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호림부대
육군본부 정보국 산하 대북 침투 특수부대.
맹호출림(猛虎出林)을 줄여 부대명 호림.
설사 몰랐더라도 머릿속에서 나노봇이 시끄럽게 정보를 읊어대는 탓에 알게 될 수밖에 없었다.
[1949년 2월 25일 육군본부 정보국 산하 창설 후 작전 시행, 폐지 시기는 1949년 7월 12일로 임무는 교량, 도로 파괴, 방화, 암살, 교란, 기밀 탐지였으나 작전 중 대부분 사망···]
‘그만.’
잠깐, 여기서 문제점이 딱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좆됐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진짜 좆됐다는 것이다.
구구절절한 설명 다 빼고 긍정적으로 아무리 생각한들 살 확률보다 죽을 확률이 극히 높은 북파 임무를 수행하는 공작원.
생각해보니 이곳에 와서 아직 제대로 된 사격 훈련이나 군사교육도 받지 못했는데 북파라니.
아직 기회는 있다.
눈앞에 있는 이 양반과 대화를 좀 해야겠다.
꼭 호림이 아니더라도 다른 방향으로 좋게 풀어갈 수도 있잖아?
“연대장님 혹시 질문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훈련병 주제에 연대장과 독대에 이어 질문인가 싶겠지만, 적어도 이 막사 안에서만큼은 연대장 마음에 쏙 든 군인이다.
얼마든지 질문할 자격이 있다. 암, 그렇고말고.
“얼마든지. 해보게.”
지휘봉을 어루만지며 흐뭇하게 바라보는 모습이 무슨 잘 키워 성공한 아들을 보는 눈빛이었다.
“호림부대라 하시면···”
“자네처럼 애국 사상이 아주 투철하고, 그에 맞는 체력이 준비된 호걸들만 모인 부대일세. 자세한 건 기밀이라 더 말해줄 수 없네만, 부대 지휘관이 내 친한 아우일세. 자네는 특별히 내가 선택한 훌륭한 군인이니 잘 돌봐 줄게야.”
잘 돌봐 주다니.
누가 돌 봐준다 하면 총알이나 포탄이 알아서 비켜 가주기라도 하나?
아마 전생에 나와 연이 있다면 지독한 악연이었을 것이고 나에게 잘못이 있다면 나라라도 팔았단 말인가.
“이제 출발하지. 갈 길이 멀다네. 모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13연대에서 자네 같이 걸출한 인물을 만날 줄은 몰랐어.”
연대장이 털털한 웃음을 지으며 막사 밖으로 나갔다.
“제기랄. 북파라니. 두 번째 사는 인생 군대도 모자라 전쟁에, 북파라니.”
물은 이미 엎질러졌고, 방아쇠도 당겨졌고, 한마디로 번복은 불가했다.
지독한 악연이건, 나라를 팔았건 살아야겠다.
아, 참.
안녕과 건강을 기원하기 위해 2000년대에 행하는 아주 성스러운 의식을 깜빡할 뻔했다.
연대장이 앉아있던 자리에 고스란히 중지를 들어 올렸다.
***
경기도 수원 육군 수색학교.
차로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수원에 있는 육군 수색학교였다.
무언가가 한바탕 휩쓸고 간 듯 썰렁한 기운이 맴돌았다.
“충! 성!”
차에서 내리는 연대장과 나를 본 근무병이 절도있는 경례를 해왔다.
당연히 연대장에게.
“여기서 어느 정도 교육을 받은 뒤 임무 수행을 하게 될 걸세. 나는 모처럼 온 김에 아우나 보고 가야겠네. 내가 보증을 서서 특별히 데려온 만큼, 나라를 위해 훌륭히 임무 수행해주게.”
퉤.
특별히 사지에 모시고 온 모양이다.
여기까지 온 이상, 당신에게 더 할 말 따위 있을 리가.
“충성.”
경례를 받아준 연대장이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기다렸다는 듯 건들거리며 나에게 다가왔다.
“이쪽으로.”
근무병을 따라간 곳엔 스무 명쯤 되는 인원이 모여있었다.
모두가 긴장한 기색이 얼굴에 서려 있었다.
[긴장 완화 프로세스 가동.]
나도 예외는 아니고.
나무로 된 딱딱한 의자에 앉아 한 시간쯤 기다리자, 교관과 조교로 보이는 군인들이 들어섰다.
13연대의 교관, 조교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풍겼다.
“나는 육군본부 정보국 특무과장 한성룡 소령이다. 내 입에서 지금 나오는 이야기들은 모두 극비 사항이며, 내 입에서 나오는 말 이외에 다른 것들은 봤어도 못 본 것이고, 들었어도 못 들은 것이다. 말하면 죽는다. 알겠나?”
나노봇이 긴장을 완화 시켜주고 있음에도 오금이 저리는듯한 착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오죽할까 싶을 정도로.
한성룡 소령은 강압적인 말투나 행동을 전혀 하지 않았다.
오히려 힘이 빠져 보였다.
긴장을 느끼는 건, 순전히 그가 내뱉는 말들이 긴장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여러분이 나를 다시 보는 일은 딱 한 가지 경우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임무에 성공하고 살아서 돌아왔을 때.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나를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여기 있는 모두는 여기 발을 디딘 순간부터 계급, 군번이 없다.”
훈련병, 아니 군인 타이틀마저 없어졌다.
계급, 군번이 없다는 건 군인의 신분이 아닌 민간인의 신분이란 뜻.
임무에 성공하지 못하고 죽는다면 그대로 그 어떤 기록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다는 뜻이다.
“여러분 사이에서 소대장 역할을 해줄 인원이 필요하다. 원하는 인원 거수.”
생각할 겨를도 없이 손을 들었다.
주변을 보니 2명이 손을 들고 있었다.
한성룡 소령이 옆에 있는 부관과 귓속말을 몇 번 나눈 뒤, 목을 가다듬었다.
“흠흠. 소대장은 이 앞에 있는 인원으로 하지. 시간 관계상 다른 궁금한 것들은 조교들이 설명해 줄 것이다. 그럼 이상. 살아서 보자.”
이 앞에 있는 인원이 나다.
나였다.
역시 대한민국이건 남조선이건, 혈연, 지연, 학연은 끊고 싶어도 끊을 수 없는 단단한 동아줄이다.
따지고 보면 나는 연대장 지연이잖아?
문밖을 나서는 한성룡 소령의 말에 그 누구도 토를 달지 않았다.
토를 달 생각조차 못 할 자연스럽고 원래 정해진 수순으로 보였을 뿐.
사실 나서는 걸 그리 좋아하진 않았다.
흘러가는 대로, 모나지 않게 살고 싶은 대로 살아온 누구보다 평범한 스무 살이었다.
근데 무슨 소대장이냐고?
간단하다.
곧 계급도, 군번도 없이 북한이라는 사지에 침투해야 하니까.
이 스무 명과 나의 목숨을 걸고 스스로 내린 결론이었다.
이미 최악에 가깝지만, 다가올 미래는 더 최악일 테니.
만약 애국심이 아주 투철한, 애국심만 있는 사람이 소대장이 된다면?
중과부적.
20명의 소대원이 똘똘 뭉친 애국심 하나로 수백, 수천 명 적과 싸워 이기는 건 영화에서나 가능하다.
영화 시나리오도 그렇게 쓰면 욕먹는다.
애국심이 총알을 막아주진 않는다는 거다.
죽느냐. 사느냐.
나노봇과 함께라면 적어도 여기 있는 20명 중엔 내가 가장 현명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래야만 한다.
죽어서 영웅이 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까.
나는 똥 밭에서 굴러도 살아서 이승에서 구를 거다.
그러려면 이 20명도 내 몸이라 생각해야겠지?
최대한.
***
“훈련 기간이 일주일이란 말씀이십니까?”
“그래. 일주일. 상부 명령이야.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는 거지.”
아무리 군대라지만, 작전에 대한 설명을 들을수록 도무지 의구심이 가시질 않았다.
12주간의 훈련을 받은 5대대, 6대대 250여 명은 이미 어제 서울을 떠나 침투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곳이 썰렁하게 느껴진 이유였다.
12주 교육을 받고 적지 후방에 직접 침투하는 건 그렇다 치고, 일주일 유격교육으로 5대대, 6대대를 지원하란다.
이게 말이 돼?
지급 받은 장구류도 쉽사리 이해하긴 어려웠다.
총은 일본군에서 쓰던 99식 장총에 군복은 위장을 위한 북한 보안대 복장이었다.
북조선 은행권 50만 원, 지뢰, 다이나마이트, 독약, 전선절단기, 사진기는 침투 당일 지급한단다.
“하···.”
나도 모르는 새 한숨이 새어 나왔다.
13연대였다면, 숨이 새어 나오는 순간 발길질과 별별 쌍욕이 날아들었을 테지만, 이곳 조교들은 한숨을 들었음에도 그러지 않았다.
“집합! 가장 먼저 사격부터 훈련한다. 소대장 인솔하에 따라오도록.”
99식 장총은 박물관에서나 봤을까 당연, 만져본 적도 쏴 본 적도 없다.
나를 제외한 부대원은 이미 사용해 본 듯, 능숙하게 총기를 만지고 있었다.
‘일본군 99식 장총 관련 정보 찾아줘.’
명색이 소대장인데, 총도 못 만지는 멍청이로 보일 순 없지.
[99식 소총에 대한 검색결과입니다. 1939년 개발, 7.7mm 구경, 볼트 액션, 무게 3.7kg, 길이 1120mm, 사거리 500m, 장전과 격발에 대한 정보···]
총에 대한 제원, 사용법을 모두 숙지한 뒤 만져보니 그새 익숙해지는 것 같았다.
장전하는 법이나 관리하는 법을 몰랐던 것뿐이지 사격은 모든 총이 똑같다.
구경이 맞는 총알을 넣고, 노리쇠를 당겨 장전하고, 방아쇠를 눌러 쏜다.
이 공식을 벗어나는 총은 보지도, 들어보지도 못했다.
적어도 이 시대에는.
“1분대부터 앞으로.”
20명의 부대원은 1분대와 2분대 각각 10명으로 편제했다.
조교의 손이 향한 곳엔 과녁 용도의 나무판자 10개가 박혀있었다.
‘100m 정도 되려나?’
[측정결과 1번 과녁 102.35m, 2번 과녁 102.40m 3번···]
그만.
102m란다.
그렇게 자세할 필요는 없잖아.
1분대에는 소대장인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엎드려.”
조교의 지령에 모두가 맨땅에 엎드린 채 사격을 준비했다.
“장전.”
-철컥. 철컥.
모두가 일제히 철컥거리며 장전 손잡이를 당겼다.
볼트 액션 방식의 소총이라 훈련소에서 k2 소총을 장전할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쏴!”
[호흡을 자동 조정합니다. 시력 강화 프로세스 가동.]
나노봇이 시력을 강화하자 멀리 있는 나무판자가 바로 앞에 있는 듯 선명하게 보였다.
멀리서는 보이지 않았지만, 이미 총알이 뚫고 간 흔적이 무수히도 많았다.
“흡.”
호흡을 멈춘 채 검지에 점점 힘을 주었다.
언제 발사될지 나조차도 모르게.
검지에 점점 부하가 느껴지더니 어느 순간 검지에 걸리는 부하가 사라졌다.
-탕!
총성과 동시에 매캐한 화약 냄새가 코를 뚫는 듯했다.
[명중.]
[명중.]
[명중.]
[명중.]
[명중.]
총 다섯 발.
명중은 당연하고, 중요한 건 내가 조준한 곳을 맞췄는가였다.
눈을 집중해 나무판자 모서리를 보니 모서리 끝이 뜯겨나가 있었다.
보기보다 좋은 정확도와 성능.
사격 실력이 좋은 사람이라면, 200m에 있는 과녁도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일부러 끄트머리를 쏜 겁니까?”
“맞습니다. 그게 보였습니까?”
바로 옆에서 사격한 분대원이었다.
판자가 쪼개진 것도 아니고 끝부분 조금이 날아갔을 뿐이었다.
일반인의 시력으로는 보기 쉽지 않을 텐데.
무엇보다 내 의도를 알아챘다는 것이 예사롭지 않았다.
“총 좀 만져봤다는 놈들은 총 다루는 자세만 봐도 그 사람의 사격 실력을 알죠. 한번은 우연이라 하더라도 다섯 발을 모두 그리 쏘는 건 실력이 아니면 불가하니까요.”
생각해보니 소대장 선발 당시, 나와 함께 손을 들었던 인원이었다.
“소대장님 사격 실력을 보아하니 제 뒤통수에 잘못 쏠 일은 없어 보여 다행입니다. 김철우라고 합니다. 일본 관동군에서 잠시 군 생활을 했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역시 그냥 손을 든 것이 아니었다.
관동군 출신이라.
“그냥 편하게 소대장이라 부르세요.”
이름을 알려주기 망설여졌다.
이곳에 온 순간 스스로 극도로 조심하고 경계하는 것이 있다.
정.
어쩌면 전쟁에서 가장 무서운 감정일지 모른다.
여기 있는 모두가 임무를 완수하고 다치지도 않고 살아 돌아올 확률?
지구상의 모든 신의 가호를 받아 모든 총알이 빗겨나간다면 모를까.
희박하다.
주변에 있는 누군가를 잃는다는 건, 아주 고통스러운 일이 될 테니까.
생각할 시간도 아주 잠시, 멀리서 조교 한 명이 먼지를 일으키며 헐레벌떡 뛰어오고 있었다.
아주 급한 일이라도 있는 듯.
“급한 전달사항 전파가 있다. 모두 연병장으로 집합.”
표정을 보니 예사롭지 않은 일인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