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9) >
비상이다. 푸드트럭 주변의 이상 사태를 본 강우진이 든 첫 번째 생각이었다.
‘뭐지? 주변에 뭔 일 났나?’
아니, 그렇게 보기엔 무리가 있다. 애초 미국인들은 죄다 ‘우리네 식탁’ 푸드트럭 앞에선 줄을 선 상태였다. 이상하다. 분명, 저 그림은 문제가 있다. 명백히 당황한 우진이었으나 그는 억지로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하지만 우진을 제외한 ‘우리네 식탁’ 출연진 전부는 충격과 당황을 그대로 표출한다.
“웬 줄이 저렇게 길게 섰지??!”
“다른 푸드트럭에 줄 선 게 우리 것까지 넘어온 거 아닌가??”
“아니요! 딴 곳은 아직 안 열었어요!!!”
“대충 봐도 30명은 넘어 보여!!!”
강우진을 뺀 모두가 허둥댔다. 물론, 이 모습은 차 안에 설치된 미니캠에 생생히 담기고 있었고, 카메라 든 VJ 둘에게도 찍히고 있었다. 와중 오늘도 역시 깔끔히 머리를 넘긴 안종학이 운전하는 하강수에게 외쳤다.
“강수야! 이, 일단 패스해!”
“지나가라고요??”
“어어, 일단 지나쳐봐! 저기서 내렸다가 사람 몰리면 어째?”
“아아! 알겠습니다!”
운전을 맡은 하강수가 푸드트럭을 스친 뒤 몇백 미터 갓길에 승합차를 세웠다. 동시에 모두가 승합차 뒤쪽 창문으로 몸을 휙 돌렸다. 여전히 보이는 기나긴 줄. 다행히 줄 선 미국인들은 승합차에 신경 쓰고 있지 않았다.
그저 푸드트럭이 열리기만을 기다릴 뿐.
이쯤에서 강우진이나 모두는 확신했다. 저들은 ‘우리네 식탁’ 푸드트럭을 기다리고 있고 뭔가 변화가 일어났다. 그게 아니고선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어젠 오픈 때 파리만 날렸으니까. 물론, 장사 중 손님이 꽤 있긴 했지만 지나치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
곧, 머리를 쓸어 넘기며 진정하던 안종학이 핸드폰을 들었다.
“스탭들 주변에 있나? 윤 PD는 저거 본 거야?”
벌어진 비상사태에 안종학은 재빨리 윤병선 PD에게 전화를 걸려 했다. 허나 그럴 필요가 없었다.
-드르륵!
뜬금 승합차 문이 열리며 안경 쓴 윤병선 PD가 등장했으니까. 차 문 앞에 선 그의 입가에는 악동같은 미소가 번져 있었다.
“아니, 손님이 저렇게 몰렸는데 오픈 안 하고 뭐 해요?”
눈 커진 화린과 연백광이 거의 비슷하게 되물었다. 목소리에 당황이 서렸다.
“그, 그냥 오픈해요??”
그 뒤로 바지사장인 안종학이 끼었다.
“저 상태로 어떻게 오픈을 해. 그리고 저 사람들은 뭐야? 윤 PD 아는 거 있어?”
“형, 누가 봐도 손님들이잖아.”
“아니, 그러니까 손님들이 왜 아침부터 있냐니까? 심지어 줄까지 섰잖아.”
“글쎄?”
“······알고 있네. 뭐야, 빨리 불어.”
이내 비죽 웃던 윤병선 PD가 등 뒤로 숨겼던 뭔가를 모두에게 보였다.
“이것 좀 봐요.”
그가 승합차 안으로 내민 것은 영어가 빼곡한 신문이었다. 특이한 건.
“여기여기. 1면에 우리 트럭 실린 거 보여요?”
신문 첫 장에 매우 익숙한 사진이 걸려 있었다. ‘우리네 식탁’ 푸드트럭이었다. 신문 속 그 부분을 검지로 찍던 윤병선 PD가 설명을 시작했다.
“이 신문이 지역신문인데, 여기에 우리 트럭이 기사로 실렸어요. 아니 아침부터 사람들이 몰려서 우리도 놀랐다고. 그래서 물어보니까 이런 일이 있었더라고요.”
“······지역 신문 1면에 실렸다는 거네.”
“그렇죠. 근데 더 재밌는 건.”
미소를 유지하던 윤병선 PD가 무심하게 신문을 내려보는 강우진을 불렀다.
“우진씨, 어제 그 노부부 분들 기억해요?”
“예.”
“뭐, 당연하지. 첫 손님이었고. 여튼 두 분 중 할아버지 쪽이 여기서 꽤 유명하더라고요.”
긴 생머리를 묶은 홍혜연이 끼었다.
“아아- 들었어요. 레스토랑 운영하는 셰프라고. 그거 듣고 놀랐는데.”
그게 끝이 아니라는 듯 윤병선 PD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그 레스토랑을 좀 알아보니까 미슐랭 1스타받은 곳이더라고. 이 근방 사람들한텐 엄청 유명하고 소문난 레스토랑이었어요.”
“미, 미슐랭!”
“와- 대박. 뭐야, 그럼? 우진이 형이 그 셰프한테 극찬을 받은 거네요??!”
연백광이 흥분할 쯤, 하마터면 강우진도 덩달아 같이 어깨춤을 출 뻔했다. 그것을 가까스로 참아낸 우진이 최대한 목소리를 깔았다.
“그분이 소문이라도 낸 겁니까? 그래서 기사나 난 거고?”
“비슷해요. 그 셰프님이 가게 열면 알려달라고 연락처를 알려줬거든요? 그분하고 통화해서 확인한 건데, 어제 집에 가면서 지인들한테 우리 푸드트럭을 추천한 모양이에요. 그중에선 지역신문 언론사를 다니는 기자도 있었고.”
“그 기자가 어제 우리 트럭에 온 겁니까?”
“그렇지! 근데 이게 신문만 있는 게 아니라 웹으로도 기사가 났어요. 지역신문 SNS에도 나왔고.”
“······”
사태를 파악한 우진이 입을 다물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윤병선 PD는 신났다.
“그 정돈데 사람들이 몰려야 정상이지!”
윤병선 PD가 영어로 된 신문 타이틀을 검지로 톡톡 치며 우진에게 짙은 미소를 보였다.
“우진씨, 전부는 필요 없고. 여기여기 타이틀만 좀 통역해줘요.”
“···‘미슐랭 1스타 셰프도 반한 한식, 한국에서 온 푸드트럭의 한식 맛은 환상이었다.’”
“기사 제일 끝에 보이죠? 어제 그 할아버지 셰프님 인터뷰도 실렸어요.”
이어 신문을 접은 윤병선 PD가 벙찐 ’우리네 식탁‘ 출연자 전원에게 얄밉게 물었다.
“어? 다들 여기서 뭐 해요? 가서 오픈해야지. 손님들 계속 기다리게 할 겁니까? 아까부터 문 닫힌 푸드트럭만 사진 찍고 있잖아요? 자자, 상황파악도 끝냈고. 후딱 가서 손님들 안내해야지?”
“······”
“저 손님들이 다가 아닐걸? 오픈 전이라 저 정도고, 오픈 시간 넘기면 더 몰릴 수도 있어요! 자! 무브무브!”
순간, 강우진은 어제 그 인자하게 웃는 백발의 미국인 할아버지를 떠올렸다. 허허 미소짓는 그. 왜인지 안가복 감독 얼굴과 겹쳐 보인다.
‘······왜 내 주변 한국, 미국 할아버지들은 일을 키우길 좋아하는 거지? 대체 왜냐??!’
그리곤 직감했다. 오늘 저 푸드트럭이
‘하- 조졌네.’
지옥행 열차가 될 거라는 걸.
몇 시간 뒤, 한국.
10일 이른 아침이었다. 장소는 서울의 청담동 쪽의 거대한 주택. 언뜻 재벌이라도 살까 싶지만, 현재 이 주택에는 재벌 대신 외국인들이 득실거리고 있었다. 최근 한국을 내한한 세계적 스타 ‘마일리 카라’의 팀이었다.
그녀의 팀이 이 주택을 대여한 것.
호텔이 일반적이긴 하나 마일리 카라의 안전을 생각해 숙소를 바꿨다. 뭐가 됐든 한국에 온 지 3일 차인 마일리 카라는 현재 잠에 빠져 있었다. 반면, 그녀를 제외한 나머지 외국인 스탭들은 오늘 일정 준비로 바빴다.
덕분에 주택의 1층 거실이 부산스럽다.
그중 거실 소파에 앉은, 거대한 덩치에 반삭인 외국인 남자가 눈에 띈다. 카라의 메인 매니저였고, 그의 주변 몸집이 제각각인 외국인들이 반삭 매니저에게 뭔가 보고하기 바쁘다. 그러다 몸집이 호리호리한 외국인 남자가 물음표를 뱉었다.
“조나단, 그런데 카라는 왜 많은 한국의 너튜브 채널 중에 ‘강우진 부캐’만 생각하는 거죠?”
반삭 매니저가 팔짱을 낀다. 그 덕에 근육이 두드러진다.
“카라의 속을 누가 알겠어요.”
짧게 답한 그가 잠시잠깐 며칠 전을 떠올렸다.
한국에 도착하기 전, 비행기 안에서 마일리 카라와 하던 대화였다. 시작은 카라가 ‘강우진 부캐’ 채널만 출연하겠다 선언한 뒤, 반삭 매니저가 채널의 정보를 확인하던 부근.
[채널명: 강우진 부캐]
[구독자 788만 명]
[동영상 31개]
채널 설명의 메인은 한글이었으나, 그 밑으론 영어와 일본어도 친절히 나열돼 있었다. 채널 규모가 상당히 큰 데다 해외 팬들도 퍽 많은 채널이었으니 당연했다. 어쨌든 ‘강우진 부캐’ 채널을 보던 반삭 매니저가 바로 고개를 들었고, 좌석에 앉은 카라의 파란 눈에 시선을 맞췄다.
“카라, 이 채널은 우리의 예정에도 있었어.”
이에 카라가 살짝 차갑게 되물었었다.
“근데 왜 빠진 거야? 보여준 리스트에는 없었잖아.”
바로 이어지는 반삭 매니저의 설명.
“처음 조사할 땐 분명 있었어. 보기에도 대단한 구독자 수를 보유했고, 영상마다 조회수가 대단하니까.”
“근데?”
“홍보 생각으로 출연하기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야. 그 채널의 주력 컨텐츠는 곡 커버야, 물론 간혹 채널 주인이 구독자와 소통하는 영상이 올라오기는 해. 하지만.”
“90% 이상의 영상들이 커버라는 거지?”
“맞아. 우리가 원하는 건 적당한 토크와 영화 홍보 그리고 카라 너의 매력을 어필해주는 거야, 애초에 그런 성격을 띠는 채널과 접촉하는 게 맞다는 판단이야.”
틀린 소린 아니었다. 아무리 구독자가 많다 한들 채널의 컨셉이 확고하면 홍보를 해도 힘이 빠진다.
“참고로 한국에는 그 정도 크기의 채널은 꽤 있어. 물론, 많지는 않지만 존재해. 우리로서는 또는 영화사에서 바라는 건, 대놓고 홍보 성격을 띠는 채널을 원해.”
“그렇다면 방법을 찾아줘.”
“······후-”
익숙하다는 듯 반삭 매니저가 머리를 긁다가 말을 이었다.
“좋아, 먼저 이 채널과 접촉을 해볼게. 우리를 위해 따로 컨텐츠를 짤 수 있는지 물을 거야. 만약 채널에서 곡 커버 이상의 것을 원치 않는다면 다른 채널을 생각해 둬. 물론, 카라 너라서 채널 주인은 무리해서라도 코너를 짤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확인해서 빈약하다면 아웃이야.”
“흠-”
“이건 네가 고집부린다고 될 게 아니야. 너의 이미지와 영화사의 입장이 있으니까.”
“당연하지. 그보다 그 채널의 주인이 한국의 배우인 건 알아?”
“물론이야. 조사를 해봤으니까, 그것 역시 조금 걱정이 돼. 취미로 연 채널이 운이 좋아 커진 느낌이라서.”
“취미? 그 보컬 실력이 취미라는 건 말이 안 돼. 그리고 강우진? 가수로 본격적이진 않지만, 나와 비슷해서 마음에 들어. 내 곡을 멋지게 커버한 것도 그렇고. 영상들을 보면 영어도 어느 정도 가능한 것 같아.”
냉랭히 설명을 늘어놓는 마일리 카라. 그런 그녀를 보던 매니저가 픽 웃었다.
“자주 보나 봐. 그 채널.”
“때때로. 이 강우진이란 배우 음색이 좋거든. 본업인 연기를 보고 싶을 정도야.”
“······그렇군.”
뭔가 눈치를 챈 반삭 매니저가 다시금 한숨을 뱉었고.
“그 한국배우의 작품을 찾아 달라는 거지? 당연히 영어 자막이 있는 거로.”
“맞아, 한국 스케줄 동안 볼 수 있게. 그리고 강우진이란 배우에 관해서도.”
“그래, 네가 그 채널에 나간다는 게 성사가 된다면 말이지.”
금발의 카라가 옅게 미소지었다.
“이번에도 잘 부탁해, 조나단.”
여기까지. 카라의 미소까지 상기하던 반삭 매니저가 다시금 현실, 주택 거실의 소파로 돌아왔다.
그리곤 옆에 앉은 외국인 직원들에게 물었다.
“강우진이란 한국배우, ‘강우진 부캐’ 채널에 관해 조사는 어느 정도 됐나요.”
빠른 대답은 주근깨 난 여자였다.
“급하게 알아본 거라 확실치는 않지만, 이 정도면 카라가 보기엔 충분할 거예요.”
그녀가 태블릿을 반삭 매니저에게 넘겼다.
이어.
“그런데 그 강우진이란 한국배우 뭔가 이상해요.”
“음? 왜요. 혹시 과거 범죄라도 저질렀다거나.”
“설마요. 그런 게 아니라, 알면 알수록 황당한 필모를 가지고 있어요. 일단 자료를 보세요, 조나단.”
잠시간 그녀를 보던 반삭 매니저가 태블릿에 시선을 내린다. 화면엔 강우진에 관한 간략한 조사표가 출력되고 있었다. 하지만 내용은 간단치가 않았다. 한국과 헐리웃의 차이는 있겠으나, 태블릿에 표시되는 강우진의 전체 필모는 헐리웃으로 치면 중견급 이상과 버금갔다.
곧, 턱을 쓸며 감탄하는 반삭 매니저.
“오- 생각보다 탄탄한 필모를 가진 배우였네요, 권기택 감독은 들어본 적이 있어. 거기에 타노구치 쿄타로 감독까지. 일본까지 진출한 건가? 대단한데? 한국의 거장들과 작업했네요.”
“그가 찍은 한국의 작품들도 전부 홈런을 쳤어요.”
“여기에 그렇게 큰 너튜브 채널까지 가지고 있고. 탑급이었나?”
분위기를 단숨에 바꾸는 주근깨 난 여자.
“그게 데뷔 1년 만에 이룬 것들이에요.”
흥미가 서린 반삭 매니저의 표정에 단숨에 충격이 번졌다.
“뭐, 뭐라고요?”
한편, 주택 2층의 가장 넓은 방.
대충 봐도 으리으리한 방 안엔 없는 게 없었다. 침대, TV, 냉장고, 식탁과 테이블, 소파, 화장실 등등. 사람 한 명이 살기엔 차고 넘치는 수준.
그런 방 소파에 긴 금발을 늘어트린 여자가 침대에 누워있다.
마일리 카라였다. 다만, 그녀는 잠에 빠진 것이 아닌 엎드린 채로 TV를 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한국의 드라마 ‘프로파일러 한량’. 아마 넷플렉스와 연결한 상태인 듯. 물론, 영어 자막이 포함된 상태였고 지금 화면엔 한창 ‘박대리’의 취조 장면이 출력되고 있었다.
약간 냉랭한 얼굴의 카라는 TV 속 ‘박대리’에 눈을 떼지 못했다.
이유?
‘강우진 부캐’를 가진 강우진이란 한국배우의 연기 실력이 상상 이상이었으니까.
‘······아니, 본인이 맞는 거야? 커버 영상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잖아?’
이때.
-똑똑똑.
방에 노크소리가 번진다. 덕분에 재생되는 한량을 멈춘, 금발 긴 머리를 정리한 카라가 일어나 문을 열었다. 문 앞엔 덩치 좋은 반삭 매니저가 서 있었고.
“응, 조나단.”
챙겨온 태블릿을 카라에게 넘긴 반삭 매니저가 퍽 진중한 톤으로 영어를 뱉었다.
“카라, 그걸 좀 봐.”
“뭔데.”
“강우진에 관한 것.”
“벌써?”
“강우진, 이 한국배우 재밌는 점이 많아. 설명하기 전에 그 영상부터 봐봐.”
미간을 좁힌 카라가 건네받은 태블릿 화면에 시선을 내렸다. 태블릿엔 한 영상이 출력되고 있었다. 주인공은 당연하겠지만 강우진. 잠시간 영상을 보던 카라의 냉정한 얼굴에 당황이 서린다. 그런 그녀가 시선을 영상에 둔 채 매니저에게 작게 되물었다.
“뭐야? 이거 액션 영화 장면이야?”
반삭 매니저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실제야. 그것도 며칠 전의 일.”
며칠 뒤, 13일. 미국 LA 헐리웃.
느지막한 아침. 위치는 영화의 본고장이라 불리는 헐리웃이었다. 그런 헐리웃의 중심에 위치한 5성급 호텔 비벌린 호텔. 과연 5성급 초호화 호텔이라 로비부터 어마무시한 인물들이 많았고, 많은 인파로 북적이는 1층 로비를 지나 호텔 뒤쪽으로 빠지면 분위기는 단숨에 바뀐다.
마치 해수욕장처럼 꾸며놓은 야외 정원에는 여유가 넘친다. 수영장에서 수영을 즐기거나 일광욕을 즐기는 외국인이 많이 보였으니까.
그런 수많은 비치 벤치 중간쯤.
“······”
선글라스를 낀 배 나온 남자가 눈에 띈다. 뭔가 산타클로스를 연상케 하는 모습이었으니까. 머리 색은 노란색과 흰색의 중간쯤. 남자는 벤치에 누워 일광욕을 즐기는 듯 보였다.
그때였다.
“감독.”
산타 남자에게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곧, 고개만 돌린 남자에게 정장 입은 갈색 단발의 외국인 여자가 보였다. 그녀를 보자마자 산타 남자는 다시금 일광욕을 즐긴다.
“일찍 일어났군.”
“핸드폰은 수영장에 던지셨나요?”
“그럴 리가. 라커에 있을 거야.”
“최소한 눈에 보이는 곳에 계시면 어때요.”
“캐스팅 디렉터의 눈에 띄면 일이 늘지.”
한숨 쉰 여자가 고개를 흔들면서도 주제를 바꿨다.
“감독님의 말대로 계속해서 아시아 쪽 배우를 모니터링하고 있는데.”
“이거 봐 역시 일이 늘어.”
“······역시 무술계는 중국 쪽이 많아요.”
“그렇겠지.”
“그런데 예전에 언급한 한국의 배우 기억하세요?”
“음? 누구였지?”
“한국의 영화제인 ‘미장센 국제 영화제’에서 제일 눈에 띄었다는. 강우진이란 배우요.”
“아아- 그래, 기억나.”
“최근 그 배우 관련해서-”
단발의 여자가 누워있는 산타에게 한 걸음 다가서서는 말했다.
“너튜브에 재미있는 영상이 돌아요, 괴한을 제압하는.”
< 미국 (9)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