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 (2)
찰나였다. 억센 잔디에 걸려 넘어지는 것을 김류진이 인지한 것은. 그의 몸은 자연스럽게 바닥으로 향했다. 얼마나 부드럽고 스무스한 움직임인지 ‘흥신소’ 속 김류진의 모습 그 자체였다.
하지만.
“읍.”
어렵사리 균형을 잡은 뒤에 속으로 깊게 탄식한 것은 김류진이 아닌 강우진이었다.
‘망할, 쪽팔려.’
실수였다. 실수라는 놈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며 어디에나 도사린다. 그놈이 이 중차대한 상황에 강우진에게 붙었다. 이 망할 놈이. 첫 주연작의 첫 촬영이라는 중압감 때문일까? 긴장감 때문일까? 실전 촬영 초짜라서? 또는 이유가 없을지 몰랐다.
물론, 30년급 베테랑 배우라도 NG는 낸다.
웃음이 터지든 대사를 틀리든 뭐든 배우에게 NG는 매우 일상적. 다만, NG는 OK를 향한 과정이지 결과가 아니다. 하지만 강우진은 이 개념을 아직 정확히 몰랐다. 남들의 눈에나 초거대 괴물 배우지, 알맹이는 이제 한 달 차의 아장아장 신입이니까.
따라서.
‘이거 엿된건가.’
꿇은 무릎을 천천히 펴던 강우진은 약간 심각해졌다. 유지하던 컨셉질 역시 떠올랐다.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고작 잔디 새끼 때문에 모든 게 수포가 되는 건가? 그건 좀 억울한데.
우진은 무릎을 무심하게 내려본다. 그러다 고개를 올려 별장을 바라봤다.
도둑질하다 걸린 사람마냥 심장이 미세하게 떨리지만, 당장은 적당한 긴장감을 얼굴에 묻힌다. 바로 옆과 뒤에 카메라가 있으니까. 뭐랄까, 사방팔방 CCTV가 있는 느낌.
‘어쩌냐 이거. 시원하게 넘어졌으니까 감독이 뭔가 사인을 주나? 기다려?’
재밌는 것은.
“······”
그 어디에서도 외침이 안 들렸다. 입질 없이 잔잔할 뿐. 그저 촬영장 특유의 뭉근한 공기만 감돈다. 어라? 이상하네. 왜 조용하냐. 시나리오에 없던 움직임이었다. 그러나 신동춘 감독은 NG를 외치지 않았다. 두 대의 카메라도 왜인지 강우진을 찍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그 이유야 심플했다. 신동춘 감독은 현재.
‘김류진이 별장을 보고 있다, 눈에 고민이 가득해. 시나리오에선 짧게 치고 넘어간 부분을···저렇게 끈적이게 표현해줄 줄은.’
침을 꿀떡 삼키며 모니터 속 강우진에게 극찬을 퍼붓고 있었으니까. 당연히 강우진은 이를 몰랐다. 그러나 눈치로 알았다. 왜 그런진 개뿔 모르겠다만.
‘일단 계속해보면 알겠지.’
훈육은 다 끝나고 하려나? 싶었다. 그렇기에 강우진은.
-스윽.
잠시 빠졌던 ‘김류진’을 다시 끌어올렸다. 이제 이 과정도 퍽 익숙한 우진이었다.
아공간 덕에 수천 번 외운 것처럼 명확한 대사들도 떠올렸다. 김류진의 감정과 감각이 혈관을 타고 쭉쭉 뻗어 나간다. 아마 아공간의 능력이겠지만 점점 더 수월했다. 배역의 리딩(경험)을 반복할수록 그들의 세상은 확고해지며, 연기할수록 그들의 모든 것을 끄집어내는 시간이 짧아진다.
아공간이 선물로 주는 배역의 세상이 강우진의 소유물이 되고 있다.
강우진은 각인된, 이식된 김류진으로 급작스레 동화된다. 금세 평범했던 눈앞의 별장이 음산한 귀신의 집으로 보였다. 온몸에 팽배해지는 냉기, 은연히 퍼지는 옅은 두려움, 날숨에 섞여 뱉어지는 공포.
실려 나가는 시체를 본 뒤다.
김류진의 조용했던 숨소리가 바람 빠진 소음으로 변질됐다. 그 소음이 피스톤 운동을 한다. 들숨 날숨은 점점 더 속도를 높인다. 김류진은 몸이 무겁다 느꼈다. 마치 잔디 바닥에 못처럼 땅땅 박혀있는 것 같다.
몸이 거부하는 거였다.
“후-”
짧은 심호흡. 이때, 김류진의 옆 모습을 찍던 카메라가 그의 앞으로 움직였다. 포커스가 정면 바스트로 변했다. 때문에 신동춘 감독과 홍혜연 등이 보는 모니터엔 김류진이 더 가깝게 출력됐다. 그의 얼굴엔 고뇌가 역력했다.
얼굴 근육이 평평하지만 굴리는 눈동자는 빨랐다.
홍혜연은 모니터 속 김류진을 보며 천천히 자신의 입을 한 손으로 감쌌다. 감탄도 탄성도 아니었다. 경외였다.
‘겁이 나는 거야. 근데 발길은 못 돌려. 서툴지만 호기심이 짙어. 넘어지고 난 직후의 생활감 때문에 캐릭터 매력까지 챙겼고.’
겁을 현실적으로 내주세요. 감독이 그러한 디렉팅을 던진 연기였다. 지금의 김류진은.
이때.
-사박.
멈춰 있던 김류진이 가까스로 한 발을 내디뎠다. 결정한 것이었다. 그가 ‘흥신소’를 하는 이유는 ‘대신 본다’라는 것에서 쾌감을 느끼기 때문이었다. 인간은 의외로 낯선 이에게 비밀을 발설한다.
특히, 사이에 직업이 끼면 신뢰는 증폭되고.
김류진은 돈보단 이런 타인의 이면을 보는 걸 즐겼다. 그런데 살인. 이번엔 살인이었다. 방법이야 정확히 모르겠지만, 살면서 이런 장면과 현장을 얼마나 볼 수 있을까? 그것이 김류진을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목격자’가 되는 건 의외로 희귀한 경험.
어느새 김류진의 발걸음은 빨라졌다.
-사박사박.
별장의 현관문에 다다르는 것은 금방이었고, 천천히 손을 올리는 김류진이 작게 읊조렸다.
“꼴린다고, 시발. 이걸 어떻게 참아.”
그러나.
-덜컹.
현관문이 잠겼다. 망할. 곧, 김류진이 바로 옆의 카메라를 힐끔했다. 물론, 카메라를 본 게 아니다. 차를 타고 사라진 아내의 동태를 살핀 것. 다행히 고요했다. 김류진은 본능적으로 커다란 창문들을 확인했다.
그리고.
-드르륵.
열리는 창문을 발견했다. 동시에 별장이 품고 있던 내부의 집 냄새가 김류진의 코로 흡입된다.
“쓸데없이 좋고 지랄.”
사람이 죽어 나간 것 치곤 향기롭다. 마치 별장이 자기는 아무 탓 없다고 말하는 듯. 짧게 혀를 찬 김류진이 창문을 넘으려다 멈칫. 안과 밖. 이 창문의 경계선이 삶과 죽음의 선처럼 느껴졌다. 김류진이 입을 오물거렸다. 혀가 말랐다고 느꼈기에.
하지만 진입한다.
그의 삶의 경계선이 모호해지는 순간, 카메라 한 대는 김류진을 따랐고 한 대는 창문 밖에 남는다. 바스트와 풀샷. 김류진은 최대한 조용히 별장 거실을 훑었다. 먹다 남은 식기류 빼곤 평범한 분위기였다.
이것을 모니터로 보던 신동춘 감독이 속으로 결정했고.
‘원랜 여기서 끊어야 되는데, 그대로 가는 게 생동감이 몇 배는 넘쳐. 롱테이크로 한 번 가보자.’
별장 속 김류진은 지하실을 발견했다. 거기엔 또 다른 시체가 있었다. 아니, 살아있나? 이때 위층에서 소리가 들렸다. 정확하겐 아무 소리도 안 들렸지만, 지금의 김류진 귀에는 선명하게 들렸다.
사실, 오디오는 후시로 들어가는 작업이다.
그러니 현재의 김류진은 그저 상상과 망상으로 행동해야 했다. 심지어 ‘흥신소’ 자체가 음향이 주가 되는 극이기도 했다. 소리의 공포. 형태는 안 보이나 소리가 김류진을 옥죄게 되고, 여기서 발생하는 김류진의 밀실 연기가 포인트였다.
곧, 김류진이 망가진 가구 사이에 숨는다.
동시에 지하실의 문이 다시 열렸다. 이어진 여자와 남자의 대화 소리. 아니, 현재 지하실엔 아무도 없지만 김류진에게만 들렸다.
“이 새끼는 어떡할 거야.”
“얜 왜 살아있지?”
“목격자니까 살려두면 안 돼.”
쇠를 긁는 듯한 남자 음성. 거기에 ‘목격자’란 단어가 포함됐다. 이 지하실에는 또 한 명의 목격자가 있다.
카메라는 그 목격자의 얼굴을 클로즈업했고, 몸을 웅크린 김류진은 떨리는 숨을 억지로 참는다. 땅을 짚은 손가락에 힘이 쏠렸다. 몸을 지탱하는 종아리와 허벅지의 근육이 미세히 꿈틀했다. 온몸이 부들대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몸이 김류진을 놀리는 것 같다.
아무리 명령을 내려도 몸은 멋대로 떨어댄다. 언뜻 추위를 심하게 타는 듯 보였다.
멈춰, 제발 좀 멈춰라. 행여 소리가 나면 안 됐다. 인기척도 곤란했다. 찰나에 밀려드는 정적의 공포. 김류진은 눈알을 쉴새 없이 굴린다. 칙칙한 회색 바닥은 뭣도 볼 게 없지만 미친 듯이 눈을 움직인다.
시발, 시발, 시발. 좀 가라.
할 수 있는 건 눈알을 굴리는 게 전부였다. 김류진은 오줌을 지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아랫배에 힘을 빼면 시원하게 쏟을 것 같다. 참아라, 지금은 숨 쉬는 것도 참아야 된다. 김류진의 얼굴 근육이 미묘하게 경련을 일으킨다. 경직되는 과정이었다.
그는 오직 소리. 소리를 듣는 것만 집중했다.
이 모든 과정이 카메라에 절절히 담겼다. 그런 김류진을 모니터로 보던 배우들이 작게 입을 벌렸다.
“······”
“······”
하지만 그 누구도 말을 뱉진 못했다. 차마 본인들이 평가할 수준의 연기가 아니었으므로. 눈으로 보고 머리로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아니, 이해를 못 하는 배우도 있었다.
같은 무명이라며?
그런데 이 말도 안 되는 격차는 무엇인가? 와중에 모니터를 보며 광기 비슷한 웃음을 짓던 신동춘 감독이 나지막이 말했다.
“꿈이···꿈이 아닐지 몰라. 아니, 돼. 무조건 돼.”
그런 그의 등에 붙은 홍혜연이 속삭였고.
“‘미장센 단편 영화제’ 뒤집히겠는데요. 이걸 보고 딴 거에 상주면 돈 먹은 거지.”
마네킹처럼 굳어버린 배우들 보며 그녀가 웃었다.
“우리만 잘하면?”
같은 시각, 박은미 작가의 작업실.
몇십 분 전에 대본 회의를 마친 박은미 작가와 송만우 PD가 소파에 나란히 앉아 있다. 둘 다 정면 커다란 TV를 보고 있다. 그 TV에선 며칠 전 있었던 대본리딩 장면이 출력되는 중이었다.
이때.
“으음-”
팔짱 낀 박은미 작가가 쓴 헤어밴드를 벗으며 혀를 찼고.
“현장에서도 그랬는데, 이거로 보니까 더 확실하네. 태산씨 말 좀 해요. 제일 뒤처지잖아.”
턱수염을 쓸던 송만우 PD가 시선은 TV에 고정한 채 답했다.
“안 그래도 전화했어요. 폐관 수련 들어갔다는군.”
“폐관 수련?”
“응. 리딩 뒤에 스케줄 뺄 건 빼면서 빡세게 하고 있대. 김실장도 놀란 모양이고. 간만에 불붙었다면서.”
“흥, 꼭 눈으로 봐야 느껴요. 태산씨는 그 에너지는 좋은데 좀 디테일이 아쉬워요.”
이때.
“아.”
TV에서 박대리가 나왔다. 즉, 강우진이었다. 잠시간 그의 연기를 감상하던 둘 중, 몸을 살짝 앞으로 민 박은미 작가가 읊조렸다.
“리딩날 느낀 건데. 저 별종. 목소리도 좋아요. 꼭꼭 씹어 뱉는 듯한 딕션은 말할 것도 없고. 늘 전체 연기 밸런스만 보다가 저 날 좀 해부하면서 봤는데 진짜······”
“그건 그냥 콩깍지 씐 거 아니고?”
“PD님은 안 그랬어? 아, 저 봐봐! 표현 강도 조절하는 거! 완급 조절!”
“난 다른 게 눈에 보였어.”
“뭐요?”
되물음에 등을 소파에 움푹 기댄 송만우 PD가 다리를 꼬았다.
“저 순간에도 발전하고 있다는 것.”
“아.”
“처음 봤던 박대리와 저 날의 박대리는 분명 달랐어. 점점 더 빼내고 있는 거야, 젖살을. 모르긴 몰라도 지독하게 연습하고 반복을 하고 있겠지. 그래서 살짝 위험해 보이기도 하고.”
“주변에 아무도 없으니 여전히 독학으로······PD님이 잘 지켜봐요, 연출이 그림만 찍는 건 아니잖아.”
“지금은 일단 두고 봐야지. 마음이 단단한 친구니까 건드리는 게 더 독일지 몰라.”
작게 한숨 뱉은 송만우 PD가 주제를 바꿨다.
“어쨌든 우진씨 때문에 배우들 전부가 발등에 불 떨어졌어. 연락 돌려보니까 죄다 태산씨처럼 연기 질을 올리려는 눈치더라고.”
“대중들 눈이 얼마나 정확한데. 우진씨 옆에 붙어 있으면 연기 대충하는 거 바로 티 나죠.”
“참 웃기는 상황이지. 류정민, 홍혜연 등의 주·조연이 아닌, 갓 모습들 드러낸 무명이 작품의 대들보 역할을 하는 그림이잖아?”
“웃기기 뭐가 웃겨. 100년 이상 우직하게 자란 나무가 얼마나 딴딴한데.”
“강우진이 100년 산 나무라고?”
부정하는 것 없이 어깨를 으쓱이는 박은미 작가.
“비유하자면 그렇다는 거죠. 묵묵히 고독하게 걸어오다가 훅하고 나타났으니까요, 우진씨는.”
이어 픽 웃은 송만우 PD가 TV 속 강우진을 다시금 쳐다봤다. 과연 저 거만한 괴물은 우리 작품과 ‘흥신소’를 거치면 얼마나 거대해질까? 새삼 궁금했다. 고독한 그가 살을 깎아내며 구현해내는 모든 인물들이.
간혹 그런 배우가 있다.
연기의 힘으로 연출자에게 욕심을 부여하는 배우가. 저 괴물이 찍는 스릴러는? 코믹은? 로맨스코미디는? 액션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장르에 강우진을 대입해보는 송만우 PD였고.
‘···싹 다 내가 찍어보고 싶군.’
가능하면 그중 하나라도 가지고 싶은 그였다.
“이러니까 연출을 못 그만두는 거야.”
“응?”
곧, 고개를 저은 송만우 PD가 시간을 확인했다.
“슬슬 촬영 시작했겠는데, ‘흥신소’”
“아, 맞아. 궁금하네. 거기선 또 어떤 미친 짓을 벌이고 있을지.”
“난 걔 감에도 호기심 땡겨.”
“근데요. 만약 진짜 우리 거나 ‘흥신소’나 잘 되면···어떻게 되는 거지?”
“뭘 어떻게 돼. 강우진 그 별종이 토템되는 거지.”
송만우 PD가 머릿속으로 미래를 그렸다.
“연기 미친 거야 말할 것도 없고, 걔가 합류하면 다른 배우들의 전투력까지 올라. 그럼 작품 퀄이 높아지지. 근데 찍는 것마다 잘된다? 바로 캐스팅 1순위. 현실적으로 전부 잘 될 순 없겠지만.”
“그러다 강우진교 생기겠어요. 이렇게 들으니까 새삼 밸런스 붕괴 캐릭터네.”
작게 감탄하던 박은미 작가가 비죽 웃었고.
“뭐, 괜찮아. 우린 그 밸런스 붕괴 캐릭터랑 연이 이어졌으니까.”
웃음이 전염된 송만우 PD가 그녀의 어깨를 툭 쳤다.
“뭐여, 박작가. 차기작에 벌써 강우진 걔도 생각하는 거야?”
“그러는 PD님도 제작사 차리고 첫 연출작에 우진씨 쓸 생각 했잖아요? 아니야?”
두 거물의 미래에 강우진이 짙게 번진다.
“토템을 어떻게 참나.”
물론, 착각이 범벅된 미래였다.
한편, 한 대형 영화사 미팅룸.
동그란 책상이 놓인 미팅룸에 두 남자가 보였다. 한 명은 40대 정도에 키가 작았고, 그의 앞엔 꽤 늙은 남자가 앉아 있다. 늙은 남자는 눈썹에 흰색 털이 섞였다.
어쨌든.
“감독님! 딴 놈 보러 갔다가 미친놈을 발견했습니다!!”
키 작은 남자가 선 채로 늙은 남자에게 외쳤다.
“정말 기가 막힌다니까요? 보면서도 저게 연기가 맞아? 싶었습니다!”
늙은 남자가 턱을 괬다.
“그래? 얼마나 대단했길래 최실장이 이렇게나 흥분하는 건가.”
“저만 그런 게 아니라 ‘프로파일러 한량’ 리딩에 온 사람들 전부가 그랬습니다. ‘박대리’라고 소시오패스 연기였는데, 제가 본 것 중에 가장 선명···아니 그냥 걔가 박대리였습니다! 거기 배우들 다 씹어먹었다니까요.”
“흠-”
“보자마자 느꼈습니다! 걔는 감독님 작품의!”
“내가 고민하고 있는 역에 딱이다?”
“예! 바로 머릿속에 전구가 띵 켜졌습니다, 진짜!”
격하게 흥분하는 키 작은 남자를 보던 늙은 남자가 작게 침음을 뱉었다.
“그래. 최실장 눈 깐깐한 건 내 잘 알지. 걔 이름이 뭐라고?”
“강우진입니다!”
“근데 무명이라며.”
“하지만 걘 진짜 뜰 겁니다! 애가 냉랭한 게 느낌이 별나긴 한데, 뿜는 냄새가 뭔가 남달랐습니다. 묘하게 거만한데 또 이해가 가더라고요?”
“뜨는 걸 말하는 게 아니라, 경험이 부족하지 않겠냐는 거야. 무명은 발버둥 쳐도 무명이잖나.”
“아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마치 경험이 두둑한 원로 배우 같았어요. 백여 명 앞에서 스무스하게 연기하는 게. 근데 또 연기는 독학으로 배웠답니다.”
“이 친구 제대로 미쳤구만. 무슨 연기를 독학으로 해. 말장난 치지 말고.”
살짝 콧방귀 끼는 늙은 남자. 사실, 그는 국내서 몇 없는 거장 감독 중 한 명이었다. 그런 그가 말을 이었고.
“그래서 소속사는 확인해 봤나?”
“아- 아직 소속사는 없답니다.”
“아직? 뭐야 그게. 어째 쎄한데?”
“일단 오디션 참석만 시켜보시죠! 제작 PD인 저를 믿고!”
“···흠, 명함은 줬다고?”
“예! 저희 영화사 이름을 봤는데 당연히 연락 올 겁니다, 만약에 안 오면 제가 송 PD한테 비벼서 연락해보겠습니다!”
곧, 늙은 남자가 천천히 자리서 일어나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한 번 데려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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