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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전쟁영웅이 되었다-2화 (2/149)

2화. 나노봇

“사··· 사단장님!”

이강철 사단장의 전속부관 김수영 중사가 얼굴이 잔뜩 상기된 채로 사단장실 문을 열었다.

경례를 하지 않았다는 것도 잊은 채.

당연, 충격적인 소식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상기된 표정과는 반대로 목소리는 깊숙하게 기어들어 갈 수밖에 없었다.

호흡을 가다듬어야 했다.

자신이 보고해야 할 사안이 얼마나 심각하고, 끔찍한 상황인지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 무슨 일이지? 급해 보이는데 숨 좀 돌리고 말하지.”

“그게··· 다름이 아니고, 다름이 아니라···”

“김수영 중사. 숨 돌리고 천천히 보고해.”

김수영 중사는 평소 업무에 대한 능력이 뛰어났다.

어떤 업무나 임무에 실수한 적이 극히 적었다.

이렇게 당황하고, 격앙된 모습은 그간 본적이 없었다.

김수영 중사의 모습을 본 이강철 사단장의 미간이 미세하게 찌푸려졌다.

몇 마디 오고 가지 않은 찰나의 짧은 순간에 알 수 있었다.

굉장히 중요하면서도,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음을.

“방금 신교대 쪽에서 보고가 들어왔는데 사고, 사고가 있었답니다. 훈련병이 수류탄 교장에서 수류탄을 던지는 중에 신관의 조기 폭발로 인한···”

당연히 지금까지도 보고한 내용도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었다.

실제 수류탄을 던지던 중 폭발한 것도 대형 사고였지만, 그 뒤 인명피해에 대한 보고는 도무지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어찌 쉽게 말할 수 있겠는가.

수류탄 폭발의 가장 가까웠던 사람이 사단장님의 아들이라고.

위계, 직급에 대한 품위 따위가 있기 전에 사람이고, 아버지다.

상급자에 대한 보고이기 전에, 아버지에게 아들의 사고 소식을 알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뭐? 조기 폭발?”

폭발이란 말에 이강철 사단장이 자리를 박차듯 일어났다.

급하게 일어난 탓에 책상 위에 올려둔 지휘봉이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현재 상황이랑 인명피해 보고해. 어서!”

“훈련병 1명, 교관 임무를 수행 중이던 장교 1명이 의식불명, 응급처치 뒤 즉시 국군수도병원으로 이송 중이라고 합니다.”

“제기랄··· 당장 교육생과 교관 집에 상황 전달하고, 군단에 보고해. 신교대, 신교대에 갔다가 즉시 수도병원으로 가지. 뒤에 일정 모두 취소해.”

이강철 사단장이 서둘러 책상 옆에 놓아둔 베레모를 고쳐 썼다.

김수영 중사의 마지막 보고가 사단장의 가슴을 후벼팠다.

“사단장님, 송구스럽지만 후송되고 있는 훈련병이··· 이강산 훈련병이라고 합니다. 죄송합니다.”

그의 마지막 보고를 들은 이강철 사단장의 몸이 휘청였다.

***

국군수도병원.

군대 내 최고의 의료시설이자, 실력 있는 외래 교수들이 있는 병원이었다.

총상과 파편상을 치료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국내에 몇 안 되는 병원이기도 했고.

평소라면 15사단에서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지만, 사단장을 태운 차는 더 빠를 것만 같았다.

“통과해.”

사단장의 일자로 굳게 다문 입에서는 통과하라는 말만 반복했다.

빨간불이 들어온 신호등을 그냥 지나쳤다.

물론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그가 사단장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빨리, 서둘러서 병원까지 모시는 일이었다.

“응급실에서 곧바로 수술실로 넘어가 수술 중에 있다고 합니다. 이강산 훈련병의 수술은 서울대 외래교수 원상희 중령이 집도 중이라 합니다.”

“원상희 중령이라···”

아무리 그가 사단장이라 한들, 이제 할 수 있는 건 멍하니 수술실 문이 열리기만을 바라는 것이었다.

계급도, 위치도.

그 어떤 것도 도움이 될 수 없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아내와 장교 측 가족들이 병원에 도착했다.

도착함과 동시에 소란이 벌어졌다.

“너 이 새끼야··· 네가 그 높으신 사단장이냐? 멀쩡하게 잘 키운 내 아들이 왜 저깄어. 주둥이가 있으면 말을 해. 말을 하라고!”

“이러시면 안 됩니다! 여기 계신 사단장님도···”

“그만, 물러나게.”

금방이라도 사단장을 덮칠 것처럼 달려들던 가족들을 김수영 중사가 막아섰다.

그런 김수영 중사를 막아선 것은 이강철 사단장이었다.

“죄송합니다.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뭐? 죄송? 죄송하면 다야?”

이강철이 베레모를 벗고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군인은 절대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그의 신념이기도 했고, 군인의 본분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베레모를 벗고 고개를 숙인 것이 얼마나 진심을 담은 것인지 가족들은 알지 못했다.

“다만, 저는 지금 사단장의 직책으로만 이곳에 와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 수술실 안에 제 아들도 있습니다. 사단장이기 전에, 저도 한 아들의 아비입니다. 사고에 대한 진상규명을 하나의 숨김도 없이 투명하게 밝힐 것을 약속드립니다. 드릴 수 있는 말씀이 이것밖에 없어 죄송합니다.”

이강철의 말을 들은 가족들이 그대로 자리에 풀썩 내려앉았다.

무엇으로도, 어떤 말인들 가족들을 달랠 수 있을까.

대성통곡하는 가족들과 달리 그는 무너져 내릴 수도, 얼굴에 감정을 드러낼 수도 없었다.

돌아서서 깊은 한숨만 내쉴 뿐이었다.

기다리고 기다렸다.

바깥은 이미 어둠이 내린 지 오래였다.

9시간이라는 긴 수술 끝에 수술실 문이 열리고, 원상희 중령이 가족들 앞에 섰다.

“이충현 소위의 수술은 잘 끝났습니다. 다행히 파편이 머리 쪽에 손상을 거의 주지 않아 생명엔 지장이 없습니다. 천운입니다.”

생명에 지장이 없다는 말을 듣자 가족들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만··· 이강산 훈련병은 따로 보고 드리겠습니다. 사단장님.”

“가지.”

병원 밖 테라스로 나온 두 남자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담배에 불을 붙였다.

“미안하다.”

원상희 중령 입에서 짧은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둘은 군인이기 전에 동갑내기 친구이자, 죽마고우였다.

“상태가 어떤지 솔직하게 말해줘.”

“지금 살아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야. 몸 전체에 박힌 파편만 수백 개. 특히 머릿속에 있는 파편들은 현재 가진 의료기술로는 꺼낼 방법이 없어. 강산이가 너를 닮아 강한지, 버티고는 있다만···”

원상희 중령은 도저히 이강철 사단장 앞에서 자세히 말할 수 없었다.

수류탄을 쥐고 있던 오른손은 형체도 없이 날아갔고, 우측 뇌를 비롯한 전신에 박힌 수류탄 파편 중 수술로 꺼낸 파편은 극히 일부라고.

무엇보다 언제 생체신호가 끊겨도 이상하지 않다고.

“방법이··· 방법이 전혀 없나? 아들이 죽어가는 걸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한단 말이야?”

이강철 사단장이 손으로 머리를 쥐어 감았다.

바닥에 떨어진 베레모를 주울 생각도 하지 않았다.

“없어. 지금으로서는··· 만약에 방법이 있다 한들.”

원상희 중령이 고개를 저었다.

“네가 사족을 붙일 놈이 아닌데··· 방법이 정말 없어? 확실해?”

“내가 지금 하는 말을 들으면, 너랑 나 둘 다 군복이건 가운이건 벗고, 불명예 전역은 덤이겠지. 성공확률도 매우 희박하고.”

“내 평생 군을 위해 사느라 강산이 놈하고 제대로 놀아준 적이나 있는지 기억도 없더군. 그렇게 키웠어. 그놈을. 못난 아비였던 게지. 말해 그 방법이 뭔지.”

이강산 사단장이 전투복 상의 지퍼를 반쯤 내렸다.

품위를 중요시하는 평소의 그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이다.

그런 그를 본 원상희 중령이 입을 열었다.

“나노봇. 쉽게 말하면 인공지능을 가진 나노 단위의 아주 미세하고 정밀한 기계들을 몸으로 주입해서 불치병을 치료하거나 새로운 치료제를 만드는 역할을 하지. 최근 우리 연구팀이 쥐를 통한 나노봇 실험에 일부 성공했어.”

다른 사람이 들었으면 SF나 공상과학영화에나 나올 허무맹랑한 소리로 들리겠지만, 이강산 사단장에게는 아니었다.

실제로 군 내부적으로 실험, 완성단계를 모두 거쳐놓고 민간이나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무기도 꽤 많았고, 이미 대중적으로 실용화된 기술들은 모두 20년~30년 전 개발되어 졌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었다.

“다만 아직 인체실험은 고사하고 정밀한 설계는 불가능해. 설사 성공한들 현재로선 윤리적인 모순도 있어서···”

“지금 나노봇을 쓰지 않고 강산이가 살아날 확률은?”

“내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의학적으론 0에 수렴한다고 봐야지.”

“0.1%와 0%는 다르지. 도와줘라, 상희야.”

방법이 없다.

1과 2는 큰 차이가 아닐지 몰라도, 0과 1은 다르다.

가능과 불가능을 나누는 것이 0과 1이다.

0%가 아닌 0.1%, 0.001%라도 기대를 걸 수밖에 없었다.

이강철 사단장이 원상희 중령의 손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제발, 부탁한다. 상희야.”

“서둘러야 해. 강산이가 버텨줄 때.”

그날 밤, 구급차 한 대가 수도병원을 빠져나갔다.

***

몸이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팔, 다리, 옆구리를 비롯한 전신은 큰 바늘로 쑤셔대는 듯 아려 왔다.

곧이어 찾아오는 두통에 머리를 감싸 쥐지 않을 수 없었다.

“으··· 으윽.”

뭔가 기억을 떠올리려 하면, 극심한 두통이 방해를 해왔다.

[신체 동기화 진행도 73%. 절대 안정 바랍니다.]

뭐지.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없는 것뿐 아니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 흔해 빠진 가로등이나 멀리 보여야 할 높은 건물마저.

[신체 동기화 진행도 100% 기억 전이를 시작합니다. 통증 완화 프로세스 가동. 통증에 대비하세요.]

도무지 알 수 없는 소리가 머릿속에 울려댔다.

“기억 전이는 대체 무슨- 악! 이런 씨발!”

통증 완화 프로세스 가동이라며. 제기랄.

지금까지의 통증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강한 통증이 머릿속을 헤집었다.

마치 누군가 두개골을 열고 뇌를 주무르는 듯한 통증이었다.

통증에 머리를 쥐어뜯자 점점 통증이 가라앉았다.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손에 머리카락이 한 움큼 빠져있었다.

[전이 완료.]

과거의 기억들부터 수류탄 사고까지 기억이 물밀 듯 흘러들어왔다.

염병할 군대. 내가 싫다 했잖아.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더럽다고 해야 할지, 수류탄 사고에서 내가 살아남은 모양이다.

[신체복구 완료.]

계속해서 들리는 소리에 귀에 손가락을 넣었지만, 이어폰 따위는 없었다.

[이강산 님은 나노봇 프로젝트 1차 성공자입니다. 축하드립니다. 현재 신체복구 완료. 기억 전이 완료.]

축하?

눈앞에서 수류탄 맞은 사람한테 축하를 운운하다니.

기계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제정신은 아닌 것이 분명했다.

그나저나 여긴 어디지?

지금 상황은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았다.

기억을 통해 유추하자면 병원 중환자병실에 누워 산소호흡기를 달고 있어야 앞뒤가 맞았다.

살랑살랑 불어대는 이 바람을 맞을 몸 상태가 아니란 말이다.

‘수류탄 사고까지는 분명 기억에 있는데. 나노봇은 대체 뭐고, 여긴 또 어디야?’

“형씨! 거, 길 막지 말고 빨리 비키쇼!”

나는 빠르게 지나가는 무언가를 피하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마치 이것이 꿈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는 듯한 생생한 촉감과 외침 소리였다.

“안경이랑 렌즈가···”

[시력 조정 개시.]

나는 시력이 나빴다.

안경과 렌즈를 끼지 않으면 거의 바로 앞에 있는 사물도 분간하기 힘들었을 정도니까.

안경과 렌즈를 찾자 들리는 목소리와 함께 눈에서 무언가 돌아다니는 듯한 이질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조정 완료.]

안경과 렌즈를 꼈을 때보다 훨씬 선명한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 느껴보는 선명한 세상에 살짝 어지러울 정도였다.

눈에 보이는 건 나무로 된 마차를 끄는 소, 지게를 지고 짐을 나르는 짐꾼, 두루마기와 한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

한국사 교과서에서나 보던 풍경이었다.

“뭐야. 이거···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여긴 대체 어디냐고!”

[여기는 서울. 현재 날짜는 1949년 6월 25일입니다.]

이게 꿈이 아니란 말이야?

아니 이건 너무한 거 아니냐고.

아무래도 나는 1949년 서울로 와버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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