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멀티 (4) >
‘아메토크 show!’의 총괄 PD가 놀라며 되물은 이유는 너무도 간단했다. 등장한 강우진의 일본어가 말도 못 하게 유창했으니까. 그뿐만이 아닌, 룸에 있는 ‘아메토크 show!’ 제작진 전체가 마찬가지였다.
이에 PD가 눈앞의 강우진에게 다시 물었고.
“일본어를···너무 잘하시는데요?”
무게감이 짙은 우진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물론, 일본어로.
“적당히 할 줄 아는 정돕니다.”
적당히? 짧은 대화였으나 발음부터가 이미 현지인 수준이었다. 빼싹 마른 PD는 약간의 당황과 함께 강우진의 실물을 파악했다.
‘한량 속 모습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네.’
꽤 큰 키에 과연 배우 포스를 뿜는 비주얼 그리고 목소리가 낮다. 저게 평소의 모습인가? PD는 새삼 호기심이 땡겼다. 본디 배우란 배역과 본 모습이 판이한 게 맞지만, 눈앞의 저 한국 배우는 그 판이함이 심히 짙었으니까.
‘거기다 일본어까지 될 줄이야. 이건 뭔가 느낌이 좋은데?’
언어가 통한다는 것은 큰 이점이 있었다. 뭣보다 ‘아메토크 show!’는 토크쇼였다. 시청자들의 입장에선 통역이 붙고 안 붙고의 차이는 컸다.
이때였다.
“안녕하십니까-”
강우진의 뒤쪽으로 어색한 일본어와 함께 꽁지머리 남자가 입장했다. 최성건이었다.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모두에게 인사하는 그.
“bw 엔터 대표 최성건입니다.”
바로 반응한 것은 ‘아메토크 show!’의 PD였고.
“토크쇼 메인 연출 시이키 신조입니다.”
나머지 작가들이나 통역까지 소개를 마쳤다. 여러 번의 명함이 오고 간 뒤에야, 강우진을 포함한 인원들 전부가 테이블에 앉았다. 식사는 얘기 후 할 모양인지, 들어온 한식집 종원에게 마실 것을 먼저 주문한 최성건.
-스윽.
그런 그가 건너편 신조 PD에게 먼저 웃음을 보였다.
“먼저 좀 놀랐습니다. 한량이 일본에서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는 건 들었는데, 일본 쪽 토크쇼에서 우리 우진씨한테 관심을 가질진 몰랐거든요.”
당연하겠지만 통역은 강우진이 아닌 통역 직원이 했고, 우진의 모습을 감상하던 신조 PD가 영업용 미소를 장착하며 일본어를 뱉었다.
“현재 일본에서 ‘프로파일러 한량’은 관심도가 매우 높습니다.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수준을 넘어 섭니다. 당연히 출연 배우들에게도 시선이 쏠리고 있구요.”
“우진씨 인지도가 괜찮습니까?”
“물론입니다. 연락을 드리기 전에 저희도 나름대로 조사를 했는데, 강우진씨는 한량의 주연들과 비슷한 정도로 언급이 되는 중이더군요. 특히 SNS에서 시끄럽습니다.”
애진작에 알고 있던 내용이었지만, 최성건은 미팅용 미소를 지으며 기뻐하는 모습을 취했다. 아는 척 보다는 이쪽이 더 분위기가 유해지니까. 이쯤 신조 PD의 시선이 최성건에서 강우진으로 넘어갔다.
세상 덤덤한 느낌.
‘기쁘지 않은 건가? 아니면 원래 좀 저런 스타일일지도.’
강우진은 건너편 ‘아메토크 show!’ 팀들을 보며 약간 신기해하고 있었다.
‘일본 쪽 예능 제작진들은 뭔가 좀 정적이네?’
예를 들어 윤병선 PD 팀과는 느낌이 사뭇 달랐으니까.
‘표정만 봐선 다큐팀같은데? 어쨌든 정적이라 그런가 컨셉질 장착이 잘되는 건 좋은 듯.’
시니컬함이 굳어진다. 이를 알 리 없던 신조 PD는 멋대로 강우진을 판단한다.
‘과묵한 배우는 일본에도 많은 편이니 이상한 건 없지만- 한량이 첫 드라마인 신인이잖아? 근데 산전수전 다 겪은 냄새가 풍겨. 왜지?’
눈앞의 강우진은 뭔가 그보다는 더 묵직한 포스를 풍기고 있었다. 더군다나 신조 PD가 조사한 강우진의 필모는 일반적이지 않았다. 일본에서도 이름값이 있는 권기택 감독을 시작으로, 그가 합류할 예정인 작품에는 거물이 많았다.
데뷔한 지는 1년도 안 됐는데 말이다.
그것이 신조 PD의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했었다. 한국도 그렇겠지만, 강우진 같은 발자취를 가진 신인은 일본에도 전무했으니까.
거기다.
‘출연한 작품이 모두 대성공을 거뒀고.’
저 묵직한 신인 배우가 걸어온 길에는 아직 실패가 없었다. 캐면 캘수록 희한한 인물. 그런데 일본어까지 이리 유창하다니. 한국 쪽 엔터들이 신인들에게 외국어를 조기교육 한다는 건 알았지만, 현재 강우진이 가진 일본어 실력은 교육으로 얻은 게 아닌 듯 보였다.
이때였다.
“PD님.”
내내 조용하던 강우진이 입을 열었다. 물론, 일본어였고 최성건이 정해준 멘트.
“직접 한국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어떤 기획을 잡으신건지 들을 수 있습니까?”
들을수록 감탄이 절로 나오는 신조 PD였다. 풍기는 분위기와 냄새는 100% 한국 배운데, 뱉어지는 일본어가 세상 자연스럽다. 그 괴리가 이름 모를 매력으로 발산한다.
어쨌든.
“저희는 한량의 4인 빌런을 조명할 생각입니다.”
신조 PD는 기획을 설명하면서도.
‘역시 얘가 메인이어야 그림이 확 살겠어.’
강우진에게 묘한 확신을 가졌다.
8월 1일, 아침. 한 언론사.
아침이라 그런지 듬성듬성 자리가 비어있는 언론사 사무실. 그중 하관이 툭 튀어나온 기자가 노트북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다. 클릭질 하는 손도 빠르다.
-딸깍, 딸깍.
눈이 약간 충혈된 것이 잠을 얼마 못 잔 듯 보인다. 그는 강우진에 관한 과거를 커뮤니티에서 발견한 기자였고, 어제부터 내내 미친 듯이 검색을 펼치며 자료와 정보를 모으고 있었다.
“쯧, 너튜브는 댓글이 너무 많네. 옘병.”
시작은 커뮤니티였고 나아가 너튜브까지 뻗어 나갔다. 이다음 목적지는 SNS였다. 현재 150만 팔로워를 훌쩍 넘은 강우진의 SNS를 포함해.
[email protected]_n
게시물 71
팔로워 153.8만
팔로우 9
그를 태그하는 등의 불특정 다수의 SNS를 훑어야 했다. 무척이나 지루하면서도 끝없는 작업이었으나 기자의 열정은 불탔다.
특종까진 아니지만, 그가 발견한 것은 나름 실적을 올릴 정도는 됐으니까.
아니, 잘만 굴리면 시끄러워질 수도 있다. 주제가 강우진이었으니까. 등장과 함께 지금까지도 연예계를 뒤흔들고 있는, 인기 떡상과 함께 ‘최초’라는 타이틀을 여러 개 보유한 괴물 신인.
우연으로 발견한 커뮤니티 글이긴 했다만.
“흐흐. 괜찮아, 이건 충분히 어그로 끌린다.”
잘 찾아보니 비슷한 뉘앙스의 글이 꽤 있었다. 물론, 댓글들까지. 지금까지 기자가 발견한 것만 5개는 넘었다. 게시글 3개 댓글 2개. 강우진과 같은 회사를 다녔다는 것과 대학교 또는 고등학교까지. 대체로 비슷한 내용이었다.
강우진의 인격이 변했다는 등의.
기자는 계속해서 자료를 찾으면서도 거친 워딩을 생각해본다. 뭐가 있을까? 이중인격? 인생이 연기? 뭐가 됐든 최대한 자극적이며 눈길이 가는 타이틀이어야 했다.
그게 아니라면 이런 귀찮은 작업은 의미가 없으니까.
이때 기자가 ‘박대리’ 관련 영상에서 댓글 하나가 추가로 확인했다. 이쯤 기자는 기사의 첫 줄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는 인기 신인 배우 강우진의 과거 얘기로 뜨겁다’ 정도가 좋겠지 싶었다.
“보자- 타이틀은 ‘이중인격’을 넣을까?”
한편.
‘남사친’ 촬영팀은 고등학교 쪽 씬들을 마치고 대학교로 넘어간 상태였다. 한여름, 날씨는 더욱더 무더워지는 중에.
“하이- 액션!!”
캠퍼스나 건물들이 퍽 아름답다고 정평이 난 대학교였다. 고등학교와 마찬가지로 대학교도 방학이었기에 학생들은 많이 없었으나.
“어머어머, 강우진 얼굴 왜 저렇게 작아요?”
“그런 와중에 피지컬까지 좋아요, 괜히 뜨는 게 아니었나 봐. 나 한량 되게 재밌게 봤는데 ‘박대리’는 어딨어요? 저걸 누가 소시오패스 살인자로 봐, 그냥 존잘 배우지.”
“화린도 미쳤어요, 비율 뭐야?”
“하- 진짜 예쁘다. 저건 아침에 얼굴 부어도 예쁘겠죠??”
대학교 직원들이 꽤 몰렸다. 현재 ‘남사친’의 촬영터는 본관 바로 앞의 잔디정원. 카메라나 반사판 등이 세팅된 곳에 강우진이 열연 중이었다.
“컷! 오오케이! 좋았어요, 우진씨! 방금 씬 후방으로 다시 갑니다!”
“네, 감독님.”
현재는 강우진의 솔로씬. 화린은 촬영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있었다. 배꼽이 보일 듯 말 듯 한 반팔을 입은 그녀는 다리 꼰 채 대본을 보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
-스윽.
최성건이 소리 죽여 붙는다. 그의 표정이 묘했다. 뭔가 꿍꿍이가 있는 얼굴.
“화린씨.”
뜬금 등장한 그였기에 화린이 약간 눈을 크게 떴다. 뭐지? 의아했으니까. 이어 의자서 스르륵 일어나는 그녀.
“아- 네, 안녕하세요.”
“방해한 거 아닙니까?”
“아니요, 괜찮아요.”
화린이 보던 대본을 의자에 올리면서도 고개를 갸웃했다. 최성건이야 연예계서 모르는 사람이 없고 본인도 알고는 있었지만, 그는 화린과 친분이 그리 두텁진 않았다. 직접 얘기한 것보다 홍혜연에게 전해 들은 것이 더 많다.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화린은 팬심에 동해선지 미소를 띄웠다.
“대표님 무슨 일 있으세요?”
“일보단 할 말이 있어서요. 잠깐 괜찮죠?”
“네네. 말씀하세요.”
“우진이가 ‘엘라니’ 히트곡 중 하나를 커버할 것 같아요.
금세 화린의 얼굴엔 이게 뭔 소리지? 싶은 표정이 섞인다. ‘엘라니’는 화린이 소속된 걸그룹. 근데 강우진님이 ‘엘라니’의 히트곡 중 하나를 커버한다니? 잠시 두 눈을 끔뻑이던 화린이 입술을 달싹였다.
“······커버요? 우진님이 저희 곡을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미소가 짙어진 최성건은 여유가 넘쳤다.
“말 그대롭니다. 곡은 ‘발레리나’요.”
‘발레리나’라는 곡은 3년 전 걸그룹 ‘엘라니’의 최고 히트곡이었다. 국내와 일본을 강타한. 이어 최성건이 대수롭지 않게 말을 이었다.
“우진이가 너튜브 채널을 열 예정이거든요, ‘발레리나’ 커버는 거기에 선보일 겁니다.”
“아.”
단번에 무슨 소린지 이해한 화린의 심장 박동이 미약하게 빨라지기 시작했다.
‘잠깐잠깐만! 너튜브 채널? 우진님 보컬이 주젠가?? 그럼 우진님 노래 계속 들을 수 있는 거?’
무한한 덕질 중인 화린에겐 펄쩍펄쩍 뛸 정도의 소식이었다. 그래도 우진의 대표에게 속마음을 내비칠 수는 없는 노릇. 화린이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헛기침했다.
“큼. 그래요? 하긴 저번 OST 녹음날에 들어보니까, 우진씨 보컬은 썩히기엔 좀 아깝죠.”
“맞아요. 뭐, 화린씨와 우진이 인연도 있고 해서 ‘엘라니’ 곡으로 골랐어요. 아 그리고 우진이 너튜브 채널 건은 아직 대외비라.”
“네네, 혼자만 알고 있을게요.”
“감사합니다. 그래도 ‘엘라니’ 곡 커번데 화린님한테는 미리 말씀드리는 게 맞다 싶어서요.”
“편곡하시는 거죠?”
“네. 거의 끝났습니다.”
딱 요정도까지만. 최성건은 강우진의 너튜브 채널 관련해서 정보를 대부분 감췄다. 그러거나 말거나 화린은 기대감이 대폭발 중이었다.
‘어떨까? 편곡 어떻게 하는 거지? 일단 키는 좀 낮춰야 될 텐데. 우진님이 그 곡을 부르면- 하 진짜. 빨리 들어보고 싶어.’
곧, 폭발함을 숨긴 화린이 의연한 척을 했다.
“상관없어요, 이미 ‘발레리나’ 편곡 커버가 많기도 하고요.”
빙긋 웃는 최성건. 그는 이 정보를 화린에게 괜히 흘린 게 아니었다. 의도가 있었고.
‘뭐, 보니까 우진이랑 화린씨랑 별로 사이가 좋아 보이진 않는다만. 별로 안 친해도, 심지어 사이가 거지 같아도 이래 던져두면 관심을 안 가질 수 없지.’
목적이 확실했다.
“나중에 곡 업로드되면 한 번 들어봐 주세요.”
“네, 그럴게요.”
“듣고 괜찮으시면 소문이나 팍팍 내주세요. 하하하, 화린님 화력이면 SNS에 한 줄만 써주셔도 영광이죠.”
말만 한 줄이었다.
화린은 이미 국내는 당연하며 일본과 해외에서도 인기가 상당하니까. SNS는 1800만 팔로워를 보유 중이고, 팀 채널이긴 하다만 ‘엘라니’ 채널의 구독자는 1000만을 훌쩍 넘었다.
그녀의 한 줄의 파워는 어마무시할 것.
곧, 화린이 약간 새침하게 읊조렸고.
“들어보고 괜찮으면요.”
얼마든지 정도의 표정을 지은 최성건이 그저 웃었다.
‘마음에 안 들 수가 없을 거다.’
2일, 이른 아침.
위치는 삼성역 근방의 녹음 스튜디오. 기타 등의 악기가 벽면에 달린 넓은 녹음실에 모자를 푹 눌러쓴 남자가 앉아 있다. 늦은 시각이지만 홀로 작업에 집중하는 모습.
짧게 노래가 틀어졌다가.
-♬♪
멈췄다가를 반복한다. 바로 그때였다.
-덜컥!
스튜디오의 두터운 문이 열리며 무던한 얼굴의 사내가 입장했다. 약간 피곤해 보이는 강우진이었다. 이어 우진이 스튜디오를 둘러보면서도.
‘오- 생각보다 엄청 크네? 냄새도 겁나 좋고. 이걸 뭐래더라 우드향?’
작업 기기 중앙에 앉은 남자에게 낮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모자 쓴 남자는 강우진이 올 줄 알았다는 듯 별수롭지 않게 자리서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한량 재밌게 봤어요.”
“감사합니다.”
남자는 약간 퉁명스럽다. 원래 성격이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강우진의 인사가 끝나자마자 그의 뒤로 여러 명이 우르르 들어온다. 최성건을 포함한 장수환과 한예정, 그리고 강우진의 너튜브 채널팀 너덧 명.
조용하던 스튜디오가 단숨에 시끌벅적해졌다.
이들이 전부 모인 이유가 우진의 뒤쪽에 선 최성건의 입에서 뱉어졌다.
“곡이 완성됐다길래 부리나케 달려왔습니다, 하하하.”
편곡이 끝난 것.
여기서 강우진이 녹음 부스에 무던한 시선을 던지며 속으로 읊조렸다.
‘이걸 진짜 하네.’
곧, 정식 녹음이 있을 예정이었으니까. 강우진의 너튜브 채널에 올라갈.
‘근데 구경꾼이 너무 많지 않냐? 어우 살짝 민망하네.’
첫 커버곡 말이다.
< 멀티 (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