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격투(2)
‘거기’를 걷어차고 나온 나를 보며 부대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곳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 남자는 아무도 없을 테니까.
-아무리 그래도 같은 남자끼리 거기를···
-말하지 않았소. 작은 고추가 매운 법이라고.
-전쟁에 비겁한 게 어디 있고, 남자 여자가 어디 있음메. 안되면 눈이라도 확 찔러야지.
아직까진 힘 조절이 쉽지 않네.
같은 남자인 내가 어찌 로블로를 맞는 고통을 모를 수 있을까.
상대를 해치고 싶은 마음이 아닌, 단지 최단시간에 쉽고 빠르게 무력화시키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었다.
뭐, 일말의 미안함은 느껴지더라도 이건 전쟁이다.
작은 전쟁.
사실 있는 힘껏 걷어찬 것도 아니었다.
힘을 조절한다고 했는데, 아직은 신체 강화에 적응이 덜 된 모양이다.
“다음!”
다음 경기는 부대원 모두의 눈과 귀를 집중시켰다.
사실상 예선의 하이라이트나 다름없는 경기였다.
일본 육사 출신의 최성진 소위.
광복군 출신의 임해순.
물론 지금은 같은 부대의 간부와 병이지만, 한일전의 느낌이 물씬 풍겼다.
그 느낌이라는 것은 다른 경기와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그 의미는 내가 있던 2022년에도 축구, 야구, 격투기, 게임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장르에 통용되어왔으니까.
지금까지 나온 환호성 중 가장 열렬한 환호가 참호 안으로 쏟아져 내렸다.
두 사람이 상의를 벗어 재끼자 속에 있던 알찬 근육들이 자태를 드러냈다.
‘오, 의왼데?’
임해순의 근육에 놀란 것이 아니었다.
군복을 입고 있을 때는 조금 마른 편인가? 싶었던 최성진 소위의 몸은 근육을 꽉꽉 눌러 압축해 놓은 듯 단단해 보였다.
시작 소리가 들리기 전, 둘러싼 관중 사이로 적막이 내려앉았다.
“누가 이길지 모르겠네.”
모두에게 깃든 긴장감이 본능적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최성진 소위가 땅바닥을 구르는 통쾌한 상상을 다들 하고 있었지만, 결과를 쉽사리 예측하기 어렵다고.
“시작!”
가라테?
시작 소리와 동시에 최성진 소위는 가라테 기본자세를 갖췄다.
가라테를 본 적도, 경험할 일도 없었던 부대원들은 생소할 수밖에 없었다.
가라테가 본격적으로 한국에 퍼진 건 해방 이후나 되어서니까.
팟!
탐색을 끝내고 먼저 공격을 시도한 쪽은 임해순이었다.
임해순의 주먹이 지척에 다다르기 직전, 최성진 소위가 몸을 가볍게 틀어 피해냈다.
“씁.”
선공이 실패한 후, 임해순이 혀로 입술을 닦아냈다.
분명 주먹에 묵직한 타격감이 있어야 할 거리임에도 허공을 가른 이유였다.
-와, 빠르다.
-누가 이길지 모르겠는데?
-아따, 해순이가 험한 꼴 보는 거 아닌지 모르겠구먼.
나 역시 당연지사 임해순을 응원하고 있었다.
보여줘. 임해순.
참호 안에서의 시간이 흐를수록 임해순의 숨소리가 거칠어져 왔다.
다른 이들은 들을 수 없었겠지만, 나노봇 덕에 청력이 좋아져 있는 나에게는 충분히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으아아아아악!”
숱한 주먹질과 발길질은 단 한 번도 최성진 소위에게 유효타로 닿지 못했다.
임해순의 숨소리가 거칠어지자, 최성진 소위가 오른발을 앞으로 내밀었다.
매서운 발차기가 날아들었다.
상단, 중단, 하단할 것 없이 어디에서 날아오는지 알기 힘들 정도로 빠른 발차기였다.
지금까지의 격투가 동네에서 싸움 좀 한다는 골목 대장들의 싸움이었다면, 지금의 격투는 마치 프로 선수들의 경기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누가 봐도 승패의 향방은 기울어져 있었다.
임해순은 체력이 다한 탓에 점점 유효타를 허용하고 있었고, 지금은 공격을 잘 막아내던 양팔마저 한참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만!”
심판을 보던 중대장이 참호로 내려가 최성진 소위의 손을 높이 들어주며 경기를 종료시켰다.
그 누구도 중대장의 행동에 반문을 가지지 못했다.
오히려 임해순이 쓰러지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미안하오.”
나에게로 와 미안하다는 말을 건넸다.
억울한 듯 그의 두 눈은 시뻘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저한테 미안할 게 뭐 있습니까. 훌륭했습니다.”
훌륭했다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진즉 쓰러졌어도 쓰러졌을 것이고, 이기기 힘들다는 것도 몇 번 주먹과 발을 섞으며 알았을 것이다.
그럼 에도 버텨냈다.
훌륭하잖아?
***
그날이 왔다.
상급 지휘관이 부대에 시찰을 나오는 날.
그 끔찍한 날 말이다.
“부대 차렷! 연대장님께 대하여 경례!”
경례 구호와 각이 날이 선 칼보다 더 예리하게 들어맞았다.
여러 명의 인간 군집이 같은 동작을 같은 시간에 이토록 똑같이 행할 수 있는지는 군대에 와보면 알게 된다.
“다음으로는 연대장님 훈시 말씀이 있겠습니다. 훈시. 부대 열중쉬어.”
“흠흠. 반갑다. 13연대장 최철우 대령이다. 군에 입대한 여러분들은 지금 해방 후 혼란스러운 지금. 국민의 치안, 생명을 지키는 아주 중차대하고 막중한 임무를 지닌···”
[청각을 조절합니다. 조절 완료.]
물론 더 잘 듣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지금껏 살며 훈화 말씀, 훈시를 재밌게 하는 사람을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더 듣다 보면 졸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 내 귀의 볼륨을 약간 조절했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13연대와 이곳 11중대 중대원들의 무궁한 발전이 있기를 바란다. 이상.”
어차피 가장 중요한 말은 끝에 나온다.
그리고 그 끝말은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하다.
결국, 거의 모든 훈시나 훈화 말씀은 무궁한 발전이라는 말로 끝맺음하기 마련이니까.
오죽하면 국화도 무궁화 아니겠는가.
[청각을 재조절합니다. 조절 완료.]
약간은 먹먹했던 소리가 다시 선명하게 잘 들려왔다.
‘십 분쯤 지났나?’
[청각 조절 후 11분 25초, 경과 했습니다.]
열중쉬어 자세로 10분 이상을 버티는 것도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벌써 몇몇 중대원들은 아려오는 허리 통증을 참고 있는 게 눈에 보였다.
“연대장님, 부대의 사기를 확인할 수 있는 격투 시합을 준비해 뒀습니다. 직접 참관해 주신다면 부대원들의 사기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격투라, 좋네. 기대하지.”
이승준 대대장은 최철우 연대장이 격투 시합 참관이라면 마다하지 않고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몰랐다면 애초에 준비시키지도 않았을 것이다.
격투를 싫어하는 지휘관도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준비해. 참호 안에서 연대장님께 경례 똑바로 하고.”
내가 처음인 건가?
일등중사가 내게 다가와 준비를 지시했다.
첫 번째로 시합을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처음인 모양이다.
상대는 최성진 소위였다.
처음이 아니라면 마지막에 만나게 될 사람이 최성진 소위라는 것은 이미 예상한 바였기에 당황할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좋다.
강렬한 첫인상을 심어줄 기회가 왔으니.
그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으리라.
나와 최성진 소위는 참호 밖 의자에 앉아있는 최철우 연대장을 향해 경례를 마친 뒤 호흡을 가다듬었다.
‘준비됐지?’
[태권도 기술과 정보를 학습합니다. 동기화 완료.]
아직 태권도라는 무술이 알려지지도 않은 시절.
최성진 소위의 가라테.
그리고 나의 태권도.
극적인 명승부를 만드는 건 생각보다 간단하다.
단순히 이기고 지는 것에서 끝이 아닌 흥미를 유발할 이야기와 연출.
처음 보는 무술에 흥미를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시작!”
임해순을 상대했을 때와는 달리 최성진 소위는 시작과 동시에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내 격투를 보며 우연히 급소를 차 운으로 이겼다 생각할 것이다.
뭐, 최성진 소위도 연대장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은 말할 필요도 없고.
몸통으로 날아오는 최성진 소위의 연속된 발차기를 좌측으로 돌며 피해냈다.
‘빠르다.’
나노봇의 도움을 받고는 있지만, 힘을 조절해가며 싸워야 하기에 결코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자신의 발차기를 피한 것을 본 최성진 소위가 고개를 좌에서 우로 저었다.
“제법이군.”
이미 패턴 파악은 끝났다.
이제 어떻게 요리할지, 무슨 요리를 선보일지가 중요했다.
태권도와 가라테는 비슷해 보이지만 엄연히 다르다.
가라테는 전진과 공격, 방어마저도 맷집으로 버티는 무술이라면, 태권도는 유연한 움직임과 속임 동작을 다채롭게 사용한다.
오른발로 급소를 차려는 움직임을 취했다.
“그게 나한테 통하겠는가?”
인간 신체의 어느 부분이건 단련할 수 있다지만, 단련이 안 되는 부위도 있다.
그래서 급소다.
찰나의 움찔함.
그것은 생각을 거치기 전에 나오는 본능이다.
그거면 충분했다.
걸렸다!
다리가 올라오며 움찔하는 것을 보자마자 그대로 오른발로 땅을 짚은 뒤 한 바퀴를 돌아 왼발을 높게 뻗어 최성진 소위의 얼굴을 노렸다.
-퍽!
퍽 소리와 함께 왼발등이 정확히 최성진 소위 턱주가리에 작렬했다.
순식간에 사방이 조용해졌다.
급소인 턱을 주먹도 아닌 힘이 실린 발차기에 맞았으니 일어나는 건 불가능했다.
-짝! 짝! 짝!
조용함의 적막을 깬 건 최철우 대령의 박수 소리였다.
그가 박수 소리는 옆에 있던 대대장, 중대장, 그리고 중대원들에게 차례로 전염됐다.
“택견인가? 수박? 살면서 처음 보는 움직임이군. 재밌군. 근래에 본 격투 중 가장 재밌었어.”
누군가는 싱겁다고 할 수 있는 매우 짧은 경기였지만, 그가 격투에 일가견이 있기에 알 수 있었다.
그 짧은 시간에 많은 수 싸움이 오갔음을.
가장 중요한 건 그 생각한 수를 실제로 만들어 냈음을 말이다.
“대대장.”
“예! 연대장님.”
“재밌는 친구일세. 일정이 다 끝나면 저 친구 막사로 데려와.”
“예! 알겠습니다!”
철저하게 기획된 내 계획이 맞아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
“나가봐.”
“하지만 연대장님···”
“괜찮으니 나가봐.”
연대장을 위해 지어진 간이 막사에 도착하자 최철우 대령이 참모들을 물렸다.
“훌륭한 격투 잘 봤네. 태권도를 수련한 모양이지?”
“감사합니다. 어릴 적 잠깐 수련한 적이 있습니다. 연대장님.”
뭐 틀린 말은 아니다.
복싱 체육관을 3개월 끊기 전, 부모님 성화에 마지못해 1달 정도 태권도 도장을 나간 적이 있었으니까.
“자네는 왜 군에 입대했지?”
지금부터가 진짜다.
앞으로의 군 생활은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헤쳐나가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지금 여기서 중요한 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하는··· 훈시 같은 말이 아니다.
“영웅이 되려고 입대했습니다.”
“영웅? 무슨 의미지?”
최철우 대령이 흥미롭다는 듯 지휘봉을 만지작거렸다.
“해방은 되었지만, 아직 민생이 어지럽고, 사상적으로도 혼란의 시기이며 북 괴뢰군의 도발은 끝이 없습니다. 원래 잘난 집 자식이 아닌, 저처럼 부모 없는 이도 군에 입대해 승승장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어떤 영웅이 되고 싶은가?”
거의 다 왔다.
일반적인 루트가 아닌, 영웅이 되기 위한 초고속 진급 발판이.
“예! 연대장님. 용감하고 강하되 무모하지 아니하고, 신중하되 소극적이지 아니하는. 그런 군인이 되고 싶습니다.”
“오··· 자네 같은 군인이 절실히 필요하지만 만나기 쉽지 않지. 자네 같은 신념은 훈련으로 양성한다고 되는 것도 아닐세. 여기 있을 인재가 아니야.”
“과찬이십니다.”
최철우 대령은 연신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적잖은 감동인가보다.
“그래서 말인데, 사단장님 지시로 자네처럼 용맹하고 사상이 확실한 군인들을 따로 모으고 있다네.”
“소속 부대가 어디인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그깟 부대 이름이 뭐가 중요하겠는가. 목숨이 오가는 위험한 임무들을 수행하겠지만, 자네처럼 영웅이 되고 싶은 군인들에겐 더할 나위 없을 거네. 물론 그에 따른 진급, 보상, 대우를 약속하지.”
어차피 평범한 군 생활을 각오하고 입대하지 않았다.
영웅이라는 꽃은 위험 속에, 위기 속에서 피어나니까.
“예! 따르겠습니다.”
“좋네. 빨리 가야 할 것이네. 이미 호림 부대는 작전을 수행하느라 바쁠 테니.”
호림이라는 말을 듣자 머리가 핑 도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