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뜸 착각당했다 괴물 천재배우로-15화 (15/201)

단편 (4)

“보, 봉황??”

핸드폰 너머 신동춘 감독의 목소리가 격해졌다.

“확실히 그런 미친 연기 듣도보도 못 한 건 맞지만······형님이 그렇게 칭할 정돕니까??!”

신동춘 감독의 흥분에 송만우 PD가 약간 목소리를 죽이며 되물었다.

“너 걔 연기 얼마나 봤어?”

“아- 시나리오상으로 약 3분 정도요.”

“좀 더. 그것보단 길게 보면 내 반응도 이해될 거다. 아니, 그리고 반대로 보면 그 짧은 3분 안에 니가 홀렸다는 얘기랑 같고.”

“아······”

“거기다 난 그 친구 터무니없는 연기만 보고 판단하는 건 또 아니야. 걔의 뭐랄까, 기세랄지 아우라라고 할지. 인간 자체의 냄새가 남달라. 스타성이 있긴 한데 결이 좀 달라.”

뭔가 비밀스러운 강우진이 가진 질감. 으레 연예계서 자주 볼 수 있는 탑들과는 명백해 달랐지만, 그게 또 송만우 PD에겐 신선하면서도 길이 다른 가능성으로 비쳤다. 이쯤 핸드폰 너머 신동춘 감독이 주제를 바꿨다.

“···박작가님도 강우진 그 친구한테 반했다고 하셨죠?”

“어. 지금 상태만 보면 반한 정도가 아니라 거의 사윗감으로 보는 정도다.”

“허- 그 깐깐한 박작가님이?”

“다만, 강우진 걔가 좀 자신한테 확신이 있어서 사포 같아.”

“아 잠깐 봤는데 뭔가 분위기가 딴딴하긴 하더라고요. 근데 그게 연기할 때랑은···180도 달라진다고 해야되나?”

“그렇지. 딱 거물 배우 될 팔자야 그 물건.”

근엄한 강우진의 얼굴을 떠올리며 픽 웃은 송만우 PD가 다시금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여튼 잘 들어. 결론적으론 우리도 사정해서 걔 우리 작품에 꽂았고, 어지간한 탑들 씹어먹을 연기를 심심풀이로 보이는 놈이야 강우진 그게. 그런 놈이 손수 너한테 행차해서 연기를 보여줬다는 건.”

“보여줬다는 건?”

“니 시나리오를 그 친구가 어떻게 가졌는지는 모르겠다만, 네 작품에 애정이 있다는 얘기 아니겠냐? 그게 아니고서야 그렇게 느닷없이 찾아가서 연기를 보여줄 리가 없잖아? 이제 몸값 오를 일만 남은 놈인데.”

“···애정이요? 내 ‘흥신소’에?”

“내 판단에선 그래. 물론, 나도 강우진 걔를 아직 짧게 봤다만, 뭐랄까 작품 찾아 멀리 횡단하는 부류는 아닌 것 같거든.”

곧, 핸드폰 너머 신동춘 감독이 침묵했고 그 사이 송만우 PD가 말을 추가했다.

“즉, 강우진 그놈이 네 ‘흥신소’가 마음에 들었다는 얘기야. 애정이 없으면 그런 수고를 들일 리가 없잖어?”

“내 작품을···애정한다라-”

이 둘의 얘기엔 매우 많은 양의 오류가 포함됐다. 특히 ‘애정’이란 단어에서. 다만, 이를 알 리 없던 송만우 PD는 속전속결로 일을 진행했다.

“그래서. 걔 번호는 땄냐??”

“예? 아, 아니요. 너무 갑자기 가는 바람에 잡지도 못 했습니다.”

“크크, 뒤도 안 보고 갈 길 가지?”

“예. 그렇더라고요.”

“번호는 내가 알려 줄게. 그렇게 직접 행차했을 정돈데 번호 정돈 넘겨도 괜찮겠지. 연락해서 제대로 한 번 만나 봐. 내 마음 이해할 거다.”

“알겠습니다, 형님.”

그렇게 전화를 끊은 송만우 PD가.

“직접 찾아갔다라- 뭔가 질투가 나는군.”

픽 웃으며 혼잣말을 뱉었다.

“질투? 이 나이에 별.”

잠시 뒤, VIP 룸 안.

송만우 PD와 박은미 작가 포함, ‘프로파일러 한량’ 중요 제작진과 주연 배우들은 적당히 웃음을 흘리며 미팅을 이어갔다.

당연히 식사를 겸하면서.

언뜻 보면 실없는 농담이 오가는 자리 같기도 했다만, 와중에도 확실히 해둘 건 짚고 넘어간다. 물꼬는 대부분 송만우 PD의 입에서 시작됐지만, 이번에는 긴 파마머리를 묶던 박은미 작가가 뱉었다.

“보자- 우리 류정민씨는 대본리딩 전까지 식단 조절을 좀 해줘야겠는데?”

곧, 건너편에 앉은 남주 겸 탑배우 류정민이 자신을 검지로 찍으며 웃었다. 류정민은 키가 185가 넘는 장신이었다.

“아. 작가님, 저 살 빼요? 여기서 더?”

“응. 쉬는 동안 아주 제대로 쉬었나 봐? 지금은 좀 부한데?”

“하하, 쉬기는요. 낚시나 좀 다녔는데 회를 너무 많이 먹었나? 알겠습니다. 무려 박작가님 어명인데 당연히 따라야죠.”

“헤어는 명확한 스타일 콘티 나올 때까진 계속 길러줘요.”

“당연하죠, 작가님.”

박은미 작가 뒤로 송만우 PD도 홍혜연에게 요청했고.

“홍스타, 저번에 가안으로 보내준 옷들은 너무 화려해. 스타일리스트들한테 최대한 후줄근한 옷들 위주로 맞추라고 해요. 제작 회의에서도 한 번 얘기하겠다만.”

긴 생머리를 쓸어 넘긴 홍혜연이 눈웃음쳤다.

“아이, 대본 1부만 봐도 알죠. 우리 애들이 좀 욕심부려서 그래요. 확실히 말해 둘게요.”

“그럼 됐고.”

“그런데 PD님, 아까 전화 받으실 때 강우······”

“응?”

홍혜연이 뭔가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사실, 그녀는 아까 전 송만우 PD가 통화할 때 나왔던 강우진이란 이름이 신경 쓰였었다. 하지만 보는 이가 많기에 말을 삼킨 것.

“아니요, 나중에 따로 말씀드릴게요.”

“어? 아- 그래, 그럼.”

이때.

“근데 PD님.”

물컵을 들던 남주 류정민이 홍혜연 보는 송만우 PD에게 대뜸 물었다.

“‘박대리’ 역 맡은 배우가 누굽니까? 아니, 소문만 무성하고 아무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던데요?”

“음, 그게.”

“작가님이 인터뷰에서 말한 씬스틸러 배우, 같은 인물 맞죠?”

“맞아요.”

“누군데요? 아- 궁금해 돌아가시겠네.”

그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다른 배우들도 시선을 송만우 PD에게 맞췄다. 눈빛엔 호기심이 가득하다. 다만, 홍혜연만 딴청을 피웠다. 동시에 류정민이 몸을 앞으로 당기면서 말을 이었고.

“아무래도 1부 대본상 박대리 역이 저랑 가장 많이 섞일 것 같은데, 대본 분석 중에 이미지 상상할 겸 살짝 힌트만 좀 주세요.”

“음-”

“진짜 김후연 걔예요?? 아니면 뭐라더라? 해외파라는 얘기도 있던데요. 설마- 진짜 헐리웃에서 공수해오신 겁니까?”

“글쎄.”

“와, 아니 이렇게 비밀스러울 이유가 있습니까?”

답답함에 류정민이 약간 흥분했지만 송만우 PD는 그저 작게 미소지었다.

“서프라이즈?”

“엥??”

“충격주려면 자기편부터 속이라고, 시청자한테 터트릴 폭죽이라 그래요. 좀만 참아. 어차피 다들 리딩날 보게 될 건데.”

“하하, 일단은 알겠습니다. 근데 진짜 궁금하네. 스탭들도 전혀 모르는 눈치고.”

와중 박은미 작가가 옆에 앉은 송만우 PD의 옆구리를 툭 쳤고.

“PD님, 오늘 배우들한테 그거 물어보신다면서?”

아아 거리던 송만우 PD가 제작실장과 시선을 맞춘 뒤.

“다들 들어봐요, 이 건은 아직 미확정이긴 한데. 대본리딩말이야. 간만에 친목도 도모할 겸 단체 MT 형식으로 어디 놀러 가서 할까 하는데.”

앞에 앉은 배우들에게 전달했다.

“다들 생각이 어때요? 재밌지 않겠어?”

몇 시간 뒤, 늦은 밤. 강우진의 원룸.

시간은 10시가 넘었다. 방금 씻었는지 강우진이 젖은 머리를 탈탈 털면서 등장했다. 곧, 냉장고를 열어 생수를 벌컥대는 그. 와중에 우진의 시선이 아래쪽으로 움직였다.

-스윽.

그의 눈동자가 움직이는 곳엔 종이뭉치 2개가 놓여 있었다. 하나는 송만우 PD에게 받은 ‘프로파일러 한량’ 1부 대본이고, 남은 것은 당연히 단편 영화 ‘흥신소’의 시나리오였다.

물론, 검은 사각형 역시 여전히 붙어 있다.

그중 ‘흥신소’의 시나리오를 보며 강우진이 턱을 긁었다. 오늘 오후 푸른시선 영화사에서의 일을 상기한 것.

“뭐- ‘흥신소’는 텄다고 봐야되나? 아까 보니 주연 조연도 확정된 것 같았고.”

우진은 무턱대고 영화사를 찾아갔다. 바로 문전박대당할 수도 있었으나, 다행히 감독의 오해로 연기까진 보였다.

“그 사각턱 아저씨가 감독이랬지? 좀 놀라는 것 같긴 했는데.”

아공간의 능력이 탁월하니 놀라는 것까진 당연할진 모르지만, 그저 거기까지였다. 아무리 좋은 연기를 보여줘도 현실에선 계약서의 힘이 더 세니까. 이어 강우진이 박실장이란 뚱뚱한 남자와 딸려온 선남선녀를 떠올렸다.

‘걔네가 주연이나 조연을 맡는 거겠지. 겁나 잘생기고 예쁘더만. 연예계엔 그런 애들이 무명으로 수두룩한 건가? 빡세네.’

강우진은 새삼 자신이 ‘프로파일러 한량’에 합류한 게 운이 좋다 생각했다. 어쨌든 ‘흥신소’는 물 건너갔다.

“‘흥신소’, 뭐 살짝 아까운 감이 있긴 해도. 타격은 없어.”

시나리오도 꽤 재밌게 읽었고, 실제 아공간을 통해 경험한 ‘흥신소’의 세상도 박진감이 넘쳤다.

“그 아내 인물이 내 냄새를 맡았을 땐 진짜 지릴 뻔했지.”

그러나 목멜 건 또 없었다. 최소 강우진의 생각에선 그랬다. 아직 배우로선 시작점이고 시나리오야 ‘흥신소’만 있는 건 아니니까. 딱 그 정도의 마음이었다.

따라서.

-툭.

강우진이 ‘흥신소’ 시나리오를 방의 구석에다 대강 치웠다. 사뿐히. 금세 우진의 머릿속에선 ‘흥신소’의 흥미가 옅어졌다. 그대로 이불에 냅다 눕는 강우진. 그런 그가 버릇 적으로 핸드폰을 들어 인터넷에 접속할 때였다.

-우우웅, 우우우웅.

핸드폰이 긴 진동을 뱉는다. 전화였다. 그러나 화면에 표시되는 건 저장 안 된 번호. 이에 미간을 작게 찌푸린 강우진이 작게 읊조렸다.

“뭐냐, 내 폰 요즘 너무 바쁘지 않나?”

최근 들어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자주 온 탓. 그럼에도 일단 우진은 핸드폰을 귀에 붙였고.

“여보세요.”

핸드폰 너머로 낯선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강우진씨??”

“네. 어디 시죠?”

“아아, 저 아까 푸른시선 영화사에서 만났던 신동춘이라고 합니다. 기억···하시죠? 저한테 연기 보여주셨잖아요.”

순간, 아까 오후에 영화사에서 만났던 사각턱 남자를 떠올린 강우진. 그 감독? 근데 이 밤에 웬 전화? 것보다 내 번호는 어찌 알았지? 아, 일단 목소리부터. 우진은 밤이라 잠긴 목에 더욱이 무거움을 실었다.

그러자 우진의 음성이 돌연 냉철해졌다.

“‘흥신소’ 감독님입니까?”

“맞아요.”

“제 번호는 어떻게 아셨나요. 알려드린 적이 없는데.”

순수한 궁금증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번호를 알려준 적 없는 우진이었으니까. 반면, 핸드폰 너머 신동춘 감독의 대답엔 짙은 사과가 깔렸다.

“아! 죄송합니다. 형님···이 아니라 송만우 PD님한테 번호 받았습니다.”

“송만우 PD님이요?”

“예예.”

송만우 PD? 여기서 그 양반이 왜 나와? 강우진이 얼굴을 약간 구기며 고개를 갸웃할 때, 신동춘 감독이 조심스러움 섞인 말을 뱉었다.

“강우진씨. 저를 좀 다시 만나 주실 수 있습니까?”

“···이유를 먼저 들어보고 싶은데요.”

“아- 그게 배우로써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우진씨가 사는 곳을 알려주시면 지금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아 좀 부담되는데.

“지금 말입니까?”

“예, 당장 가겠습니다.”

아니, 강우진은 매우 부담이 됐다.

“아니요. 내일 아침에 뵙죠.”

다음 날 아침, 강우진의 원룸 주변 카페.

신동춘 감독은 용인 수지 근방의 한 카페에 홀로 앉아 있었다. 강우진이란 비밀스런 배우가 이 주위에 살고있는 탓이었다. 어쨌든 지금의 신동춘 감독의 몰골은 퍽 초췌했다. 수염이 까끌하고 잠을 못 잤는지 다크서클도 짙다.

그런 그가 한숨을 뱉으며 입은 경량패딩을 여밀 때였다.

-끼익.

카페 문이 열리며 롱패딩 입은 한 남자가 입장했다. 무심한 얼굴을 한 강우진이었다. 곧, 우진을 발견하자마자 사각턱 신동춘 감독이.

‘확실히···형님 말 듣고 보니 보통의 배우와는 뭔가 질감이 다르네.’

강우진이 보이게끔 손을 올렸고.

“이쪽입니다!”

무표정의 우진이 작게 인사를 하며 신동춘 감독의 건너편에 앉았다. 대화의 물꼬는 신동춘 감독이 빨랐다.

“그- 안녕하십니까, 우진씨.”

“네. 안녕하세요.”

강우진의 반응이 매우 정적이다. 어제도 그랬지만 오늘은 더욱 시니컬했다. 물론, 신동춘 감독이 보기에. 그럼에도 신동춘 감독은 큼큼거리며 말을 이었다.

“어젯밤엔 갑자기 전화 드려서 죄송했습니다. 나름 고민하다가 한 건데 좀 실례였네요.”

“아닙니다. 그래서 하실 말씀이?”

여기서 반대편 강우진을 지긋이 바라보던 신동춘 감독이 마른침을 삼켰다. 그의 입이 열린 것은 이다음이었다.

“갑작스럽긴 하지만. 우진씨, 제 시나리오인 ‘흥신소’를 읽어보셨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신동춘 감독 목소리가 약간 떨린다. 뭐랄까, 마음을 고백하는 이의 느낌이랄까?

반면.

“······”

강우진은 표정 변화 없이 신동춘 감독을 응시할 뿐. 속을 알 수 없는 얼굴. 그게 얼추 10초쯤. 우진이 돌연 차분하게 읊조렸다.

“애착이 가는 작품이었습니다.”

바로 두 눈이 커지는 신동춘 감독.

“애···착?”

동시에 그가 울컥했다.

2년이 넘는 시간. 3년에 가까운 기간 동안 겪은 숱한 무시와 고통이 씻기는 듯했다. 애착이라니. 자신의 작품에 애착을 가진 첫 배우였다. 신동춘 감독은 적잖이 감동한 것이었다.

저 무덤덤한 강우진의 한 마디에.

“애착···말입니까?”

“네. 애착입니다.”

이어 마음이 울컥대는 신동춘 감독이 무표정의 우진을 응시하며 속으로 읊조렸다.

‘늘, 언제나 무시만 당하던 시나리오였어. 내 ‘흥신소’는. 그런데···애착이라니. 날 알지도 못하는 배우가.’

신동춘 감독의 감동은 감격으로 빠르게 바뀌었다. 우진의 ‘애착’이란 단어에서 큰 울림을 받은 것. 솔직히 어제 통화했던 송만우 PD가 해줬던 말에선.

‘니 시나리오를 그 친구가 어떻게 가졌는지는 모르겠다만, 네 작품에 퍽 애정이 있다는 얘기 아니겠냐?’

크게 공감하지 못했던 신동춘 감독이었다.

하지만 강우진이 직전에 덤덤하게 뱉은 ‘애착’이란 단어에 확신했다. 저 무던한 배우는 내 시나리오를 좋아하고 애정해준다는 것을. 심지어 강우진은 송만우 PD나 박은미 작가 등의 거물들이 반했고, ‘프로파일러 한량’ 같은 초대형 프로에 합류한 배우였다.

그 눈이 빠질 정도의 연기력은 또 어떤가?

그런 배우가 무명 감독의 단편 시나리오를 애정하며 애착을 가져준다? 그간 마음속에 축적되던 신동춘 감독의 수많은 고초와 상처가 정화되기 시작했다. 짓밟히고 무시당한 모든 게. 그만큼 신동춘 감독의 현 인생이 지옥과 다름없었다.

곧, 마음속 울림이 그득해진 신동춘 감독의 눈시울이 붉어졌고.

“감사합니다. 고마···워요, 우진씨. 정말로.”

포커페이스인 강우진은 입을 다문 채 건너편 신동춘 감독을 지긋이 보다가.

“······”

티 안 나게 고개를 갸웃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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