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격 (1) >
19일 아침 10시 넷플렉스 코리아 정식 오픈. 아침임에도 많은 사람이 보고 있을 ‘남사친’의 시작은 벚꽃이 흩날리는 공원에서부터였다. 사람들이 퍽 붐비는 공원. 딱 꽃놀이를 즐기는 느낌.
그 앵글과 함께 깔리는, 통통 튀는 듯한 OST.
-♬♪
음악만이 가득하던 음향에 점차 시끄러운 인파의 소리가 섞인 뒤, 화면엔 넘치는 사람들 사이 나란히 걷고 있는 강우진과 화린의 뒷모습을 비춘다. 여기서 돌연 화린의 나레이션이 깔린다.
[“그래, 맞아. 바로 여기가 사건의 발단.”]
그녀의 말이 끝나자 둘의 뒷모습을 비추던 앵글이 휘릭 돌아, 두 인물의 정면샷을 보였다. 우진과 화린의 표정이 대조적이었다. 청재킷을 걸친 화린은 활짝활짝하지만 강우진은 귀찮음이 가득하다.
이때.
-타닷!
화린이 어디론가 뛰었다. 덕분에 그녀의 긴 머리가 팔랑였다. 흰셔츠에 청바지 차림인 강우진은 긴 한숨을 뱉었다. 이어 혼자 방방 뛰던 화린이 양손 가득 모은 벚꽃잎을 가지고 우다다다 우진에게로 복귀했다.
[“야! 한인호!”]
앵글은 두 인물의 옆 모습. 화린이 양손에 쌓인 벚꽃잎을 강우진에게 쭉 내민다. 순간. 수북한 벚꽃잎이 클로즈업 되고, 강우진과 화린의 티키타카가 이어졌다.
[“이거 봐봐!”]
[“어쩌라고?”]
[“아! 향기 맡아보라고 향기!”]
[“아무 냄새 안 나는데.”]
꽤나 스스럼없이 티격대는 둘. 그러다 결국 강우진이 쌓인 벚꽃잎에 코를 붙였다. 이 순간.
-뚝.
내내 깔리던 OST와 화면이 멈췄다. 마치 세상이 멈춘 것처럼. 그리곤 다시금 화린의 나레이션이 깔렸고.
[“이때야, 이때! 하- 그냥 여기서 한인호 콧구멍에 벚꽃잎을 처박고 도망쳤어야 했어!”]
끝나자마자 멈췄던 화면이 다시 움직였다. 쌓인 벚꽃잎을 사이에 두고 가까워진 강우진과 화린. 오묘한 눈빛이 오간다. 둘의 얼굴이 교차로 출력되며 끈적한 시선이 절절하게 보였다.
주먹 하나 정도의 거리인 둘의 눈빛이 말랑말랑해진다.
-♬♪
OST마저 뭔가 부드러운 것으로 변했다. 그렇게 숨소리가 느껴질 정도로 가까운 둘이 한 화면에 담긴다. 사이로 햇볕이 스며드는 연출이 가미되며 재생 속도에 슬로우가 걸렸다. 이쯤 오묘한 얼굴로 화린을 바라보던 강우진이 먼저 움직였다.
벚꽃잎을 뚫고 코앞의 화린과 입술을 붙인 것.
화면엔 강우진의 뒤통수와 눈이 디립다 커진 화린의 표정이 출력되고, 우진이 천천히 입술을 떼자 우진을 바라보던 화린이 대뜸 딸꾹질했다.
[“끼흡!”]
다시 세상이 멈추고 화린의 나레이션.
[“멍청하게! 왜 딸꾹질을 했지?”]
그러나 화린의 딸꾹질은 멈추지 않고.
[“끄읍!”]
잠시간의 아이컨택. 이내 딸꾹질하던 화린이 아랫입술을 깨물며 바로 앞 강우진에게 욕했다.
[“······미친놈.”]
그리곤.
[“씨!!”]
못 참겠다는 듯 화린이 양팔을 훅 벌려 강우진에게 달려들었다. 앵글은 점차 멀어진다. 둘이 풀샷으로 출력됐고, 화린의 손에 있던 벚꽃잎이 살랑살랑 날린다.
덮쳤다. 그런 표현이 어울렸다.
강우진에게 매달린 화린, 그녀를 가볍게 받아들인 강우진, 서로의 입술이 포개진 상황, 마치 각자의 입술을 잡아먹기라도 하듯 딥하다. 뭐랄까, 농염하면서도 괴팍하달까? 흡사 둘 다 짐승과도 같다. 이때 무아지경인 둘을 힐끔대는 인파들이 잠시 잠깐 출력된 뒤, 다시금 서로 부벼대는 둘을 잡는 앵글.
그러다.
[“으악! 안돼! 잠깐 멈춰봐!”]
화린의 나레이션에 따라 재차 화면이 뚝 멈췄다.
[“나······어쩌다가 이렇게 됐더라??”]
급작스레 되감기는 연출이 출력됐다. 우진과 화린이 거꾸로 빠르게 움직였고 사람들도 마찬가지. 세상이 되돌려지는 듯 지구가 휙휙 도는 것까지.
이내.
-사아.
OST가 바뀌며 전체적인 색감도 변했다. 펄럭이는 커튼, 칠판과 교탁, 뛰어다니는 학생들이 차례로 등장하다가.
[“······”]
책상에 엎드린 교복 입은 남자를 보인다. 당연히 강우진이었다. 이때 여자 목소리가 그를 불렀다.
[“야! 한인호!!”]
역시 교복 입은 화린이었다. 부스스 고개를 올리는 강우진. 그러나 화린을 확인하자마자 다시금 푹 엎드렸고, 화린이 다다다 달려와 그의 머리를 팍 때린다. 발딱 일어나는 강우진.
[“아! 이보민! 돌았냐?!”]
곧, 찡그린 강우진과 화사하게 웃는 화린의 얼굴을 교차로 보여주다 타이틀이 떴다.
-‘남사친’
여기까지 ‘남사친’의 1화를 푹 빠져서 보던, 과자를 와삭와삭 씹는 강현아와 친구들이 이구동성으로 읊조렸다. 과한 진심이 섞였다.
“미친······개존잼.”
뒤로.
넷플렉스 코리아에 ‘남사친’이 정식 오픈하고 약 한 시간이 흘렀을 때쯤. 강우진의 불알친구들이 모인 단톡방이 불타고 있었다.
-형구:미친? 야야 남사친 이거 시작부터 키스 박는 거 트루냐??!!
-형구:시발 개부럽네
-경성:왓? 키스? 시작부터? 잠깐만 나 일 중인데 장실가서 한 번 봐봄
-형구:강우진 이새끼 전생에 나라를 한 40번 구했냐고!!!! 아아아아아아 진짜 졸라 부럽네
-대영:친구여 봤구나? 근데 난 그걸 직관했단다
-형구:???진심?
-대영:눈앞에서 봤다
-경성:시발거 시작부터 ㅈㄴ찐하네??! 야!! 강우진! 좋았냐?! 좋았냐고!!
-형구:사형! 이유? 몰라 그냥 사형!
-경성:화린이랑.....무려 그 화린이랑....
-대영:ㅋㅋㅋㅋㅋ병신들ㅋㅋㅋ근데 어떰? 재밌디? 난 아직 일 중이라 못 봄
-형구:ㅇㅇㅇㅋㅋㅋㅋ재밌긴함ㅋㅋㅋ나 원래 이런 거 잘 안 보는데 유잼인데?
-경성:응 인정 집가서 제대로 봐야겠다
-우진:훗
-형구:야! 이 새끼 웃는데??!!
평일 월요일 아침이지만 강우진의 불알친구들은 극성이었다. 이들뿐만이 아니었다. 모두들 일하고 있을 시간이지만, 그럼에도 ‘남사친’의 실시간 시청자 토크방은 요동치고 있었으니까.
-재밌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악!! 강우진 화린 교복 왜케 잘 어울림????
-키쓰키쓰키쓰키쓰키쓰키쓰키쓰!!
-둘이 키스하는 거 몇 화에 나와요?
-↑키면 바로 갈김
-이걸 원했어....강우진....존잘러 남사친 재질....
-방금 인터뷰하는 씬에서 화린 넘 이쁘다....
-뭐냐 이거ㅋㅋㅋㅋ여윽시 노잼ㅋㅋㅋㅋㅋ
-드라마 색감 미쳤어......이쁘당
-와 강우진 이미지 변신 지린다!! 박대리 진짜 생각도 안남!!
-입학식ㅋㅋㅋㅋ연설하는 교장 나 고딩때 교장이랑 똑 닮음ㅋㅋㅋㅋ
-반짝하고 망할듯ㅋㅋㅋㅋ
-둘이 부른 OST는 언제 나오지????
-강우진 교복 왜 찰떡이냐 왜 존잘이냐 왜 웃는 거 귀엽냐
-ㅋㅋㅋㅋㅋ이정도 키스면 바로 모텔잡아야지
-대가리에 든 게 그것밖에 없음???
-옴메...키갈 너무 찐한데.....오히려 좋아
-연기 잘하네 강우진 이거로 여자팬들 흡수 엄청 될듯!
글은 초마다 갱신되며 전부 ‘남사친’을 실시간으로 보는 느낌이었다. 심상치 않은 공기가 풍긴다. 이에 질세라 커뮤니티 쪽도 슬슬 움직임을 보였다. 한 유명 커뮤니티엔 본격적인 ‘남사친’ 갤러리가 만들어졌고, 벌써 수백에 달하는 게시글이 형성될 정도였다.
다만 이는 시작일 뿐.
『[이슈체크]뚜껑 열린 ‘남사친’, 오픈 1시간 만에 커뮤니티 시끌시끌』
오전을 지나 퇴근 시간이 되면 이보다 수배는 넘게 요동칠 게 빤했다.
『아침 시간임에도 불타는 ‘남사친’ 공식 시청자 토크방/ 사진』
화산이 폭발하듯이.
같은 날, 점심쯤. 일본.
한국에 ‘남사친’이 오픈했다는 소식은 일본에도 퍼지긴 했다. 다만, 일본은 여전히 ‘낯기생’과 카시히 그룹 관련 쪽이 더 관심이 깊었다. 계속해서 새로운 떡밥은 나오는데 팩트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
『[카시히 그룹] 손대지 않던 문화 산업 뻗어갈 첫걸음이 「‘낯기생’」?』
떡밥이 터진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일본의 여러 예능 프로에선 이 건을 퍽 자주 다룰 정도.
뭐가 됐든 현재 두 쪽 모두의 인지도는 극강.
사이 강우진의 언급도 많았다. 물론, 그가 출연했던 ‘아메토크 show!’의 여파는 아직도 일본 쪽 너튜브 시장을 넘나들었다.
그런 와중.
-부웅!
도로를 달리는 최고급 세단 안의 늙은 남자가 강우진 관련으로 질문을 던졌다. 흰털 섞인 눈썹의 히데키 회장이었다.
“‘낯기생’ 쪽 상황이 어떤가.”
거끌한 톤의 물음에 조수석의 반듯한 인상의 여자. 즉, 비서실장 리리가 몸을 돌렸다.
“전부 회장님의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궁금증이 증폭되면서도, 저희나 ‘낯기생’의 폭발한 관심이 계속 유지되고 있습니다.”
“좋아. 타노구치 쿄타로 감독은 어쩌고 있지?”
“문제로 인해 멈췄던 만큼, 현재는 제작 속력 내는 데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최근 출연 배우 캐스팅을 완료한 거로 들었습니다.”
“강우진은.”
“차기작인 영화 촬영에 돌입한 거로 확인했습니다. 지금은 해외로케 촬영으로 베트남에 있다고 합니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히데키 회장. 만족스러워서였다. 원하는 그림으로 굴러가고 있었으니까. 뭣보다.
‘신고 그 녀석도 전과는 달리, 말도 못 하게 쾌활해졌어.’
자신 손자의 상태도 날이 갈수록 호전되고 있었다. 꿈과 희망이 커진달까? 이어 팔짱을 끼던 히데키 회장의 주름진 얼굴이 창밖으로 향했다.
‘역시- 단발성이 아닌, 문화 산업 쪽을 좀 손을 대보는 게 낫겠지.’
이어 그가 조수석의 리리를 불렀다.
“조만간 강우진을 한 번 만나야 할 것 같은데.”
“접촉해서 자리를 마련합니까?”
“아니 그리 대놓고 보는 건 좀 시기상조야. 강우진 쪽에 부담을 줄 수 있고. 적당히 우연을 가장하는 게 낫지 않겠나?”
잠시간 생각하던 리리가 회장과 눈을 맞췄다.
“그러시면 ‘낯기생’의 대본리딩땐 어떠십니까?”
“대본리딩?”
“예, 영화 제작 준비 중에 하는 겁니다. 감독, 배우, 스탭들이 모두 모여 사전에 연기 합을 맞춰보는 시간입니다.”
“아아- 그래, 나도 들어 봤어.”
“‘낯기생’의 대본리딩엔 강우진도 올 테니 그때 만나보심이.”
괜찮다 싶었는지 히데키 회장이 턱을 쓸었다.
“흠, 언제쯤. 그리고 어디서 하지?”
“배우 캐스팅이 완료됐으니 조만간 할 겁니다. 일정을 확인해보겠습니다. 그리고 장소는 보통 영화사 내부에서 진행합니다.”
천천히 턱을 쓰는 히데키 회장은 바로 입을 열진 않았다. 뭔가 생각을 하는 듯. 그게 얼추 몇십 초. 그러다.
“그럼 그 대본리딩의 장소를 말이야.”
낮고 꺼끌한 톤으로 리리에게 지시했다.
“내 호텔을 제공하는 거로 하지, 홀 하나를 빌려주면 충분하지 않겠어?”
이 시각, 다시 한국.
한창 이동 중인 강우진의 승합차 안. 샵을 들렀나 온 참인지 우진은 풀메이크업 상태였다. 그런 그는 지금 자신의 핸드폰을 내려보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으악! 키스씬! 미친! 막상 완성된 거 보니까 개민망한데??’
오늘 아침 오픈한 ‘남사친’을 보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기분이 묘했다. 핸드폰으로 자신을 봐서? 아니면 그 유명한 넷플렉스에 자신의 작품이 걸려서? 뭐가 됐든 신기한 기분인 그였다.
이때.
“오빠.”
옆자리인 파란 단발의 한예정이 우진에게 말을 걸었다.
“‘남사친’ 찐으로 재밌는데요?”
쌀쌀맞은 어투에 진심이 담겼고, 결과적으론 다른 스타일리스트들도 모두 동의했다.
“응응, 우진 오빠 작품이래서가 아니고 진짜 존잼인데요.”
“무조건 이거 처음 찐한 키스씬이 한몫한 듯.”
“오빠랑 화린님 케미도 좋고, 잘 어울려요! 이거이거 스캔들 한 번 터지겠는데?”
이들 모두 우진과 똑같이 ‘남사친’을 보고 있었으니까. 그런 그녀들을 말없이 보던 우진은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일단, 여자들 눈엔 괜찮은 건가?’
한예정이 앞쪽 조수석의 꽁지머리 최성건을 불렀다.
“대표님도 보셨어요? 어떠세요?”
몸을 천천히 돌린 최성건은 웃고 있었다. 미소가 과하게 짙다. 웃긴 건 그가 뱉은 말이 ‘남사친’ 관련이 아니라는 것.
“‘남사친’도 ‘남사친’인데. 우진아, 다른 희소식이 하나 더 있네?”
엥? 뭐지? 뭔가 수상한 웃음입니다만? 그러거나 말거나 최성건이 우진의 손에 들린 핸드폰을 검지로 찍었다.
“네 눈으로 직접 봐라, 방금 넘겼으니까. ‘강우진 부캐’ 켜봐.”
너튜브 ‘강우진 부캐’ 채널 얘기였다. 곧, 우진은 덤덤한 얼굴로 넷플렉스를 끄고 너튜브를 켰다. 금방 보이는 ‘강우진 부캐’ 채널의 메인화면. 이내 강우진은 속으로 헉했다.
[채널명: 강우진 부캐]
[구독자 502만 명]
[동영상 13개]
구독자 500만을 돌파한 상태였으니까. 너튜브 채널의 덩치마저도 괴물이 되가고 있다. 강우진 팀들 전원이 손뼉 칠만한 수치였고, 우진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면서도 속으로 경박하게 맞장구쳤다.
‘크!! 내가 500만 너튜버?!! 지리네! 응, 지려!’
그러다 뭔가 떠오른 강우진이.
‘아 맞다.’
갑작스레 조수석에 앉은 꽁지머리 최성건을 불렀고.
“대표님. 채널 얘기가 나와서 말입니다만, 너튜브 채널 컨텐츠 있잖습니까.”
“어? 아- 어어.”
“하나 추가해도 됩니까?”
“되지? 뭐? 보컬 관련으로 아이디어 떠올랐냐?”
강우진의 대답은 생뚱맞은 것이었다.
“아니요, 요리 관련입니다.”
잠시간의 정적. 이후 최성건이 두 눈을 끔뻑이다 되물었다.
“······요, 요리??”
< 포격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