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침투(2)
평범한 인간이 보편적으로 몰입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대략 1시간 이내.
학교나 교육을 50분 수업 후 10분 쉬는 이유도 그 이유에서이다.
그런데 말이다.
만약 누가 목에 칼을 들이밀어 협박하고, 총을 입에 처넣고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몇 시간이고 버티며 보편성을 초월한 집중력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지금 1소대 침투조처럼.
몇 시간 뒤, 제발로 적이 짜놓은 그물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쯤이면 작전에 대해 충분히 하달한 것 같은데, 어렵거나 더 궁금한 인원 있나?”
햇빛이 비집고 들어오던 막사 틈 사이엔, 햇빛이 더는 들지 않은 지 오래였다.
무려 다섯 시간.
다섯 시간 동안 그 누구도 막사를 빠져나가지 않았다.
심지어는 화장실조차도.
내가 다섯 시간을 쉼 없이 떠들어댈 수 있는 인간이라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됐다.
“침투요령이 꽤 간단하면서도 구체적이고, 세밀합니다. 제가 관동군에 있을 당시 순찰, 침투 임무를 수차례 했지만, 이런 요령교육은 받지도, 듣지도 못했습니다. 소대장님은 군 출신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디서 교범에 가까운 이런 요령들을···”
역시나 질문자는 김철우였다.
그보다 군 출신이 아니라니.
무려 2회 입대 경력에 그 힘들고 어렵고 고달프다는 훈련병만 두 번째다.
“이번 임무를 성공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특별히 고안해 냈을 뿐,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까지의 모든 내용을 머리가 아닌 뼈에 깊게 새겨라. 더 질문 없으면 각자 돌아가서 군장, 개인화기 다시 한번 확인한 후 취침한다. 기상은 03시. 해산!”
수백 명의 장성급 군인들, 군 전문가들의 지식이 총망라된 교범의 일부긴 하지만, 지금 교범 일부의 저자는 내가 됐다.
표절이 아니라 참고한 거다.
조금 많이.
“소대장님, 혹시 편지 쓸 시간을 좀 주실 수 있겠습니까?”
처음으로 입을 연 1분대 박용덕이었다.
편지라는 말에 몇몇 인원의 표정이 한층 굳어졌다.
출동 전 편지는 유서의 의미.
“편지는 쓰지 않는다. 우린 죽으러 가는 게 아니다. 정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임무가 끝나고 직접 전하도록. 그래도 늦지 않을 테니까.”
오늘 밤은 정말인지 고요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폭풍이 오기 전 그러하듯, 구름 한 점 없는 전야의 밤처럼.
***
[현재 시각 02시 56분 53초··· 54초··· 55초···]
기상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사실, 밤새 쉴새 없이 들려왔던 소리다.
‘진짜 시작이군.’
남은 3분은 눈을 감았다 뜨는 것보다 빠르게 지나갔다.
“기상 시간입니다. 점등하겠습니다.”
기상이라는 말에 불이 켜지고, 모두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준비를 시작했다.
하품하거나 잠이 덜 깬 듯 눈을 비벼대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정비할 것은 군장만이 아니었다.
어젯밤은 마지막으로 각자의 신념을 다잡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2인 1개 조로 미흡한 점이 있는지,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연병장에 집결한다. 실시!”
군대는 왜그리 확인의 연속이었는지, 소대장이 되어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제 막사 밖으로 나서는 순간, 임무가 끝날 때까지 돌아올 수 없다.
-드르르르르르···
수송 트럭의 우렁찬 엔진음만이 유일하게 연병장의 적막을 깨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인민군복을 입은 소대원과 남한 군복을 입은 교관, 조교의 조화에 고개를 갸우뚱거릴 테지.
내가 보기에도 썩 조화롭진 않거든.
“준비됐나?”
“1소대 20명 전원 열외 없이 출동준비 완료했습니다.”
03시 55분.
한성룡 소령이 손에 종이 한 장을 쥔 채 연병장 사열대에 섰다.
“총참모장님이 직접 격려차 방문키로 하셨지만, 부득이 사정상 오지 못하셨다. 대신 여러분에게 훈시를 전하셨다. 흠흠.”
훈시?
명색이 총참모장인데 얼마나 거창할까.
“자주적인 정의감에 공산세력을 섬멸하기 위해 모인 여러분의 노고를 진심으로···”
지랄.
첫 줄부터 느낌이 별로다.
“여러분이 작전을 무사히 수행한 뒤 귀환한다면, 가족들의 생계는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여러분들이 무사히 돌아온다면 소대장은 소위 이상, 사병들은 상사 이상의 계급을 주기로 굳게 약속한다. 건투를 빈다. 이상! 소대장 인솔하에 차량탑승 하도록.”
소위 이상, 최소 소위부터.
이건 괜찮고.
“1소대 탑승.”
“소대장님?”
트럭에 타기 위해 뒤 발판을 발로 밟은 순간이었다.
“무슨 문제 있나?”
“저런 흔해 빠진 혀에 침도 안 발린 재미없는 말 말고, 저희끼리 끈끈해질 수 있는 뭐 그런 거 없습니까? 어제 보니 소대장님은 다르실 것 같아서···”
박용덕 말에 소대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고개까지 끄덕이면서.
“어떤···”
“그런 거 있지 않습니까. 빨갱이 새끼들 똥구멍에 총칼을 쑤셔 박자! 라던지 평양에 태극기를! 이런 거. 소대장님은 뭔가 다르실 것 같아서···”
박용덕 당신 이렇게 유머 있는 사람이었어?
물론 빨갱이, 똥구멍, 총칼이 내 유머 취향은 전혀 아니지만.
그의 유머에 소대원들이 처음으로 피식했다.
“우리는.”
지금부터 거창할 필요는 없다.
벌써 거창하면 나중에 높은 곳에 올랐을 땐 더 할 말도 없지 않을까?
“우리는!”
“반드시.”
“반드시!”
연병장이 쩌렁쩌렁 울렸다.
트럭 소리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살아 돌아온다.”
“살아 돌아온다!”
그래.
우리는 반드시 살아 돌아온다.
“1소대 전원 탑승!”
***
수송 트럭은 쉼 없이 달렸다.
중간중간 기름을 보급받는 순간과 하루에 두 번 화장실 갈 시간을 빼면 식사를 비롯한 모든 활동은 흔들리는 트럭 안에서 이뤄졌다.
5대대 6대대와의 격차는 3일.
빠르면 그들은 이제 곧 38선을 넘는다.
“서둘러야 해.”
침투는 단거리 달리기처럼 결승점을 향해 존나게 달린다고 능사가 아니다.
온 사방에 도사리고 있는 장애물과 위험을 피해 달리는 목숨을 건 장애물 달리기나 다름없다.
트럭에서 내려 얌전히 식사할 여유 따위?
없다.
-우 웩.
-우 욱.
“···등 좀 두들겨 주도록.”
더 할 말도 없다.
고난과 역경은 이미 시작이었다.
“죄···죄송합니다···”
심하게 덜컹거리는 트럭 뒤에서 밥까지 먹는데 멀미가 찾아오는 건 어쩌면 당연지사였다.
그리고 멀미엔 장사가 없다.
괜찮아.
아마 신도 여기선 멀미할걸?
생각 같아선 멀미에 효과 끝내주는 귀밑에 붙이는 멀미약이라도 주고 싶건만.
미안하게도 군장에 멀미약 따윈 없다.
밤과 낮이 계속 반복되며 시간이 흘렀다.
모든 고난과 역경에도 끝이 있듯, 멀미에도 끝은 있다.
마침내 트럭이 멈춰섰다.
“하차 지점입니다.”
“주목. 여기서부턴 작전대로 기도비닉을 최대한 유지한다. 가능한 의사소통은 수신호로, 부득이한 경우 아주 작은 소리로만 대화할 것.”
손바닥으로 몸을 쓸어 장비 확인하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물론 5대대, 6대대가 지나간 대청봉까지는 위험요소가 비교적 적지만, 침투조가 수신호를 완전히 숙지했는지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침투조 열 명이 모두 손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이상 없다는 수신호를 전해왔다.
‘거참. 침투하기 딱 좋은 날씨네.’
안개가 자욱한 가운데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남아 있는 지원조를 뒤로한 채, 머리 위로 팔을 던졌다.
[신체 강화 프로세스 정상 작동 중.]
출발 신호였다.
높고 험준한 이 태백산맥을 최대한 빨리, 조심히 넘어야 했다.
대청봉까지는 50분의 침투, 10분 휴식.
나노봇과 내가 혹시 모를 위험요소를 찾으며 선두로 침투하고, 그 뒤를 1분대, 2분대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따랐다.
‘괴물이 따로 없군.’
총과 장구류, TNT까지 간소화한 침투 군장이라 해도 20KG에 가까웠다.
벌써 침투 개시 6시간째.
다들 땀과 비에 군복이 젖고 숨이 조금 차오를 뿐이었다.
[현재 위치. 점봉산 해발 1424M 지점입니다.]
“잠시 휴식. 문제 있는 인원 있나?”
모두 조용히 허벅지와 종아리를 만지며 숨을 고를 뿐, 고개를 저어 이상 없음을 알려왔다.
점봉산, 대청봉을 비롯한 동쪽 지역 산은 해발 1000M가 넘지 않는 곳이 없다.
동네 뒷산도 아닌 험준한 산악 지형을 걷는 것도 아닌 시속 7KM에 가까운 속도로 침투하고 있었다.
이 정도 속도라면 내일 오후쯤?
대청봉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소대장님. 대단하십니다. 얼굴색 하나 안 변하시고.”
1분대 정병준이 아주 조심스러운 소리로 말을 건넸다.
“벌써 오늘 목표의 절반이나 도달했네. 지금 온 만큼만 더 가면 오색촌이 나올 걸세. 조금만 더 힘내도록.”
정병준이 쓴웃음을 지었다.
벌써 절반이나 왔네. 라는 말이 그리 힘이 되진 않은 모양이다.
사실 기색을 내비치지 않은 것일 뿐, 지쳐감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나노봇이 다리와 허리 근육을 강화해주지 않았다면, 진작 쓰러져 뒹굴었을 것이다.
‘고맙다. 나노봇 이 자식.’
[휴식 10분 경과.]
자리에서 일어나 머리를 두어 번 두들겼다.
집중하라는 수신호.
모두가 다음 수신호를 보내지 않았음에도 자리에서 일어나 출발할 준비를 마쳤다.
적지 한복판에 들어와 주변을 살피며 침투하는 건, 극심한 긴장과 피로를 동반한다.
그럼 에도 침투조는 수년의 전문적 훈련이라도 받은 듯 빈틈없이 사주경계를 하며 북상해 나갔다.
“정지!”
오색촌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이었다.
멀리서 분명 뭔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정지 수신호에, 모두가 엄폐물을 찾아 몸을 숨겼다.
‘나노봇 시력 강화 최대치로.’
[시력 강화 프로세스를 최대치로 변경합니다. 강화 프로세스 100% 가동 중. 대상과의 거리 231M]
작전 투입 후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그것도 인민군복을 입은.
제기랄.
예상 밖 상황이었다.
곧장 2분대장 김철우를 불러냈다.
“보이나? 2시 방향.”
김철우의 시력은 이미 사격 훈련 때 검증된 것이나 다름없다.
100M 거리에서 나무판자 끄트머리가 떨어져 나가는 것을 볼 정도였으니까.
“보입니다. 사람인 것 같은데···”
김철우에겐 형체만 보일 뿐 옷차림새까지 보이진 않는 모양이었다.
[대상과의 거리 227M]
“인민군복을 입은 사람일세. 우리 쪽으로 향하고 있네.”
“적입니까?”
“아직 확실치 않아.”
빌어먹을.
이대로라면 마주친다.
내가 말하고도 뭣 같은 상황이었다.
보편적으로 인민군복을 입고 있는 사람은 당연히 적이 맞다.
가까이 올 때까지 기다린 후 은밀히 처리하거나, 우리가 있는 방향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간다면 추가 침투 사실을 숨기기 위해 그냥 보내는 방법을 택할 수도 있다.
문제는 나와 침투조가 입은 옷은?
인민군복.
5대대, 6대대가 입고 있는 옷은?
인민군복.
우리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같은 단체복을 입고 있다는 소리.
젠장,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아군 식별 띠가 있습니까?”
아군끼리 오인 사격을 막기 위한 식별 띠.
시력을 최대한으로 강화했지만, 지금 거리에선 보이지 않았다.
방법은 하나, 지금보다 가까이에서 확인이 필요하다.
“2분대장, 내가 확인하고 오지. 침투조 전원 500M 뒤로 물려. 혹시 총성이 울리더라도 절대 사격은 안 돼.”
“알겠습니다.”
보통 이런 상황에선 소대장을 대신해 본인이 위험을 감수하겠다고 해야 하는 거 아니었나?
영화와 현실은 다르다더니.
내가 영화를 너무 많이 본 모양이다.
‘조금만 더···’
2시 방향에서 잠깐도 눈을 떼지 않은 채로 아주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대상과의 거리 97M]
[대상과의 거리 85M]
식별 띠가 적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작은 천을 견장 자리에 묶어 놓아서인지, 꽤 거리가 가까워졌음에도 잘 보이지 않았다.
[대상과의 거리 45M]
없다.
있어야 할 자리에 흰 천 쪼가리 따윈 없었다.
‘적이다.’
가는 것이 있으면 오는 법이 있는 법이다.
5대대, 6대대의 침투 사실을 알고 있는 적이 후방으로 침투했을 가능성이 충분했다.
‘돌아가서 계획을 변경해야겠어.’
확인을 마치고 돌아가려는 순간.
바로 옆 손닿을 거리에 다른 대상이 눈에 띄었다.
조용히 검지를 입에 갖다 댔다.
“쉿···. 우리 고라니 착하지? 그래그래. 쉿.”
그래.
네가 사는 곳에 내가 무단 침입했구나?
내가 잘못했어.
조용히 갈게? 제발.
-푸드득! 우지끈!
아주 조심스레 발을 땅에서 떼자, 고라니가 나뭇가지와 나뭇잎을 밟으며 힘껏 뛰기 시작했다.
“어이, 거기 너 누구네? 꼼짝 마! 손들어!”
저 염병할 고라니 새끼.
망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