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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전쟁영웅이 되었다-5화 (5/149)

5화. 격투(1)

지독한 훈련과 일본식 얼차려를 받으며 열흘쯤 지났을까?

연대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200명 남짓한 중대 규모였던 13연대는 어느새 300명을 훌쩍 넘어섰다.

군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거나 상황이 좋아져서가 아니다.

애당초 모병계획이 중대 규모를 모집한 후, 모자라는 인원 충원은 근처에서 충당하는 방식으로 모병계획을 설계하고 있었다.

말이 좋아 연대창설이었을 뿐이지, 중대, 대대, 연대순으로 확대 개편이나 마찬가지였다.

박철우 중사 말대로 처음 있던 200명 중 열흘 만에 어둠을 틈타 야반도주한 인원이 벌써 20명은 넘었다.

“솔직히 인간적으로 쌀알도 몇 알 없는 마당에 이 구더기는 좀 빼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밥알은 눈으로 세도 셀 수 있을 정도로 적었고, 나머지는 옥수수, 수수와 같은 곡물로 채워져 있었다.

나노봇 덕에 심한 설사나 배탈이 나진 않았지만, 다른 인원들은 설사와 구역질을 입에 달고 살았다.

엄마 밥이 맛없다며 징징대는 아이들, 편식이 심한 사람들, 일상에 불만이 가득한 현대인들.

여기에 딱 이틀, 아니 이틀도 길다.

딱 하루면 모든 게 고쳐지리.

“그거라도 든든히 챙겨 먹소. 광복군 시절 산에 숨어 있을 땐 나무뿌리, 풀뿌리로 연명했소. 이리 음식처럼 생긴 것도 못 봤지. 먹기 싫으면 나 주오.”

“주긴 뭘 줘. 내가 먹을 겁니다.”

임해순의 정신력과 의지는 그저 허세가 아니었다.

간부들의 주먹질과 매질에도 아픈 내색, 신음조차 내지 않았다.

아직 열흘 남짓한 시간, 저런 정신력이라면 뭘 해도 한 자리는 하겠거니 생각이 들었다.

[위에서 포도상구균, 장티푸스, 이질이 검출되었습니다. 재생 프로세스를 시작합니다.]

나노봇이 내 위로 삼켜진 음식물에서 나온 식중독균과 한바탕 싸우고 있는 모양이었다.

덕분에 보이지 않는 몸 안은 비교적 편했으나, 자질구레한 외상은 쉽게 치료할 수 없었다.

하루 만에 찢어진 곳이 낫거나, 금새 상처가 아무는 모습을 아무에게나 보여줄 순 없으니까.

“나노봇, 지금처럼 몸 내부 재생은 100%로, 외상은 30% 정도의 재생속도로만 부탁해.”

[명령어대로 실행 중입니다.]

3일 만에 나을 상처를 2일 정도에.

그것이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티 나지 않으면서 회복을 빨리할 방법이었다.

등 따시고 배불리 먹어왔던 내가 이 환경에 버틸 수 있는 최소치였다.

시간이 지나며 나노봇을 알게 될수록 활용도가 무궁무진, 무한대에 가까웠다.

재생을 최대치로 한다면, 가벼운 찢어짐이나 긁힌 정도의 상처를 깨끗하게 만드는 데는 채 3분도 걸리지 않는다.

구타를 당한 뒤 깊숙하게 스며든 아픈 멍을 빼는 데는 5분쯤 걸렸었나?

그 정도면 충분했다.

이대로라면 아직 어디가 부러지거나 총을 맞아본 적은 없어서 모르겠지만,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진 않았다.

“복덩어리 같은 녀석.”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무엇보다 좋은 건 인공지능 덕에 구타하는 간부들의 메커니즘을 파악, 때리는 패턴을 파악해 나노봇이 신체 곳곳에 즉시 적인 신체 강화를 해주고 있었다.

즉, 암만 때려봐도 아픈 건 내가 아니라 간부들의 손.

나에게 생명과도 같은 건 아파죽겠지만 참는 이 악무는 연기였다.

“집합! 당장 집합해!”

최성진 소위였다.

일본 육사를 졸업하고 임관한 지 얼마 안 되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이곳에서 가장 훈련병들에게 지독하고 가혹한 놈이었다.

“개새끼.”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레 욕이 나왔다.

저런 놈들로 단체 전체를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하는 꼴을 보니 일본 육사에서는 인성이나 도덕성을 가르치진 않는 모양이다.

“전달할 소식이 있다. 연대장님께서 부대에 방문하실 예정이다. 따라서, 그간 너희들의 훈련 성과와 투지를 확실히 연대장님께 보여드릴 수 있도록, 격투(格鬪) 경기를 개최할 예정이다.”

격투? 오호라?

왜 연대장이 부대에 방문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중요치 않다.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흘 전부터 지금까지 한 거라고는 얼차려, 기본 제식훈련, 잠 안 자고 불침번 서기, 말도 안 되는 식단의 밥 먹기 뿐이었으니까.

내가 뺑이만 치려고 군에 입대한 게 아니라고.

그간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는 판이 없었다.

지금은 그 판이 깔렸고.

나는 그 판 위에서 가장 강한 인상을 심어줄 미친놈이 될 생각이었다.

“간부, 병사 할 것 없이 자체 심의를 거쳐 최종적으로는 소수의 인원만 연대장님 앞에서 실력을 뽐낼 수 있다. 나 또한 참가할 예정이다.”

최성진 소위가 참가한다는 말에 연병장에 웅성거림이 찾아오며 잠시 소란스러워졌다.

그도 그럴 것이 최성진 소위는 거의 모든 병사가 싫어하는 악질 중 최악질.

전쟁이 난다면 적의 총알보다 아군에 의해 뒤통수에 바람구멍이 먼저 생길지도.

“규칙은 간단하다. 참호 안에 두 명이 들어가 한 명이 쓰러져 일어나지 못할 때까지. 지원자 거수.”

한마디로 둘 중 하나 초 죽음 될 때까지.

분명한 기회가 될 수 있음에도 생각보다 손을 드는 이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연대장에게 잘 보여야겠다는 마음보다 이들은 그저 살고 싶은 것이다.

부실한 배식, 부족한 수면 속에서 피 터지게 격투까지 하는 건 어쩌면 무모한 일이었다.

“역시.”

가장 먼저 나와 임해순이 손을 들었다.

우리 두 명이 손을 들자 뒤이어 열 명 남짓한 인원이 손을 들어 참가 의사를 표시했다.

“잘 할 수 있겠소? 군대에서 격투라는 게 길거리 싸움보다 더 더럽고 위험한 법이오.”

그가 자신 있다는 듯 팔에 힘을 주자 근육들이 튀어 올랐다.

장신에 큰 골격, 저급한 영양분을 섭취하고 어떻게 유지되는지 알 수 없는 근육들까지.

그는 누가 보더라도 세고, 강한 사람이었다.

“우리가 여기서 남은 게 악밖에 더 있겠습니까. 열대 맞더라도 한 대를 치겠다는 마음가짐이죠. 이런 식의 훈련만 계속 받다가는 군인이 되기 전에 폐인이 먼저 될 것 같습니다.”

“열 대를 먼저 맞으면 쓰러지는 거 아니오? 몸조심하시오. 예선에서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소. 허허.”

사실 격투는 스포츠 아니던가?

싸움이라고는 기껏해야 어릴 적 친구들과 머리 쥐어뜯고 먼저 놔라 하는 개싸움 정도?

현대에 동네 양아치나 건달, 격투기 선수를 제외하면 주먹을 쓸 사람이 몇이나 있다고.

그래도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지원자를 제외한 남은 모든 인원은 현 시간부로 참호를 판다. 실시!”

“실시!”

사람들 얼굴에 짜증이 비췄지만, 이내 지워졌다.

그 누구도 한숨을 쉬거나 복명복창을 제외한 소리를 내지 않은 채 재빠르게 움직였다.

훈련을 가장한 주먹질과 발길질이 만들어놓은 절대복종의 결과였다.

지원자들은 총 16명이 각 8명씩 1조와 2조로 나뉘었다.

방식은 흔히 알고 있던 토너먼트 방식이었다.

연대장 눈에 띄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선에 통과해야만 했다.

‘다들 힘 좀 쓰게 생겼네.’

현 상황에 격투를 자원했다는 것은 웬만한 자신으로는 불가능했다.

모인 16명 중 자신이 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어 보였다.

물론 나도 자신 있지.

내 경력을 말하자면 길거리 펀치 기계 신기록 수립 3회, 무려 복싱 체육관 3달에 빛난다.

‘3달 중에 5번밖에 안 나가긴 했지만.’

[재생 프로세스 가동률 100%]

그래, 너만 있으면 돼.

“같은 조가 아니군. 운이 좋소. 나는 어릴 적부터 소나 사슴도 맨손으로 때려잡았단 말이오. 대신에 최성진 소위 저놈에게 매운맛을 보여주겠소.”

솥뚜껑처럼 크고 단단한 주먹을 보고 있자니 소나 사슴을 잡았다는 것이 절대 거짓이 아니다.

최성진 소위와 임해순은 한 조에 섞여 있었다.

내 생각과는 달리 간부계급의 지원자는 최성진 소위와 다른 일등중사 한 명뿐이었다.

“간부들이 지원을 안 한 것 보면 잃을 것이 많다고 판단했나 보오. 하기야 다른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병사에게 지기라도 한다면 큰 수치일 테니.”

연대장 앞에서 최종 승자로 두 손을 들어 올려 포효하는 것.

간부들에게 그것 말고는 모든 경우의 수가 손해.

“반대로 생각하면 그 위험을 감수할 자신이 있다는 뜻이겠죠.”

최성진 소위는 그리 큰 체구도 아니었다.

근육이 발달 된 편도 아니었기에, 무슨 자신감으로 자원했는지 궁금했다.

“아무쪼록 몸 상하지 않게 조심하시오.”

임해순에 걱정 담긴 말에 나는 대답 대신 지긋하고 온화한 웃음으로 대답했다.

난 괜찮아.

너나 잘해 해순아. 라고.

***

지금 눈앞에 있는 참호를 보고 다시 한번 느끼는 거지만, 피라미드는 정말 인간이 만든 것이 맞다.

반나절도 안 된 시간에 가로 2m, 세로 2m, 높이 1m 정도의 참호 구덩이가 생겼다.

서로 도망가거나 피할 곳 없는 아주 좁은 우리.

내 차례는 1조 2번째였다.

첫 번째 경기는 일등병과 일등중사의 경기였다.

참호에 두 명이 들어가자 모든 부대원이 환호성을 질러댔다.

“시작!”

중대장의 시작이라는 말과 함께 두 사람이 서로를 눕히겠다는 일념으로 탐색을 시작했다.

탐색을 먼저 마친 건 일등중사였다.

빠르게 거리를 좁힌 뒤 주먹을 날렸다.

얼핏 봐도 꽤 빠른 속도였다.

일등병 또한 예상했다는 듯 얼굴 대신 어깨를 내어주며 방어했다.

거리가 가까워진 두 사람은 서로 달라붙어 힘겨루기를 이어갔다.

-와아아!

두 사람 다 힘이 얼마나 좋은지 맞붙은 자세에서 군화가 땅으로 푹푹 박혀 들어갔다.

“끝났네.”

30초 정도 서로의 힘을 느끼며 팽팽하던 힘의 균형이 깨지고 있었다.

일등병이 일등중사를 들어버린 것이었다.

바닥에 내치기만 한다면, 거의 승리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뭐야, 왜 저래?”

승기를 잡은 일등병이 주저하기 시작했다.

그대로 바닥에 처박을 수 있었지만, 우물대는 사이 일등중사가 팔꿈치로 일등병의 얼굴을 그대로 가격했다.

쩝.

이래서 세뇌나 반복된 교육이 무서운 것이다.

격투를 이긴 후 일등중사가 자신에게 보복이나 복수를 할까 두려웠던 모양이다.

팔꿈치에 얼굴을 가격당한 일등병이 휘청거리며 쓰러졌다.

중사는 쓰러진 일등병에 달려가 연이어 주먹을 날려대며 그대로 격투가 끝났다.

일등중사가 치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격투란 어쩌면 전쟁의 축소판이다.

적에게 동정을 느껴 방아쇠를 당기지 못한다면, 칼을 박아넣지 못한다면 결국 죽는 것은 본인이 될 뿐이다.

“다음! 준비!”

드디어 내 차례가 되고, 몸에 은은한 긴장감을 두른 채 참호 안으로 들어갔다.

다들 1경기에서 느낀 바가 있는지, 병과 병의 격투에 환호성을 더 크게 질러댔다.

‘더럽게 크네.’

참호 안으로 들어온 상대는 이런저런 자세를 취해가며 근육들을 뽐냈다.

“시작!”

시작과 동시에 상대가 달려들어 주먹을 내질렀고, 나는 맞았다.

충격에 머리통 전체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

-뭐야! 시시하다고! 풉.

정신을 차리려 머리를 흔드는 나에게 참호 밖에서 야유 섞인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퍽! 퍽!

그 이후에도 몇 대를 맞았는지 모르겠다.

얼굴이 부어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나노봇이 없었다면 아마 주먹 한 방에 나동그라질 만한 힘이었다.

계속해서 맞으며 버티는 나 때문에 약이 올랐는지 잔뜩 성이나 나에게 달려왔다.

[패턴 분석 완료. 신체 강화 완료.]

‘됐다.’

머릿속에서 기다리던 나노봇의 음성이 들렸다.

나노봇이 상대의 패턴을 분석한 탓에 몸을 살짝 틀어 상대를 피할 수 있었다.

곧이어 중심이 무너진 상대에게 줄 선물.

내가 강화한 건 주먹이 아니라 다리였다.

150kg에 가까운 헤비급 격투기 선수도 단 한 방에 저 세상으로 보내버릴 수 있는 기술

일격필살.

그 다리를 중심이 무너진 상대방 사타구니 사이로 그대로 차 넣었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끄아아아아아아악!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들린 그 날 이후, 끔찍한 비명은 며칠이나 더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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