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뜸 착각당했다 괴물 천재배우로-93화 (93/201)

< 위협 (3) >

용의자가 서채은이라 추측하는 강우진. 다만, 이건 그냥 그의 느낌일 뿐이었다. 첫인상도 별로였고 툭툭 시비를 거는 게 마음에 안 든달까? 허나 느낌만으로 확신을 할 순 없다. 그건 ‘네가 생긴 게 별로니까 너 범인’이라는 것과 같은 이치.

“쯧, 뭔가 없나?”

확실한 뭔가가, 뭐든 묘수가 필요했다. 문제는 지금 이 상황을 지구 전체로 강우진만 알고 있다는 점. 무턱대고 ‘실종의 섬’ 등급이 지금 D급으로 떨어졌으니, 당장 범인을 찾자고 외쳐봐야 미친놈 취급만 받을 뿐. 어찌보면 ‘실종의 섬’을 구해낼 것은 현재 강우진뿐이었다.

이는 우진에게도, ‘실종의 섬’에 참여한 모든 이에게도 중대한 일이었다.

“후-”

대뜸 어깨가 무거워진 우진이 머리를 굴리고 또 굴렸다. 일단, 용의자를 좁히는 게 먼저. 셋은 너무 많다. 여기서 떠올린 묘수.

“아.”

명확하게는 묘수까진 아니다만 괜찮은 방법이었다. 곧, 강우진이 빠르게 ‘퇴장’을 외쳤다. 어느새 오피스텔로 돌아온 그가 잠시간 생각하다가 짧게 혀를 찼고.

“가뜩이나 피곤한데 귀찮게.”

거실 탁자에 올려진 노트북을 켰다.

“스타트는 서채은부터 가자.”

그가 접속한 것은 포털사이트. 검색어는 서채은. 정보와 기사들이 쏟아진다. 그중에서 우진은 ‘실종의 섬’이 아닌 그녀의 다른 작품들을 확인했다.

“있어라- 있어라-”

과거의 것이 아니었다. 미래의 것이 필요했다. 서채은이 참여한 또는 참여할 작품들. 그리고 다행히.

‘있다.’

여러 기사에서 그녀의 미래 작품들이 확인됐다. 총 2개의 영화. 두 달 뒤 개봉할 로코 영화 ‘자만추’와 곧 크랭크업인 액션코미디 ‘검사사용법’. 과연 잘나가는 탑여배우 답게 작품이 끊이질 않았다.

“‘자만추’는 작년에 찍어둔 게 이번에 개봉하는 거네.”

‘검사사용법’은 빠르면 이번 달에 촬영 끝이었다. 여기까지 확인한 강우진은 전우창과 김이원의 것까지 검색했다. 역시 둘 다 나왔다. 전우창은 몇 달 뒤 방영할 드라마를 찍고 있었다. 제목은 ‘로얄컴퍼니’. 김이원은 ‘어게인 맨’이라는 영화의 개봉이 코앞.

다행히 모두 탑배우들이라 활동이 왕성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총 4개의 작품이 나왔다. 그렇다면 왜 강우진은 탑배우 3명의 작품을 검색했는가? 답은 간단했다.

“일단, 이 작품들 대본이나 시나리오를 얻어야 하는데-”

대본, 시나리오를 얻어서 아공간에 들어가야 했으니까. 그럼 확신에 가까운 답을 얻을 수 있었다. 분명, 셋 중에 하나는 눈에 띄는 등급일 거니까. ‘실종의 섬’과 같거나 그 이하의 등급이.

이어 강우진이 핸드폰에 4개 작품을 메모한 뒤.

“지금은 좀 늦었고.”

화장실로 들어가 샤워를 시작했다. 허나 우진의 머릿속에는 온통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씨, 내가 살리고 만다.”

‘실종의 섬’을 회생시키겠다는 다짐이었다.

다음 날, 24일 아침.

넷플렉스 근방의 녹음 스튜디오. 강우진의 미친 노래 실력을 뽐냈던 스튜디오에 ‘남사친’ 팀들이 모였다. 다만, 배우들은 빠졌다. 인원은 얼추 열댓 명. 녹음 기기 앞에 앉은 음악 감독과 다크서클 짙은 신동춘 감독.

“차례로 들려드릴 겁니다. 우진씨 솔로, 화린씨 솔로, 듀엣곡.”

팔짱 낀 김소향 총괄 디렉터, 긴장이 역력한 최나나 작가, 제작사 인원 등등. ‘남사친’의 중요 제작진이 모두 모인 상황에.

-스윽.

음악 감독이 기기를 조작했고 스튜디오엔 첫 번째 곡이 울려 퍼졌다.

-♬♪

톤이 무거우면서도 감미롭다. 뭐랄까, 이 곡이 깔리면 어떤 남녀든지 드라마가 생길 것 같은 느낌? 곧, 턱을 쓸던 김소향을 시작해서 감상평이 쏟아졌다.

“좋은···데요? 진짜 좋아. 계절 타는 느낌도 없고.”

“이거 지금 작곡가가 대충 가이드 붙인 거죠? 아- 귀에 술술 담기는 게 띵곡이다 싶은데?”

“우와! 우진님이 부르면 진짜 잘 어울릴 것 같아요!”

“맞죠? 우진씨 노래 부를 때 약간 탁한 보이스가 있는데 그것도 찰떡일 것 같고.”

“작곡가 누구예요?”

반응이 좋다. 덕분에 연일 철야였던 신동춘 감독이 작게 웃었다.

“다행이네요, 자세한 정보는 다 듣고 나서 말씀드릴게요. 다음은 화린씨 곡입니다.”

빠르게 교체되는 노래. 이번엔 좀 통통 튀는 곡이었다.

-♬♪

템포가 약간 빠른데 사비에서 바이올린까지 끼어든다. 과연, 이 곡 역시 좋았는지 사람들의 반응이 좋다.

“화린씨 캐릭터랑 찰떡이네!”

“귀엽다가 후반부에 확 꺾이는 맛. 중독성이 어후-”

이어서 마지막.

어찌보면 OST의 메인이라 할 수 있는 듀엣곡이었고,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던 모두의 눈이 약간 커졌다. 특이한 건 반응이 솔로곡들과 비교해 그리 크지 않다는 것. 별로여서 그런 건 아니었다.

제일 독보적이었기 때문에.

“······오.”

묵음으로 처리된 감탄이었다. 여기서부터.

-♬♪

듀엣곡을 듣는 인원들은 저마다 상상을 펼치기 시작했다. 이 곡에 강우진과 화린의 목소리가 실리면 어떨까? 물론, 그저 각자만의 상상일 뿐이지만 모두는 한 가지를 확신했다.

‘진짜 잘 어울리겠는데?’

강우진과 화린의 케미가, ‘남사친’과의 융화가 너무도 기가 막힐 거라는 걸. 그렇게 전부가 빠져서 듣던 곡이 끝났다. 잠시간의 정적. 이 침묵을 깬 것은 총괄연출 신동춘 감독이었고.

“저는 이렇게 3곡으로 결정했으면 싶은데. 다들 어떠세요, 특히 작가님.”

작가인 최나나는 홀린 듯 박수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짝짝짝짝짝짝!

“좋아요, 전 너무 좋아요!”

그 박수가 전염됐다.

-짝짝짝짝짝짝!

-짝짝짝짝짝짝!

누구도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 그저 방금 들은 곡들을 빨리 배우들에게 전달하고 싶을 뿐.

“감독님 두 분 고생 많으셨어요! 곡 진- 짜 기가 막힌데요? ‘남사친’이랑도 잘 어울리고.”

“귀에 착착 붙어요! 시청자들 반응 벌써 기대되네!”

“세 곡 다 배우들 목소리 입혀봐야겠지만, 저는 왠지 벌써 잘될 것 같은데. 저만 그래요?”

물론, OST로 삽입될 곡이 이것만 있는 건 아니지만, 메인 테마곡 3개를 결정한 것만으로도 큰 산을 넘은 건 맞았다.

즉.

“그럼 주연 테마는 이 세 곡으로 가겠습니다.”

‘남사친’의 메인 OST가 결정됐다는 소리였고.

“시간이 없으니까 내일 가이드 따고, 우진씨랑 화린씨한테 바로 넘기겠습니다.”

“그래야죠. 녹음은 언제쯤으로 보세요?”

“스케줄을 봐야겠지만 이번 주 안으로 정리되는 게 좋긴 합니다. 그 다음 주에 할 대본리딩을 생각하면요.”

“오케이! 그럼 우진씨, 화린씨한테 바로 스케줄 공유해둘게요.”

OST 녹음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한편, 같은 시각.

장소는 순천이었다. 대형 세트 촬영장에 ‘마약상’ 팀들이 우르르 모였다. 현재는 촬영 중. 정확하게는 새벽부터 진행된 촬영이었고 한 건물 앞에 선 진재준. 아니, 정성훈이.

“후우-”

자신을 담는 카메라를 보며 긴 담배 연기를 내뿜는다.

“······”

대사는 없다. 그저 묘한 눈으로 카메라를 응시할 뿐. 여러 가지 감정이 담겼다. 후회, 고민, 걱정, 확고 등. 시나리오상 마지막씬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김도희 감독이나.

“감정선 좋고-”

스탭들의 얼굴엔 그 어느 때보다 진중함이 실렸다. 침을 꿀떡 삼키는 이도 있었다. 곧, 김도희 감독이 보는 모니터에 정성훈의 얼굴이 바짝 당겨지고.

-슥.

정성훈이 피우던 담배를 툭 날린다. 뒤로 약 10초쯤 여유컷. 동시에.

“컷!! OOOK!! 나이스! 좋았어요!!”

자리서 훅 일어난 김도희 감독이 크게 외쳤다. 그러자 표정을 푼 진재준이 작게 웃으며 꾸벅꾸벅 인사했고.

“고생 많으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촬영장에 분포된 약 60명 넘는 스탭들이 일제히 고함쳤다.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끝났다아!! 하하하! 이날이 오긴 오네!!”

“그러니까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중간부터 이래저래 잡음이 있긴 했는데, 그래서 더 기분이 째지는구만! 뒤풀이해야지! 뒤풀이!”

“하하, 카감님이 제일 신나셨네!”

“감독님! 고생하셨습니다!”

방방 뛰며 세트 촬영장이 떠나가라 외치는 그들. 그 이유는 조감독의 입에서 뱉어졌다.

“자자! 뒷정리가 완벽해야 진짜 촬영 끝입니다!! 후딱 정리합시다!!”

약 반년 정도 이어지던 ‘마약상’의 촬영이 모두 끝난 순간이었으니까. 나름 고초가 따르던 ‘마약상’이었기에, 수십 배우와 스탭들은 퍽 전율이 흐르는 듯한 표정들을 지었다. 무척이나 기쁜 모양.

그중.

“후우, 어찌저찌 끝났네.”

하늘을 보며 안도의 숨을 뱉은 김도희 감독. 이때 ‘마약상’의 주연 진재준이 옆으로 붙었다.

“감독님, 잘 끝나서 다행입니다.”

그런 그를 보며 김도희 감독이 부스스한 머리를 긁었다.

“뭐, 이제 주구장창 밤새워서 편집해야겠다만. 맞아, 진짜 다행이다 싶어요. ‘이상만’ 일로 미끄러졌을 땐, 이거 망했나? 했는데.”

여기서 강우진의 얼굴을 떠올린 진재준이 픽 웃었다.

“감독님도 아시겠지만, 우진씨 까메오 합류는 신의 한 수였습니다. 뽑힐 그림 기대돼요.”

“내 말이 그 말이에요. 그때 ‘미장센 영화제’ 안 갔으면 어쩔 뻔했어? 두고두고 우진씨한테는 감사해야지. 재준씨도 거하게 밥 한 번 사야지?”

“그럼요. 포스터는 어떻게 가실 겁니까?”

“글쎄. 우진씨를 넣어서 기대감을 올릴지, 아니면 예고편에만 넣어서 긴장감을 주입할지. 거기다 그림들도 죄다 죽여줘서 편집 때 뭘 빼고 뭘 넣을지도 벌써 걱정이네.”

“행복한 고민이네요, 하하.”

이어 김도희 감독 주변으로 배우들이 몰렸다. 그중 마지막 촬영 기념차 방문한 박판서가 질문을 던졌고.

“김감독, 개봉 일정은 얼추 각이 잡혔나?”

미소를 머금은 김도희 감독이 답했다.

“초겨울엔 올려야죠.”

같은 날 낮.

날씨가 퍽 더워졌다. 그렇기에 오피스텔을 나선 강우진의 차림은 가벼웠고, 지하주차장에 도착한 우진이 대기하는 승합차로 빠르게 움직였다.

-드륵!

익숙한 얼굴들이 보인다. 장수환과 최성건. 다만, 한예정은 일이 있는지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진은 승합차에 타자마자.

“안녕하세요.”

낮은 인사를 던졌다. 곧, 두 눈에 피곤 붙은 최성건이 하품하며 손을 흔든다.

“어어- 우진아 잠은 좀 잤냐? 간만에 늦게 출근이라 푹 잤지?”

아니요? 악몽을 꿨습니다. 실제 우진은 어젯밤 종일 뒤척였다. ‘실종의 섬’이 와장창 무너지는 꿈도 꿨다. 하지만 컨셉질을 장착한 우진에게 약한 모습은 존재치 않았다.

“예, 푹 잤습니다.”

“잘했네- 자 출발합시다.”

스르륵 출발하는 승합차. 동시에 다이어리를 편 최성건의 핸드폰이 울렸고, 발신자가 회사 홍보팀이었는지 그가 핸드폰을 귀에 붙인다.

“어? 아- 우진씨 팬사인회? 응 말해요.”

차분히 보고를 듣던 최성건이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어어, 아- 그래요? 흠, 그럼 그날로 확정 짓지 뭐. 어어. 규모? 좀 오바다 싶을 정도로. 그래도 우진이 정식 팬미팅 전에 여는 첫 팬사인횐데 힘을 줘야지. 응, 그래요 우진이 팬클럽에도 공유하고. 굳이 인원수를 제한하지는 말자고. 응.”

그렇게 전화를 끊은 최성건이 몸을 돌려 우진에게 비죽 웃었다.

“너 팬사인회 확정.”

강우진의 첫 팬사인회가 결정된 순간이었다. 하지만 우진의 반응은 없다.

“···그렇습니까?”

지금은 딴생각으로 가득했으니까. 그런 우진의 모습이 익숙한 최성건이 장수환에게 손짓했다.

“수환아, 일단 샵으로 가자.”

“옙!”

“아아 맞다. 우진아, 그- 대영씨 출근한 건 들었지?”

“네. 어제 연락받았습니다.”

최성건이 크크 웃는다.

“어제 첫 출근이랬는데 잘 했다고 하더라.”

솔직히 지금 우진은 김대영이 길거리서 똥을 쌌다고 해도 별 상관없었다. 급한 건 다른 쪽이니까.

“대표님.”

따라서 우진은 목소리를 착 깔면서도 최성건에게 물었고.

“스케줄 듣기 전에 하나 부탁드려도 됩니까?”

몸을 뒤로 돌린 최성건이 우진과 시선을 맞췄다.

“부탁? 되지. 우리 대배우 강우진님이 하는 부탁이면 하늘이 쪼개져도 들어드려야지. 뭔데?”

“대본, 시나리오를 좀 구하고 싶어서요.”

“갑자기? 왜?”

급작스레 얼굴에 걱정이 서리는 최성건.

“야야 너 너무 워커홀릭되면 건강에 안 좋다? 몇 년 전에 혜연이도 그랬다가 한 1년 쉬었다고. 너 스케줄 지금도 충분하다 넘치는데?”

당연히 최성건은 강우진이 다른 작품을 추가로 하고 싶다는 소리로 들었고, 우진은 핸드폰을 꺼내며 작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제가 하려는 건 아닙니다.”

“그래? 그럼 용도가 뭐야?”

“확인용이요. 어제 봤던 김이원, 전우창, 서채은 선배님들 작품들입니다.”

“아- 혹시 걔네 폼을 좀 보려고? 어떤 작품에 들어갔나?”

준비한 멘트는 다른 것이었으나 지금 것도 괜찮았는지 우진이 묵묵히 답했다.

“네. 선배님들 연기를 좀 이해해보려고요.”

“······근데 너 그런 거 안 했었잖아.”

“그렇죠. 그냥 가벼운 마음이긴 합니다. 뭘 찍었나 싶은.”

“그래 뭐 딱히 어려운 것도 아니네. 뭘 구해주면 되는데?”

핸드폰을 보며 줄줄줄 작품 타이틀을 뱉는 강우진.

“‘자만추’, ‘검사사용법’, ‘로얄컴퍼니’, ‘어게인 맨’. 총 4갭니다.”

두 눈을 끔뻑이는 최성건.

“그, 그렇게나?”

“예. 전부 개봉, 방영 예정된 작품이고 드라마는 1부만 있어도 됩니다.”

“어어. 잠깐만 좀 적어야겠네.”

다이어리를 다시금 펼친 최성건에게 강우진이 근엄히 물었다. 너무 급하게 보이지 않으면서 재촉해야 했다.

“오늘 받는 건 힘들겠죠.”

“엉?”

“더 바빠지기 전에 가능하면 빨리 읽고 싶어서요.”

순간, 최성건은 왜인지 전투력이 높아졌다. 저 무심한 강우진이 이렇게 열정을 보이는데 설렁설렁할 순 없었으니까.

거기다.

“아니? 오늘 된다.”

연예계 인맥이 드넓은 최성건에겐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오늘 너 퇴근 전에 구해다 줄게.”

< 위협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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