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량 (2)
23일 점심 무렵에 터진 우현구 감독의 폭탄은, 같은 날 밤쯤엔 핵폭탄이 되어 인터넷 여기저기로 투하됐다. 양이 어마어마했다.
『영화계 거물 우현구 감독에게 당한 피해자들 “그 감독이 날 대놓고 만졌다”』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었다.
올해 첫 연예계 관련 더러운 이슈에다 우현구 감독의 거대한 이름값이 한몫했다. 따라서 번지는 불길엔 부스터가 달렸고 연예계는 삽시간에 꽁꽁 얼어붙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충격!! 거장 우현구 감독의 숨겨진 추악한 이면! 그에게 성희롱은 약과였다?! 피해자들은 전부 울었다.
-이슈킹TV
-조회수 3,107,335회
시발탄을 쏘아 올린 ‘이슈킹TV’의 영상은 조회수 300만을 달성했다. 파장이 어마어마했다. 각종 커뮤니티는 물론이며 SNS와 너튜브 등, 수많은 영역으로 우현구 감독의 추악한 민낯이 적나라하게 번졌다.
-와......내가 이딴 새끼 영화를 봤다니....개역겹....
-ㅋㅋㅋㅋㅋㅋ아따 할배 나이를 그만큼 처잡쉈으면 그 값을 좀 해야지????ㅂㅅ
-제대로 조사해라 피해자들 덜 억울하게
-관상은 과학이넼ㅋㅋㅋㅋㅋ딱 생긴대로냐
-남에게 가한 상처만큼 꼭 몇 배로 돌려받길 빕니다
-토나온다
-거장은 ㅅㅂㅋㅋㅋㅋㅋ그냥 거머리네 거머맄ㅋㅋㅋㅋ
-우현구 범죄자 새끼 거 영화 어이든 싹 내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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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막을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이것의 피날레로 하루를 마감하는 TV의 뉴스에도 우현구 감독이 등장했다.
“거장이라 일컫는 우현구 감독에게 성희롱 등을 당했다는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김대빈 기잡니다.”
인터넷을 넘어 TV까지 출연, 내일 아침이면 라디오와 입소문으로 더욱 사태는 커질 게 자명했다. 이렇듯 우현구 감독의 지옥행 열차가 속력을 높이는 와중, 여러 인물들은 강우진 관련으로 떠들기 바빴다.
송만우 PD와 박은미 작가라거나.
“어? 정말? 나 모르게 그런 일이 있었어요??”
“그렇다니까. 박작가 집필에 집중하라고 말은 안 했지.”
“···세상에.”
같은 소속사인 최성건과 홍혜연까지.
“걔, 강우진 집안이 무당 쪽 아닐까??”
“······말이 되는 소릴 해.”
“맞을지도 모르지! 우린 걔 과거나 사정을 아예 모르잖아.”
“하여튼 우진씨가 우현구 그 새끼 거 덜컥 들어갔으면 어쩔 뻔했냐. 그런 건 진짜 타고나는 건데. 그런 친구가 왜 지금껏 숨어 있었을까. 우진씨 감은 앞으로 절대 무시 못 하겠어.”
반면, 이런 난리통에도 아랑곳없이 자기 일에 집중하는 인물도 있었다. 제작사 편집실에 틀어박힌 ‘흥신소’의 신동춘 감독이었다. 편집 기사 포함 신동춘 감독은 잔수염이 까끌하게 자란 상태.
“방금 컷 다시 한번 돌려보죠.”
“··예.”
셋 다 얼마나 편집에 매달리는지 초췌하기 그지없었다. 눈 밑에 다크서클도 그렇고. 거지꼴도 이런 거지꼴이 없었다.
“근데 동춘 감독님, 이 친구 강우진? 얘 신인이라고 하셨죠? 볼수록 연기가 참 뭐랄까 미쳤네요.”
“음- 솔직히 카메라가 전부를 못 담았어요. 현장에서 직접 보면 말도 못 합니다.”
“그럴 것 같네. 이 표정이 어떻게 신인한테서 나오지? 뭔가 처연하면서 처량한 것 같은데, 눈은 또 긴박감이 넘쳐. 신기하네.”
“표현이 진하죠, 아니 이건 진하다기보단 그냥 상황 그 자체를 수백 번 경험했다고 봐야겠지. 그 정도로 시나리오를 죽어라 분석해준 거고.”
“영화 편집만 십수 년인데, 이런 표현은 진짜 베테랑한테서도 잘 안 나오던데. 미래가 기대되는 신인이네요.”
여기서 사각턱 신동춘이 방금 완료된 컷들에 아쉬움을 느꼈다. 모니터 속 강우진의 연기를 볼수록 편집이 뭔가 부족했다.
‘정말 이대로 만족해도 되는 건가?’
너무 재료가 좋은 탓이었다. 재료가 이 정돈데 편집이 톤을 죽이는 것 같았으니까. 특히나 ‘흥신소’는 단편 영화였고 영화제에 출품하는 작품. 배우 파워로 티켓을 끌어모으는 상업과는 상황이 달랐다. 편집에 몇 배는 힘을 실어야 했다.
후반 작업인 편집에서 망가지는 영화는 많다.
결국, 영화라는 컨텐츠는 감독의 손에서 탄생한다. 아무리 출연 배우가 연기를 기가 막히게 해준다 해도, 감독의 역량이 부족하다면 영화는 망작이란 오명을 받는다. 신동춘 감독은 강우진에게 그런 허접한 오명을 주고 싶지 않았다.
받은 애정과 애증을 배신하는 행위니까.
‘오명보단 오만이 수천 배 나아.’
작품의 높은 퀄리티 덕에 우진의 콧대가 높아지는 그림을 그리는 신동춘 감독.
“안 되겠어요. 이 컷하고 바로 전 거 수정 좀 들어갑시다.”
“···예?? 감독님 벌써 여기 수정만 세 번쨉니다만? 시간도 좀 빡빡하지 않습니까?”
“안돼요. 열 번이고 백번이고 부족하면 고쳐야지. 배우가 연기로 이만한 성의를 보였는데, 감독이 편집으로 망치면 안 되잖습니까.”
“뭐, 그렇긴 하다만. 만족이 되겠습니까? 너무 욕심내시면 오히려 역효과 나는데.”
“일단 더 해보죠. 여기 컷 바스트 빼고 풀샷 있었죠? 그걸로 붙여보겠습니다.”
“아······예예.”
점점 신동춘 감독은 독기가 차올랐고 각성했다.
조금 더, 조금 더, 아주 조금만 더.
‘완벽할 순 없어도 제대로 완료는 해야지.’
한편, 이 모든 것의 중심인 강우진은.
-푹!
방금 아공간에 진입한 참이었다. 우현구 감독의 ‘협의’ 시나리오를 삭제하기 위함이었다. 재밌는 것은.
“응?”
끝없이 캄캄한 공간에서 흰 사각형들을 확인한 우진이 고개를 갸웃했다는 것.
정확하겐 ‘흥신소’의 흰 사각형을 본 것이었다.
“얘도 갑자기 올랐네?”
이유는 심플했다.
-[1/시나리오(제목: 흥신소), A급]
‘흥신소’의 등급이 A급으로 올랐으니까.
다음 날, 아침.
bw엔터에 도착한 강우진에게 최성건이 새로운 식구를 소개했다. 로드매니저 한 명과 스타일리스트 한 명. 거기에 총괄로 최성건까지 3명이 전부였지만, 현재의 강우진이라면 소화가 충분히 가능했다.
“여기가 로드 해줄 장수환씨! 그리고 이쪽은 스타일을 봐줄 한예정씨. 참고로 한예정씨는 혜연이 진영에서 넘어왔어요.”
로드인 장수환을 본 우진의 첫인상은 딱 김대영과 같았다. 덩치가 커다랬으니까.
‘김대영이랑 붙여놓으면 시비 걸릴 일은 없겠네.’
다만, 장수환은 큰 덩치에 비해 목소리가 퍽 얇고 미성이었다.
“안녕하세요! 우진 형님! 제가 어리니까 편히 대해주십쇼!”
곰 같은 덩치와 얇은 목소리의 극명한 차이에 순간 강우진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친구 김대영과 겹쳐 보이며 급작스레 웃음이 터질 뻔했다. 망할 김대영 새끼. 뭐가 됐든 강우진은 웃음을 억지로 삼키며 낮게 인사했고.
“잘 부탁해요.”
다음은 스타일리스트인 한예정이었다. 그녀는 검은색 단발인데 중간중간 초록색이 섞인 머리였다. 목소리는 살짝 투박했다.
“안녕하세여, 저도 오빠보다 어려요. 그리고 ‘한량’ 스타일 콘티는 이미 봤고, 옷은 준비하고 있어요.”
“네, 잘 부탁해요.”
둘 모두에게 강우진은 컨셉질이 함유된 인사를 마쳤다. 그런 우진을 본 장수환과 한예정은 속으로 짧은 감상평을 읊조렸고.
‘엄청 분위기가 묵직한 형이네? 근데 착하신 것 같긴 해! 열심히 해야지.’
‘신인 치곤 되게 시크하네.’
최성건이 자신과 강우진을 포함한 4명을 둘러보며 시원하게 웃었다.
“요렇게가 강우진 팀이니까, 하하하! 다들 잘 해봅시다!”
강우진의 첫 팀이 생긴 순간이었다.
그 시각, 한 대형 영화사.
신사역 근방에 있는 대형 영화사 MV필름은 상업 영화만 취급하는 것이 아닌, 예술 영화 등도 만들어내는 잡식성 영화사였다. 물론, 주 영역은 상업이었지만 예술 영화 쪽으로도 수상 내역이 꽤 됐다.
덕분에 로비에 전시된 영화 포스터 중 낯선 것도 많았다.
그런 MV필름 영화사의 한 중형 회의실 안, ㅁ자 책상 중간쯤에 늙은 남자가 홀로 앉아 있다. 대체로 푸근한 느낌의 거장 감독 권기택이었다.
“흠-”
그는 혼자 앉아서 태블릿을 화면을 보고 있었다. 화면엔 어제부터 난리 난 우현구 감독 기사가 출력되는 중.
“쯧, 멍청한 놈.”
배 나온 권기택 감독이 짧게 혀를 찼다. 이런 류의 사건이 터지면 영화계가 얼어붙는다. 뭣보다 우현구 감독과는 성격은 안 맞았지만, 같이 지낸 세월도 그렇고 여러모로 기분이 좋을 순 없었다.
“뭐 어쩌겠나. 본인이 자처한걸.”
하지만 돌이킬 순 없겠지. 지금 현재도 각종 포털사이트는 우현구 감독 얘기로 가득했다. 그의 범죄 행각도 가볍지 않았고.
즉.
“끝났어.”
우현구 감독의 거장다운 경력은 여기서 마감된다. 엔딩크래딧은 필요 없었다. 그간 쌓은 멋들어진 필모는 한 줌 재가 되어 사라질 것이었다. 최소 권기택 감독의 생각에선 그랬다.
곧, 작게 한숨을 뱉으며 권기택 감독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때였다.
-똑똑.
회의실의 유리문에서 노크 소리가 퍼졌다. 뒤로 남자들 몇몇이 입장했다. 그중 선두의 눈 작은 남자가 멈칫했다. 권기택 감독의 굳은 표정 때문이었고.
“아, 감독님. 조금 있다가 올까요?”
괜찮다는 듯 권기택 감독이 픽 웃었다.
“아니. 괜찮아. 시작하자고.”
곧, 남자들이 권기택 감독의 건너편에 앉았고, 눈 작은 남자가 챙겨온 종이들과 투명 파일들을 권기택 감독에게 건넸다.
“일단, 감독님. 군복 콘티 시안부터 확인하시면 됩니다.”
“음.”
“일단 상, 하의만 준비했습니다.”
잠시간 콘티 시안을 내려보던 권기택 감독. 중요한 건인지 퍽 집중하며 내려본다. 그러다 권기택 감독이 검지를 들었다.
“이거 하고 이거. 그리고 이거까지. 세 개로 좁혀보자고.”
“알겠습니다.”
고개 끄덕이며 콘티 시안들을 회수하던 눈 작은 남자가 뜬금 주제를 바꿨다.
“아 감독님, 내일 스케줄은 어쩌실 참이십니까? 그 ‘프로파일러 한량’ 첫 촬영 현장에 가신다고.”
“가야지. 시간과 장소는 받았어, 송 PD한테 말도 해놨으니까 별문제는 없겠지.”
“그럼 인원은.”
“자네하고 나 포함해서 셋만 가자고. 남의 중요한 현장을 방해할 순 없으니까. 눈에 띄면 안 돼. 조용히 몰래 류정민이 폼만 보고 빠지면 되니까.”
“근데 굳이 직접 가셔서 보실 건 없지 않겠습니까? 연기 퀄리티를 높인다는 것도 그저 소문일 뿐이라서.”
“글쎄. 그걸 가서 확인해 봐야겠어. 그런 류정민이를 직접 봐야 내 고민이 좀 가벼워지겠지.”
이어 권기택 감독이 팔짱 끼며 미소지었다.
“진짜 연기 폼을 올렸는지, 올랐다면 그 이유까지 알면 좋고.”
25일, 이른 아침.
시간은 8시쯤. 장소는 일산에 있는 초대형 세트 단지였다. 언뜻 물류 창고처럼 보이는 스튜디오가 총 7개는 합쳐진 곳. 스튜디오 하나하나가 거대했다. 그중 ‘스튜디오 A’동 앞은 이른 아침임에도 인산인해였다.
여러 미니버스들 하며 승합차들까지.
최소 10대는 넘어 보였고, 차들의 앞 창문엔 죄다 ‘프로파일러 한량’이란 타이틀 박힌 종이를 부착했다. 그런 차 안에서 수십 명 사람이 우르르 빠져나왔다.
“촬영팀 세팅부터 시작하고! 촬영 콘티 확인하시면서 준비 부탁드립니다!!”
“저희 팀 무전기 없어요!”
“아! 무전기 여깄습니다!”
대충 봐도 50명은 가뿐히 넘어 보인다. 이들은 차량에서 내리자마자 정신없이 움직였다. 질서정연하진 않지만 모두 눈빛은 같았다. 뭔가 열정이 가득한 느낌.
이쯤.
-스윽.
제일 첫 주차 칸 승합차에서 턱수염 남자가 내렸다. 피곤이 짙다. 당연히 송만우 PD였다. 그의 한 손에는 대본이 들려 있었고, 정면 커다란 세트 스튜디오를 보다가 기지개를 쭉 켰다.
“으윽! 후우- 시작이구만.”
무엇이 시작됐는지는 아주 쉬운 답이었다.
크랭크인 또는 첫 촬영.
25일 수요일인 오늘부터, 거물들이 참여한 ‘프로파일러 한량’의 첫 촬영이 뚜껑을 연다. 그렇기에 수십 스탭들 전부의 눈에 전투력이 담긴 것. 물론, 현장 총 책임자인 송만우 PD 역시 마찬가지.
이때.
-띠릭!
그의 허리춤에 끼워진 소형 무전기에서 스탭 목소리가 들렸고.
“PD님! 여기 취조실 소품들 좀 확인 부탁드립니다!!”
“어, 간다.”
송만우 PD 포함 연출팀이 세트장 안으로 진입했다.
그렇게 한 시간 뒤.
-끼익!
스탭들의 차들이 즐비한 주차장에 익숙한 검은 승합차가 섰다. 이어 승합차 뒷문이 열리며 시니컬한 표정의 남자가 내렸다.
“······”
무심하게 정면을 바라보는 그. 하지만 대형 세트 스튜디오를 올려보던 그의 심정은 덤덤하지 않았다.
‘워- 미쳤다, 겁나 거대하네?’
‘박대리’ 역을 맡은 배우 강우진이었고, 배우 중 현장에 도착한 건 그가 1등이었다. 어쨌든 그가 커다란 스튜디오에 티 안 나는 감탄을 속으로 뱉을 때.
‘이거 물류 센터랑 똑같잖어??’
우진의 앞으로 남자 셋이 자연스레 스쳤다. 물론, 강우진은 스튜디오를 올려보느라 알지 못했다.
다만.
-스윽.
세 명 중 선두에 있는, 마스크를 쓴 푸근한 느낌의 남자. 즉, 거장 권기택 감독은 대형 세트장을 올려보는 무표정 강우진을 살짝 돌아봤다.
‘놀란 모양인데. 대형 세트장 단지를 처음 와본 건가? 마스크가 배우 같긴 한데 처음 보는 얼굴이야.’
이어 다시 걸음을 옮기던 권기택 감독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신인인가? 귀엽구만.”
작게 혼잣말을 뱉었다.
“떨려서 연기하다 실수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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