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죽 (1) >
낮게 깔린 강우진의 대답에 최성건이 두 눈을 끔뻑였다.
“······‘강우진 부캐’? 그러니까 채널명을 ‘강우진 부캐’로 하겠다는 거지?”
탈락인가? 솔직히 정말 적당히 대답한 우진이었다. 뭐, 살면서 너튜브 채널명을 생각해 본적이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뭔가 취미 뉘앙스로 설렁설렁하는 느낌이 중요하다고 했으니까, 강우진 부캐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그렇게 별론가?’
속으로 읊조린 것을 그대로 입에 담는 강우진.
“예, ‘강우진 부캐’. 이상하십니까?”
턱을 쓸던 최성건이 고개를 저었다.
“음- ‘강우진 부캐’ 채널이라, 괜찮은 것 같은데? 무심한 듯하면서 신경 안 쓴 티도 나고. 대충 지은 느낌이 살아서 웃음 포인트도 되겠어.”
“그렇습니까?”
“안 그런 척하면서 생각은 해뒀나 봐?”
아니요, 전혀. 그냥 방금 떠올랐을 뿐인데요. 이를 알 리 없던 최성건이 다이어리를 펼치면서도 강우진을 끌었다.
“너 촬영 투입 한 10분 남았다니까, 그사이에 설명을 좀 해줄게. 앞으로 어떻게 굴러갈 건지. 슬슬 너도 알아 둬야 하니까.”
곧, 강우진과 최성건은 촬영팀이 바글대는 복도를 지나 한적한 구석으로 움직였고, 다이어리를 옆구리에 낀 최성건이 우진과 눈을 맞췄다. 그의 표정이 진중해진다.
“일단, 쿄타로 감독 건. 너도 봤겠지만 지금 일본은 ‘낯선 이의 기괴한 희생’ 이슈로 뒤집혔다. 한국 배우 캐스팅 찌라시. 말했다시피 그거 시발점은 나야. 핸들링도 내가 했다고 봐도 돼.”
“아- 예.”
“물론, 쿄타로 감독 쪽이랑도 얘기가 전부 된 상황이다. 얼추 설계도 짰고 현재는 그대로 굴러가고 있는 거지. 원래 쿄타로 감독은 널 오픈하는 시기를 정식 촬영쯤으로 보고 있었는데, 우리 입장에선 그 타이밍은 좀 별로야. 그래서 설득했다.”
무심한 얼굴로 우진이 경청하자 최성건이 목소리를 더욱 죽였다.
“일단, 이 건은 네 과거를 덮는 용으로 쓸 예정이기도 하다만, 한 방에 여러 건을 증폭시킬 용도기도 해. 지금 한량이 일본에서 터졌지? 아직도 일본 넷플 1등은 물론이고 인터넷을 넘어 일본 방송에서도 소개될 정도야. 거기에 ‘아메토크 show!’까지 맞물렸다. 단독 출연까지 얻어냈고. 그렇지?”
“네, 대표님.”
“여기까지만이라면 굳이 쿄타로 감독 건을 움직일 필욘 없어. 근데 생각을 좀 넓혀보자고. ‘남사친’ 촬영이 막바지야, 이거 국내 말고도 일본 넷플 런칭이 확정이잖냐? 심지어 너랑 화린이 참여한 OST도 풀리고. 타이밍상 한량의 뒤를 이어 줄 작품인데, 솔직히 현재 너의 일본인지도 볼륨이 약해.”
“알고 있습니다. 일본 쪽은 화린씨 인기에 기대야 한다고.”
“어어, 김소향 총괄디렉터나 뭐 신동춘 감독도 비슷한 생각일 거다. 한량이 터졌어도 너만 인기가 떡상한 건 또 아니니까. 살짝 애매하다 이거야.”
“그래서 ‘낯선 이의 기괴한 희생’ 건을 이용한다는.”
되물음에 최성건의 입꼬리가 쭉 올라갔다.
“국내든 일본이든, 남의 인기에 편승하는 건 좀 짜치잖아. 안 그래?”
그런가? 일단 우진은 분위기에 맞춰 덤덤히 허세를 첨가했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화린씨에게 민폐고.”
“자 그럼 ‘낯선 이의 기괴한 희생’의 떡밥을 굴리다가, 캐스팅된 한국 배우가 너라는 게 밝혀졌다고 치자. 약간 밋밋하던 모든 게 180도 달라질 거야. 한량, ‘아메토크 show!’, ‘남사친’까지. 일본 애들이 궁금증 폭발해서 너 찾고 난리도 아닐 거니까. 관심도 증폭될 거고.”
“그러면서 ‘낯선 이의 기괴한 희생’은 홍보력도 높아지기도 하겠네요.”
“맞아, 서로 윈윈이지. 여기까지만 해도 많은 걸 얻을 수 있는데, 이게 끝이 아니야.”
순간, 강우진의 머릿속에 뭔가가 띵! 떠올랐다.
“‘강우진 부캐’.”
“그래. 네 너튜브 채널. 지금 한량만 잠깐 터졌는데 너 SNS나 과거 영상들 떡상하는 거 봐라, 일본 팬들이 급상승했지? 거기에 ‘낯선 이의 기괴한 희생’까지 연타로 터지면? 국내든 일본 애들이든 너튜브서 널 안 찾겠냐? 지금의 몇 배, 많게는 수십 배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널 찾을 거라고.”
웃음이 짙어지는 최성건.
“그 대부분이 ‘강우진 부캐’ 채널에 유입되는 거야.”
과연 그랬다. ‘낯선 이의 기괴한 희생’에 캐스팅된 한국 배우가 강우진이란 게 밝혀진다면, 일단 일본 대중들은 물음표부터 띄울 것이었다. 그게 누구지? 싶을 테니.
그러니 검색을 해볼 것.
그 유입량은 안 봐도 어마무시할 게 분명했다. 어쨌든 퍽 방대한 설계를 읊은 최성건이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였고.
“뭐, 당연히 한방에 터는 건 아니야. 이런 일일수록 세심하고 차근차근 쳐내야 하니까. 당장은 판을 키워야지 일본이든 국내든. 어그로를 극한으로 끌어올려야 굉음이 나지.”
속으로 심히 감탄했지만 컨셉질에 의해 차분한 척을 하는 우진이 고개를 숙였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런 뒷일이 내 전문인데 뭘, 새삼 부탁까지.”
이어 복귀하자는 손짓을 하던 최성건이 발길을 떼며.
“그만한 건이 우당탕 터져대는데 네 과거 찌라시 같은 게 발 디딜 틈이 어딨나.”
마무리 멘트를 쳤다.
“전쟁이 발발했는데, 누가 애들 소꿉장난을 신경 써? 안 그러냐?”
이후.
‘남사친’의 촬영을 마친 강우진은 밤이 깊었음에도 너튜브 팀이 모인 사무실로 넘어갔다. 편집이 완료된 노래 커버 영상을 확인해야 했으니까. 너튜브 팀 사무실은 최성건이 bw 엔터와 가까운 곳에 구한 상태였고, 그곳엔 PD만 남아 강우진을 반겼다.
“바로 들어보시죠.”
결론적으로는.
-♬♪
완성된 영상의 퀄리티는 기깔났다. 최소 강우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내 얼굴 나오는 건 좀 거시기한데, 눈 감고 노래만 들으면 죽이는데??’
결과물은 총 3개였다. 강우진의 간단한 인터뷰 영상, 첫 커버 곡인 ‘엘라니’의 ‘발레리나’ 일본어 버전, 영어 버전. 인터뷰는 질문과 답변으로 이루어졌고 대략 3분, 커버곡 영상들도 4분 내외였다.
“이번엔 영어 버전입니다.”
-♬♪
영상에 꾸밈은 그리 많지 않았다. 오직 녹음실 부스의 배경이 전부에, 앵글은 열창하는 강우진 옆모습이 채택됐다. 헤드폰을 쓴 채 노래 부르는 우진이 덤덤했기에 그의 보컬이 돋보였다. 곧, PD가 엄지를 추켜세웠다.
“우진씨 영어나 일본어 발음이 좋아서 몇 번이나 다시 들었어요, 깔끔하고 부드러운 게 중독성이 있어. 심지어 보컬 실력도 수준급 이상이고.”
“···감사합니다.”
“유입량만 터지면 구독자들 극찬이 쏟아질 겁니다. 내가 맡은 일이라서 그런 게 아니고, 이건 진짜 잘 될 것 같아요. 근데 채널명은 정하셨습니까?”
“아- 그냥 ‘강우진 부캐’로 하려고 합니다.”
“하하, 괜찮네요. 뭔가 무심히 툭 지은 느낌이 나서 덜 부담되고.”
뒤로 영상 확인을 끝낸 강우진과 PD 그리고 최성건은 바로 채널 오픈부터 시행했다.
[채널명: 강우진 부캐]
[구독자 0명]
[동영상 0개]
그저 오픈만 해둘 뿐 공식적으로 뚜껑을 연 건 아니었다.
“대표님, 영상 스타트는 언제쯤으로 보십니까?”
“그걸 딱 정하긴 힘들어요, 흘러가는 분위기 보다가 연락할 테니까 타이밍 맞춰서 오픈해주시면 됩니다.”
“옙, 그럼 오픈 전에 비축 영상들에 관해 얘기를 좀 해야 하는데요.”
“아아, 그렇지.”
PD가 말한 비축 영상이란, 워낙 강우진이 스케줄이 많으므로 나온 얘기였다. 너튜브는 일정한 영상 업로드가 기본인데, 강우진의 일정이 너무 빡빡하면 허덕일 가능성이 있으니까.
따라서 오픈 전에 최대한 많은 영상을 확보해둬야 했다.
“두 번째 커버곡은 생각해 두셨어요?”
“음- 글쎄요.”
이때 우진이 무심하게 아이디어를 냈다.
“KPOP을 일본, 영어로 바꿔 부르듯이. JPOP이나 팝송을 한국어로 바꿔 불러도 되지 않습니까?”
최성건이 턱을 쓸었다.
“괜찮은데?”
이어 이틀 뒤.
일본의 쿄타로 감독 관련 이슈는 몇 배나 몸집을 불린 상태였다. 논란의 덩치는 커져만 가는데 정작 쿄타로 감독 측이 묵묵부답이었기 때문.
『가짜 뉴스? 아니면 진짜? 논란 속「타노구치 쿄타로 감독」은 조용』
그럴수록 일본 언론과 여론의 궁금증은 폭발했다. 연일 언론은 추측성 기사를 쏴댔고 여론은 각종 커뮤니티나 SNS에서 떠들어댔다. 이쯤, 슬슬 그 한국 배우가 누군지 추측이 쏟아졌다.
-이호태일 거야 과거에 그가 일본 영화에 출연한 적이 있었어
-한국의 탑배우 중에 한 명인 건 확실하겠지??
-가짜 뉴스가 아니라면 탑배우를 캐스팅했겠지
과거 일본 작품에 참여했던 한국의 탑배우부터 시작해, 나름의 신빙성이 있는 것도 있고 그냥 아무나 거론하는 글도 있었다.
뭐가 됐든 일본에서 ‘낯선 이의 기괴한 희생’의 인지도는 최대치로 치솟는 중이었다.
이는 당연히 한국도 마찬가지.
『일본은 지금 거장 ‘타노구치 쿄타로 감독’ 이슈로 뜨겁다, 한국 배우 캐스팅은 사실일까?』
『일본 베스트셀러 원작 영화 ‘낯선 이의 기괴한 희생’, 한국 배우 캐스팅 논란에 타노구치 감독은 묵묵부담』
일본만큼은 아니라도, 그 이슈의 핵심이 ‘한국 배우’다 보니 관심이 높아진다. 일본 쪽이 추측한 탑배우들까지 가져와 거론해댄다.
『탑배우 ‘이호태’, 일본에서 시끄러운 ‘낯선 이의 기괴한 희생’에 합류?』
『이호태 소속사 측 “합류 기사는 오보, 논의한 사실조차 없어”』
오죽하면 강우진이 한창 촬영 중인 ‘남사친’ 현장의 스탭들도 이 얘기로 수군댈 정도.
“기사 봤어요? 타노구치 쿄타로 감독 알죠? 일본에서 거장인. 그 감독이 한국 배우 캐스팅했다는 거. 심지어 주연이라는데?”
“에이- 설마. 그냥 헛소문이겠죠, 그 정도 사이즈 작품이면 진작에 여기서도 얘기 돌았을 텐데. 백퍼 찌라시.”
“그렇겠죠? 하긴 너무 얼토당토않긴 하네.”
다만 일본에서야 쿄타로 감독이 메인이겠다만, 국내는 다른 이슈도 많았다.
예를 들면 ‘실종의 섬’.
최근 대본리딩을 성황리에 마친 ‘실종의 섬’은 발 빠르게 현장 소식을 세상에 전했다. 워낙에 탑배우들이 즐비한 데다 그 권기택 감독의 작품이고, 뭣보다 반전의 강우진이라는 괴물 신인이 포함됐기에.
『[무비톡] 초대형 영화 ‘실종의 섬’ 대본리딩 스타트, 연기에 집중하는 탑배우들/사진』
『탑배우들 사이에 주연으로서 당당히 자리한 ‘울트라급 신인’ 강우진/ 사진』
그저 얘기만 듣는 것과 현장에 강우진이 포함된 사진을 보는 건 천지 차이. 금세 영화계 뉴스는 ‘실종의 섬’으로 가득 찼다.
뒤로 며칠.
어느새 촬영이 막바지에 치달은 ‘남사친’ 역시 홍보의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겼다.
『‘남사친’의 현장에서 강우진과 화린의 투샷, 벌써부터 달달하네/ 사진』
앞으로 ‘남사친’은 많은 것이 예정되어 있었다. 강우진과 화린이 메인이 될 포스터 촬영, 제작발표회, 각종 홍보 스케줄 등등.
그 사이 신동춘 감독은 현장의 강우진과 화린에게 얼추 크랭크업의 일정을 설명했다.
“우진씨, 화린씨. 이 속도면 8월 15일에는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좀만 더 힘냅시다!”
‘남사친’의 크랭크인은 7월 20일쯤. 애초 한 달로 잡혔던 스케줄을 약 일주일 정도 좁힌 셈이었다.
시간은 착실히 녹는다. 그런 와중.
-강우진이 이중인격이라는 거 증거 또 나왔닼ㅋㅋㅋㅋ(펌).JPG
우진의 과거 찌라시는 지속되는 중이었다. 주로 커뮤니티가 중심이었고, 기자들 몇몇도 끈덕지게 이 건을 물고 늘어졌다.
『각종 커뮤니티에 등장하는 괴물 신인 강우진의 과거사 “지금이랑 딴판, 완전 사람이 바뀐 정도”』
덕분인지 강우진의 SNS나 여러 영상엔 악플들이 꽤 늘었다.
-이분 이중인격인지 뭔지 논란 있던데 왜 해명이 없음????
-과거 지인들 목격담 계속 터지는데 입 다물고 있는 수준ㅋㅋㅋㅋㅋ
그러나 강우진은 무시.
“응, 어쩌라고?”
최성건에게 맡긴 건이기도 했고, 솔직히 스케줄이 너무 바빠서 일일이 신경 쓸 겨를이 없기도 했다. 소시민 버프도 한몫했고.
이쯤, ‘아메토크 show!’ 측과 최성건이 한가지 합의점을 찾았다.
그 합의점은 그대로 강우진에게 전달됐다.
“8월 30일, ‘아메토크 show!’ 녹화날 확정했다 우진아.”
아메토크 show!의 각이 제대로 잡혔다.
8월 14일, 일본 도쿄.
‘낯선 이의 기괴한 희생’을 제작하는 초대형 ‘토에가’ 영화사. 그중 넓은 회의실에 익숙한 남자가 보인다. 새치가 그득한 쿄타로 감독이었다. 현재 일본에서 가장 뜨거운 감독인 그였고, 아직도 ‘낯선 이의 기괴한 희생’과 관련된 기사는 계속해서 터지는 중이었다. 논란이 잠재워질 기미가 없다.
그런 쿄타로 감독의 건너편에 앉은 남자 세 명.
일본의 유명 언론사 사람들이었다. 즉, 기자들. 지금 쿄타로 감독은 인터뷰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는 것. 이미 약 30분 정도는 진행한 상태며 여러 물음과 답변이 오갔다.
이어 기자가 쿄타로 감독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감독님, 이번 작품인 ‘낯선 이의 기괴한 희생’은 제작도 전에 논란으로 시끄러운데요. 혹시 그것에 관해서 하실 말씀이 있습니까?”
“······”
“계속해서 침묵을 일관하고 계시는데, 그 이슈가 허무맹랑한 거라면 차라리 시원하게 말씀해주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되물음에 쿄타로 감독이 침음을 뱉으며 턱을 쓸었다. 그리곤 대뜸 입을 열었다. 논란이 터지고 난 뒤 쿄타로 감독의 첫 입장표명이었다.
“아직 전부를 말씀드릴 순 없지만, ‘낯선 이의 기괴한 희생’에 한국 배우가 합류한 것은 확정입니다. 이미 배역도 넘어갔고. 남자 배우입니다.”
“···지, 진짭니까? 역시 추측되던 대로 한국의 탑배우 중 한 명입니까??”
여기서 쿄타로 감독이 덤덤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한국의 탑배우가 아닙니다, 그는 신인입니다.”
순간, 기자들의 미간이 확 찌푸려졌다.
< 폭죽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