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속 (2)
시나리오를 받은 강우진이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감사합니다, 구해주셔서.”
하지만 속으론 어깨춤을 춰댔다.
‘나이스, 일본 시나리오 획득.’
그야말로 싱글벙글. 이걸 겉으로 보이면 컨셉질따위 단숨에 박살 나겠지. 어쨌든 우진이 일본 쪽 시나리오를 요청한 이유는 간단했다. 영어 다음으로 일본어를 생각했으니까.
‘아무래도 익숙한 순이 낫겠지.’
이어 강우진이 시나리오 표지를 확인할 때, 옆자리의 스타일리스트 한예정이 약간 쌀쌀맞게 물었다. 성격이 나쁜 게 아닌 그녀 말투가 원래 그랬다.
“오빠, 일본어도 할 줄 아세요? 그거 번역본 아닌 것 같은데.”
“조금요.”
“아- 정말? 근데 일본 쪽 시나리오는 왜요?”
“그냥 봐두려구요.”
쌀쌀함과 근엄함의 대화라 대체로 높낮이가 낮았고, 강우진이 시나리오를 한 장 넘길 때였다. 조수석의 최성건이 룸미러에 비추는 우진을 보며 입을 열었다.
“번역본 말고 일본어 원문 시나리오 구한다고 좀 걸렸네, 그거면 되는 거?”
“네, 이거면 돼요. 감사합니다.”
로드 장수환이 끼어든 건 이때.
“우와! 대표님! 일본 시나리오는 어떻게 얻으신 겁니까??”
“야야, 앞에 봐 앞! 뭘 어떻게 얻어. 그냥 일본에 인맥이 좀 있다.”
적당히 답한 최성건이 꽁지머리를 긁으면서도 룸미러를 다시금 힐끔했다. 강우진을 본 것. 동시에 입맛을 다셨다. 약간 답답했으니까.
‘아오- 씨. 과거 캐지 말라는 거 계약서에도 당당히 적혀 있으니까 물어보지도 못하겠고. 궁금해 돌아가시겠네.’
저 괴물에 관한 과거가 미치도록 궁금했으니까.
‘해외에 있었다는 건 맞나?······혹시 일본에 있었나? 갑자기 일본 쪽 시나리오 구해달라는 걸 보면 그럴지도.’
속으로 뭔가 멋대로 파악하던 최성건이 다시금 룸미러를 통해 우진을 힐끗했다.
‘그래서 일본 진출도 생각하는 건가? 일본 좋긴 하지. 일본어 하나만 돼도 다른 배우들보다 몇 배는 유리하기도 하고. 가능성이랑 세계가 확 넓어져.’
배우에게 언어는 핵심. 대사 관련도 있겠지만, 배우로서 글로벌하게 크려면 일단 타국 언어가 자유스러워야 했다. 일단, 타 언어가 되면 성장 속도는 수십 배 빨라진다. 이를 최성건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일본어라- 좋기야 하다만, 역시 배우한테는 영어가 첫째고 베스트긴 해. 우진이 저놈 일본어 말고 영어는 아예 못 하는 건가?’
이쯤 강우진은 대충 시나리오는 보는 척하다가.
-스윽.
티 안 나게 검지를 움직였다. 시나리오 옆에 뜬 검은 사각형을 찌르기 위함.
-푹.
그대로 우진은 끝없이 컴컴한 아공간에 후루룩 진입했고, 자연스레 몸을 돌려 리스트업된 흰 사각형들을 확인했다. 역시 하나가 늘었다.
-[1/시나리오(제목: 흥신소), A급]
-[2/대본(제목: 프로파일러 한량 1부), S급]
-[3/시나리오(제목: 東京駅), C급]
당장은 읽기가 힘든 일본어. 그러거나 말거나 강우진은 미소를 지었다.
“일본어 간다.”
영어를 이어 일본어까지 가지기 직전이니까. 삽시간이었다. 약 2주 안에 타국의 언어를 2개나 소유하게 되는 셈.
이어.
-슥.
강우진이 일본어 적힌 흰 사각형을 선택했다. 동시에.
[“기본 언어 외의 새로운 언어가 감지됩니다. ‘日本語(일본어)’를 먼저 습득합니다.”]
로봇 같은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日本語’ 리딩 준비 중······”]
[“······준비 완료. ‘日本語’ 리딩을 시작합니다.”]
거대한 회색이 강우진을 덮쳤다.
뒤로 얼마쯤. 다시금 강우진이 현실인 승합차로 돌아왔을 때, 그가 손에 들린 시나리오를 보며 작게 읊조렸다.
“いいね, すごくいい.(대충 좋다는 뜻)”
시나리오 속 일본어가 아주 술술 읽혔으니까. 역시나 번역기 따위 필요 없다.
‘일본어 겟.’
일본어가 강우진에게 추가로 각인됐다.
이후.
어제인 3월 25일에 촬영이 시작된 ‘프로파일러 한량’은 스탭, 배우 할 것 없이 착착 스케줄을 쳐냈다. 덕분에 강우진은 그야말로 미친 듯이 촬영을 소화해야 했다.
“컷! OK!! 이번엔 우진씨 쏠로로! 바스트부터 갑니다!”
박대리와 강우진을 수십 번 교체하다 보면 하루가 저물 정도였다. 연기, 연기, 연기, 밥, 연기, 연기. 중간중간 약간의 쉬는 시간을 빼면 우진은 그저 연기만을 해냈다. 연기를 위한 기계 같았다.
“OK! 다음 우진씨 차례! 어? 우진씨 어딨어?!”
“차에서 대기 중입니다! 바로 모셔올게요!”
아장아장 배우 새내기 강우진에겐.
“우진씨! 스탠바이요!!”
구역질이 나도 이상하지 않은 속도였다.
‘살려주세요, 제발.’
따라서 강우진은 연기 제외 말수를 더더욱 줄였다. 촬영과 컨셉질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벅찼으니까. 하지만 강우진만 강행군인 건 아니었다. 스탭들과 배우진 모두가 힘든 건 같았다.
솔로샷, 풀샷, 떼샷 등등등.
“보출(보조출연)들 불러요! 다음 컷 떼샷 갑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송만우 PD는 신들린 듯 촬영을 쳐냈다. 다만, 대충대충 허투루 하진 않았다.
“컷! 정민씨! 표현 죽이는데, 살짝 미소 첨가해서 다시 가봅시다!”
워낙에 베테랑이라 신속하게 촬영을 진행하면서도, 컷마다 씬마다 퍽 심도깊게 컨트롤 한다. 한두 씬 만으로 두 시간 이상을 쓸 때도 있었다.
그렇게 일주일.
3월이 끝나고 4월이 시작됐다. 4월 1일 수요일. 하지만 촬영은 더욱 속도를 높인다. 마치 쾌속 열차에 탄 것처럼. 그 현장 속 강우진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아니야, 이건 진짜 아니지 않냐??’
‘흥신소’와는 세계가 달랐다.
“오케이!! 자자, 우진씨 메이크업 고치고 와요!”
촬영과 촬영과 촬영의 연속. 심지어 이 거대한 팀은 이동도 잦았다. 세트에서 야외. 다시 세트. 다시 야외. 황당한 건 이 스케줄도 최선의 동선으로 만들어졌다는 것.
“우진씨 스탠바이! 아아, 여기 우진씨 메이크업 좀 고칩시다!!”
“네네! 갑니다!”
강우진은 주입한 모든 열량을 연기로 쏟아냈다.
보기에나 덤덤하고 근엄해 보일 뿐. 딱히 컨셉을 유지할 필요도 없었다. 톤만 좀 조정하면 자연스레 포커페이스가 유지됐다. 연기 자체를 두 달 전에 시작한 우진에겐, 배려 없이 때려 박히는 이 스케줄은 폭력이었다. 그러나 징징댈 순 없다. 약하게 보여선 안 되지.
모두에게 강우진은 미친 괴물 배우니까. 자존감이 충만한. 그러니 강우진은 치트키를 사용한다. 바로 아공간.
‘안 돼. 이러다 진짜 숨진다.’
-푹!
촬영 현장이기에 늘 대본이 곁에 있다. 강우진은 지옥 같을 때마다 검은 사각형을 찔렀다. 첫 촬영 날 때야 정신없기도 했고, 나름의 각오도 있었기에 사용 안 했지만 허세로 버틸 수준이 아니다. 어쨌든 야단법석인 현장과는 달리 아공간은 쥐죽은 듯이 고요했다.
끝없이 컴컴한 공간이나 아공간은 천국.
“하- 이제 좀 살겠네.”
허나.
“잠을 못 자는 건 아쉽단 말이지.”
아공간에선 잠을 잘 순 없었다. 우진이 몇 번 시도는 했으나 번번이 실패. 이유는 확실치 않았다. 강우진의 심리적인 문제인지 아니면 아공간의 특성인지.
“또는 나름의 패널티?”
뭐, 워낙 괴랄한 아공인이기에 인간인 우진이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긴 했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지. 강우진은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잠 좀 못 자면 어때? 이미 아공간은 개사기였으니까.
대신에 이렇게 쉬는 건 가능하잖아?
피로를 완벽히 풀 순 없으나 적당히 녹일 순 있다. 그것으로 일단은 충분했다. 핸드폰 포함 아무것도 들어올 순 없어서 심심하다만, 그딴 건 지옥 같은 현장을 생각했을 때 배부른 소리.
“휴식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거로도 대만족.”
충전을 대강 마치고 ‘퇴장!’을 외치면 강우진은 다시금 컨셉질의 탈을 덤덤하게 쓴다. 다만, 이 과정에서 스탭들 사이로 약간의 오해가 번졌다.
“우진씨는 왜 저렇게 멀쩡하죠? 체력이 얼마나 좋으면 저래? 이 정도 강행군이면 누구나 죽어 나가는 게 정상인데.”
“맞아, 심지어 주연 배우들도 꾸벅꾸벅 조는데. 우진씨가 지구력이 오지는 것 같긴 해요. 골골대는 걸 못 봤어. 연기의 질도 흔들리는 거 없이 언제나 좋고.”
“체력까지 타고났나 봐. 진짜 너무 완벽한데요? 우진씨 볼 때마다 의아하다니까요? 왜 배우를 이제와서 시작했는지.”
뭐가 됐든 ‘프로파일러 한량’팀은 더더욱 촬영 속도를 높인다. 심지어 B팀까지 합류하면서 부스터를 달았다. 촬영 B팀이 생기면 하루에 10컷 찍을 걸 20컷을 찍을 수 있다.
송만우 PD가 두 명이 된 것과 비슷했다.
물론, 중요한 컷보단 여러 자잘한 컷을 B팀이 찍겠지만 그것만으로도 큰 힘이었다. 강우진 포함 배우진은 메인과 B팀을 오가며 촬영을 속행했다.
그야말로 시간은 총알이었다.
금세 주말이 끝나고, 4월의 두 번째 평일이 시작됐다. 4월 6일쯤, 연일 욕을 처먹던 우현구 감독이 자기의 죄를 전부 시인했다.
『[단독]‘거장’에서 ‘거머리’된 우현구 감독 “평생 속죄하며 살 것”』
같은 날 오후엔 처연한 표정의 우현구 감독은 기자회견까지 열었다.
“피해자분들과 국민께 정말 죄송합니다, 더불어 영화계에도 큰 심려를 끼친 것 같아 마음이 무겁습니다. 죄송합니다.”
여기서 우현구 감독의 화려한 커리어는 끊겼다고 봐야 했다.
그리고 다음 날.
‘프로파일러 한량’ 측이 공식적으로 확정된 소식 하나를 쏘아 올렸다.
『[공식]상반기 최고 기대작 ‘프로파일러 한량’ 첫 방영일은 5월 15일, 금토 10시로 편성』
첫방 날이 확정된 것이었다.
며칠 뒤, 4월 10일 금요일.
아침. 한 커다란 회의실에 많은 인원이 모여 있다. ㅁ자 책상에 앉은 그들의 머릿수는 대략 20명은 넘어 보였다. 이들은 전부 ‘미장센 단편 영화제’의 위원회 인원들이었다.
즉, 이곳은 ‘미장센 단편 영화제’의 위원회 회의실.
‘미장센 단편 영화제’의 오래된 정통답게 위원회엔 나이 든 사람이 퍽 많이 보였다. 그중 상석에 앉은, 새치가 자욱한 남자가 입을 열었다.
“됐어. 그럼 개최 날짜 4월 30일로, 개최 후 일주일 일정은 이렇게 확정하는 거로 하고. 출품은 이틀 뒤부터.”
그는 위원회의 최고 위치인 집행위원장이었다.
“준비는 얼추 70% 정도 완료됐지?”
“예.”
“장소는 어떻게 됐나?”
대답은 위원장 옆에 앉은 부위원장이 했다. 그 역시 나이가 많아 보인다.
“서울 시네마 아트홀, CCV 코엑스, 후원사 본사의 사옥이고, 아직 미확정 극장이 한두 곳 됩니다.”
“빨리 정리하지. 출품작 몰리기 시작하면 그런 거 신경 쓸 겨를이 있겠나?”
“알겠습니다.”
“심사위원 감독 초청은?”
이번 대답은 책상 중간쯤 앉은 젊은 여자였다.
“총 열 분 정도 초대를 보냈고요, 작년 맡아주신 감독님하고 새로 뽑은 감독님 섞였습니다. 거장급 분들은 당연히 보냈고요.”
“권기택 감독도 넣었지?”
“네. 다만, 우현구 감독이 그- 일이 터지면서 공석이 하나 생겼습니다.”
“음. 굳이 거장급 아니라도 요즘 예능 하는 감독들이나, 인지도 높은 감독 포함해서 15명으로 늘리지. 부족한 거 보다야 넘치는 게 낫지.”
“예, 위원장님.”
이어 위원장이 앞에 놓인 투명 파일을 내려보며 말을 이었고.
“명예 심사위원 배우들하고 초청할 배우들 리스트도 좀 늘려, 무조건 작년보다는 많아야 하니까.”
순간, 뭔가 번뜩인 위원장이 옆자리 부위원장을 불렀다.
“부위원장, 특별 초청 건은 어떻게 됐나. 그 일본 쪽 감독들 말이야.”
“아- 말씀하신 대로 총 5명한테 전달은 해둔 상탭니다. 아직 답을 못 받았습니다.”
“예술, 상업할 것 없이 훅훅 보내. 후- 최소 거장급이 둘 정돈 와주면 좋겠다만, 사정이 안 되면 적당히 인지도만 있는 감독도 괜찮아.”
지시하던 위원장이 돌연 양손을 모으며 모두를 주목시켰다.
“자자, 다들 얼추 들어서 알겠지만 올해는 제대로 힘을 줄 예정입니다. 홍보력도 작년이랑은 달라야 돼. 그 뭐냐 너튜버들이나 BJ들한테 광고도 맡기고, 괜찮다 하는 친구는 초대도 하라고. 최대한 사람을 끌어야 되니까.”
분위기상 위원장은 작년과는 달리 올해는 퍽 분위기 쇄신을 노리는 듯 보였다.
“명예 심사위원으로 오는 탑배우들 중에 의견 물어서 홍보 대사도 제의하고. 최종 목표는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대중들이 단편 영화를 많이 보게 만드는 겁니다.”
그 이유를 위원장이 읊조렸다.
“올해로 후원사도 바뀌었고, 그 후원사가 제대로 힘을 실어주고 있어요. 요구 조건은 무조건 판을 크게 만들 것. 그래야 후원사도 홍보 효과를 받을 수 있으니까.”
대기업 등이 스포츠 구단이나 영화제에 후원사로 나서는 건 브랜드 홍보가 크다. 문화적 발전을 위한다는 이미지를 각인시키기 위한 것.
“그러니까 무조건 작년보다는 올해가 폭발력이 있어야 됩니다. 알았죠? 다들 정신들 바짝 차립시다.”
딴딴하게 지시한 위원장이 투명 파일을 덮으면서 주제를 바꿨다.
“그리고 후원사 쪽에서 올해부턴 배우 쪽 상도 추가해보면 어떠냐는데, 다들 생각이 어때요?”
대답은 팀장급 남자 직원이 빨랐다.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영화제 특성상 작품 대상이 안 나오는 해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말씀하신 폭발력이 좀 미미해지는 경향이 생깁니다.”
“그렇지.”
“작품 대상 안 나올 걸 감안해서 배우 쪽 상을 두 어 개 새로 만들면 풍성해지겠죠. 비는 느낌 없이. 기자들도 쓸 게 생기고요. 연기부문 최우수하고 대상 정도면 적당합니다.”
“음. 근데 난 좀 걱정인 게, 결국 단편 영화 배우들 해봐야 무명들일 거잖아? 연기력이 부족한데 억지로 상을 주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건 아닌가?”
“뭐, 그나마 나은 친구한테 주는 거죠. 좀 부족하고 어색한 연기였어도 앞으로 힘내라 같은 뉘앙스로. 어쨌든 탑배우나 급 괜찮은 배우들 참여도 높아질 겁니다.”
그의 발언에 회의실 안 위원회 인원들은 대부분 고개를 끄덕였다. 집행위원장도 괜찮다 싶었는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다가 지시를 추가했다.
“그럼 배우 쪽 상 추가하는 방향으로 준비하지.”
같은 시각, ‘흥신소’의 편집실.
편집실에선 뭔가 퀴퀴한 냄새가 은은하게 풍기는 중이었다. 심지어 이곳엔 거지 3명이 앉아 있다.
사각턱 신동춘 감독과 편집 기사들이었다.
이들의 몰골은 퍽 좋지 못했다. 며칠간 밤을 새웠는지 다크서클이 자욱한 데다 얼굴에 트러블도 가득했다. 머리도 산발. 그래, 좀비와 흡사했다. 그런 좀비들은 오직 정면 모니터들을 바라본다.
-타다닥!
편집기기를 가끔 조작하긴 하지만 셋의 시선은 거의 대부분 모니터를 향했다. 여러 모니터들엔 당연하겠지만 단편 영화 ‘흥신소’가 출력 중이었다.
재생됐다가, 뒤로 감겼다가, 빨리 감기였다가, 멈췄다가.
따라서 모니터 속 남주인 강우진의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보였다. 하지만 신동춘 감독의 입가엔 진중함만이 서렸다. 몰골은 상거지였지만 눈빛만은 생생했다.
“방금 거기 음향 좀 길게 빼죠.”
“예.”
편집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신동춘 감독을 필두로 셋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덕분인지 모니터에서 출력되는 ‘흥신소’의 완성도가 높다.
이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약 한 시간 정도 지난 상황에 편집 기사 한 명이 편집기기 중 자판하나를 툭 쳤다.
-탁!
들리는 소음이 뭔가 마침표를 연상케 했다. 동시에 나란히 앉은 편집 기사의 뒤에선 신동춘 감독이.
“후읍, 하-”
고개를 천장으로 올리며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입에서 나오는 긴 숨엔 홀가분함이 섞였다.
“드디어.”
이 뒷말을 앉아 있던 편집 기사들이 대신했다. 뜬금 자리서 벌떡 일어나 와락 외친 것.
“끝났다!!!”
“와-씨! 끝났어, 끝났다!”
“하하하! 감독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예! 감독님! 진짜 고생하셨습니다!”
그랬다. 3월 중순에 시작된 ‘흥신소’ 편집이 오늘인 4월 10일에 끝났다. 약 한 달 정도의 대장정.
“아니요, 두 분이 정말 고생하셨죠. 너무 감사합니다. 진짜.”
즉, 이 순간 단편 영화 ‘흥신소’가 완성됐다. 강우진이 애정과 애착을 가진 작품이 말이다. 물론, 신동춘 감독만의 옅은 착각이지만. 이를 알 리 없던 그가 핸드폰을 들었다.
‘바로 알려야지, 그리 애정을 가져줬으니 좋아하겠어.’
첫 주연작의 완성을 강우진에게 알려야 했기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