으로 깔린 김치. 그림만으론 매우 처량했다. 굳은 표정도 그랬고.
그러다.
-스윽.
감독이 시간을 확인했다. 기다리는 형님이 꽤 늦는다 생각했으니까.
“아니, 이 형님 왜 이렇게 늦어?”
다행히 이쯤.
“어이- 신동춘이.”
닭발집의 입구에서 누군가 감독을 불렀다. 덕분에 사각턱 감독이 픽 웃으며 자리서 일어났고.
“늦네, 늦어. 형님 이러 깁니까?”
“쏘리쏘리. 하이고 요 앞에서 사고 났는지 더럽게 막히더라고.”
형님이라 불린 남자가 턱수염을 긁으며 민망한 웃음을 지었다.
“거기다 ‘프로파일러 한량’ 대본 회의도 좀 길어졌다.”
감독이 형님이라 부른 남자는 드라마 ‘프로파일러 한량’의 거물 PD.
“근데 넌 미친놈아, 왜 김치에 소주를 처먹고 앉았어? 처량하게.”
턱수염 송만우 PD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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