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민국 전쟁영웅이 되었다-1화 (1/149)

1화. 군대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 인생에 있어 굴곡을 가진다지만.

군대.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은 크던, 작던, 인생의 전환점, 굴곡이 됨은 분명했다.

입대 첫날.

제발 튀지 말고 중간만 가자. 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뭐든지 못하지도 않고 잘하지도 않는 딱 중간.

그냥 몸 성하게 전역하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이었다.

제발.

“74번 훈련병 이. 강. 산!”

“거참, 주변에 사람 없을 땐 굳이 관등성명 댈 필요 없다니까?”

“아닙니다!”

아직 계급장도 없는 훈련병.

반면 내 앞에 앉아있는 두 명의 남자는 군복에 화려한 휘장들이 잔뜩 붙어있었다.

신병 교육대장과 주임원사.

교육대장실은 한여름임에도 에어컨 덕에 더운지 모를 정도였다.

그리고 내 앞에 있는 커피.

흔한 맥심 커피가 아닌, 커피전문점에서 사 온 이 시리도록 시원한 아메리카노였다.

“일단 더우니까 시원하게 커피 한 모금하고. 불편한 부분 있으면 언제든지 이야기해. 즉각 조치해줄 테니까. 알겠지? 뭐 먹고 싶은 거 있어도 바로바로 말하고.”

“예. 알겠습니다!”

“교육대장은 일정 있어서 가봐야 하니까 천천히 커피 마시고, 편하게 쉬었다가 복귀해. 중대장한텐 말해 놓을 테니까. 나중에 아버지께 안부 좀 잘 전해드리면 고맙고.”

“충! 성!”

“그래 충성.”

교육대장과 주임원사가 나간 후에야 한 숨돌릴 수 있었다.

평범? 중간? 나의 다짐 따위는 단 하루를 못가 처참히 무너져내렸다.

와르르.

“그렇게 말씀드렸건만, 대체. 에-휴···”

땅이 꺼질듯한 한숨이 절로 나왔다.

요즘 군대가 아무리 좋아졌다고 한들, 일개 훈련병 개개인을 교육대장이 면담하고 커피까지 사주는 일은 흔히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뭐, 완전히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몇몇 허락된 인원들이 있긴 하다.

내가 좀 특별한 점을 굳이 꼽자면 아버지 아들이라는 점?

그리고 아버지 군복과 베레모에는 별 두 개가 떡하니 수놓아져 있다는 점.

마지막으로는 이곳 15사단 사단장이 아버지라는 점.

그 세 가지.

나를 향한 호의가 나 때문이 아닌 아버지 때문이라는 것은 갓난아이도 알 수 있다.

어릴 적부터 내 꿈은 어쩌면 지속적인 세뇌를 당해왔다.

“장교로 입대해. 공부해서 사관학교에 가면 가장 좋고, ROTC, 3사관학교 뭐든 상관없다. 요즘은 옛날처럼 사관학교 출신들에게만 길이 뚫려 있는 게 아니야.”

어릴 적부터 본 아버지의 모습은 엄하고 냉철한 성격에 군복까지 입고 있으니 그 모습이 더할 나위 없이 차가워 보였다.

가끔은 아버지인지, 군인인지 헷갈릴 정도로.

“그렇게 괜찮다고 말씀을 드렸는데도···.”

누군가는 그런 아버지를 보고 나라를 지킨다는 사명감, 존경심을 보고 느껴 군인에 대한 꿈을 키울 수도 있을 테지만, 나같이 아닌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승승장구하며 군인으로서의 성공한 아버지의 모습보단, 잦은 이사로 학창시절부터 제대로 된 친구 하나 못 사귄 설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강철의 아내라는 직급과 직책을 부여받아 고생해야 했던 어머니가 더 눈에 선했다.

물론 나쁜 점만 있었던 건 아니다.

재벌 집안이나 사업가 집안처럼 크게 부유한 건 아니더라도, 부족함 없이 풍요로웠다.

다소 엄하긴 했지만 훌륭한 가정 교육 덕에 어디 한군데 모난 곳 없이 잘 자랐다.

내 입으로 이런 말 하기 웃기고 역설적이긴 하지만, 물론 완전히 아버지의 영향력을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은 안 했다.

아버지가 왜 굳이 군인의 길을 늘 말해왔는지도 알고 있다.

자신의 영향력으로 최대한 나를 지켜주고 품어줄 수 있는 곳이 군대였을 테니까.

중간만 가더라도 말이다.

“21개월만 딱 버티자. 21개월만.”

정확한 꿈이나 목표가 있어서라기보다 직업으로 군인을 택하긴 싫었을 뿐이다.

난 뭐든 할 수 있고,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자유로운 20살이니까.

나의 자유로운 의지를 굳건히 담아 입대한 지 하루.

한 달도, 일 년도 아니고 단 하루.

아직 아버지의 그늘에서 단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했다.

벌써 자유로운 내 날개가 꺾여버린 기분이랄까?

제기랄.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

“진짜 짬밥 더럽게 맛없네. 안 그러냐?”

“내 말이. 훈련도 더럽게 힘든데 맛없는 걸 보면 말 다 했지. 이게 고등어 순살 조림이냐? 비린내 조림이지.”

어머니가 만든 정성 가득한 집밥에도 반찬 투정을 더러 하는 20대 초반의 남자들이 군대 식단에 만족할 리 없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고.

나 또한 동의한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야야, 조용히 말해 쟤 듣는다. 쟤네 아빠 사단장이라잖아. 괜히 욕하는 거 걸렸다가 우리 군 생활 조지면 어쩌려고.”

조지긴 뭘 조져, 다 들린다. 이 새끼들아.

어디서 그런 소리 들은 듣는지 모르겠지만, 햇병아리 훈련병들도 ‘간부는 적이다’라는 말을 가슴 깊이 새기고 오는 모양이다.

나 역시 같은 훈련병이지만, 나를 향한 간부들의 과잉친절 덕에 동기들과의 거리감은 훈련 기간 좁혀지지 않았다.

적의 동료는 적이기 마련이니까.

“으. 귀찮다. 귀찮아.”

그런 게 아니라고, 나도 싫다고, 나도 너희들처럼 오기 싫은 거 의무를 지키러 억지로 온 거라고 말이라도 해볼까 했지만, 이내 마음을 접었다.

어디까지 구구절절 이야기하기도 싫었고, 말한들 이해한다는 보장도 없었다.

짧게는 이 5주라는 훈련병 기간이, 길게는 군 생활이 물 흐르듯 흘러가기만을 바랐었다.

“이렇게 된 이상, 작전 변경이다.”

생각을 바꿔보기로 했다.

바꿔야 내가 편하겠지.

요즘은 좋은 수저를 물고 태어나는 것도 능력에 포함되지 않던가?

군대에선 우리 아버지만큼 좋은 수저가 따로 없다.

좋은 환경에서 능력개발이나 해야겠다.

타고난 이 군 수저를 뽕 뺄 수 있는 만큼 빼봐야겠다.

할 수 있다.

인생을 통틀어 가장 경쟁률이 치열했던 올챙이 시절, 수억 개의 올챙이 레이스에서도 당당히 1등을 차지한 나니까.

“9중대 집합! 빨리빨리 안 움직여!”

짧은 잡생각들을 정리함과 동시에 벌써 점심시간이 끝나고 교관과 조교들이 훈련병들을 닦달했다.

평소보다 목소리와 행동이 격앙되어 있었다.

수류탄 투척 훈련.

화생방, 사격 이후 마지막 남은 굵직한 훈련이었다.

“9중대 앞으로~ 가! 하나! 둘!, 셋!, 넷! 오와 열 맞춥니다.”

조금은 익숙해진 제식으로 40분쯤 걸었을까?

자그마한 인공호수가 눈에 들어왔다.

“제자리, 제자리에 서!”

“하나! 둘! 정렬!”

“자, 9중대 주목합니다. 주목!”

“주목!”

“본 시간은 수류탄 투척 시간입니다. 훈련에 앞서 평소 수전증이 심하다, 어젯밤 꿈자리가 사나웠다,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저 웅덩이까지 투척할 자신이 없다. 거수합니다. 거수.”

거수하라고 할 때 거수해서 좋은 꼴을 본 적 없는 훈련병들은 서로 눈치를 살폈다.

“본 훈련에서는 거수해도 얼차려 부여는 안 하도록 하겠습니다. 눈치 보지 않습니다.”

훈련 기간 내 들어본 적 없는 교관의 다정다감한 목소리에 네 명의 훈련병이 손을 들었다.

“거수한 훈련병들 열외. 그냥 쉬는 게 아닙니다. 동기들이 멋지고, 늠름한 모습으로 훈련에 임할 수 있도록 진심으로 응원하도록 합니다. 알겠습니까!”

“예!”

처음 열외 4명 이외에 진행된 연습용 수류탄 훈련에서 투척 자세 불량, 과도한 긴장으로 수류탄을 코앞에 던진 훈련병을 제외하고는 모두 실제 세열수류탄 K413의 투척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교관들도 피 말리겠지? 누가 병신 짓 하면 우리 전부 다 골로 가는 거 아냐?”

“난 저 교관이 저런 다정한 목소리도 낼 수 있는지 처음 알았다.”

훈련병끼리 속삭이는 소리가 들릴 법도 했지만, 교관의 눈길은 오직 옆에서 수류탄을 들고 있는 훈련병에게 가 있었다.

[긴장하지 말고 연습한 대로 던지면 된다. 알겠지? 잘해보자. 수류탄 인계]

교관의 친절함과 다정함은, 같이 살자, 살고 싶다는 뜻으로 들렸다.

아무리 옆에 붙어 하나하나 자세히 알려주지만, 결국 저 위험한 수류탄은 아직 계급도 없는 훈련병 손에 들려있으니까.

“수류탄 인계!”

[안전고리 제거]

“안전고리 제거!”

[안전핀 뽑고 던져!]

“안전핀 뽑고 던져!”

복명복창과 함께 첫 번째 훈련병이 던진 수류탄이 정확히 호수의 목표지점을 향해 날아갔다.

펑! 쿠르릉.

“와···”

4초에서 5초쯤 지나자 엄청난 굉음과 함께 물기둥이 하늘로 솟구쳤다.

주먹보다도 작은 수류탄이 어찌나 큰 소리를 내던지.

그 폭발력에 순서를 기다리던 훈련병들의 감탄과 함께 마른 침이 절로 삼켜졌다.

[다음, 수류탄 인계]

드디어 내 손바닥 안에 수류탄이 쏙 들어왔다.

역시 생각보다 자그마한 크기.

이 작은 게 저런 파괴력과 살상력을 낸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74번 훈련병, 연습용 수류탄 던질 때 자세 아주 우수했어. 급하지 않게 천천히. 안전고리 뺀 뒤에 절대 손아귀에 힘 풀면 안 되는 거 알지?”

“예. 알고 있습니다!”

[안전고리 제거]

“안전고리 제거!”

나는 능숙하게 사과를 반으로 쪼개듯 안전고리를 제거했다.

약간의 긴장이 몸을 감싸긴 했지만, 전혀 어려울 건 없었다.

동작만 놓고 본다면 어린애들도 충분히 해낼 수 있을 정도니까.

이제 이 작은 안전핀만 뽑고 던지면,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안전핀 뽑고 던져!]

“안전핀 뽑고 던··· 펑!”

하라는 대로 했다. 그것도 완벽하게.

그랬을 뿐이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의 기억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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