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13연대
“이놈 보게.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냐? 네 놈이 입대하는데 왜? 내가 설농탕을 사줘?”
“배가 고파서요. 대신, 저를 입대시킨 것을 절대 후회하지 않게 해드리겠습니다.”
정말이지 아무런 근거도 없는 자신감의 집약체지만, 자신감은 눈에 보이는 게 아니다.
상대방이 알아서 본능적으로 느끼게 하는 거지.
나에 대한 가치는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톡톡히 알게 될 것이다.
“후회 같은 소리. 너랑 내가 언제 봤다고. 입대하고 일주일, 아니 하루도 채 못 버티고 탈영하고, 도망가는 놈들이 한 트럭이야. 딱 보니 너 같은 놈은 분명 훈련받다 투정이나 해대며 도망가겠지.”
도망이라는 말에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어차피 어디에도 연고가 없는 자유로운 몸.
밑져야 본전이다.
안 사주고 매질 몇 대 맞아도 그만, 혹시나 마음이 동해서 사준다면 그만한 이득이 어디 있겠는가.
말은 미친놈이라며 강하게 했지만,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느낄 수 있었다.
당신, 지금 나한테 설농탕 사주고 싶구나. 그렇지?
그간 머리 숙이고 와서 입대원서를 받아가는 사람들만 있었지, 나처럼 대뜸 뭘 요구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을 것이다.
보편적인 상황에 대한 상식과 다른 내 태도에 아마도 인지 부조화가 왔을 테지.
그렇다면 합리적인 생각은 아니지만 왜인지 나에게 끌릴 것이고?
“내 참, 여기서 모병하며 처음 보는 웃긴 놈이로구나. 네가 그 원서를 들고 진짜 입대까지 할지 모르겠지만, 가서 먹어라. 박철우 이등 중사라고 하면 알 거다.”
박철우 이등 중사.
당신 이 몸이 꼭 기억하겠어.
“고맙습니다!”
“모레 오후 2시 용산에서 신체검사가 있으니 잊지 않도록.”
“예!”
이게 되네. 거봐 된다니까.
나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 매료된 것이겠거니.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모, 여기 설농탕 한 그릇 주세요.”
가게 안에 들어서자 고깃국물 냄새가 사방에서 진동했다.
이거지.
너도나도 50년 전통이니 70년 전통이니 하는 마케팅용 가짜 전통들 말고, 진짜배기 설농탕.
이가 나간 곳이 곳곳에 있는 뚝배기에 하얗다기보다 투명하고 뽀얀 국물, 그 위에 소고기 두세 점이 얹혀 있었다.
“아, 기가 막히네. 이게 전통의 맛이지.”
맛을 물을 필요도 없었다.
배고프고 굶주린 상태에서 먹는 뜨거운 설농탕.
먹는 순간만큼은 세상을 다 가진 것이나 다름없는 기분이었다.
5분? 어쩌면 그보다 빨리 먹은 것 같다.
맘 같아선 충분히 한 그릇 더 먹을 수 있었지만, 내게 허용된 건 딱 한 그릇.
이마저도 운이 좋아서 먹을 수 있지 않았는가.
만족이다. 만족.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입 주변을 쓱쓱 닦았다.
나는 이모가 있는 곳으로 향하며 말했다.
“이모, 계산은 박철우 이등 중사 앞으로 달아주세요.”
“누요? 박철우? 내는 그 사람 모르는데.”
“아, 이름을 잘 모르시나 보네. 이모 잠깐 이쪽으로 와 보세요. 저기 저쪽에서 입대원서 나눠주는 군인 보이시죠?”
“어디, 아무도 없는데 대체 누요?”
힘있게 박철우가 있던 곳을 향해 뻗었던 내 손가락이 천천히 쪼그라들었다.
손가락이 향한 곳엔 사람도, 입 간판도 아무것도 없었다.
“이 새끼가··· 먹는 거로 장난질을 쳐?”
이가 절로 갈려 으드득 소리가 났다.
생각지 않게 뒤통수를 맞을 줄이야.
나는 뻗었던 손을 다시 공손하게 앞으로 모으며 말했다.
“힘없고, 배고프고, 불쌍한 어린 학생에게 한 그릇을 나누었다 생각···.”
“이런 우라질, 씨펄놈이 돈도 없이 처 먹은겨?”
잠깐, 이모. 이런 이미지 아니었잖아.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손님들에게 설농탕을 내어 주던 푸근한 이모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옆에 있던 빗자루를 손에 들고 나를 있는 힘껏 패기 시작했으니까.
***
이모에게 잡혀 이틀 동안 열심히 설농탕 그릇 설거지, 가게 정리를 해야 했다.
어차피 있을 곳도 없었고, 설농탕도 실컷 먹을 수 있고,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이제 가봐야 하나? 꼭 몸조심하고, 휴가 나오거나 무슨 일 있으면 들러. 이모가 맛있게 끓여 줄 테니까.”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꼭 들릴게요.”
빗자루로 나를 두들겨 팬 것만 빼면, 욕을 한 사발 먹은 것도 뺀다면 정말 선하고 순한 사람이었다.
짧은 인연이었지만 입대하러 용산역에 간다고 하자 조금의 차비와 길 설명, 몸조심하라는 신신당부까지 잊지 않았다.
꼭 다시금 들리겠다는 약속과 함께 용산행 전차에 올라탔다.
박철우 이등 중사가 알려준 곳으로 가자, 신체 검사소라고 적힌 입 간판이 보였다.
그곳엔 100여 명쯤 되는 인파가 몰려 있었다.
입대 신체검사라 해봤자, 거창한 무엇이 있는 게 아니었다.
이름, 나이, 주소.
주소마저도 본적이나 본가가 없는 사람들이 꽤 많았고, 그 간단한 신원조회조차 하지 않았다.
“아무리 시대가 다르다지만···”
신원이 확실 지 않는 사람을 군인으로 육성해 무기를 준다는 것 자체가 꽤 나 위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내 순서는 빠르게 다가왔다.
면접관들에게 이름, 나이, 주소를 말하고 나서, 바로 앞에 쌀 2가마니가 있었다.
팔다리가 멀쩡히 달렸다는 전제하에 쌀 1가마니 이상을 가슴높이까지 들어 올리면 성공이었다.
“한 가마니에 80kg. 160kg 라···”
[신체 강화 프로세스 가동]
나노봇이 내 생각을 읽었는지 팔, 다리, 허리 근육에 힘이 느껴졌다.
신체 강화 프로세스가 어느 정도의 힘을 보태어 주는지 알 기회였다.
예전에 나라면 한 가마니를 들어 올리는 것도 버거웠을 테니까.
“앞에 있는 쌀을 가슴 높이까지 들어봐.”
일단 하나부터.
한 가마니를 팔로 감아올렸을 때 느낀 생각은 하나였다.
가볍다.
이 정도면 헬스장에서 방귀 좀 뀐다는 3대 500치는 아저씨들 입을 떡 벌어지게 해줄 수 있을 텐데.
나는 곧장 두 가마니를 하나로 겹쳐 들어 올렸다.
어느 정도의 무게가 느껴지긴 했지만, 무겁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흡!”
가슴높이가 아닌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우와. 힘이 장사네 장사여.
-힘쓰게 생기진 않았는데 힘이 끝내주는 고만?
주변에서 환호성이 들려왔다.
하기야 160kg의 무게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테니까.
“음··· 쓸만하네. 합격, 저쪽 화차 있는 곳에서 기다려.”
“네!”
당연한 일이었기에 기쁘진 않았다.
기쁘다기보단 이제 시작인가? 라는 생각이 뜨문뜨문 들었다.
“네? 야 이 새끼야, 복창 안 해? 벌써 군기가 빠져서는.”
면접관 한 명이 느닷없이 호통을 쳤다.
그리고는 내 입대원서에 [태도는 다소 불량]을 추가하는 것이 보였다.
치사하긴.
안 보는 게 나았을 텐데, 시력이 좋아도 탈이다.
“합격! 죄송합니다!”
비로소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아, 이제 시작이구나.
두 번째 군 생활이.
***
올라탄 화차에는 스무 명 남짓의 사람들이 타 있었다.
표정에는 고스란히 긴장감이 깃들어 있었다.
‘웃긴 게 그래도 2번째 입대라고 처음 보다 떨리진 않네.’
떨림, 설렘 그 중간 어디쯤 있을 만한 감정이 느껴질 뿐이었다.
밖에서 출발이란 소리와 함께 화차가 덜그럭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디로 가는지, 얼마나 가는지,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안녕하십니까.”
심심할 때쯤 내 옆에 앉아있던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가 인사말을 건네왔다.
외적으로 보나, 풍기는 기운으로 보나, 꽤 나이가 있어 보였다.
20대 중반? 후반쯤? 좀 더 나이를 먹었을 수도 있고.
“안녕하세요.”
“반갑소. 나는 임해순이라고 하오. 해방 전 광복군에 소속되어 있다가, 군에 뜻이 있어 지원하게 되었소.”
광복군.
이 시기 군대 병력 중 군사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광복군, 일본군, 만주군이었다.
편제가 완전하지 않아 시도 때도 없이 개편이 이루어지고, 병력이 부족한 탓에 군사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우대를 받을 수밖에 없는 시기였다.
“이강산 입니다. 광복군이면 장교로 지원해도 됐을 텐데 왜 이 화차에 타 계십니까?”
“내 일본 놈들 천지인 그런 사관학교 따위에 발 디딜 생각은 추호도 없소. 장교를 구한다는 말은 많이 들어 봤지만, 나를 비롯해 내 주변도 그렇고 그쪽에 뜻있는 지원자가 많지는 않은 것으로 알고 있소.”
직접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진심으로 이해할 순 있었다.
시대적 상황에 따른 아이러니라고 할까? 아님 딜레마?
광복 후, 군 경험이 있는 자들이라곤 광복군, 일본군, 만주군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광복군 출신들은 일본군 출신들과 함께 있는 것조차 싫어했다.
‘광복을 위해 총, 칼 겨누고 싸워왔는데 이제야 같은 편 하라니 좋게 생각할 수가 없겠지.’
가슴 한쪽에서 동질감, 동포애, 애국심이 마구 샘솟는 것 같았다.
‘당신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편히 발 뻗고 잘 수 있었습니다.’라는 국방부 캠페인이 절로 떠올랐다.
“실례가 안 된다면 나이가 어떻게 되시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올해 스물입니다.”
꽤 재치있는 사람이었다.
스무 살이라니, 아무리 농담이어도 좀 그럴싸하게 했어야지.
“밝히시기 그렇다면, 알려주시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뭐 사람마다 비밀은 있는 법이니까.
나이를 알리기 꺼리는 모양이었다.
“알려주기 싫다니요. 말하지 않았습니까 스물이라고. 내 열넷부터 광복군에 있었소.”
14살부터 나라를 위해 총, 칼을 잡았다니 대단한 건 맞는데.
근데 그건 그거고.
저 수염 하며 주름 하며, 말투까지.
도무지 동갑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저도 스무 살입니다.”
“이야, 곱상하게 생겨서 어린 줄 알았건만 벗이 아니오. 잘 지내봅시다.”
얼마나 한참을 내달렸는지 알 수 없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니 화차가 덜컥거리며 멈춰섰다.
“빨리빨리 내려! 느려 터진 것 봐 이 새끼들.”
이유 없는 공허한 욕설이야 무시해 버리기로 했다.
대체 저 흉한 욕이 없으면 군대가 안 돌아가는 걸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천안역이었다.
“천안이라···”
계속해서 욕설을 뱉어대는 인솔자들을 따라 움직였다.
20분쯤 걷자 한 학교가 나왔다.
그 안에는 M1 개런드 소총을 들고 있는 군인들이 보였다.
“빨리빨리 안 움직여! 저쪽에 합격증 제출하고, 보급해주는 피복으로 갈아입는다.”
합격증을 제출하고 받은 피복은 군복이 아니었다.
군데군데 더럽게 때가 묻은 작업복? 작업복이라기보다는 남이 입다 버린 옷에 가까웠다.
-퍽퍽
사방에서 발길질 소리가 들려왔다.
상황 설명도, 근거도, 적응할 시간도 없는 무분별한 폭행에 가까웠다.
“무슨 사람들을 이따위 미개한 방식으로 훈련을···”
교육대장실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불평하던 그때가 떠올랐다.
취사병이 정성스레 만든 고등어 순살 조림을 비하하던 녀석들도 스쳐 갔다.
이곳에 비하면, 아니 비교하면 조려져 있는 고등어가 억울하다 할 것이다.
천국이니 지옥이니 그런 비교도 불가했다.
“뭘 꼬라봐! 이 새끼야.”
마침내 내 순서인 것 같았다.
발길질이 날아들었다.
[재생 프로토콜을 실행합니다.]
넘어지며 돌에 찍힌 탓에 팔꿈치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나는 발길질을 당하며 속으로 웃으며 느꼈다.
버티겠노라고.
짜증 나고 힘들겠지만, 더럽게 힘들겠지만.
우습게도 이것이 내가 살아남아야 할 첫 번째 관문이었다.
영웅이 쉽게 될 수 있을 리 없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