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신 (8) >
타박, 타박, 타박. 이요타 키요시가. 아니 강우진이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였다. 차분하고 잠잠하다. 존재감이, 표정이 없다. 지금 계단을 타는 그의 모습은 어디 하나 눈에 띄지 않는다.
굳이 꼽자면 생긴 것이 일본인스럽진 않았다.
미묘한 얼굴. 이쯤 계단을 내려가는 우진의 팔뚝에 서늘함이 감돈다. 현실. 그래, 지금 그는 키요시의 인생에 들어와 있으며 진짜로서 경험하고 있다.
방금 그는 유일한 것을 잃었고 흔한 것 중 하나를 지웠다.
다른 말론 사람이 죽었고 죽였다.
한 명은 자의로, 한 명은 타의로. 그것을 두 눈으로 생생히 지켜본 우진이지만.
“······”
변하지 않았다. 감정은 여전히 미약했으며 아무것도 없는 표정도 그대로.
하지만.
“뭐, 뭐야!!!”
“꺄아아악!!”
“경찰!! 경찰 불러요!!”
“으아아아악!!”
학교는 발칵 뒤집혔다. 저 아래층에서 들리는 비명, 가까운 복도쯤에서 외치는 괴성, 발광에 가깝게 부산스러워진 아래쪽 계단, 우진의 어깨를 치고 뛰어가는 학생들, 그 뒤를 재빨리 따르는 선생님들.
그럴만했다.
급작스레 학생 두 명이 세상을 떠났으니까. 하지만 없는 일도 아니었다. 최근 일본에선 학생 스스로가 목숨을 끊는 일이 심심치 않게 터졌으니. 그래도 뉴스의 사건을 직접 보는 건 차이가 크다.
-스으.
강우진은 난리가 난 1층이 아닌 교실이 있는 2층 복도에 들어섰다. 그러다 멈칫. 자신의 양손을 내려본다. 평소와 같다. 똑같은 심장 박동, 비슷한 떨림, 별반 다르지 않은 호흡.
“괜찮아.”
지금의 읊조림은 자신을 다독인 게 아니었다. 범인으로 지목당할 일이 없다는 확신이었다. 그러니 다시 걷는다. 허나 우진이 도착한 곳은 본인의 교실이 아닌 ‘미사키 토카’이 교실이었다. 학생은 아무도 없다. 모두 구경을 나간 탓이겠지. 오직 교실 특유의 공기만이 강우진을 반겼다.
-다라락.
그런 그가 의자에 앉았다. 토카의 자리였다. 책상 위 이런저런 낙서가 보인다. 죽어, 더러워, 냄새나, 병신의 자리 등등. 우진은 말라비틀어진 표정으로 낙서를 가만히 내려본다. 그게 얼추 5초쯤.
-스윽.
책상 서랍에 있는 연습장과 필통을 꺼내는 그. 둘 모두에 ‘미사키 토카’란 이름이 적혔다. 강우진은 연습장의 빈 장에 뭔가를 적기 시작했다.
-츠구무네 신노스케
이름이었다. 다만, 방금 적은 이름 뒤엔 X표를 친다. 그는 이미 머리통이 깨져버렸으니까. 그 밑으로 총 9명의 이름이 적힌다. 남자, 여자가 뒤섞였다. 어느새 이름을 다 적은 우진이 종이를 부욱 찢는다. 반을 접고 또 반을 접는다.
접힌 종이는 그의 주머니로 들어간다.
“지금은 안 돼.”
때를 말하는 것이었다. 이 9명 모두를 문제없이, 후회 없이 지워낼 때. 이어 우진이 천천히 교실을 나와 복도를 걷는다. 그러면서 중얼댄다.
“한 명 정돈 괜찮지만, 9명 전부는 무리야. 힘도 부족해. 머리도. 경험도.”
모든 것이 모자랐다. 모자란 것은 실패를 부른다. 뭣보다 지금 행위를 추가하면 원한으로 인해 특정될 수 있다.
“잊혀야 해.”
세상에서 ‘낯선 이’가 돼야 한다. 누구도 자신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더욱 조용히, 특별할 것 없는 희미함을 걸쳐야 된다.
강우진은, 키요시는 장기전을 선택해야 했다.
그것이 1년이든, 5년이든. 그리고 모두의 머릿속에서 희미해졌을, 모자란 것 없이 넉넉할 때쯤 시작될 것이다. 전조 없는 재난 말이다. 많은 희생자가 나올 거고 그것은 매우 ‘기괴한 희생’일 테지.
곧, 복도를 걷던 강우진이 멈췄다. 그리곤.
“······”
창밖을 내다봤다. 수많은 인파가 보인다. 수백의 학생들, 어느새 도착한 경찰들, 흥분한 선생님들. 그리고 뭉쳐서 쑥덕대는 그 9명. 강우진의 흐리멍텅한 눈이 그들을 응시했다.
증오도 아니오 살의도 아니다.
그저.
“숙제.”
할 일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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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지났을까?
[“‘A:이요타 키요시’의 리딩(경험)을 종료합니다.”]
키요시의 인생을 살던 강우진이 돌아왔다. 당연하겠지만 그는 승합차 안이었고, 최소 수년을 살다 왔지만 시간은 몇십 초 지나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인지 우진은 지금의 승합차가 낯선 기분이 들었다.
“후-”
늘 그랬다. 언제나 배역을 리딩(경험)하고 나면 진짜 본인이 있던 장소가 불편해졌었다. 동시에 배역의 생생함이 짙어졌다. 물론, 방금의 ‘이요타 키요시’ 역시 마찬가지. 이미 각인된 뒤지만 윤곽이 몇 배는 더 선명해졌다.
강우진은 차분하게 컨셉질을 상기했다.
이것은 그의 자아를 두텁게 하는 작업과 같았고, 여태껏 각인된 많은 배역 중 ‘이요타 키요시’의 문을 닫는다. 컨트롤도 퍽 익숙해진 강우진.
“됐고.”
색깔을, 냄새를 빼내는 것도 삽시간이었다. ‘주인’ 그 자체의 모습. 그런 강우진이 대뜸 ‘거머리’ 시나리오를 집었다. 바로 다른 작품을 공부하는 건가 싶겠지만 아니었다.
“다음은- 응, 쉬자.”
이게 소시민 강우진의 진짜 모습이었다.
후로.
아공간의 버프로 현실론 몇십 초 만에 ‘낯기생’의 복습, 꽤 긴 휴식까지 취한 강우진은 ‘실종의 섬’ 촬영에 다시금 돌입했다.
“스탠바이- 큐.”
아까까진 ‘키요시’였던 우진은 어느새 ‘진선철 상병’을 대수롭지 않게 꺼냈고 집중한다. 가뜩이나 며칠 뒤 일본 스케줄이 잡힌 터라 우진이 쳐내야 할 씬도 많았다.
와중, ‘실종의 섬’ 스탭들이 조곤조곤 속삭였다.
“우진씨, 언론으론 시끌시끌한데 평온하네요. 연기 퀄도 좋고.”
“원래도 잘 안 흔들리는 타입이니까.”
“근데 소속사 바꾸려나? 백퍼 여기저기 엔터들이랑 연락 주고받고 있을 텐데.”
“글쎄. 나는 최대표랑 계속 갈 것 같어.”
스탭들 대부분이 대놓고 말은 못 하지만 비슷한 수군거림을 나눴다.
“크- 우진씨 잡으면 진짜 대박이긴 해. 너튜브 구독자가 600만에 가깝지 않나?? SNS도 그렇고.”
“근데 둘 다 우진씨 거 아니에요?”
“그렇다 쳐도 인지도, 파급력, 홍보력이 다른 배우들이랑은 비교가 안 되지. 드라마, 영화, 예능판 거물들이랑도 친하고.”
“그러고 보면 우진씨가 참여한 작품들이 전부 잘되기도 했네요??”
반면, 권기택 감독을 포함한 배우들은 생각만 할 뿐, 강우진에게 뭔가를 물어보는 액션을 취하진 않았다.
그 사이.
-우우웅.
-우우웅.
자리에 놓인 강우진의 핸드폰엔 계속해서 뭔가가 도착하고 있었다. 지인들도 있겠지만 엔터들의 연락이 폭발 중인 것.
이를 보지 않더라도 베테랑인 최성건이 모를 리 없었다.
“······”
팔짱 낀 그는 촬영존 안에 강우진을 바라보면서도 생각을 정리하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현 강우진의 가치를 계산한다.
‘타 엔터들은 모르는 게 많아.’
세상은, 침 흘리며 강우진에게 덤벼드는 엔터들은 무지했다. 그렇기에 지금 책정된 우진의 몸값은 틀렸다. 물론, 현재 그들이 제시할 금액은 신인에겐 상상도 못 할 정도긴 하다만, 최성건이 보기엔 더더욱 높아도 이상하지 않았다.
일단, 그들은 아직 안가복 감독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다.
아직 확정까진 아니라도, 초대형 거물인 그의 100번째 작품에 강우진이 유력했다는 것만으로도 위세는 커진다. 그뿐인가?
‘강우진 저놈이 노리는 건 아카데미상.’
다른 것들은 차치한다고 해도 저 괴물 같은 강우진의 영점이 아카데미상에 맞춰져 있다. 그를 속속들이 아는 사람이라면 ‘불가능’하단 소린 못할 게 빤했다.
그 미래의 가치는 어마무시했다.
여기서 최성건이 무엇보다 욕심내는 우진의 능력이 등장한다.
‘터무니없는 감.’
불확실한 미래를 어느 정도 조율할 수 있는 우진의 미친 감이었다. 혀를 내두를 정도를 넘어 신봉할 수준. 이 역시 국내 엔터들은 모르는 부분. 이미 강우진은 자신의 감으로서 해외인 일본에 진출했고, 한국 영화의 역사인 안가복 감독의 눈에까지 들었다.
다음은 칸, 나아가 아카데미상까지.
모든 걸 현재로선 최성건만 알고 있으니 저울질 부분에서 유리했고.
“쇼부 봐야겠지.”
결심했다. 성의 그 이상을 쏟아붓겠다고.
한편, 강우진 관련으로 인터넷에선 퍽 출처 없는 찌라시가 돌기 시작했다.
『[스타톡]FA시장 나올 예정인 강우진, 이미 많은 대형 엔터들과 접촉했다』
『GGO엔터 측 “강우진에게 큰 관심 있는 것 사실”』
모두 클릭수를 받기 위한 발악이긴 했으나 자주 볼 수 있는 그림이긴 했다.
하다하다 일본 쪽까지 등장한다.
『[이슈체크]일본 쪽 에이전시까지 강우진에게 러브콜? 계약금 최소 수억 원 예상』
어디와 접촉했다더라, 누구와 심도 깊은 대화를 나눴다, 신인 대비 사상 초유의 계약금이 탄생한다, 1인 소속사를 만든다 등등. 언론이 멋대로 뿌리는 것도 있었고 엔터들이 의도적으로 노출시키는 기사도 있었다.
어느 쪽이 됐든 강우진의 인지도에 도움이 됐다.
약간 노이즈마케팅과 비슷했다. 그리고 기사들을 확인한 여러 거물 중, 약 일주일 전 강우진에게 시나리오를 넘긴 안가복 감독은.
“흠- 우진군은 아직 답이 없는 건가?”
집에서 신인의 대답을 그저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영화 인생 통틀어 처음 있는 일이었고, 옆을 지키던 영화사 대표 역시 마찬가지였다.
“예, 감독님. 아직······시간이 촉박한데 초조합니다.”
“시나리오를 꼼꼼하게 읽고 있는 모양이야. 더군다나 스케줄도 많을 테고. 좀 더 기다려보자고.”
“혹시나- 그럴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만, 행여 우진씨가 힘들다고 하면 어쩌시겠습니까?”
거절? 보통의 신인이라면 넙죽 받을 테지만, 왜인지 강우진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안가복 감독은 작게 웃었다.
“글쎄. 한 번 빌어볼까?”
늦은 밤.
시간은 11시를 넘겼다. 장소는 익숙한 촬영 스튜디오. 정확하게는 촬영이 가능한 주방 형태의 스튜디오. 예전 ‘우리네 식탁’ 팀이 1일 식당을 위해 연습하던 곳이었다.
그런 스튜디오에 모자를 푹 눌러쓴 강우진이 보였다.
‘실종의 섬’ 촬영이 끝나자마자 넘어왔어도 우진의 포커페이스엔 피곤함은 보이지 않는다. 컨셉질이 함유된 얼굴이긴 하나 속으로도 그는 나름 쌩쌩했다.
물론, 여기엔 그만이 아닌 최성건을 포함한 우진의 팀들과.
“오케이!! 카메라 세팅 끝났습니다!”
너튜브 ‘강우진 부캐’ 채널의 메인 PD와 촬영팀이 모여있었다. 머릿수는 얼추 십수 명. 사이사이 적당한 조명과 카메라들도 세팅됐다.
이 밤에 우진과 전부가 모인 이유는 간단했다.
“일단, ‘요리’ 컨텐츠 관련으로 우진씨 인터뷰부터 딸게요!”
‘강우진 부캐’ 채널에 곧 추가될 새로운 컨텐츠인 ‘요리’의 테스트 촬영을 하기 위함. 추가로 강우진의 인터뷰 밑 티저 영상에 쓰일 소스도 필요했다. 일본 넘어가기 전에 시작해야 돌아올 쯤 쏠 수 있으니까.
최근 업로드된 영상의 조회수가 떡상하며 대박이 나기도 했고.
-【(6)마일리 카라(Miley Cara)/‘Absolute’】커버(Cover) [Korean. Ver]|강우진 부캐
-조회수 1005만 회
채널 커뮤니티에 새로운 컨텐츠의 예고를 글로 올리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가뜩이나 ‘강우진 부캐’의 커버 영상들은, 예전 것들이나 매일매일 조회수가 잘 오르는 편이었다.
그러니 어그로가 끌렸을 때 재빨리 오픈해야 했다.
어쨌든.
“네! 오케이! 인터뷰는 이 정도면 될 것 같습니다!”
강우진의 인터뷰 컷이 끝나고 그가 요리를 시작했다. 메뉴는 우진이 원하는 것. 구독자들에게 간단명료한 레시피를 알려주는 컨텐츠. 두 번째론 스탭들 중 아무나 잡아서 그가 원하는 음식을 우진이 만들었다.
당연히 거침이 없다.
금세 테이블에 앉은 남자 스탭의 앞엔 불맛이 가미된 불고기가 놓였다. 여기에 게스트의 토크가 섞이면 컨텐츠가 완성되는 것.
이어서 마지막.
“‘아바타 요리’ 이거 해볼 사람??”
“저요!”
“아! 제가 해볼게요!!”
우진은 오직 지시만 하고 아바타가 요리하는 ‘아바타 요리’ 컨텐츠의 테스트가 시작됐다. 선택은 많은 스탭 중에 파란 단발의 한예정이었다. 그녀의 쌀쌀맞음과 강우진의 시니컬함이 티저로서 재밌겠다는 PD의 판단.
“자자, 편하게 시작하세요-”
곧, 주방 스튜디오의 스탭들이 빠지고 강우진은 주방의 밖에, 한예정이 안에 있는 그림이 연출됐다. 주방에 멀뚱히 섰던 한예정이 우진에게 물었다.
“오빠, 뭐부터 해요?”
무심한 얼굴인 우진은 이때만 해도 큰 동요가 없었다.
‘나름 재밌을 듯?’
오히려 흥미가 있었다.
“일단 손 씻고 앞치마 매.”
“네.”
“뭐 먹고 싶은데?”
“저 그때 오빠가 해준 제육 만들어보고 싶어요. 어려워요?”
“쉬워.”
“좋다. 그거로 할게요. 집에서 만들어 먹게, 배달음식 지겨워요.”
“그래.”
강우진이 주방 밖에서 냉장고를 가리켰다.
“재료부터 손질하자.”
“뭐뭐 꺼내요?”
슬슬 약간 번거로움이 느껴지는 강우진이었지만 침착하게 재료들을 읊었다. 한예정도 무던하게 지시를 수행한다. 허나 완벽하진 않았다.
그것을 강우진이 지적했다.
“아니, 그건 마늘 아니고 생강이잖아.”
“그래요? 헷갈렸네.”
아니, 이봐요? 그게 헷갈릴 수가 있는 겁니까? 서서히 이 컨텐츠의 공포가 우진을 잠식한다.
“피망은 왜 꺼냈어?”
“필요 없어요?”
“······다시 넣어.”
“네, 오빠. 근데 화나셨어요?”
“아니. 일단 재료들 볶아.”
“어떻게요? 계란 굽듯이?”
그녀는 요리계의 아장아장 신생아였다. 그러니 강우진에겐 지옥이 펼쳐진다.
“탄다, 예정아. 불 줄여.”
“아. 근데 이러면 불맛 나는 거 아니에요?”
“···탄 맛이 나지. 왜 불맛이나.”
“너튜브 보면 막 일부러 태우더라구요.”
넌 지금 불장난을 하는 수준이라니까?
그녀는 요리를 땔감으로 쓸 생각이다. 강우진은 남몰래 주먹을 꽉 쥐었다. 이어 절절하게 느꼈다.
“숯 만들 거 아니면 불 줄여.”
“네.”
“아니, 끄지 말고 줄여.”
“어? 왜 꺼졌지?”
와- 씨, 이거 진짜 개빡친다. 한예정은 재료를 태웠고 강우진은 열불이 터졌다. 뭐랄까, 예상치 못한 곳에서 컨셉질에 위기가 찾아왔다. 미친 듯이 답답했고 빡침이 울컥댔다. 어떻게든 평정심을 유지하지만 쉽지 않다.
‘침착하자, 우진아. 이 역시 배움이다.’
우진은 ‘성장’이란 거짓말로 자신을 다독였다.
그리고.
“좋네. 대표님, 이거 반응 대박 날지도 모르겠는데요? 재밌습니다.”
PD와 최성건 외의 스탭들은 실실 웃고 있었다. 강우진이 고생하는 것이 이 ‘아바타 요리’ 컨텐츠의 핵심이니까.
뭐가 됐든.
“완성.”
한예정의 제육. 아니, 제육을 빙자한 시컴한 무언가가 그릇에 담겼다. 촬영의 끝은 지시를 내렸던 우진이 맛을 보는 것까지.
“······”
그는 심오한 얼굴로 젓가락을 들었다.
‘이건 고기가 아니라- 김부각인가? 안돼. 이걸 먹으면 죽어.’
시커먼 고기는 패스, 그나마 말짱한 양파 몇 줄을 집어선 입에 넣었다. 곧바로 날아드는 한예정의 쌀쌀맞은 물음.
“오빠, 어때요?”
강우진은 솔직하게 답했다.
“배달시켜 앞으론.”
“심해요?”
“건강이 악화되는 맛이야.”
“아.”
모두가 빵 터졌다. 강우진만 빼고. 그는 지금 심신을 안정화해야 했다. 하지만 티저 영상은 기가 막히게 뽑혔다. 뒤로 우진은 스튜디오 정리 중에 잠시 구석진 의자에 앉았다.
‘하루가 길다.’
시간은 자정. 오늘도 빡빡한 하루를 보냈지만 성취감은 짙다.
이때.
“고생했다.”
꽁지머리 최성건이 생수통을 우진에게 건네며 다가왔고.
“예정이거 나도 먹어 봤는데 저건 제육이 아니야, 살육이다.”
“김부각이죠.”
“크크, 맞아. 딱이네.”
“겉바속바”
하하 웃는 최성건. 그런 그에게 생수를 벌컥이던 우진이 대뜸 낮은 톤의 말을 툭 던졌다.
“‘거머리’ 할게요.”
바로 최성건의 웃음기가 사라졌다.
“진짜냐? 다 읽었어?”
“반쯤이요. 근데 재밌습니다.”
“······혹시 그 감이 발동한 거냐? 아니면 그냥 안가복 감독이라서?”
“안가복 감독님이라도 별로면 안 하겠죠.”
“하긴, 너니까.”
“느낌은 좋습니다. 한다고 연락해주세요.”
눈이 약간 커지는 최성건.
“그, 그래. 지금은 늦었고 내일 아침에 바로 전달할게.”
천천히 끄덕이던 우진이 의자서 일어났다.
“안가복 감독님 말론 이번 칸 영화제는 내년 9월에 열린답니다.”
참고로 강우진의 계약은 3월까지.
“그래, 나도 들었어. 많이 빡빡하다곤 하더라.”
“예.”
타이밍인가? 최성건이 준비해둔 멘트를 정리하던 차에, 강우진이 작게 고개를 숙이며 무심하게 말했다.
“내년 ‘칸’도 잘 부탁드립니다.”
< 경신 (8)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