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뜸 착각당했다 괴물 천재배우로-131화 (131/201)

< 출국 (5) >

구독자 100만. 넷플렉스 재팬의 팀장급 간부가 뱉은 말은 사실이었다. 그것을 증명하듯, 꽁지머리 최성건의 옆으로 한예정이 붙었다.

“대표님.”

약간 속삭이듯 읊조린 그녀가 최성건의 옆에 붙어 핸드폰을 보였다.

“방금 달성했어요.”

한예정의 핸드폰 화면엔 너튜브 ‘강우진 부캐’ 채널 메인이 출력되고 있었다.

[채널명: 강우진 부캐]

[구독자 100.1만 명]

[동영상 5개]

이에 최성건의 입이 단숨에 귀에 걸렸고.

“또 최초 하나 추가했네.”

무대 위 강우진에게 엄지를 추켜세웠다.

하지만 지금 한창 행사를 진행하는, 매우 유창한 일본어로 읊조리는 강우진이.

“예. 저와 화린씨의 호흡은 좋았습니다. 촬영장은 시작부터 끝까지 화기애애한 분위기였고요. 기억 남는 게 있다면- 아 근데 이걸 말씀드리긴 좀 곤란합니다. 스포가 될 수 있어서.”

알 턱이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어제 넷플렉스 재팬이 주관한 행사를 잘 마친 우진은, 27일 아침부터 ‘아메토크 show!’의 빼싹 마른 신조 PD와 미팅을 진행했다. 장소는 호텔 내부에 있는 레스토랑이었고, 인원은 강우진과 최성건 반대편엔 신조 PD와 작가들.

“하하, 우진씨. 일본에서 보니까 더 반갑네요!”

“안녕하십니까, PD님.”

“아시죠? 지금 일본에서 우진씨 이름 시끄러운 거. 한량 잘 돼서 조사하던 초반이랑은 전혀 다릅니다! 커뮤니티고 SNS고 우진씨가 가장 핫해요, 거기다 어제 우진씨 일본 도착하고부터는 더 심하구요.”

신조 PD와 작가들의 눈엔 흥분이 점철됐고 빠르게 일본어를 뱉어댔다.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한량만 보고 강우진을 섭외했는데 생각지도 못한 초초대어로 성장했으니까. 완벽히 얻어걸린 느낌이니 그럴 수밖에.

“그리고 아까 보니까 우진씨 너튜브 채널은 벌써 구독자 105만 명을 넘겼더라고요? 대단합니다, 진짜. 저도 나름 PD로 오래 시간을 보냈는데 이런 급격한 상승세 처음 봅니다.”

극찬에 무심함을 장착한 우진은 속으론 순수하게 기뻐하는 중이었다.

‘인정, 나도 이게 현실인가 싶습니다. 내가- 내가 100만 너튜버가 될 줄이야.’

잠시간 어제의 전율을 상기하던 우진이 달달한 미래를 상상했다.

‘이대로면 진짜 200만은 기본이고 300만도 쉽지 않겠어? 아니다, 이건 백퍼 500만도 쌉가능.’

그럴 때 신조 PD가 돌연 일 얘기를 꺼냈다. 이틀 뒤 있을 녹화 얘기였다.

“워낙에 급작스레 일이 흘러가서 원래 잡았던 기획을 싹 갈아엎었습니다. 그만큼 추가된 부분도 많고 녹화 시간도 좀 늘어날 거예요.”

“문제없습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그- 오프닝이나 클로징은 보통의 그림으로 생각하시면 되고, 우진씨가 참여할 작품들 있잖습니까? 한량이나 ‘남사친’, ‘낯선 이의 기괴한 희생’, 한국의 작품들 그리고 우진씨 너튜브 채널까지. 홍보 성격을 띤 순서도 충분히 넣었습니다.”

“예, PD님.”

“그리고 혹시······너튜브 채널에 올라온 곡을 좀 불러주실 수 있으신지.”

“무대를 서란 말씀입니까?”

“아닙니다. 그저 토크 중간에 한 소절 정도만 불러주셔도 됩니다.”

“그 정도는 가능합니다.”

얼굴빛이 단숨에 밝아진 신조 PD는 녹화가 어떻게 진행될지를 읊었다.

“아시겠지만, 녹화라 시청자가 보는 방영본처럼 차례로 찍지는 않습니다. 녹화는 긴데 초대된 방청객은 2시간만 있을 예정인 것도 있고, 상황에 맞춰 뒤죽박죽 촬영 후에 편집으로 맞출 생각입니다. 아마 녹화 첫 시작은 방청객 Q&A부터일 겁니다.”

“그 그림이 방영 땐 후반부인 겁니까?”

“중후반부쯤 되겠죠. 아, 참고로 ‘남사친’ 소개 순서에서 화린씨가 게스트로 확정됐습니다.”

이건 처음 듣는 얘기였다. 최성건을 보니 그도 약간 놀란 눈빛이었다. 급하게 결정된 건가? 싶을 때 그 답을 신조 PD가 읊었다.

“오늘 오전에 혹시나 해서 화린씨 측에 연락했는데, 감사하게도 잠깐은 괜찮다고 답변이 왔어요.”

자세한 건 나중에 물어봐도 되겠지. 우진이 속으로 적당히 답을 내린 순간, 건너편 신조 PD가 말을 이었고.

“녹화에 초대된 방청객은 우진씨 팬 위주로 선별했고, 대략 200명 정도 됩니다.”

강우진이 순수하게 놀랐다. 물론, 내면으로.

‘일본에 내 팬이 200명이나 있다고??!’

하지만 빼싹 마른 신조 PD가 반전을 뱉었다.

“방청객 신청만 3000여 건이 넘었습니다. 뽑는 데에 진땀 뺐어요, 정말.”

200명은 ‘고작’이었다.

29일.

자잘한 인터뷰나 홍보 스케줄을 돌았던 이틀은 금세 저물었다. 어느새 29일이 밝았다. 29일인 오늘은 일본의 국민 토크쇼 ‘아메토크 show!’의 정식 녹화가 잡혀 있었다.

종일 풀이었다.

장소는 일본 민영 방송국 TBE 내부의 ‘아메토크 show!’ 전용 세트장. 녹화 시작은 오전 10시 무렵. 덕분에 우진은 이른 아침부터 샵에 들려 헤어와 메이크업을 손봤고, 의상으론 위아래 브라운 셋업으로 블레이저와 슬랙스를 차려입었다.

그런 강우진은 시간이 9시 30분을 넘길 쯤.

“후웁- 후우-”

세트장 뒤편의 대기실에서 홀로 심호흡 중이었다. 약 30분 전, 신조 PD와 함께 돌았던 세트장이 생각보다 드넓었으니까. 메인 무대 중앙에 놓인 소파 두 개, 뒤쪽에 걸릴 예정인 강우진 관련 여러 포스터들, 무대 주변에 비치된 ‘아메토크 show!’의 로고, 무대 앞쪽 200석 규모의 방청객 자리 등.

조명만 뺀다면 언뜻 대형 영화관 느낌과 유사했다.

‘뭐냐 왜 벌써 녹화 날이냐고. 하- 씨. 개떨린다.’

생각해보면 강우진은 이런 본격적인 토크쇼가 처음이었다. 애초 라디오나 ‘운동회’를 빼면 한국의 예능도 거의 나가질 않았다. 그런데 대뜸 대형 토크쇼라니. 심지어 한국도 아닌 일본의 국민 예능?

‘들어보니까 이 토크쇼에 헐리웃 스타들도 나왔다고 했어, 한국의 탑배우들도 나오고. 근데 내가?’

그런 프로의 메인으로 섭외된 강우진. 이건 안 떨리는 게 이상하긴 했다. 덕분에 우진의 양손엔 땀이 차기 시작했다. 낯선 것의 막연함 때문.

‘아메토크 show!’는 ‘연기’가 아니었다.

즉, 아공간의 힘이 불필요했다. 오로지 ‘강우진’의 힘만으로 헤쳐나가야 했다. 그러다 우진은 스스로에게 ‘노빠꾸’ 주문을 퍼트렸다.

‘몰라, 씨. 어떻게든 되겠지. 그냥 하던 대로만 하자, 하던 대로만.’

피하는 건 불가능하니 최대한 즐기는 수밖에.

뭐 늘 그래왔지 않았는가? 후진은 없다 오직 직진뿐. 마인드 컨트롤을 하니 나름 진정이 되는 강우진이었고.

-덜컥!

때마침 대기실 문이 열리며 꽁지머리 최성건이 얼굴을 쭉 내밀었다.

“녹화 시작한단다, 가자 우진아.”

우진은 가공된 냉기를 뿜으며 의자서 일어났다.

“네, 대표님.”

이어 강우진과 최성건이 복도를 걸을 쯤, 목에 인터컴을 두른 ‘아메토크 show!’ 스탭이 뛰어왔다. 그의 안내를 받으며 걸음을 재촉하는 사이 최성건이 작게 읊조렸다.

“방청객 다 찼더라고. 200명 정도라 그러드만 충분히 넘는 것 같더라. 250명은 돼 보여.”

“그렇습니까?”

“어. 뭐 딱히 긴장은 안 되지? 그래도 여긴 한국이 아니라 일본이니까 한 번 물어는 보는 거야.”

이젠 200명이든 2000명이든 상관없는 우진이었다. 딴딴한 마인드 컨트롤을 한 뒤니까.

“한국이나 일본이나 별로 다를 건 없어요.”

피식한 최성건이 우진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거 하나는 편하네, 원래 신인들 맡으면 걔네 멘탈 관리가 더 빡세거든. 근데 넌 뭔들 심드렁하잖냐, 하하하.”

예, 대표님. 전쟁은 저 혼자 치르겠습니다. 우진이 각오를 다지자마자 녹화가 있을 스튜디오에 들어섰다. 촬영 세트장 내부는 부산스럽다. 수십 스탭들이나 세팅되는 카메라, 조명, 오디오기기 등등.

이내.

-타닷!

몇몇 스탭들이 달려와 강우진에게 마이크를 달았고, 최성건이 무대 위 소파의 남자 MC를 턱짓하며 속삭였다.

“저기 저 양반이 카라마츠 소요라고. 일본의 국민 MC쯤 돼. 이름은 들어봤지?”

MC 카라마츠 소요는 큐카드를 확인하고 있었다. 약간 통통하니 비버를 닮은 얼굴. 허나 강우진은.

“······”

그를 확인할 정신이 없었다. 저 앞에 관객석을 가득 채운 방청객을 보고 있었으니까. 방청객들은 신조 PD의 안내에 따라, 초반 그리고 중후반 등의 인서트 컷을 미리 찍고 있었다.

‘미친, 개웅장하네. 저거 전부 일본 사람인가??’

그때 방청객 중 앞쪽 몇몇이 마이크 차는 강우진을 발견했다. 덕분에 과한 리액션이 나왔다.

“허업! 가, 강우진!”

“어디?? 어디요?”

“저기요!”

괴성에 가까운 일본어가 금세 방청객 전체로 번졌다. 꺅이나 우왁! 같은 효과음도 과해진다. 곧, 몸을 돌린 신조 PD가 우진에게 우다닥 달려왔고.

“우진씨, 녹화니까 너무 긴장하실 필욘 없습니다! 어- 미팅 때 말씀드린 것처럼, 촬영 시작은 방청객들 Q&A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아아, 그리고 화린씨는 녹화 중간에 도착하실 거고요.”

“예, 알겠습니다 PD님.”

“준비 다 됐나? 어어. 그럼 바로 무대 올라가시면 돼요.”

신속해지는 심박수를 억지로 억누른 우진이 조명으로 밝은 무대에 올랐고, 비버 닮은 MC 소요가 웃으며 강우진에게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카라마츠 소요라고 해요. 하하. 현재 일본에서 가장 핫한 배우를 만나서 영광입니다. 아, 일본어는 잘하신다고?”

“예. 안녕하세요, 강우진입니다.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허- 진짜······아니 신조 PD님. 이건 일본어를 그냥 잘하는 수준이 아닌데??”

잠시간의 감탄과 적당한 인사말이 오간 뒤, 강우진과 MC 소요는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신조 PD는 무대 밖 스탭들 사이로 껴서는 크게 외쳤다.

“자- 그럼 녹화 시작합니다! Q&A부터!”

그의 외침이 끝나자 무대 주변에 설치된 카메라에 불이 들어왔다. 녹화가 스타트됐다는 뜻. 그러자 큐카드 든 MC 소요가 천연덕스럽게 멘트를 쳤다.

“음, 좋습니다. 그럼 분위기를 좀 바꿔 볼까요? 아까부터 방청객분들의 선명한 시선이 느껴지고 있어서요. 이번엔 여기 계신 방청객분들 Q&A를 진행해보겠습니다!”

녹화스러운 대사였다. 어쨌든 방청객들에게 핸드마이크가 전달됐다. 이때 신조 PD 주변으로 스탭 두 명이 붙었다. 이를 가까이서 지켜보던 최성건이 턱을 쓸었다.

‘통역? 한 명은 혹시 모를 한국어 때문에 불렀다 치면, 나머지 한 명은?’

일본어라 명확진 않지만, 신조 PD와 그들의 대화에서 ‘통역’ 비슷한 단어를 들은 최성건이었다. 다만, 둘이나 있는 건 이상했다. 어쨌든 방청객의 첫 번째 질문은 중간쯤의 여자였다. 우진을 처음 봐서 표정에 흥분이 가득했다.

“아, 안녕하세요! 저는 한량을 보고 팬이 됐어요! 최근 ‘강우진 부캐’ 너튜브 채널을 봤는데요! 계속 같은 주제로 커버 영상을 올려주시는 건가요?”

핸드 마이크를 든 강우진은 차분하게 깔린 일본어를 뱉었다.

“네. 꾸준히 올릴 생각입니다. 나아가 KPOP의 커버만이 아닌, JPOP이나 팝송을 한국어로 커버하는 것도 생각하고 있어요.”

“악! 그건 언제쯤 올라오나요!”

“최선을 다해볼게요.”

“감사합니다!”

“저야말로.”

스무스한 첫 번째. 다음 차례는 방청객 제일 앞줄의 어려 보이는 남자였다. 그런데.

-스윽.

그는 마이크 대신 손을 쓰기 시작했다. 즉, 수어였다. 신조 PD가 의도한 선별인지는 모르겠으나, 수어 쓰는 남자를 보곤 최성건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고.

‘아- 저래서 통역이 두 명이었네.’

무대 위 강우진에 시선을 돌린 최성건이 팔짱을 꼈다.

‘수어라- 우진이가 할 줄 아는 건 한국 수어고. 수어는 나라별로 다르지 아마? 저건 일본 수어고.’

정답이었다. 수어는 공통 언어가 아니었다. 한국은 물론 일본, 미국 등 전부 달랐다. 각 나라의 언어가 상이 하니 당연했다. 즉, 수어는 나라별 또 다른 언어라 봐도 무방했다.

곧, 최성건이.

‘아쉽네.’

지금도 열심히 일본 수어를 던지는 어린 남자를 보면서도 입맛을 다셨다.

‘수어가 전세계 공통이었으면, 여기서 우진이가 수어까지 반전으로 딱 보여주는 건데. 그럼 다들 놀라 자빠질 테고.’

그렇게만 되면 ‘아메토크 show!’에서의 강우진이 더욱 빛날 텐데 말이지. 연예계는 그런 반전이나 충격을 좋아하니까. 우진이 한국의 수어를 잘해선지 최성건의 아쉬움은 더 컸다.

허나 이 건은 그냥 꿀떡 삼켜야 했다.

그래도 뭐 상상하는 게 돈이 드는 건 아니니까. 그렇게 최성건이 입맛을 다실 쯤, 신조 PD와 제작진은 일본 수어의 통역본을 정리해서 프롬프터에 띄웠다. 그리곤 무대 위 MC 소요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이 순간.

“······아? 어?”

수신호를 보내던 신조 PD가 움직임을 딱 멈췄다. 더불어 두 눈이 확장됐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P, PD님 저거-”

“···뭐지??”

“와- 세상에.”

“어떻게 된 거야??”

세트장에 있는 신조 PD의 주변의 스탭들도 마찬가지였다. 200여 명의 방청객도 그랬다. 모두들 무대 위를 보며 얼음처럼 굳었고 입을 작게 벌렸다. 마치, 전혀 예상치 못한 광경을 본다는 듯이.

실제로 그랬다.

신조 PD를 포함한 ‘아메토크 show!’의 전 스탭들이 보는 것은 강우진이었고, 소파에 앉은 우진은 무심했던 처음과는 달리 적당한 표정이 가미되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

방청객 어린 남자에게 수어로 답하고 있었다. 어린 남자와 눈을 맞춘 우진은 프롬프터를 보지도 않는다. 왜? 어째서? 특이한 것은.

‘······일본 수어?’

미간을 찌푸린 최성건이 방금 속으로 읊조린 것처럼, 강우진은 한국의 수어가 아닌 일본 수어를 아주 의연하게 보이고 있었다.

그런 강우진은 정작.

‘이 정도쯤 대답하면 되겠지? 응, 적당해.’

별수롭지 않았다. 뭐랄까, 아무 거리낌이 없달까? 그러다 우진이 굳어버린 어린 남자의 표정을 확인했고, 놀란 토끼 눈의 어린 남자가 다시금 일본 수어를 우진에게 보였다.

[“어떻게 일본 수어를 할 줄 아세요?”]

이 역시 편하게 알아듣는 강우진. 엥? 그야 내가 수어를 할 줄- 어? 잠깐만. 이때야 강우진은 깨달았다.

‘내가···왜, 어떻게 일본 수어를 할 줄 알지??’

자신이 한 게 한국 수어가 아니라는 것을.

< 출국 (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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