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벚꽃 (1) >
한 여학생의 외침은 금세 주변으로 번졌다. 이들에겐 촬영장도 신기했지만, 진짜 바라는 것은 연예인을 빨리 보고 싶은 것이었으니까.
“강우진??! 어디어디?”
덕분에 십 수명 학생들의 시선이 모두 한곳으로 집중됐다. 덤덤히 걸어오는 강우진에게로. 곧, 조금씩 가까워지는 그를 보자마자 너 나 할 것 없이 학생들은 호들갑을 떨어댔다.
“진짜네! 강우진! 이거 ‘남사친’ 촬영 맞나 봐!”
“아니, 와- 강우진 실물 뭐야??”
“비주얼 돌았······근데 피지컬도 은근 좋지 않아??”
남학생들은 묘한 질투와 함께 우진을 감상했고, 여학생들은 서로의 어깨를 두드려대며 강우진을 외쳐댔다.
“우와, 나 연예인 처음 봐. 확실히···뭔가 다르긴 다르구나.”
“인정. 나 한량도 봤는데 강우진 연기도 개치이더라!”
“사인받는 거 오반가??”
그리 많은 인원이 모인 것 아니었어도 십 수명 학생들의 목청은 단숨에 주변을 장악했다. 꺅꺅거리는 비명도 포함해서.
이를 강우진 역시 모를 리 없었다.
팀을 대동한 우진은 스탭들에게 다가가면서도 가드들에게 막힌 학생들을 힐끔했다. 순간, 저도 모르게 미소가 번질뻔한 우진이었다.
‘부럽다, 부러워.’
풋풋함과 과거의 자신이 상기됐으니까. 딱 저 나잇대에서만 볼 수 있는 에너지. 어쨌든 얼굴에 근엄함을 강조한 우진이.
-스윽.
모인 아이들을 향해 작게 손을 흔들었다. 이미 팬사인회도 나름 잘 마친 그였다. 이 정도 팬서비스야 껌이지. 여유와 시니컬함이 묻은 그의 손짓에
“꺅!!”
비명, 귀를 찢는 괴성이 쏟아졌다. 살짝 놀란 강우진의 뒤쪽, 그의 팀 중 우람한 김대영이 픽 웃었다.
‘이 새끼 이거 진짜 배우 다됐네. 내가 알던 강우진 맞냐?’
참고로 오늘 현장엔 최성건이 빠졌다. 강우진 관련 너튜브 채널과 회사일 등등으로 시간이 안 났으니까. 따라서 오늘 우진의 팀엔 김대영이 지원 나왔다. 물론, 끝나면 홍혜연 팀으로 다시 복귀하긴 해야 했다.
아직 교육이 안 끝났으니.
따라서 오늘 강우진 팀은 웅장했다. 장수환과 김대영. 이 두 명의 덩치가 양대산맥을 이루고 있었으니까. 곰 두 마리가 강우진을 가드하는 형태.
어쨌든.
-톡톡.
학생들에게 인사하는 강우진의 어깨를 김대영이 살짝 쳤고, 무표정의 우진이 고개를 돌렸다. 허나 김대영은 딱히 입을 열진 않았다. 감개무량한 미소를 짓고 있을 뿐.
그래도 눈으로 말하긴 했다.
‘강스타님 진짜 배우 다되셨네??’
이에 우진도 눈에 살기를 담았다.
‘말 걸지 마, 우람한 새끼야.’
이미 사전에 말을 맞춘 둘이었다. 서로 데면데면 하자는. 다행히 불알친구들끼리의 시선 나눔을 눈치챈 사람은 없었고.
“······”
눈으로 김대영에게 욕을 쏟던 우진이 시선을 돌렸다. 시끌벅적한, 이젠 조금은 익숙해진 촬영 준비 중인 곳으로. ‘남사친’ 스탭들 수십 명이 미친 듯 뛰어다닌다. 20일인 오늘부터 약 한 달간 우진은 ‘남사친’ 본 촬영에 돌입할 예정이었다.
뭐, 촬영을 빨리 쳐낸다면 기간이 줄어들 가능성도 있었다.
‘시간 겁나 빠르네.’
스케줄이 빽빽해서 그런가? OST 녹음과 대본리딩이 어제 같은데 벌써 본 촬영. 그래서인지 강우진의 속에서 서서히 긴장감이 서렸다. 무슨 작품이 됐든 촬영장만의 특유한 긴박함은 늘 우진에게 떨림을 선사했다.
아직 적응은 안 됐다.
하지만 우진은 이제 그 긴장감과 심장 박동을 하나의 기폭제로 사용하기로 했다. 피할 순 없으니 즐겨야지.
바로 이때였다.
“우진씨!”
세팅 준비에 여념 없는 수십 스탭들 사이에서 몇몇이 우다다 뛰어온다. 사각턱 신동춘 감독과 조연출 그리고 연출팀 인원. 그들 중 대본을 한 손에 든 신동춘 감독이 강우진의 앞에 도달했다.
“일찍 오셨네?”
반기는 그에게 강우진이 낮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하하. 근데 최대표님은?”
“아 오늘 바쁘셔서.”
“하긴- 최대표님도 대단하시네. 회사일 하면서도 우진씨 케어도 최대한 붙으시고.”
잠시간 대화가 오가다가 학생들의 비명에 신동춘 감독이 난감하게 웃었다.
“방학이긴 한데 남은 애들이 있었나 봐요. 학교 측에 연락했으니까, 금방 데리고 갈 겁니다.”
“전 상관없습니다.”
“애들 모이면 감당 안 돼요.”
읊조리며 우진과 함께 스탭들 사이로 진입하는 신동춘 감독. 그러면서도 오늘 촬영에 관해 설명했다.
“오늘, 내일 정도는 인서트샷들하고 화린씨하고 우진씨 컷 위주로 갑니다. 그래서 배우들도 단역 하고 보출이 많아요.”
“예. 감독님.”
덤덤히 답한 우진을 가만- 히 보던 신동춘 감독의 미소가 짙어졌다.
“‘흥신소’ 뒤로 이렇게 빨리 우진씨랑 촬영장서 다시 호흡 맞추니까 좋네요. 참 신기하지 않습니까?”
“신기하십니까?”
“그렇잖아요. 그땐 우진씨나 나나 그냥 개뿔 무명이었는데, 단 몇 달 만에 지금 우리 상황이 180도 달라졌잖아요. 세상일 진짜 한 치 앞을 알 수가 없어요.”
격하게 공감합니다. 아공간 덕에 인생이 요지경이 된 우진이 속으로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대본을 옆구리에 낀 신동춘 감독이 주변을 훑었다.
“어때요? 익숙한 사람 몇몇 보이죠?”
“아.”
“맞아요, ‘흥신소’ 때 인원들 좀 있습니다.”
과연 그랬다. 조명팀이나 촬영팀에 ‘흥신소’ 때의 스탭이 보였다. 그런 그들에게 우진이 묵묵하게 목례했다. 스탭들은 기쁜 듯 손을 흔들어댔다. 다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오늘 오는 단역 배우 중에 ‘흥신소’ 나온 분들도 있어요.”
순간, 뭉클해지는 강우진이었다. 뭔가 다들 우진의 ‘남사친’을 위해 힘써주는 기분이 들어서였다.
“조금 있다가 따로 인사드려야겠네요.”
“그래 주면 사기 오르는데 좋죠. 하하, 뭐 다들 이미 힘이 넘치긴 해요. ‘흥신소’ 덕에 사정이 괜찮아졌기도 했고, 우진씨가 잘돼서 좋아라 합니다.”
흐뭇하게 웃던 신동춘 감독이 대뜸 주제를 바꿨다.
“참, 아시겠지만 장소 협찬 때문에 대본상 뒤죽박죽보다는 적당히 차례대로 찍을 것 같아요. 완벽히 순서대로 가진 않겠다만, 이번 주 안으로 고등학교 이야기 털고 대학교로 넘어가야 해서.”
그때였다.
“화린!! 저기 화린!!”
“우와아아악!! 화린!!”
학생들의 괴성이 다시금 데시벨을 높였다. 이유야 간단했다.
강우진을 이어 화린까지 등장했으니까.
긴 머리를 한 줄로 묶은 그녀는 아주 여유롭게 학생들에게 손을 흔들면서도.
“안녕하세요, 감독님. 우진씨.”
금세 우진의 앞으로 다가왔다. 곧, 강우진을 은근슬쩍 스캔한 화린이 속으로 방방 뛰었다.
‘못 보겠다, 우진님 촬영장에서 보니까 한 백배는 더 멋있는데? 막 뭔가 빛이나. 눈이 이상한가?’
마찬가지로 강우진도 속으로 읊조리고 있었다. 메이크업 때문에 그런가? 그녀는 오늘따라 뭔가 청초해 보였다.
‘왜 이 분은 볼 때마다 다른 방향으로 예쁜 거냐? 이 정도쯤은 해야 걸그룹 되는 건가?’
홍혜연과는 결이 달랐다. 그녀는 완성형이라면 화린은 아직도 성장 중이랄까? 그런 둘을 번갈아 보던 신동춘 감독이 턱을 쓸었다.
‘리딩때보단······친해진 느낌인가? 좀 더 가까웠으면 싶어. 둘 다 워낙 살갑진 않아서 걱정인데. 특히 우진씨.’
이쯤 화린이 강우진의 뒤쪽 우람한 사내에 시선을 맞췄다.
“어? 저분- 혜연 언니네 팀에 있던데?”
고개 돌려 김대영을 확인한 우진이 귀찮음 섞은 대답을 뱉었다.
“지원 나왔습니다, 신경 안 쓰셔도 돼요.”
“아- 그래요?”
“네.”
“참, 우진씨. 잠깐만요. 오늘 촬영에서요.”
“예, 말씀하세요.”
이내 우진은 화린과 자연스레 일 얘기에 돌입했다. 그 모습을 보던 김대영은 새삼 신기했다. 말만 들었지 우진의 촬영장 직관은 처음이었으니까. 강우진이 무척이나 커 보였다.
‘간지나네, 새끼가.’
이 순간.
“의상 도착했습니다!!”
강우진에게 의상이 전달됐다. 물론, 화린에게도. 매우 정겨우면서도 추억돋는.
‘이걸 또 입는 날이 올 줄이야.’
교복이었다.
뒤로.
강우진이 교복을 갈아입으러 갔을 쯤, 이젠 배우의 모습이 진한 불알친구에게 부러움과 자랑스러움이 번진 김대영은.
‘애들한테도 알려줘야지.’
핸드폰을 들어 단톡방에 접속했다. 당연히 불알친구들이 모인 톡방이었다. 기다리고 있던 친구들에게 소식을 전한 것.
-대영: 우리 강스타 남사친 촬영 시작했음
-형구: 오오오오오오오옹ㅇ오오옹ㅇㅇㄴ오!! 화린은 봤냐?
-경성: 화린 실물도 지림?
-대영: ㅇㅇ오짐
-형구: 아 ㅅㅂ 진짜 강스타 개년....준나 부럽다....나도 화린이랑 로맨스 잘 할수있는데
-경성: 강우진 전생에 나라 한 세 번은 구한 듯 연기라지만 그 화린이랑....로코를...하 현타온다 라면 먹어야지
-대영: 이제 강우진 우리가 알던 놈 아니야 현장에서 포스 미쳤음 걍 배우
-형구: 나도 연기 시작해야 되나
-경성: 그거보다 성형을 먼저 시작해야지 넌
-형구: 지랄하네 여튼 남사친 그거 나는 부러워서 못 볼 듯
비슷한 시각, 강우진의 팀 중 한예정이 ‘남사친’의 현장을 찍어 우진의 SNS에 업로드했다. 당연히 홍보를 위함이었고, 사진에는 강우진과 화린의 모습도 담겼다.
최근 110만 팔로워를 돌파한 우진의 SNS엔 당연하게도.
-헐ㄹㄹㄹㄹㄹㄹㄹㄹ류ㅠㅠㅠ이거 촬영 시작했어요?!!
-우진 오빠랑 화린님이랑 잘 어울림...존예랑 존잘의 모임....하 빨리 보고싶다
짧은 순간 댓글들이 미친 듯 달리기 시작했다. 물론, 일본어 댓글도 꽤 많다. 그런 SNS 게시물을 확인한 많은 사람 중, 서울의 한 카페에 있던 강우진의 동생 강현아가 호들갑을 떨었다.
“어! ‘남사친’ 촬영 시작했나 봐!”
이어 강현아와 같이 카페에 있던 친구들. 즉, ‘강심장’ 간부진 멤버들이 방방 뛰었다.
“왜왜?! SNS에 떴어?? 봐봐!”
“으- 학교 예쁘다, 나도 가고 싶어.”
“이거 팬카페에 바로 공유공유!”
이쯤 사진 속 ‘남사친’ 풍경을 보던 강현아가 작게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오빠 옆에 이 근육맨······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왜? 아는 사람이야? 그그 우진오빠 로드매니저분 아니셔?”
“아니 그 사람 말고. 이 근육맨. 아무래도 우진 오빠 찐친 같은데. 본 적 있는 거 같아, 어릴 때.”
근육맨. 즉, 김대영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점심쯤.
촬영 준비를 마친 ‘남사친’ 팀 전체는 고등학교의 강당 쪽에 모여있었다. 강당 내부엔 이미 각종 카메라나 조명 등이 세팅됐고, 최소 80명 넘는 보조출연자들이 줄을 서는 중. 모두 교복을 입고 있다.
커지는 웅성거림.
그런 그들이 보는 정면 단상 위쪽엔 커다란 현수막이 달려있다.
-[입학식]
‘남사친’의 대본상 한인호와 이보민의 고등학교 입학식 컷을 찍을 예정이었으니까.
따라서 수많은 보출들 사이 교복 입은 강우진과 화린이 껴 있었다. 둘 에겐 스탭들이 붙어 마지막 메이크업을 점검하고 있었다. 우진은 네추럴한 헤어에 메이크업이 짙지 않다. 화린도 간단히 긴 머리를 묶었다.
하지만 교복 입은 둘을 보는 스탭들은 감탄을 자아냈다.
“이야- 둘 다 완전 그냥 고등학생 같지 않아요?”
“맞아, 교복도 찰떡이고. 막 진짜 고딩들이랑 크게 이질감이 없긴 하네. 둘 다 동안이라 그런 가 봐요.”
“저러면 시청자들 집중도도 확 높아지지, 촬영하는 우리도 뭔가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데.”
이때였다, 신동춘 감독이 확성기에 대고 외쳤다.
“스탠바이!”
이제 촬영을 시작하겠다는 소리였다. 곧, 우진과 화린의 메이크업을 점검하던 스탭들이 우르르 빠졌고, 가까이에 선 연예인을 신기한 듯 보던 여러 보출들도 시선을 정면으로 향했다.
그리고.
“후우-”
작게 숨을 뱉는 강우진. 그런 그가 점차 ‘한인호’를 온몸에 퍼트리기 시작했다.
“하이, 액션!!”
‘남사친’이 방금 크랭크인에 돌입했으니까.
포근한 밖과는 달리 조금은 차가운 강당 안.
낯설면서도 익숙한 강당의 냄새. 청소를 자주 하는지 바닥이 깨끗하다. 신발을 닿을 때마다 끼긱 소음이 퍼진다.
수많은 학생들은 죄다 처음 보는 얼굴.
전부 약간의 긴장감이 서렸지만 그 기분의 근간은 기대감이기도 했다. 새롭고 풋풋하며 흥미롭지 않은 것이 없다. 80명 넘는 학생들은 모두 차렷 자세면서도 이곳저곳을 힐끔댄다. 옆자리를, 저 앞 단상에 오른 머리 벗겨진 교장을, 그 주변으로 선 선생님들을, 눈에 띄는 남학생 또는 여학생을.
중학교가 끝나고 고등학교가 시작되는 시점.
그 시작은 단상에 오른 교장의 입에서부터 시작됐다.
“에- 일단, 입학식에 참석한 여러분 모두 환영합니다.”
단숨에 지루해지긴 했다. 세상 모든 교장의 연설은 수면제니까. 이쯤, 짐벌에 오른 카메라가 한 여학생의 정면에 붙는다. 강당 벽 쪽에 선 이보민이었다. 대강 한 줄로 묶은 긴 머리, 깨끗한 피부 덕에 부각 되는 눈 밑에 점, 조금 큰 듯 보이는 교복.
그런 이보민은 아까부터 몰래 핸드폰으로 뭔가를 기록하고 있었다. 떠오른 악상을 적는 것.
이보민의 꿈은 작곡가였으니까.
여기서 카메라의 무빙이 더욱 이보민에게 가까이 붙는다. 클로즈업. 대본상으로는 이 컷 밑으로 그녀의 나레이션이 들어갈 예정이었다. 간단한 소개 정도?
뒤로 이보민을 정면으로 담던 카메라가 움직인다.
-스윽.
왼쪽으로 조금씩. 이보민의 오른쪽에 선 남학생을 지나고 여학생을 지난다. 그렇게 여러 얼굴이 스친 뒤에 카메라가 멈춘 곳은.
“······”
지루한 듯 하품을 길게 하는 남학생. 이름은 한인호. 1학년 치곤 큰 키와 비주얼이 퍽 눈에 띈다. 물론, 이 컷 밑으로도 이보민의 나레이션이 삽입된다. 그녀의 시선으로 한인호를 소개하는 것. 이쯤, 카메라가 한인호를 힐끔대는 여학생 몇몇을 찍은 뒤.
“언제 끝나냐 이거.”
작게 투덜대는 한인호에게 복귀.
“졸려.”
생기건 멀끔하지만 한인호의 눈동자엔 나태함이 짙다. 껄렁대는 게 아니다. 흐물대는 느낌에 가깝다.
이때.
“······컷!!”
강당 전체로 신동춘 감독의 외침이 울렸다.
“오케이!! 좋습니다! 떼샷 갈게요!”
인물 컷이 끝나고 전체 풍경을 찍을 준비를 한다. 같은 장면이지만 신동춘 감독이 보는 모니터의 광경이 퍽 달라졌고, 그의 옆에 앉은 스크립터 스탭이 작게 속삭였다.
“어우 첫 컷인데 전 벌써 두근거리는데요? 저만 그래요?”
< 벚꽃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