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민국 전쟁영웅이 되었다-3화 (3/149)

3화. 계획

진짜 돌아버리겠다.

모든 것이 이질적이다.

이대로 이 자리에 발을 붙이고 있다가는 마차에 치이거나 바삐 움직이는 지게꾼들에게 욕 얻어먹기 딱 좋을 것 같았다.

일단 저 익숙하지 않은 것들을 피해 인적이 조금 드문 곳으로 서둘러 자리를 옮겼다.

“여기가 진짜 1949년 서울이란 말이지···”

[여기는 서울. 현재 날짜는 1949년 6월 25일입니다. 중복된 답변 23번이 검색되었습니다.]

[여기는 서울. 현재 날짜는 1949년 6월 25일입니다. 중복된 답변 24번이 검색되었습니다.]

계속해서 머릿속을 울리는 이 목소리를 들으니 지금이 1949년이 확실할까? 라는 생각을 그 찰나에 24번이나 한 모양이다.

상황파악도 파악이지만 이 나노봇인지 뭔지 하는 놈의 정체부터 알아야 할 것 같았다.

“야, 나노봇.”

[왜?]

“어···?”

어쭈?

이 당황스러운 새끼 봐라.

내 몸에 들어있는 기계 주제에 기계음으로 반말을 찍찍 내뱉어?

“기계면 기계답게 상냥한 존댓말 쓸 순 없을까? 왜 갑자기 반말이야.”

[사용자 이강산 님의 신체 긴장 완화를 위해 적합한 답변을 채택하였습니다.]

인공지능이라며.

너스레가 사람보다 더 사람 같고, 능청맞은 화법을 구사하고 있었다.

어이없게도 진짜 긴장이 풀리는 것 같기도 하다.

이곳에서 눈을 뜬 순간부터 지금까지 긴장감에 온몸에 경직된 듯 뻐근했으니까.

왜? 라는 반말에 어이없음과 동시에 실소가 터지니 긴장이 조금은 풀어진 듯했다.

이제 궁금증을 해소할 중요한 순간이다.

“일단 내가 왜 지금 1949년에 있는 거지? 1949년이면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태어나기도 전인데, 나노봇 프로젝트인지 뭔지 그것 때문에 내 뇌가 어떻게 되어 버린 거야?”

[신체복구율 100%. 현재 건강상, 뇌 기능상의 문제는 없습니다.]

“아니 지금 내 몸이 건강한지는 모르겠고, 멀쩡히 걷고 숨 쉴 때 지장 없는 정도라는 건 알겠어. 질문에 대답 좀 하지? 모르면 모른다고 하던가.”

[알 수 없는 정보. 모릅니다.]

“누구 약 올리나 이게.”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진짜 모른다고 대답하라는 뜻은 아니었는데.

인공지능은 스스로 학습을 통해 성장하는 것 아닌가?

혹시나 나중엔 알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뭐 어쩌겠는가, 지금 당장은 모른다는데.

“그러면 네 설명 좀 해봐. 기계건 인공지능이건 사용법이나 조작법, 성능 같은 게 있을 거 아냐.”

[현재 이강산 님의 몸속에 3억 8213만 1745개의 나노봇이 정상 작동 중입니다. 저는 이강산 님의 뇌 뉴런 세포들과 결합해 전반적인 신체 기능 및 모든 중앙 정보 처리를 총괄하고 있습니다.]

아마 영화 아이언맨의 비서 자비스 같은 느낌인 것 같았다.

현실에 이런 기술이 존재할까? 싶다가도 보이진 않아도 들리고, 느껴진다.

믿을 수밖에.

[의료 나노봇의 기본적인 기능은 신체가 외상, 내상에 해당하는 상해를 입을 시 재생, 복구 시퀀스가 자동 실행됩니다.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가벼운 부상의 경우 짧은 시간 내 복구가 가능합니다만, 신체 절단, 장기 손상, 다량의 혈액 손실의 경우 오랜 시간이 소요되거나 복구가 불가할 수 있습니다.]

“쓸만하네. 근데 신체 절단, 장기 손상이라니. 끔찍한 소리는.”

바로 옆에서 터진 수류탄 사고에서도 내 신체를 복구시킨 나노봇이었다.

사실 이 정도면 일상생활에서는 거의 불사신이나 마찬가지.

물론 복구가 불가할 수 있다니 불사신은 아니겠지만, 2022년도 아닌 1949년에 말도 안 되는 능력을 얻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딘가 가슴 한쪽이 웅장해져 왔다.

“또 다른 건?”

[나노봇을 특정 신체 부위로 집중시키거나, 혈액 분포를 변화시켜 신체 부위를 강화할 수 있습니다.]

“혈액 분포를 변화해서 신체 부위를 강화할 수 있다고?”

지금 당장에 쓸 곳은 생각나지 않았지만, 분명 살다 보면 여러 가지 쓰임새 있을 요긴한 기능임이 분명했다.

훌륭한 기능이군. 아주 좋아.

[뇌하수체와 생식 호르몬 급격한 증가 포착.]

“야, 야, 아니야. 아니라고. 내 호르몬까지 건들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특정 신체 부위를 강화할 수 있다는 말에 잠시 무언가를 상상해 본 것뿐이다.

왜 하필이면 ‘특정’이라는 단어를 써서 사람을 이상하게 만들어.

절대 나만 그런 생각을 해본 것은 아닐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성인 남자의 대부분은 무조건 한 번쯤은 떠올렸을 것이 분명하다.

사람도 아닌데 사람에게 수치심이라는 감정까지 느끼게 하다니.

인간의 심리까지 파악하는 고도로 발달 된 인공지능이 분명했다.

기댈 곳 하나 없는 지금 나노봇의 능청스러움이 왠지 싫지만은 않았다.

-꼬르륵.

배에서 나는 소리였다.

1949년 공기에 조금, 아주 조금 익숙해진 듯 하자 배고픔이 찾아왔다.

하기야 마지막으로 먹은 음식이 훈련 전에 먹는 듯 마는 듯한 더럽게 맛없는 고등어 순살 조림이었다.

[영양소 섭취가 필요합니다.]

“그래, 금강산도 식후경인데 밥을 먹어야 뭐라도 하지. 뭐 먹을까.”

조금 걸어 다시 거리로 나가자 큼지막한 글씨로 설농탕이라고 적힌 간판이 보였다.

뜨끈한 고깃국물에 야무진 깍두기 한 입 베어 물어야지.

가게 문 앞에 도착한 후에 어떤 사실 하나가 떠올랐다.

이곳에 온 뒤, 워낙 정신이 없어서 잊고 있던 사실이었다.

나 돈이 없는데, 돈 될만한 것도 없고.

빌어먹을.

***

맨땅에 헤딩도 이런 헤딩이 없다.

인간은 적응하는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살아남으려면 적응해야 한다.

그리고 나는 어떻게든 살아남을 것이다.

그때 군복으로 보이는 국방색 옷을 입고 있는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어이, 학생이야? 몇 살이야? 행색을 보니 대학생은 아닌 것 같은데. 맞지.”

“일 없습니다.”

군대에 관한 것이라면 기역 자도 당장은 듣기도, 쳐다보기도 싫었다.

내가 뭐 때문에 어쩌다 이 꼴 이 행색으로 여기 있는데.

따지고 보면 싹 다 군대 때문이다.

군대만 아니었어도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겪어야 할 리 없잖아.

‘왜 행색이 어떻다고 지랄이야 지랄이.’

남자를 무시하다시피 한 채 다시금 나노봇과 대화를 나누었던 인적 드문 골목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이곳에서의 나를 낳아준 부모님이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없다면 친척이라도, 그것마저 없다면 친구라도.

뭐라도 있으면 없는 것보다 낫다.

혹시 이 시대 이 몸이 재벌 집 아들이거나 지역 유지의 하나뿐인 아들일지도 모르니까.

그렇다면 쉬운 길 놔두고 굳이 먼 길로 애 둘러 갈 필요 없는 일이다.

“나노봇, 혹시 이곳에 내 부모님이 계신가?”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하긴, 지금은 1949년이고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1970년생 동갑내기였으니 태어나기 전도 한참 전이다.

재벌 집이니 지역 유지니 했던 상상은 30초도 안 되어 깨져 버렸다.

“그럼 이곳에서 머물 집은?”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그럼 돈은? 돈 될만한 거라도? 너라도 떼서 팔순 없냐?”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염병할. 가족이고 친구고 나발이고 뭐 있는 게 없네. 완전 돌로 된 맨땅에 헤딩이라 이거지.”

하지만 괜찮았다. 오히려 좋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내 머릿속엔 초, 중, 고등학교를 지나오며 축적된 근현대사 지식과 무엇보다 나노봇이 있지 않은가.

“뭐든 할 수 있어. 뭐든 될 수 있고.”

접시에 코를 박아도 죽을 놈은 죽고, 망망대해에 빠져도 살 놈은 사는 법.

갑자기 가슴 저 깊숙한 곳부터 자신감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물론 물가를 단순히 내가 아는 기준대로 치환할 순 없지만, 아까 슬쩍 보니 나무 좌판에서 팔던 화랑 담배가 한 값에 3원.

쌀은 한 가마니에 50원도 안 했었지.

“초반에 조금만 고생하면 3대? 30대가 놀고, 먹을 돈 버는 건 일도 아니지. 정치인? 대통령? 뭐든 문제없어.”

분명 희망찬 미래를 꿈꾸며 희망 회로를 돌리고 있는 도중임에도 어딘가 모르게 불안했다.

여행 가기 전 짐 쌀 때 간단하지만 중요한 뭔가를 놓고 온 것 같은 기분 더럽고 찝찝한 느낌.

그런 느낌이 계속해서 엄습했다.

왜일까?

[여기는 서울. 현재 날짜는 1949년 6월 25일입니다.]

“어···? 맞네. 이걸 왜 잊고 있었지? 하긴 이것까지 생각할 정신이 있을 리가 없었지.”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년 뒤인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6.25 전쟁이 발발하는 날이다.

내가 있는 서울은 단 3일 만에 함락되고.

아직 1년이라는 시간이 남았으니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래 지식을 통해 뭔가 바꿀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생각을 지워버렸다.

“내 말이 먹힐만한 위치에 1년 만에 오르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해.”

말이라는 게 자신이 가진 권력과 인맥, 위치에 따라 힘이 달라진다.

1949년 지금 이 시국에 집도, 부모도 없는 20살 청년이 1년 뒤 북한의 침공으로 전쟁이 난다고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닌들 믿어 줄 리도 없고.

풍기문란으로 어디 끌려가서 산에 묻히지나 않으면 다행일 테지.

돈이야 1년 만에 벌 수 있으련만, 전쟁 앞에선 절대적 가치가 떨어지니까.

게다가 20살의 건장한 이 몸.

눈에 스치면 바로 징병이다.

“제발. 떠올려. 그거 말고 더 좋은 방법 있잖아. 강산아 제발.”

복잡한 머릿속이 자꾸 하나의 생각으로 조각모음 되듯 모이고 있었다.

어떻게든 부정하고 싶었으나, 계속해서 긍정이 부정을 밀어냈다.

나노봇으로 인한 신체복구, 강화능력.

수류탄 맞고도 살았는데, 아프기야 하겠다만 총알 몇 방쯤은 맞더라도 회복되어 괜찮지 않을까? 라는 끔찍한 생각.

피는 못 속인다는 말을 평소 잘 믿지 않았는데, 뼛속까지 참군인인 아버지의 유전자를 물려받아 알고 보니 혹시 장군 체질은 아닐까? 라는 모순된 생각.

미래를 더 살기 좋게.

좋은 세상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라는 호승심 넘치는 영웅 심리.

“아··· 이러면 나가리 아닌가.”

당장에 해야 할 답이 정해진 것 같았다.

산에 숨어 살지 않는 한 어차피 1년 뒤 징집당할 거, 조금이라도 먼저 내 영향력을 조금이라도 더 끼칠 수 있는 위치에 도달해 있어야겠다.

두 손을 있는 힘껏 움켜쥔 채 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말을 걸었던 군인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군인은 마치 나를 기다렸다는 듯 아직 그 자리 그대로 있었다.

이제야 군인 옆에 있던 입 간판이 보였다.

[조선경비대 보병 13연대 창설 요원 모집]

“입대하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아깐 일 없다며, 왜 입대하려고? 너같이 곱상하게 생긴 놈이 정말 할 수 있겠어?”

군인이 입에 담배를 문 채 흘기듯 쳐다보며 말했다.

“손에 든 게 입대원서면 한 장 주시죠. 당장 여기서 쓰려니까.”

“다시 생각해봐. 애들 장난하는 곳 아니니까.”

“주세요. 다 계획이 있으니까.”

결심한 이상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었다.

“왜 웃어. 재밌어?”

왜 웃긴.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군대라는 구렁텅이로 스스로 기어들어 가는 게 기가 차고 재밌어서 그렇지.

“옜다.”

건네주는 입대원서를 받아들자마자 바로 써 내려 가기 시작했다.

혹시나 다시 원래 시대로 돌아갈 수 있다면.

아무도 내 앞에서 군대 얘기는 못 꺼낼 것이다.

높으면 높을수록 좋다.

지금 생엔 전쟁영웅이 되어야 할 것 같다.

“가보자고.”

배고프니까 설농탕 한 그릇만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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