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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뜸 착각당했다 괴물 천재배우로-119화 (119/201)

< 멀티 (7) >

아 이건 좀 실순데. 아니, 근데 갑자기 동물 사체가 나와서 어쩔 수가 없었다고. 잠시잠깐 포커페이스가 깨진 강우진이 달려온 장수환을 힐끔했다.

의심하나? 그래도 어쩔 수 없다.

‘그냥 평범하게 놀랐다고 하자. 응, 나도 인간이긴 하니까.’

허나 장수환은 커진 눈으로 우진을 보며 급작스레 엄지를 추켜세웠다.

“방금 비명은······이야 설마 형님! 방금 맡으신 배역 연기 해보신 겁니까??! 대단하십니다! 비명이 완전 경박스러운 게 전혀 형님 같지 않았어요!”

“···어. 그래, 음.”

‘경박’에서 약간 기분이 나빴으나 우진은 뭐 됐나 싶었다. 이어 우진이 시간을 확인하며 읊조렸고.

“가자 슬슬. 시간도 됐고.”

“옙!”

세트 단지로 돌아가면서 우진은 풍경을 구경하기보단, 시나리오 속 배경과 주변을 대비하며 훑었다. 지금은 잔잔하지만 이 주변에선 괴생명체도 나오고 살육과 살인이 자행될 예정이었다.

물론, 그 대부분은 특수효과겠지만.

참고로 오늘 대본리딩엔 대략 150명이 넘는 스탭들이 도착한 상태였다. 보통의 영화팀 규모로 봤을 때도 초대형이었고, 그중 VFX(특수효과)팀과 미술팀의 비중이 꽤 컸다.

그만큼 특수효과에 공을 들인다는 소리.

분명 제작비도 어마어마하겠지. 새삼 이 거대한 작품의 주연으로 합류한 게 현실 같지 않은 우진이었다.

‘약간 나만 옥에 티 같은 느낌이란 말이지.’

뭐가 됐든 우진은 입장했던 숲속 초입에 다시 돌아왔다. 금세 그의 눈에는 광활한 바다가 펼쳐진다. 아니, 실제론 호수지만 시나리오상으론 바다니까. 어쨌든 거기서 잠시 멈추는 강우진.

“······”

그가 잠시간 호수를 눈에 담는다. 표정이 진지해진다.

이쯤, 세트 단지 입구 쪽에서 스탭들에게 한창 지시하던 권기택 감독이 강우진을 발견했다.

“음?”

우거진 숲을 작게 둘러보면서도, 다시금 호수를 지긋이 바라보는 강우진. 분위기가 짐짓 진중하며 근엄하다.

이에 권기택 감독이 픽 웃었고.

“벌써 배경과 감정을 동화시키고 있는 건가?”

옆에 선 조감독이 되물었다.

“예??”

“저기- 우진씨 말이야.”

“아.”

“표정을 봐, 이미 여긴 세트장이 아닌 거지. ‘실종의 섬’으로 보고 있는 거야.”

우진은 이곳을 ‘실종의 섬’ 세상으로 인식하는 작업 중이라 권기택 감독은 확신했다. 저 얼굴과 표정 그리고 냄새. 한량의 세트장에서도 봤던 것이었으니까.

‘저만한 천재가 노력까지 하니 괴물이 될 수밖에.’

아니었다. 강우진은 그저 호수를 무던하게 바라보며 소원하나를 빌고 있을 뿐이었다.

‘바다든 호수든 겁나 간만이네. 하- 격하게 놀고 싶다.’

지금 당장이라도 첨벙첨벙 물놀이를 하고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마지막으로 물놀이를 간 게 언제였더라? 기억을 더듬어도 희미할 정도로 예전이었다.

‘바나나 보트······물놀이 후 먹는 라면. 아오- 씨.’

현재는 한창 여름. 물놀이는 지금 가야 딱 좋은데 말이지. 바로 이때였다.

“우진아.”

뒤쪽에서 익숙한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꽁지머리 최성건이 미소짓고 있었다.

“슬슬 가자, 대본리딩 세팅 거의 끝났다네.”

“···알겠습니다.”

강우진은 아쉬움을 뒤로한 채 발길을 뗐고 최성건이 작게 읊조렸다.

“그리고 시작했다.”

예? 뭐가요? 당장 이해가 안 됐으나 우진은 일단 허세를 장착했다.

“그렇습니까?”

“응. 내가 말했잖아, 이슈는 이슈로 덮는 게 최고라고. 아까 기레기가 쏜 기사 봤지?”

이중인격 어쩌고 타이틀이 달렸던 기사를 말하는 것. 그것 말고도 몇 개가 더 뜨긴 했다. 과연, 최성건이 차에서 알려줬던 것처럼 기자 몇몇이 우진의 과거를 유흥으로써 덥석 물었다. 이쯤 돼서야 무슨 소린지 이해한 우진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봤습니다. 댓글도 꽤 달렸고.”

“응. 이대로 가만히 두면 귀찮아지겠지만 괜찮아. 번질 시간을 안 주면 되니까.”

“······”

침묵을 택한 강우진에게 최성건이 자신의 핸드폰을 보여준다. 보이는 것은 기사였다. 방금 뜬 듯한 기사.

『[이슈픽]일본의 거장 타노구치 쿄타로 감독의 신작 ‘낯선 이의 기괴한 희생’, 그런데 대뜸 한국 배우 캐스팅? 일본에 급속도로 퍼지는 중』

어라? 이거 왜 발표된 거지? 우진이 속으로 물음표를 띄웠을 때, 핸드폰을 회수한 최성건이 목소리를 죽였다.

“자세한 건 리딩 끝나고 얘기해 줄게. 어쨌든 일본은 이 건으로 난리고, ‘한국 배우’ 키워드 때문에 국내에도 이슈 넘어왔다.”

“아- 예.”

답한 우진에게 ‘실종의 섬’ 시나리오를 넘겨주던 최성건의 미소가 짙어졌고.

“꽉 잡아라, 다음 주부터는 풀악셀일테니까.”

우진의 어깨를 두드리며 최성건이 속삭였다.

“리딩 끝난 뒤엔 국내에 좀 더 번져 있을 거야, 내가 힘을 실을 거거든.”

이때 강우진의 시야가 단숨에.

-슥!

컴컴한 세상으로 변했다. 이유야 간단했다. 급작스레 아공간에 진입한 우진이었으니까. 뭔가 정신없는 상태를 진정시킬 이유와.

“어우 슬슬 심장 뛰네.”

탑배우들 등이 즐비한 리딩이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 강우진은 긴 숨을 내뱉으면서도 나열된 흰 사각형 앞으로 움직였다. 그중에서 당연히 ‘실종의 섬’을 선택했다.

-[3/시나리오(제목: 실종의 섬)를 선택하셨습니다.]

-[리딩(경험) 가능한 인물을 나열합니다.]

-[A:최유태 중위, B:조봉석 하사, C:남태오 병장, D:진선철 상병······]

좀 더 선명하게, 더더욱 확실하게. ‘실종의 섬’은 초반 ‘김일병’으로 긴장감을 올린 뒤, 주요 인물들의 평범한 일상을 보여준다.

배역의 소개와 같다.

그중 ‘진선철 상병’을 우진은 몇 번이나 리딩(경험) 했지만, 지금은 욕심을 부려도 이상하지 않았다. 몇 걸음 앞에 있는 리딩장에는 최상위 포식자가 넘쳐나니까. 언제나 방심은 금물이지만 오늘은 특히나 더 딴딴해야 했다.

“후-”

이어 강우진이.

-스윽.

자신이 맡을 빌런을 푹 찍었다.

[“‘D:진선철 상병’ 리딩 준비 중······”]

[“······준비 완료. 완성도가 매우 높은 대본이나 시나리오입니다. 구현도는 100%입니다. 리딩을 시작합니다.”]

이내 우진은 ‘실종의 섬’ 세상으로 빨려 들어갔다.

서늘하다.

온통 회색이던 것이 천천히 걷힌 강우진이 처음 느낀 감각이었다. 싸늘함과 선선함의 중간쯤 온도였다.

보이는 것은 대체로 색깔이 부족했다.

은색과 흰색과 검은색.

서 있다. 그런 눈높이였다. 강우진은 천천히 눈알을 굴려봤다. 네모난 은색이 차례로 배열돼있다. 이내 우진은 인지할 수 있었다.

영안실, 여긴 영안실이구나.

여기서부터 강우진에게 ‘진선철 상병’의 모든 것이 때려 박히기 시작했다. 가슴 전체로 뭔가가 물밀 듯이 밀고 들어온다. 감정과 오감이었다. ‘진선철 상병’과 강우진은 이미 한 몸. 여긴 ‘진선철 상병’의 삶.

그런 그가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아- 어.”

당황과 수줍음이었다. 소심과 더불어 낯가림도. 자신감과 자존감이 낮다, 눈을 뜨고 있지만 초점은 항시 중간보다 아래였다. 그래야 할 것 같았고 버릇이었다. 모든 것이 부족했다. 얇고 힘이 없다. 원초적인 결여가 심하며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시원하게 뱉진 못한다.

고민이 됐으니까. 두려우니까.

그렇기에 눈치를 살핀다. 우유부단하다. 느리고 어물어물하며 결단보단 결핍이 짙다. 우진은 몰래몰래 영안실을 살피다가 자신의 몸을 확인했다.

군복을 입고 있었다.

계급은 상병. 하지만 뭐랄까, 입은 군복은 대체로 후줄근했다. 구김이 많다. 마치 입은 군복이 주인의 성격을 대변하는 것 같다.

이때.

“확인···하시겠습니까?”

낯선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덕분에 정서불안처럼 시선을 굴리던 우진의 얼굴이 고정됐다. 정면의 선 남자에게로. 그 남자는 양손을 모은 채 우진과의 사이에 놓인 은색 테이블을 가리켰다.

아니다. 그냥 은색 테이블이 아니었다.

흰색 천 아래로 사람이 누운 실루엣이 보인다. 시체, 그래 시체였다. 이곳이 영안실이니 당연하겠지. 하지만 우진은 어물쩍댄다. 섣불리 대답하지 못했다.

마음속에서 옅은 자아의 목소리가 들린다.

‘대답···할까? 아니야. 못 하겠어. 지, 진짜 여기 엄마가 누워있으면 어떡해? 하지만 확인은 해야 하는데? 어쩌지?’

우진이 입안을 우물우물한다. 그런 감정이었다. 초조하고 다급하지만 입을 쉽게 열진 못했다. 여기서 영안실 직원이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어쩌시겠습니까. 힘드시면······”

이때야.

“보, 볼게요.”

작은 숨을 내뱉은 우진이 입술을 옅게 떨며 말했다.

“보여주세요.”

“그럼.”

-사락.

직원이 머리 쪽의 흰 천을 살짝 벗긴다. 금세 흰색인지 파란색인지 헷갈리는 엄마의 얼굴이 보였다. 창백하다. 만지면 손이 얼어버릴 정도로. 다시 우진의 속에서 자아의 목소리가 들린다. 엄마, 왜 여기 있어요? 왜? 얼굴색이 왜 이래요? 엄마, 대답 좀 해요, 엄마.

단전 어딘가부터 간질대며 울컥거림이 머리까지 치솟는 강우진.

“······엄마. 엄마.”

왜 하필 내가 군대에 있을 때 가시는 건데요. 왜요? 엄마. 이내 강우진은 다리를 후들대며 무릎을 꿇었다. 무너졌다. 이성과 세상이 함몰됐다. 우진이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떨리는 손을 올렸다.

“엄마를, 엄마 한 번 만져봐도 됩니까?”

“······”

직원은 대답이 없다. 강우진은 넘치는 슬픔을 손끝에 담에 싸늘하게 식은 엄마의 볼을 만졌다. 이게 살이야? 너무 딱딱하잖아요. 아니야, 엄마 그러지 마 제발. 소심함에 절규하진 못하지만, 창백한 엄마의 어깨를 잡으며 우진이 절제된 통곡을 뱉었다.

“엄마···흐흑, 엄마 미안해요. 좀 더 잘 하고 싶었는데 잘 해야 했는데, 엄마가 이렇게 빨리 가면 어떡해요? 미안해 엄마.”

어디선가 엄마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

‘괜찮아 아들, 엄마가 미안해. 주먹만 하던 게 이렇게 잘 성장해줘서 너무 고마워.’

저 멀리 희미해지는 엄마의 목소리. 눈물이 격해진 우진은 어떻게든 엄마를 붙잡고 싶었다. 붙잡아야 했다. 하지만 어디 있는지, 엄마가 어디로 가버렸는지 알 길이 없다. 그 생각이 눈물샘을 폭발시켰다.

“엄마, 이대로 진짜 끝이야? 어? 엄마. 조금만. 조금만 더 있다가 가면 안 돼요? 엄마···나는 아직 준비가 안 됐어요. 하루만, 아니 몇 시간만.”

엄마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우진이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 모습을 보던 영안실 직원도 코끝이 찡해졌다.

이때였다.

‘야야, 시발아.’

감정이 출렁이는 강우진의 자아 속에서 같은 목소리지만 톤이 다른 것이 들린다.

‘그쯤하고 꺼져, 병신이 밤새 쳐 울래?’

명백히 다른 억양과 어투. 그리고 거칠다. 심지어 그것이 온몸을 지배하려는 느낌이 들었다. 침범하고 있다. 훌쩍이던 우진은 격렬히 저항했다.

‘하, 하지마. 우리 엄마가···죽어버렸어. 네가 나올 곳이 아니라고.’

‘지랄하네. 개새끼야, 솔직히 잘 죽었다 싶잖아! 망할년 안 죽었으면 내가 죽였어.’

‘그···러지마. 그만해. 나오지 마. 날 그냥 내버려 둬!’

‘뭐래, 또라이냐?’

거친 놈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섞인다.

‘너도 너고 나도 너야.’

이 순간, 우유부단하던 모든 감각이 거짓말처럼 씻겨진다. 파도가 덮어버리는 것처럼. 이내 온몸에 차디찬 핏물이 쭈욱 퍼진다. 냉철하며 냉담하다. 강단이 있으며 거리낄 게 없다.

시발, 모든 게 마음에 안 든다. 전부가 불만이다.

전혀 다른 감정이 몸을 지배했을 때 우진이 감았던 눈을 팍 떴다. 눈빛이 변했다. 초조함이 사라지고 사나움이 가득했다. 이쯤 위치가 바뀐 소심한 자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 비켜. 엄마를 보내드려야······제발. 조금만 시간을 주면 안 돼?’

강우진은 콧방귀를 꼈다.

“닥쳐. 이제 내 시간이니까.”

이어 두 눈을 끔뻑이던 영안실 직원이 어버버댔고.

“예? 방금 뭐라고.”

엎어져 있던 우진이 스르륵 일어났다. 그리곤 군복을 툭툭 털었다. 마치 더러운 것이 묻은 것처럼. 이어 앞에 선 직원을 노려본다.

“덮어.”

“······?”

왜 말귀를 못 알아먹어. 벗겨졌던 흰 천을 거칠게 덮는 강우진. 더이상 이 구역질 나는 곳에 있을 필욘 없었는지 몸을 휙 돌렸고, 일말의 고민도 없이 영안실을 빠져나갔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던 직원이 황당한 표정을 짓는다.

“뭐, 뭐야 갑자기 돌변해선······”

와중, 영안실을 나온 강우진은 성큼성큼 화장실로 움직였다. 처음의 우유부단 따윈 없다. 바로 변기칸에 들어간 그가 군복 바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이쯤 다시 들리는 소심한 자아의 목소리.

‘뭐, 뭐하는 건데.’

“여물고 있어. 시발, 보자-”

핸드폰 화면을 몇 분간 터치하던 강우진은 원하는 것을 찾았는지, 눈엔 광기가 서렸고 입가에 저열한 미소가 번졌다.

“흐흐, 시발년. 보험금이 얼마야 이게.”

‘진선철 상병’은 한 명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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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물과 탑들이 즐비한, 난다긴다하는 배우들과 백여 명 스탭들이 가득찬 리딩장. 가열된 감정. 고조된 열기. 응집된 집중. 과도한 호흡. 허들 높은 대사. 격이 다른 연기.

그런 리딩장의 정중앙을 꿰뚫는 ‘진선철 상병’.

아니, 강우진의 연기.

“흐흐, 시발년. 보험금이 얼마야 이게.”

‘진선철 상병’의 첫 등장이, 데뷔한 지 고작 반년인 신인의 연기가 이 리딩장에 압박감을 선사했다. 전부의 입을 무겁게 만들었다.

그저 모두는 얼굴에 충격을 담은 채.

“······”

“······”

“······”

이 리딩장에서 유일한 신인 배우를 보고 있었다. 자세를 고친다. 신인 배우 강우진이 각계각층 걸물들의 태도를 바꿨다.

그럴만했다.

책상 상석의 권기택 감독과.

‘이미······한 명이 아니군.’

류정민, 하유라를 포함한 모든 배우들. 그리고 백여 명의 사람들이 보기에 강우진은 분명 하나였다. 그러나 지금 자리에 앉은 ‘진선철 상병’은.

-[진선철 상병 역/ 강우진님]

명확히 두 명이었다.

< 멀티 (7)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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