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뜸 착각당했다 괴물 천재배우로-54화 (54/201)

< 박두 (4) >

9일 강우진의 휴일은 빛의 속도로 지나갔다. 원래도 쉬는 날은 뭘 했는지도 모를 만큼 빨리 녹지만, 우진이 구경하는 인터넷이 워낙 진창인 이유도 있었다.

“워- 뭐가 이렇게 많냐?”

최근 강우진은 핸드폰을 손에 쥐는 시간이 늘어났다. 직접적으로 본인의 이름이 나오는 건 아니다만.

“오! 이거 폐막식 했을 때네? 내 얼굴 뭐여, 뭔 초상났냐?”

현재 인터넷에서 들끓는 대부분의 소식은 강우진과 깊은 연관이 있었다. 영화계는 며칠 전 꽤나 시끄러웠던 ‘미장센 영화제’의 후발 기사가 여전히 터지는 상황이었다.

『드디어 ‘대상’ 나왔다, 올해 미장센 단편 영화제, 성황리 마무리[종합]』

나름 전통이 깊은 데다 올해 영화제는 이슈 면이나 관심 적으로도 성공적이었기에, 영화제 위원회가 계속해서 홍보를 던진 이유가 컸다.

『<흥신소>올해 미쟝센 단편 영화제 대상 수상! 4년 만에 대상 나왔다』

『[스타톡]단편 영화제 박살 내려왔다! 서프라이즈 ‘홍혜연’, 연기 최우수상 타고 여유 있게 눈웃음/ 사진』

지금 대중들의 뇌리에 괜찮은 인상을 주입해야 내년에도 볼 테니까. 추가로 몇 년 만에 작품 대상이 나왔고, 그 대상인 ‘흥신소’가 새로 신설한 배우상을 쓸어 먹었으니.

『미장센 단편 영화제, 올해는 특히 영화계 ★들이 넘쳐났다, 3관왕 ‘흥신소’ 눈길』

『[포토]‘흥신소’ 신동춘 감독, 3관왕 쾌거에 “매우 영광이었다, 계속해서 영화계에 이바지할 것.”』

위원회나 영화계 언론은 계속해서 ‘흥신소’를 피력했다. 어느 업계나 슈퍼스타는 필요하다. 비주류인 단편 쪽으론 특히나. 단적인 예로 스포츠를 보면 알 수 있다. 내내 인기 없는 종목이라도 스타 선수가 나오면 사람들은 본다.

즉, ‘흥신소’는 여러 이슈가 포함된 슈퍼스타였다.

와중에 ‘미장센 영화제’를 빨래질 용도로 사용하려 했던 박정혁은 소리소문없이 묻혔다. 시상식 초반에 잠시 잠깐 언급된 게 다였다.

『‘바닥부터’ 선언한 박정혁은 어디? 시상식 불참한 박정혁 측 묵묵부답』

재밌는 것은.

『‘미장센 영화제’ 연기 대상의 주인공은 누구? 심사위원들 “그는 충무로의 미래”/ 사진』

무명인 데다 홍혜연에게 눌려, 대상을 받고도 인지도가 미약했던 강우진에게도 관심의 화살이 조금씩 쏠린다는 것.

왜? 왜 이 배우는 무려 홍혜연을 꺾고 대상을 받았는데 조용한가? 영화계 언론 전부가 조명한 건 아니었지만, 소수의 기자가 강우진을 다루기 시작했다.

『[무비톡]심사위원들 만장일치로 연기 대상 탄 무명 배우 강우진, 일본 거장 쿄시로 감독과 일본어로 대화 중/사진』

연예면 쪽은 당연하겠지만 드라마 전쟁으로 뜨거웠다.

[@__19yy__]

[(기사링크)아...뭘 봐야 되나ㅜㅜㅜ세 개 다 보고 싶음! 근데 셋 다 넷플 동시 방영은 아닌 듯....ㅜㅠㅜ]

‘프로파일러 한량’을 내세운 SBC와 MBS, TVM는 첫방이 코 앞이라 그런지 홍보에 목숨을 건 태세였다. 언론들 역시 이에 부응했다.

『[드라마IS]첫방 코앞, SBC, MBS, TVM 미친듯한 홍보전쟁!』

여론도 신명나게 달라붙었다. 포털사이트는 물론이며 대중들이 듣고 볼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광고가 실린다.

『여론 벌써 움직였다, 각종 커뮤니티에서 원하는 드라마 광고해주는 누리꾼들/ 사진』

이 중에서도 8일인 어제의 ‘프로파일러 한량’ 제작발표회 소식이 제일 자극적이었다. 물론, 제작발표회는 SBC 말고도 MBS, TVM도 진행했지만 승자는 ‘프로파일러 한량’이었다.

『[스타톡]제작 발표회 참석 류정민 “드라마 전쟁? 열심히 연기했고 자신있다”』

『박은미 작가를 필두로 줄줄이 ★군단, ‘프로파일러 한량’팀 모두가 ‘자신감 뿜뿜’』

제일 맛있는 소스가 많았고, 군침을 당기는 냄새에 기자들은 홀린 듯 ‘프로파일러 한량’ 기사를 늘려갔다. 그렇게 인터넷은 진창인 상태로 하루는 저물었다.

다만, 다음날도 조용하진 않았다. 오히려 어제보다 더 시끄러워졌다.

『★작가 박은미 작가 “내가 뽑은 씬스틸러 배우, 모두를 압살할 것”』

특히 오늘은 ‘프로파일러 한량’ 제작발표회 말미에 나왔던 씬스틸러 배우 얘기나, 기자와 기 싸움을 벌인 홍혜연의 얘기가 많았다.

『‘희대의 연기력을 보일 것’, 송만우 PD부터 박은미 작가가 극찬한 씬스틸러 배우는 누구?』

『[포토]기자의 질문에 날카롭게 반응한 탑여배우 홍혜연, “‘흥신소’ 보고 오세요”/ 사진』

과연, 전체적인 그림을 봐선 뿌려대는 기사엔 진실보단 오바가 많이 첨가됐다. 그럼 어쩌랴? 달고 짜면 장땡. 딱 이 마인드로 기사를 퍼붓는 형태. 뭐, 당연히 기자들 본인들의 클릭수를 위한 발악이었지만, ‘프로파일러 한량’팀으로서는 나쁘지 않은 형국이었다.

아니, 정확하게 의도한 그림.

이렇듯 10일까지 약 이틀간 언론에서 불씨를 당기니, 돌아온 월요일 11일부턴 여론이 이곳저곳에 장작을 투입하기 시작했다.

-홍혜연 제작발표회서 기자 압살 장면.jpg

제작발표회를 편집한 수십 영상이 너튜브에 업로드되고, SNS나 각종 커뮤니티에서도 흥분하며 떠들어댔다. 초반 집중은 ‘프로파일러 한량’이 우세한 듯 보였고, 당연하겠지만 SBC나 TVM 측 드라마팀도 이를 모르지 않았다.

“PD님! 한량이 제작발표회에서 떡밥 오지게 뿌려서 그런가, 커뮤 반응은 거의 한량만 나옵니다!”

“알아, 임마! 나도 계속 모니터링 하고 있어!”

“홍혜연이 기자랑 싸운 짤방도 짤방인데, 송PD나 박작가가 말한 이 씬스틸러 배우 떡밥이요. 이거 진짤까요??”

“구라지 구라! 박작가 그렇게 안 봤는데 이런 식으로 어그로를 끌어?”

“그, 근데 진짜 막 탑급 나오는 거 아닙니까??”

“야 한량 걔네 제작비 겁나 헤비한 거 모르냐? 무조건 구라야! 야! 우리도 뭐든 뿌려! 나중에 욕 좀 처먹어도 되니까!”

따라서 타 드라마 팀들이 어그로 전쟁에 재빨리 참전했다.

이어 12일.

15일인 첫방까진 정확히 4일 남은 상황. ‘프로파일러 한량’부터 타 드라마 팀은 때는 이때다 싶었는지.

『‘드라마 전쟁’, 각 드라마들 짠 듯이 공식 예고편 공개! 퀄리티는?』

거의 동시에 메인 예고편을 공개했다. 이미 여러 차례 티저들이 뜬 상태지만, 이번에 업로드된 예고편은 1분 이상의 것으로 대중들의 기대감을 올리기엔 충분했다.

어찌 보면 아비규환 같기도 했다.

한편, 강우진의 승합차 안.

한창 ‘프로파일러 한량’ 메인 예고편이 공개된 시점, 강우진은 한 스튜디오로 향하고 있었다. ‘프로파일러 한량’ 관련, 후반부 예고편에 나갈 인터뷰 촬영을 위해서였다.

“······”

오늘도 역시나 시니컬한 표정의 그. 하지만 꽁지머리 최성건을 포함한 매니저팀은 덤덤하지 않았다.

“이야- 메인 예고편 퀄 제대로 뽑았는데? 송 PD님 목숨 걸었구만?”

“그러니까요. 우진 오빠가 없는 게 좀 아쉽긴 하지만.”

“하하! 원래 전혀 기대 안 하다가 통수 딱 맞아야 더 아픈 거 아니겠습니까?!”

다들 메인 예고편을 극찬하기 바빴다. 장착한 컨셉질 덕에 팀들처럼 어깨춤을 출순 없었지만, 강우진도 예고편을 보고 있긴 했다.

‘와- 이 장면이 영상으로는 이렇게 나오는구나. 개신기하네.’

직접 촬영했던 컷과 편집된 영상을 비교하니 새삼 신기함을 금치 못했다. 뭐, 디자인회사를 다니며 영상편집도 좀 손에 대 봤던 우진이었으나.

‘이건 급이 달라.’

자신이 했던 건 발톱의 때라는 걸 인지했다. 이때.

‘아, 맞다.’

예고편을 보던 강우진이 뜬금 뭔가가 떠오른 듯 보던 영상을 끄고 폰뱅킹에 접속했다. 무표정이지만 그 속에 미약한 기대가 섞였다.

-톡, 톡.

몇 번의 터치. 이내 눈 앞에 펼쳐진 통장 잔고에 강우진의 포커페이스가 살짝 흔들렸고.

‘······미친. 들어왔다.’

눈썰미 좋은 스타일리스트 한예정이 강우진에게 물었다.

“오빠, 왜요. 어디 안 좋아요?”

갈색 단발로 바뀐 그녀의 물음에 우진이 근엄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아무렇지도 않아요.”

적당히 답한 강우진이 다시금 핸드폰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이미 속으로 거의 탈춤을 춰대고 있었다.

이유야 간단했다.

‘6000만, 한 방에 6000만이 찍혔드아!’

비루한 그의 잔고에 수천만 원이 찍혔으니까. 소속사 계약금과 ‘프로파일러 한량’ 1차 출연료가 지급된 것. 사실 소속사 계약금은 더 일찍 들어왔었고, 드라마 1차 출연료는 오늘 지급됐다. 강우진이 늦게 확인한 거긴 했다.

그간 정신없었으니까.

뭐가 됐든 연기를 시작하고 두 달. 처음 받는 월급 6000만 원 이상의 돈이 통장에 들어왔다. 심지어.

‘한량 쪽은 1차 이후에도 계속 들어온다고 했었지?’

아직 지급될 출연료는 꽤 남아 있었다. 물론, 앞으론 더욱 큰 출연료를 만질 그였다. 강우진 본인은 아직 실감을 못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6000만 원은 큰돈이었다. 알맹이가 소시민인 강우진은 솔직히 처음 보는 금액이기도 했다.

‘와- 씨. 이거로 뭘 해야 되냐?’

따라서 우진의 무표정에는 묘한 씰룩거림이 실렸다. 억지로 눌렀지만 기쁨이 비죽비죽 새어 나오는 것. 이를 힐끗대던 한예정이 조수석 최성건에게 속삭였고.

“대표님. 우진 오빠 지금 좀 이상해요.”

슬쩍 강우진을 확인한 최성건은 우진의 지금 상태를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둬, 또 배역 연습하고 있는 거야.”

“아-”

“가끔씩 저러면 그냥 방해하지 말고.”

“네.”

이를 눈치 못 챈 강우진은.

‘이거로 뭘 해야 되냐? 씨, 이런 금액 만져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네. 일단 부모님한테 좀 드려야 될 거고.’

처음 본 큰돈으로 뭘 할지 궁리에 빠졌다.

‘아! 좀 더 모아서 이사를 가야 되나??’

다음 날, 13일 수요일. 강우진의 원룸.

아침이었다. 시간은 9시쯤. 따듯해진 날씨에 적당한 맨투맨을 입은 강우진이 신발장 앞에 섰다. 하지만 바로 신발을 신지 않았다.

“음- 영롱하군.”

신발장 선반에 올려진 트로피를 만족스럽게 보는 중이었으니까. 뭐겠는가? 바로 ‘미장센 영화제’의 대상 트로피였다.

“형, 갔다 온다.”

뭐랄까, 우진은 난생처음 받은 대상을 애지중지 키우고 있었다. 배우가 된 지 두 달 만에 받은 첫 상이 대상이니 그럴 만하긴 했다.

곧.

-덜컥.

트로피에 인사를 마친 강우진이 원룸을 나섰다. 오늘도 역시 집 앞엔 검은색 승합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다만.

“형님! 좋은 아침입니다!”

“오빠, 안녕하세요.”

우진을 픽업 온 것은 장수환과 한예정이 전부였다. 최성건은 보이지 않았다.

“네, 안녕하세요.”

“아이 형님! 슬슬 말씀 좀 편하게 하시죠?!”

“맞아요, 오빠. 우리가 불편해요.”

“그래, 알았어.”

이유야 심플했다.

“형님, 일단 회사로 바로 갈 겁니다! 아! 지금 회사 난리 난 거 아시죠??!”

강우진의 소속사인 bw엔터는 현재 전쟁터였으니까. 대표인 최성건이 자리를 비우기 힘들 정도였다. 성수기라면 성수기. 실제 우진이 승합차에 탔을 무렵 bw엔터 전 직원은 쉴새 없이 바빴다.

“네네, bw엔텁니다! 아, 홍혜연씨 인터뷰요? 확인해보겠습니다!”

“예? 아니, 기자님. 뭔 말을 그렇게 하십니까? 찌라시라서 기사 내려달라고 한 게 문젭니까?”

“아- 강우진씨는 아직 결정된 게 없어서요. 네네. 그럼 퀵으로 보내주시겠습니까? 미팅이요? 그럼 대표님께 여쭤보겠습니다.”

“홍혜연씨 광고 문의는 이메일 통해서 보내주시겠습니까?”

아니, 정확하게는 ‘미장센 영화제’ 직후부터 그랬다. 원래도 홍혜연의 파워로 한산하지 않았다만, 최근 붙은 이슈들과 강우진까지 합세하며 일이 늘었다. 당연히 홍혜연이 압도적이지만 강우진 관련도 문의가 있긴 했다.

덕분에 대여섯 홍보팀은 미친 듯 전화를 받아야 했고.

“퀵이요! 어디 둘까요??”

정신없는 bw엔터엔 퀵도 꽤 자주 왔다. 내용물은 대부분 시나리오나 대본들이었다. 미팅이 힘들 땐 퀵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운영팀 책상에 쌓인 양을 보니 평소에 너덧 배는 돼 보였다.

이쯤 수장 최성건은.

“오케이, 그럼 혜연씨는 기존대로 가고 우진씨는 일단 한량 뒤까진 가리는 거로 하죠.”

간부 직원들과 간단한 회의 중이었다.

“그리고 우진씨도 들어왔겠다, 직원들 좀 늘려야 될 것 같은데. 가장 급한 게 어딥니까?”

“홍보팀이 급선무라 생각합니다.”

“음.”

“매니지 팀도 좀 허덕이는 건 있어요.”

“인원 파악해서 최대한 빨리 늘리는 거로 하죠.”

뒤로 30분 뒤, bw엔터 신입인 강우진이 회사로 입성했다. 아직 직원들과 데면데면했기에 우진을 신기하게 보는 인원들이 꽤 됐다.

어쨌든 우진은 대표실에서 최성건과 마주 앉았다. 물꼬는 최성건이 먼저였다.

“우진아, 회사 상황 봐서 알겠다만. 여기저기 난리다 지금. 특히 너한테 들어오는 대본이나 시나리오가 급격하게 늘었고, 나름 인터뷰 스케줄이 꽤 들어와. 어떻게, 할래?”

인터뷰? 아 그건 아직 좀. 묵묵히 최성건을 보던 강우진은 부정적이었다. 뭐, 언젠간 그런 스케줄도 소화해야겠다만.

‘아직 마음에 준비가 덜 됐습니다.’

솔직히 아직 좀 불편하긴 했다. 덕분에 우진이 목소리를 깔며 답했다.

“좀 설레발 느낌이 있습니다.”

“그렇지? 솔직히 나도 아직은 네가 신비주의로 가는 게 맞다고 봐. 어차피 너튜브나 언론 인터뷰 몇 바퀴 돌아봐야 아직 반응이 크진 않을 거고. 이미지만 소모될 텐데 아깝지.”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타이밍은 한량 나가고 나서도 좀 더 신비주의 유지하는 거거든?”

몸을 강우진에게 당긴 최성건이 브리핑에 진심을 담았다.

“일단 언론부터 여론이 널 보고 궁금해한다. 그런데 정보가 거의 없어, 와중에 ‘미장센 영화제’ 대상과 한량이 이어져. 더 물음표가 뜨겠지? 그때 권기택 감독 건으로 쾅. 뭐, 대충은 이래.”

그렇군요, 음 모르겠군. 들리긴 하지만 강우진은 대부분 뭔 소린지는 몰랐다. 하지만 최성건이 제대로 된 판을 짜고 있는 건 눈치로 느껴진 강우진.

“예, 괜찮은 것 같습니다.”

“어차피 한량 첫 방도 이틀 남은 상황이니까 최대한 숨기자고. 너 주변 친한 사람들한테도 말조심하고.”

“네 대표님.”

만족스레 웃는 최성건이 대뜸 일어나 책상으로 움직였고, 책들 수십 권을 들어 강우진 앞에 놨다. 꽤 폭력적인 양에 우진이 속으로 움찔하면서도 건조하게 최성건을 바라봤다.

픽 웃는 최성건이 어깨를 으쓱였다.

“너한테 들어온 대본, 시나리오. 추가로 내가 따로 알아본 멜로, 로코도 포함이고.”

즉, 우진의 눈앞에 쌓인 책들 십 수권은 대본과 시나리오들이었다. 이렇게나 많다고? 속으로 화들짝 놀란 우진은 애써 무표정을 일관했다.

‘워- 미쳤네. 이게 다 나한테 들어온 거라고? 개 많아. 이걸 다 언제 읽냐??’

이때 최성건이 우진의 표정에서 틀린 답을 도출했고.

“실망했냐? 하하, 실망하지 마라. 그것도 의미 없는 것들은 1차로 회사에서 좀 거른 거야. 근데 뭐, 기대보다 좀 적긴 해. 아마 네가 정보가 부족해서겠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우진이 쌓인 대본과 시나리오에 시선을 다시 맞췄다. 당연하겠지만 모조리 옆에 검은 사각형이 붙어있다. 그중 제일 위의 것을 대충 집어서 펼치는 우진이었고, 최성건이 비죽 웃으며 설명을 추가했다.

“너 그 신들린 감도 있고 한번 쭉 훑어보고 골라 봐. 꼭 멜로, 로코가 아니어도 돼. 또는 너만 괜찮다면 로코에 하나 더 가도 되고. 시간이 좀 뜬다. 권기택 감독 쪽 거는 프리 초반이라 짧은 거 몇 개 들어갈 시간은 되거든? 뭐, 너 선택이긴 해.”

“쉴 타이밍은 아니지 않습니까?”

“맞지, 지금은 비는 텀 없이 뭐든 빽빽하게 가는 게 좋아.”

설명을 차분히 듣던 강우진이 뜬금 멈칫했다. 물론, 몰래 검지를 든 상태였고 최성건은 눈치채지 못했다. 즉, 강우진은.

‘오- 이거.’

재빨리 아공간에 갔다 온 것이었고.

‘처음부터 B+이 떴네?’

손에 쥔 시나리오를 가리키며 우진이 최성건에게 물었다.

“대표님, 이건?”

“어? 아아- 그건 아마 까메오였던 것 같은데.”

“까메오요?”

“어어. 감독이랑 통화는 길게 못 했는데 이미 촬영 중이라고 들었고, 널 ‘미장센 영화제’서 봤다더라. 일본어 얘기도 했었고. 꼭 만나서 얘기 나누고 싶다고.”

이 순간.

-똑똑, 덜컥!

대표실이 문이 훅 열렸다. 보니 매니지팀 팀장이었다. 두 눈이 디립다 커진 것이 요상한 얼굴.

“대, 대표님. 나와 보셔야겠는데요.”

미간을 좁힌 꽁지머리 최성건이 한숨 쉬며 일어났다.

“왜요? 뭔데 그래?”

“아니······누가 찾아오셨는데.”

“누군데요?”

곧, 최성건이 대표실을 나섰다. 동시에 사무실 입구 쪽에 선 너덧 명 무리를 발견했다. 그중 선두에 선 새치 가득한 남자를 보곤 최성건도 작게 입을 벌렸다. 헛것인가 싶었기에.

“어······라?”

그런 그에게 새치 가득한 남자가 웃으며 다가왔고 악수를 청했다. 뱉어진 말은 일본어.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갑자기 왔나요?”

일본의 거장 쿄타로 감독이 난데없이 나타났다.

"강우진 배우를 만나러 왔습니다."

< 박두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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