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민국 전쟁영웅이 되었다-8화 (8/149)

8화. 침투(1)

“상부 부대 전파사항이다. 작전과 관련된 내용이니 모두 집중하도록.”

한성룡 소령.

다신 못 볼 것처럼 가더니, 그새 또 보네?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아냈다.

“현재 적 원산 3사단, 3.8 경비사단, 특수사단 3개 사단이 내금강 국사봉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첩보가 들어왔다.”

침투에 가장 기본 중 기본이 기밀 유지다.

적 3개 사단이 움직였다는 것은 이미 정확한 정보가 새어 나갔다는 악재 중 악재였다.

제기랄.

대체 희소식은 언제쯤이나 들을 수 있을까.

“작전은 중지되는 겁니까?”

혹시라도 알고 있는 과거와 현재가 달라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다.

사실 뇌와 머리라는 게 달렸다면 작전 중지가 당연하다는 것을 모를 수 없다.

아무리 고도로 훈련된 특수부대원들 일지라도 결국은 사람이다.

2개 대대 250명으로 3개 사단 포위망을 뚫고 침투한다?

북파 특수부대가 아닌 자살특공대나 다름없다.

작전이 중지되냐는 질문에 모두가 한성룡 소령 입에서 나올 말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게···”

한성룡 소령이 말을 쉽사리 이어나가지 못하고 뜸을 들였다.

보나마나였다.

뜸 들인 것이 대답이었다.

그 뒤에 이어질 말을 예상하는 건 전혀 어렵지 않았다.

“지원대대로 편성된 2대대, 3대대는 지속적인 작전을 위해 일단 대기한다. 여기 모인 1소대는 예정되었던 작전 시간보다 빨리 5대대, 6대대가 침투한 틈을 이용, 첩보 임무를 완수하라는 지시다.”

‘어떤 귀하신 분 머릿속인지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이라 생각하는군.’

그냥 닥치고 적진에 뛰어들란 말이었다.

“적 3개 사단이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다는 건 이미 작전이 노출된 것 아닙니까? 상부에서는 5대대, 6대대가 포위망을 뚫고 임무를 완수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겁니까?”

차라리 소수의 게릴라라면 어떻게든 그물 사이를 빠져나갈 틈이라도 찾을 수라도 있을 것이다.

250명이라는 병력은 적이 쳐놓은 그물을 절대 빠져나갈 수 없다.

“명령이다.”

“아직 5대대가 적 사단 포위망에 도달하려면 시간이 남지 않았습니까? 지금이라도 무전을 통해 철수를 명령한다면···”

“씨발. 명령. 명령이라고 이 새끼야! 명령이라는 말 못 들었어? 명령이라는데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1소대 출발은 내일 04시. 빠지고 싶은 인원은 빠져라. 그 어떤 책임도 묻지 않겠다. 그게 내 선에서 너희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배려다.”

한성룡 소령의 격한 불호령이 떨어졌다.

험한 말과는 다르게 입꼬리 주변 볼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반응을 보아하니 그도 분명 알고 있다.

이 작전이 얼마나 무모하고 성공 가능성이 희박한지.

본인이 교육한 병력을 사지로 내모는 것에 대한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해산! 열외 인원은 따로 보고 할 수 있도록.”

“1소대 해산!”

소대원들이 저마다 막사로 흩어졌다.

어쩌면 목숨을 버리라는 것을 작전으로 포장한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소대원 그 누구도 불평불만을 늘어놓지 않았다.

“부대장님, 따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한성룡 소령이 발걸음을 천천히 늘어트린 채 품에 있던 화랑 담배를 꺼냈다.

“자네도 한 대 태우겠는가?”

“예. 아까는 소대원들 앞에서 죄송했습니다.”

학연, 지연, 혈연만큼은 아니지만, 남자들끼리 통용되는 연.

흡연.

담배를 입에 문 뒤 불을 받아 붙였다.

-크억. 켁켁. 컥.

가슴 안쪽을 시작으로 폐, 기도로부터 기침이 연신 끌어 올랐다.

“자네 담배를 처음 태워보는가 보군.”

맞다.

난 비흡연자다.

발암물질 69가지와 유해 물질만 3000개 이상을 섞어놓은 게 뭐가 좋다고.

가끔 그런 생각은 한 적 있다.

톰 하디나 브래드 피트 같은 멋진 배우들이 느와르 영화에서 태우는 한 모금.

진짜 맛있게 빤다. 라는 생각은 해봤다.

담배는 한성룡 소령과 원활한 대화를 위한 매개체였을 뿐이다.

“억지로 태울 필요 없네. 그래서 할 말이라는 게 뭔가?”

말을 듣자마자 담배를 바닥에 던져버렸다.

“5대대, 6대대에 저희 1소대까지. 이 모두를 사지로 내몰 만큼 중요한 첩보가 있는 겁니까?”

“그 무엇이 사람 목숨보다 귀하겠나. 군에 몸담은 군인인 이상, 명령을 따르는 것뿐이지. 지금이라도 빠지고 싶다면 말하게. 연대장님께는 보고하지 않고 다른 부대로 보내주겠네.”

참, 말이라는 게 간사하다.

정작 공작원들은 계급, 군번도 없는데 지금은 또 군인이란다.

“5대대, 6대대는 지금 적 포위망에 대해 알고 있는 겁니까?”

부디 알고 있기를.

대대장들이 현명한 판단하기를 빌었다.

“5대대는 박달령 인근, 6대대는 가마골 도착 전 통신이 끊겼네. 아무래도 산골이 험한 탓에 통신이 잘 안되는 모양이야. 자네들을 급히 보내라는 것도 그 때문이겠지.”

목숨이 오가는 상황에 통신 장애라니.

이때만이라도 좋으니 내가 살던 시대였으면 좋겠다.

-카톡!

[한성룡 소령 : 5대대, 6대대 잘 침투하는 중?]

[5대대장 : 예. 현재 박달령 이상 없습니다.]

[6대대장 : 가마골 문제없습니다.]

[한성룡 소령 : 전파사항. 적 3개 사단이 포위망 형성 중. 여의치 않을시, 즉시 후퇴할 것.]

[5, 6대대장 : 알겠습니다. 충성!]

카톡 하나면 250명의 목숨이 살 수 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1소대 인원 10명만 작전에 투입 시켜 주십쇼.”

“흠··· 무슨 계획이라도 있는가?”

모든 걸 차치하고, 단 1%라도 성공 확률을 높이는 게 급선무.

짧은 시간이지만 꾸린 계획을 한성룡 소령에게 털어놓았다.

“이미 적이 촘촘한 포위망을 구축하고 있는 이상, 20명은 침투 중 발각될 확률이 너무 높습니다. 큰 물고기는 어부가 놓은 그물 사이를 아무리 발버둥 칠수록 더 옥죄여져 빠져나올 수 없는 법 아니겠습니까.”

“계속 말해보게.”

“또한, 너무 적은 수의 병력은 혹시 모를 적과의 교전에서 승리를 장담할 수 없으니 10명을 각 5명씩 1분대, 2분대로 편제. 신속히 5대대, 6대대와 통신을 복구한 뒤 사상자를 최소화하고, 상부에서 원하는 첩보 임무를 완수한다는 계획입니다.”

상부에서 하라는 그대로 작전 수행을 했다간, 그야말로 몰살이다.

2000년대야 뭐든 인공위성으로 내려다보면 그만이지만, 이 시대는 문서 하나, 심지어는 북한군이 피다 버린 담배꽁초 하나까지 모든 것을 공작원이 직접 침투해 가져와야 했다.

무엇보다 군이 이런 대규모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확인하고 싶은 첩보가 있음이 분명했다.

“어차피 상부에서 확인하고 싶은 첩보는 소련 극동군의 군수물자가 원산항을 통해 평양으로 가고 있는 것이 맞는지, 사실이라면 군수물자 수송을 저지할 도로, 터널을 파괴하는 것이 진짜 목적 아닙니까?”

한성룡 소령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 그거 진짜 비밀인데.

네가 그걸 어떻게?

딱 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네가 그걸 어떻게··· 5대대, 6대대는 만난 적도 없을 것이고. 군 수뇌부와 부대장인 나를 제외하면 아는 사람이 몇 없는 극비 사항인 것을.”

어떻게 알긴.

나노봇의 근현대사 역사 수업을 잠시 들었을 뿐이다.

“5대대는 동쪽으로, 6대대는 중부 고원으로 이동해 양덕, 고원을 최종 침투 목표로 삼은 것을 통해 예측했을 뿐입니다. 따라서 다른 임무들 사이에 가려진 진짜 임무는 원산항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자네 여기 오기 전, 아니 13연대에 지원할 때도 군 경험은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없습니다. 전혀.”

한성룡 소령이 나를 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전에는 그저 연대장의 낙하산, 지금은 침투 경로만으로 기밀까지 파악하는 엄청난 능력자를.

“좋네. 1소대 침투 임무는 자네가 원하는 대로 해보게. 내가 책임지지.”

“예. 충성.”

“아! 그리고···”

경례한 뒤, 돌아서는 뒤통수에 한성룡 소령의 말이 이어졌다.

“이강산이라고 했나? 꼭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오게. 지금 우리 군에는 자네 같은 사람이 꼭 필요하다네.”

나는 다시 뒤로 돌아 소리 없이 경례를 건넨 뒤 돌아섰다.

시간이 없거든.

***

시간이 없다.

살면서 시간이 가는 게 이리 야속했던 적이 있던가?

편하게 등 붙이고 자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겠지.

막사로 들어서자마자, 소대원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전부 집중하시길 바랍니다. 작전 계획이 변동되었습니다.”

소대원들이 나를 빙 둘러 원을 만들었다.

“소대장님. 저희한테 말 편히 하시지요. 암만 계급도 군번도 없다 해도, 명색이 우리도 군인 아닙니까. 그게 저희도 편합니다. 다들 안 그렇습니까?”

모든 소대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교양있는 현대를 살아온 사람으로서 반말이 쉽지가 나오지 않았다.

최소 5살, 6살씩은 많아 보이는 얼굴을 한 소대원들 얼굴도 한몫했다.

“알겠다. 모두 집중.”

나 반말 잘하네?

“가장 먼저 작전에 모두가 참여하지 않는다. 침투조 10명이 5대대 뒤를 빠르게 쫓아 접선, 나머지는 지원조로 38선 인근에서 대기한다. 위험한 임무인 만큼, 침투조 지원자 우선 거수.”

‘이런’

거수라는 말에 19명 모두가 손을 번쩍 들고 있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의 가장 큰 무기가 애국심이라는 걸 잠시 잊었다.

“이렇게 모두 선뜻 지원해주니 고맙네.”

모두에게 악수를 청했다.

[85BPM], [92BPM], [117BPM]···

악수할 때마다 나노봇이 상대방의 심박 수를 알려왔다.

심박 수가 높다는 건 곧 긴장하고 있음을 의미.

긴장은 비상 상황에서 실수로 연결되기 쉽다.

일단 심박 수가 평균보다 높은 여섯 명 제외.

“담배 태우는 인원 거수.”

산에서 담뱃불, 담배 연기는 아주 먼 거리까지 영향을 끼친다.

흡연자가 긴장의 연장인 침투 중 흡연을 참는 것 또한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올 것이다.

흡연자는 딱 네 명. 제외.

이로써 제외된 10명을 지원조로, 나머지 10명을 침투조로 편성을 마쳤다.

“나를 포함한 우측 네 명은 침투 1분대. 나머지는 2분대. 2분대 분대장은 김철우가 맡는다. 현시간 부로 지원조는 침투조 군장 및 보급품을 재확인하고, 지원조의 식량 절반을 침투조 군장에 옮길 수 있도록.”

“예!”

지원조가 부리나케 막사 밖으로 나갔다.

이제 남은 건 결의 다지기나 장엄한 출정사 따위가 아니다.

‘야전교범에서 침투 관련 정보 검색해.’

[야전교범 내 침투 관련 키워드를 검색합니다. 검색결과 32건이 검색되었습니다.]

물론 마음가짐을 다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생존에 더 중요한 건 교육과 훈련이다.

현대의 특수부대들은 침투를 위해 수개월, 수년을 훈련하고 몸에 익힌다.

우리는 그럴 시간이 없다.

“지금부터 침투조 전원은 소대장이 하는 말을 모두 뼈에 새긴다. 뼈에 새긴 말들이 우릴 살려줄 것이다. 일단 가장 기본적인 침투요령부터···”

그 두꺼운 현대 야전교범을 모두 이해하고 실행하는 건 불가능하다.

지금 침투 작전에 맞게 필요한 요점만 모아 압축,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다.

나노봇이 있더라도 극한의 집중력을 발휘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집중하고 있는 침투조 또한 마찬가지였다.

모두의 눈이 살아온 그 어느 순간보다, 이글거리며 반짝이고 있었다.

사는 것과 죽는 것.

정반대의 간극이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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