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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뜸 착각당했다 괴물 천재배우로-33화 (33/201)

거장 (5)

20일, 강우진의 원룸 앞.

늦은 아침, 약간 따듯한 날씨에 회색 맨투맨을 입은 강우진이 원룸 건물에서 나왔다. 앞엔 익숙한 검은 승합차가 정차해 있다.

동시에.

“우진씨!”

포커페이스인 강우진을 발견한 꽁지머리 최성건이 승합차에서 내려 하하 웃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타세요!”

그가 세상 기쁜 표정으로 직접 조수석 차 문을 열어 준다. 강우진도 그의 기분에 동조했다. 물론, 속으로만. 며칠 전 습득한 영어가 떠올랐기 때문.

‘예, 쩌는 아침입니다요.’

우진은 속과 다른 냉랭한 목소리로 최성건에게 인사했고.

“안녕하세요, 대표님.”

승합차에 오른 우진의 뒤로 최성건이 운전석에 타며 차는 출발했다. 이어 최성건이 골목길을 빠져나가면서도 조수석 강우진을 힐끔했다.

‘어째 오늘은 더 쿨한데? 뭔가 어제 안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

아니었다. 이 순간 무표정의 강우진은 매우 사사로운 생각에 빠져있었다.

‘배고픈데. 아침은 먹을라나? 아 갑자기 불냉면 땡겨. 돈가스도.’

이를 알 리 없던 최성건은 작게 한숨을 뱉었다. 오랫동안 맡았던 홍혜연도 캐릭터가 평범친 않았다만, 강우진 쪽은 그보다 몇 배는 레벨이 높았으니까. 이쪽은 무려 거장 우현구 감독을 감인지 지랄인지로 까내는 또라이.

‘왜 내 주변엔 미친년 미친놈만 꼬이는지.’

근데 또 그런 미친것들이 능력은 출중했다. 새삼 자신의 인생을 받아들인 최성건은 픽 웃으면서도 대화의 물꼬를 텄다.

“우진씨 ‘프로파일러 한량’ 첫 촬영 연락받았죠? 25일에 한다는 거?”

“예, 받았습니다.”

“거기에 맞춰서 나도 움직이고 있고, 송 PD님 말론 확정은 아닌데, 류정민씨랑 박대리 컷을 먼저 갈 것 같다네요.”

여기서 우진의 심장이 살살 고동치기 시작했다.

준비 운동인 ‘흥신소’를 지나 이젠 진짜였다. ‘흥신소’처럼 촬영이 짧지도 않겠지. 즉, 촬영 내내 컨셉질의 딴딴함도 필요했다. 겁나 긴장되네. 그러거나 말거나 최성건은 대수롭지 않게 말을 이었다.

“우진씨 딱히 긴장하는 타입도 아니시고. 남은 5일간 촬영 준비만 좀 철저히 해줘요. 뭐 필요한 건?”

“아직 없습니다.”

“오케이. 그리고 오늘은 일단 먼저 프로필 사진부터 찍을 겁니다.”

아, 프로필사진. 막 폼잡고 찍는? 강우진도 어디선가 본 적 있었다. 동시에 약간의 수치심이 밀려왔다. 아니, 부끄러움에 가깝다.

‘그런 거 개뿔 해본 적 없는데. 어떻게 하는 거지 그거.’

증명사진 찍을 때도 어색한 그였다.

그래도 뭐 연기랑 비슷하겠지? 까짓거 해보면 뭐든 될 거야. 우진은 애써 미약한 수치심을 숨기면서도, 방금 핸들을 오른쪽으로 돌린 최성건에게 낮게 말했다.

“대표님, 말씀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내가 존댓말이 불편해서 그래. 우진의 속마음을 들었는지, 작게 미소짓던 최성건이 고개 끄덕이며 말을 놨다.

“그래요? 그럼 우진씨, 나 말 편하게 한다?”

뭔가 존대와 반말이 섞인 투로 최성건이 오늘의 일정을 설명했다.

일단, 강우진의 정식 프로필 작성이 먼저였다. 소속사가 생겼으니 외부 용이든 사이트 용이든 당장 필요했다. 그 전에 프로필용 사진을 찍어야 했고 샵부터 가서 멋을 부려야 했다.

여기서 샵은 연예인 전용이었다.

순간 강우진은 기대감이 약간 차올랐다.

‘드디어 나도 연예인들 가는 샵에서 왁스 한 번 제대로 발라보는 건가.’

소시민 강우진이 미용실을 가면 할 줄 아는 말은 단 하나였다.

다듬어 주세요.

남자라면 누구나 그럴법하지만, 특히 짧은 머리를 유지하는 강우진에겐 미용실은 어색한 장소였다. 그런데 배우들도 가는 샵이라니.

이때.

“우진.”

빨간 신호에 맞춰 브레이크를 밟은 최성건이 돌연 진지하게 읊조렸다.

“박스무비 쪽에 오디션 거절 의사 밝혔어. 최도민 실장이 지랄발광했는데 어쨌든 뭐, 거절하긴 했다.”

아, 그거? 까먹고 있었는데. 솔직히 우진은 거장인지 나발인지에 관한 건은 잊고 있었다. 영어 습득이 너무 거대했으니까.

“그렇습니까? 감사합니다.”

꽁지머리를 긁던 최성건이 작게 웃었다.

“솔직히 내 머리론 아직 이해가 안 가긴 해. 나도 귀찮은 건 별로다만 이 건은······후- 아 물론, 최도민 실장한텐 네 감인지 뭔지 얘긴 안 했다?”

“예.”

“그거 들으면 최실장 그 새끼 더 염병할 거라. 어쨌든 이제 박스무비에선 널 곱게 보진 않을 거야. 그림상 무명한테 제안하고 까인 꼴이 돼서.”

속이 좁네. 싫다고 할 수 있지. 뭐, 정글인 연예계 생태계가 그렇다는데 어쩌겠어. 강우진은 생각보다 덤덤하게 반응했다.

“하지만 오디션 본 뒤에 거절하는 것보다는.”

“맞아, 시작도 안 하는 게 여파는 더 적긴 해. 그래도 앞으로 우현구 감독 작품엔 들어가기 힘들거야. 그거는 알고 있지? 그 양반도 성격 좀 지랄맞아, 자존심도 세고.”

뭐 어쩌겠는가? 그 거장인지 뭔지 빨아준다고 F급 영화를 할 순 없잖아? 거장 감독인 건 좀 아깝다만, 망할 게 빤하면 시간 낭비일 뿐이었다.

‘어쨌든 여기선 대충 허세 좀 첨가하고.’

강우진은 단단한 표정으로 낮게 답했다.

“상관없습니다.”

그런 우진을 가만-히 보던 최성건이 속으로 읊조렸다.

‘얜 진짜 거장 감독이란 이름표가 별로 상관없는 건가? 보면 볼수록 유별나.’

실시간으로 오해가 쌓이는 중이지만 최성건은 알지 못했고, 바뀐 신호에 차를 출발시킬 때 강우진의 착 깔린 목소리가 들렸다.

“대표님, 정장이 필요합니다.”

“정장? 갑자기 왜?”

왜긴 왜야, 신동춘 감독이 하나 사두랬으니까. 본선작에 오르는 건 아직 미확정이지만, 그게 아니라도 앞으로 정장은 계속 필요할 것 같았다.

적어도 우진의 생각에서는.

허나 대답이 심심하면 안 됐다. ‘혹시 몰라서’라는 건 좀 허술해 보이기도 하고. 강우진은 약간의 거만함을 섞는 게 낫겠다 싶었다.

“‘미장센 단편 영화제’에 입고갈 예정입니다.”

“···‘미장센 단편 영화제’?”

“예.”

우진의 묵직한 대답을 들은 최성건은 속으로 순수하게 감탄했다.

‘본선작에 올리지 못하면 영화제에 갈 이유도 없는데 말이지, 얘한테는 안 된다는 전제가 아예 없는 건가? 자존감이 미쳤구만.’

너무나 단단한 확신이었다. 최성건은 지멋대로 오해에 살을 붙였다.

“하하, 그래 ‘흥신소’는 무조건 대상을 탈 거야, 그지? 그게 아니라도 정장은 준비해놔야겠지. 아마 너도 정장 있기야 하겠다만, 사적 공적 나눠서 써야지 이제. 보이는 눈도 신경써야 돼고.”

이어 최성건이 잠시 생각하다가 결론을 뱉었다.

“정장 건은 당연히 회사가 해줄 거야. 일에 필요한 거니까. 오늘 바쁘겠구만. 정장까지 오늘 처리해버리지 뭐. 음- 혜연이가 명품브랜드 파트너니까 남자 정장 하나 얻는 건 일도 아니고. 정장 얘기 나온 김에 프로필사진에 정장 모습도 첨가하자고.”

명품이란 단어에 강우진이 귀를 쫑긋 세웠다.

‘쩐다. 명품 정장을 그냥 준다는 건가?’

그러다 강우진의 머릿속에 뭔가가 빡 떠올랐다. 어제 준비해 둔 대사였다.

“그리고 혹시 일본 쪽 대본을 얻을 수 있습니까?”

“···일본? 이건 또 신박한 요청인데. 갑자기 일본 쪽 대본은 왜?”

되물음에 강우진이 근엄하게 답했다.

“그냥 봐두려고요. 큰 이유는 없습니다.”

두 시간 뒤, 청담동의 대형 샵.

점심 무렵. 3층으로 된 단독 건물의 샵은 대충 봐도 꽤 고급스러웠다. 내부는 약간 궁전 같은 인테리어였고, 그런 샵의 3층에서 강우진을 찾을 수 있었다. 최성건은 1층에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어쨌든 여러 자리 중 중간에 앉은 우진은 현재.

“······”

졸고 있었다. 아침에 도착해서 현재인 점심 무렵까지 샵에 있다 보니 피곤했던 모양. 더불어 그가 앉은 좌석도 퍽 푹신했다.

이때.

-스윽.

졸고 있던 강우진이 훅 눈을 떴다. 다행히 움직임이 심하진 않았고, 우진은 수업시간에 졸다 깬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졸았었나? 어우- 자리가 편해서 그런가 자꾸 눈이 감기냐.’

이때.

“어머.”

강우진의 뒤에 서 있던 여자 디자이너가 빙긋 웃었다.

“피곤하셨나 봐요.”

흰 셔츠를 입은 그녀는 노란 긴 머리였다. 이에 강우진이 민망함을 애써 숨기여 목소리를 깔았다.

“대본 생각을 좀.”

아니었다. 무념무상으로 졸았다. 미친 뻔뻔함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디자이너는 별생각 없이 우진의 센척을 이해했다.

“그렇구나? 한창 대본만 생각할 때지. 신인 배우죠? 딱 배우상이긴 해. 활동 이름은 정했어요?”

“그냥 강우진으로.”

“아아 우진씨! 자주 와요, 여기 혜연씨 지정 샵이니까.”

“네.”

“다 됐어요, 한 번 봐요. 최대표님이 힘주래서 완전 진지했잖아요, 저.”

곧, 강우진이 바로 앞 거울에 시선을 맞췄다. 그리곤 거울에 비치는 자신을 확인했다. 여기서 재밌는 건.

“?!!”

본인 얼굴을 보고 강우진이 눈을 꽤 크게 떴다는 점. 이유야 간단했다.

거울 속 강우진은.

‘···헐. 누구냐 너? 나 맞냐?’

아침과 달리 멋짐이 폭발하고 있었으니까. 물론, 강우진의 눈에서만 그런 게 아니었다. 그 증거를 노란 머리 디자이너가 읊조렸다.

“이 변화면 최대표님도 놀라겠죠?”

그 시각, ‘프로파일러 한량’팀의 세트장.

첫 촬영날도 확정됐겠다, ‘프로파일러 한량’팀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지금도 마지막 점검에 점검을 되새기고 있었다. 물론 총괄 책임자는 턱수염 송만우 PD.

그가 한창 연출팀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여기 점검 끝나는 대로, 촬영 관련 스탭들은 기다리라고 해, 카감(카메라 감독)님한텐 내가 따로 얘기할 테니까.”

“네네, PD님.”

“첫 촬영까지 5일 남았다! 좀만 힘냅시다!”

이어 적당히 지시가 끝났는지 송만우 PD가 주차장에 세워진 승합차로 움직였다. 잠시간의 휴식을 취하기 위함이었다. 어제도 3시간 밖에 못 잤다. 이런 틈새 아니면 쉴 시간이 거의 없다.

그러다.

“아.”

차에 탄 송만우 PD가 뜬금 강우진을 상기했다. 며칠 전 박스무비 영화사 관련 미팅 건을 전달해 줬던 게 떠오른 것. 하지만 결과는 못 들었다. 궁금할 만도 했다. 과연 강우진이 진짜 거장 우현구 감독의 작품에 합류할까?

곧, 핸드폰을 꺼낸 송만우 PD. 허나 전화 건 상대는 강우진이 아닌 최성건 대표였고.

“어- 최대표님.”

최성건이 금방 받았는지 송만우 PD가 핸드폰에 대고 바로 입을 열었다.

“바쁜가? 통화 좀 괜찮아요?”

핸드폰 너머 최성건은 흔쾌히 답했다.

“물론이죠. 우리 송PD님 전화면 자다가도 받아야죠, 하하하. 무슨 일이십니까?”

동시에 여자 목소리도 들렸다.

“PD님, 안녕하세요오-”

익숙한 톤에 송만우 PD가 픽 웃었다.

“아아, 홍스타도 같이 있나?”

“예. 죄송합니다, 혜연이도 같이 있습니다. 지금 샵에서 우진이 기다리고 있는데 얘도 만났네요. 아, 혹시 우진이 전화 안 받아서 저한테 하신 겁니까? 걔 지금 샵 3층에서.”

“아니아니 그건 아니고.”

강우진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송만우 PD가 본론을 뱉었다.

“그냥 우진씨 박스무비 미팅이 어떻게 됐나 해서. 좀 궁금하기도 하고. 우현구 감독은 만났습니까?”

“아, 그 건은 거절했습니다.”

“어? 뭘 거절해.”

“우현구 감독 차기작이요. 오디션이긴 해도 최도민 실장이 시원하게 밀어줄 기세였는데, 우리 우진이가 시원하게 깠습니다.”

“···진짜로? 이유가 뭐래요?”

되물음에 핸드폰 너머 최성건이 해탈한 듯 답했다.

“감이라나 뭐라나. 시나리오 몇 장 훑더니 뜬금 감이 안 좋다. 딱 한 마디였습니다.”

“아?”

매우 익숙한 단어였다. 감이 안 좋아? 송만우 PD는 순간 턱수염을 쓸었다.

‘···강우진 걔 감이 또? 토템이 발동했다고?’

물론, 아직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다. ‘흥신소’나 ‘프로파일러 한량’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송만우 PD는 어째선지 강우진의 ‘감’을 심상치 않게 여겼다. 작품 보는 눈. 진짜 우진의 본능이 다시금 발동한 것인가?

‘우현구 감독 시나리오가 그렇게 구렸나?’

그게 아니고서는 상황이 이상했다.

무려 우현구 감독이었다. 작품 좀 별로라 해도 무명이 그 사단에 합류하는 건 퍽 커다란 이슈가 될 법했다. 높아지는 인지도와 인터뷰 요청도 꽤 유입될 거다.

‘근데 뒤도 안 돌아보고 거절했다? 미치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일. 아, 물론 우진씨가 좀 미친 냄새가 있긴 하다만.’

이어 송만우 PD가 일단 전화를 끊으려는지 핸드폰에 대고 읊조렸고.

“그- 뭐랄까, 별수 있나. 배우가 안 한다는데.”

“예예, 알죠. 어쨌든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PD님.”

그렇게 통화를 끊은 송만우 PD가 창밖을 바라본다. 동시에 그에겐 묘한 기대감이 들었다.

“지켜보는 재미가 있네, 그놈.”

이때였다.

-♬♪

송만우 PD의 손에 쥐어진 핸드폰이 다급하게 벨소리를 뱉었다. 덕분에 최성건 대푠가? 했던 송만우 PD가 고개를 갸웃했다. 저장 안 된 번호였으니. 다만, 최근 이런 전화는 자주였기에 별수롭지 않게 송만우 PD가 전화를 받았고.

“예, 송만웁니다.”

핸드폰 너머로 남자 목소리가 답했다. 톤이 나긋나긋했다.

“송 PD님, 오랜만입니다. 나 권기택 감독입니다.”

곧, 두 눈을 살짝 크게 뜬 송만우 PD가 목소리에 힘을 넣었다.

“예? 아아! 예예, 감독님! 오랜만입니다.”

“하하, 잘 지내셨죠? 보자- 재작년 백상에서 인사 한 번 했었는데.”

“알죠 알죠. 그걸 어떻게 잊겠습니까?”

“내가 궁금한 게 있어서 송 PD님 번호를 좀 구했어요. 갑자기 전화해서 미안해요.”

“예?? 아니요! 괜찮습니다.”

송만우 PD가 깍듯하다. 이유야 간단했다. 권기택 감독은 우현구 감독과 비슷한 거물이었으니까. 국내 거장 감독을 꼽으라면 항시 들어가는 걸물. 굳이 순위를 정하자면 권기택 감독이 우현구 감독보단 위였다.

총 관객수나 이룬 업적 등.

그런 권기택 감독이 송만우 PD에게 물었다.

“드라마 준비 중이시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혹시 첫 촬영 날은 잡히셨어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첫 촬영은 다음 주로 확정됐습니다. 근데 그건 왜 물으시는지?”

“음- PD님 드라마 출연 배우들이 연기 퀄리티를 죽어라 높인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혹시 첫 촬영 날에 몰래 가서 촬영 좀 구경해도 되나 해서요.”

“구경요?”

되물음에 핸드폰 너머 권기택 감독이 바로 답했다.

“맞아요, 류정민이 폼 좀 보려고 해요, 부탁 좀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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