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민국 전쟁영웅이 되었다-10화 (10/149)

10화. 침투(3)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돌발 변수들이 사방 천지에 깔려있다.

고라니라니.

이 넓고 넓은 태백산맥에, 하필이면 지금 내 옆에 고라니가 나타날 상황까지 생각하진 못했다.

그 누구도 그럴 테지만.

“쉿. 동무들, 당장 그 입 닥치라. 괴뢰군이 주변에 있을지 어떻게 알간. 어디 소속 아새끼들이길래, 작전 중에 목구녕 소리를 그리 크게 높이는 게야.”

언제 나무 뒤에 숨어 있었냐는 듯, 어깨를 펴 최대한 몸을 커 보이게 만든 채 앞으로 걸어나갔다.

아주 위풍당당하게.

그리고는 고라니에게 했던 것처럼, 검지를 입에 가져다 댔다.

임기응변.

모든 상황을 예상할 수 없다면, 처한 상황에 맞춰 즉각적으로 대처하는 능력.

지금 이곳에서 총성이 나는 경우와 나지 않는 경우.

작게 보면 그저 소규모 교전일 수 있지만, 크게 보면 작전의 성공과 실패 여하가 달려있다.

“꼼··· 꼼짝 말고, 손··· 손들라.”

옳지. 착하지?

야속한 고라니, 임자는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지만, 이자들은 내 말을 들어 줄 것이라네.

눈앞에 있는 이 인민군의 목소리는 호통을 들은 뒤 한풀 죽어 있었다.

밀렸을 때, 확실히 더 밀어붙인다.

내가 위장해 입은 인민 군복엔, 상위 견장이 붙어 있었다.

손으로 견장에 먼지를 털어내며 말했다.

“당장 그 총 못 내리네? 하전사가 군관에게 총을 겨눈다··· 계급을 무시하는 행동은 나아가 위대한 수령 김일성 원수님과 당을 무시하는 행동, 즉 즉결처형감이라는 걸 모르지 않을 겐데.”

“결례 죄송 합네다. 군관 동무. 괴뢰군 놈들이 침투했다고 하여, 후방으로 침투해 정보 보고하라는 명을 받고 임무 수행 중이었습네다. 깜짝 놀라 그런 것이니 이해해 주시면 안 되겠습네까?”

두 명의 인민군이 서로 상황파악을 하는 듯 서로를 연신 바라보다 마침내 총을 내렸다.

이제 조용히 서로 갈 길 가는 일만 남았다.

“내 당에서 지시한 특별비밀임무를 하달받고 괴뢰군들의 뒤를 잡아 쫓고 있었다네. 내 동무들 노고를 모르지 않는바, 이번 딱 한 번만 넘어가 주겠네. 조심하는 게 좋을 게야. 다른 군관들에게 그리 했다간, 그 머리통에 바람구멍이 날 테니. 그럼 이만 수고들 하게. 동무들.”

남북한을 통틀어 할 말 없을 때 특별, 비밀, 기밀은 그 무엇보다 좋은 핑계가 되는 듯했다.

“군관 동지.”

우리 사이에 더할 말이 남았던가?

뭔가 불안감이 엄습했다.

계산을 정확히 끝냈는데, 가게 주인이 뒤통수에 대고 손님을 다시 부르는 것처럼.

“저희도 위에 보고할 말거리가 필요 합네다. 간단하게 관등성명만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네다.”

음.

이 감정은 호림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느껴본 적 있었던 감정이다.

좆됐다.

원산 3사단, 3.8 경비사단, 특수사단.

셋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

그리고 맞춰야 한다.

맞추지 못하면, 지금까지 배우 뺨 때릴 연기가 이들의 화만 돋운 셈이 된다.

“특수사단 직할대 소속 이강산 상위네.”

관등성명을 나중에 확인한 들, 나는 이미 임무를 끝내고 다시 돌아간 뒤일 것이고 사단 내 수많은 연대, 대대까지 구구절절 말하는 것보다 직할대라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판단이었다.

“이강산 상위 동무.”

응?

“뒤돌아서 손들라! 이 상간나새끼야. 어디서 간사한 혓바닥으로 공화국 전사를 속이려 하네? 동무가 말한 특수사단은, 이미 국사봉에서 고지에 매복해 괴뢰군 놈들을 기다리고 있어. 여기서 국사봉까지 거리가 얼마인지나 알고 있네?”

사람이 어떻게 항상 정답만을 맞추겠는가.

매사 자신이 택한 답이 오답이 아니길 바랄 뿐이지.

지금 저 동무들, 속을뻔해서 그런지 화가 많이 난 모양이다.

‘나노봇, 신체 강화 프로세스에 모든 나노봇을 가동할 수 있나?’

[신체 강화 프로세스 초월 모드 1분 유지 가능합니다. 초월 중 복구 프로세스는 자동 종료됩니다.]

그 어떤 인간도 500M/S 이상의 속도를 자랑하는 소총의 총알을 지척에서 피하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지금은 선택지가 이것뿐이다.

‘초월. 실시해.’

[신체 강화 프로세스 초월 모드를 실행합니다. 10. 9. 8. 7. 6···]

그때였다.

나무 뒤에서 사람 신형 두 개가 나타나 인민군들의 목 부분을 쓸었다.

김철우와 2분대원 정성진이었다.

[사용자의 안전을 위해 초월 모드 실행을 중지합니다. 충격 완화 프로세스 가동.]

죽음의 시작은 그저 어느 한 점이었다.

그 한 점에서 빨간 액체가 몽글거리며 나타났다.

점은 곧 점끼리 모여 선을 이뤄냈다.

선이 완성되자, 폭우에 무너진 둑처럼, 좁은 구멍 틈에서 나오는 강한 폭포수처럼 빨간 액체를 뿜어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인민군 두 명이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얼굴을 바닥에 박고 쓰러졌다.

아주 짧은 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소대장님! 소대장님··· 괜찮으십니까? 정신 차려 보십쇼. 소대장님!”

멍했다.

낮은 곳과 높은 곳에의 고도차로 귀와 정신이 멍해진, 그런 기분과 느낌이었다.

손 뻗으면 닿을 가까운 거리에서 목이 잘려 죽는 사람을 보는 기분이란, 이런 것이었다.

“소대장님!”

김철우가 내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멍해진 기분도 아주 찰나였다.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던 시간도 다시금 제 속도를 찾았다.

“괜찮네. 다른 인원들은?”

“명령대로 최초관측 위치 기준 500M 뒤에서 대기 중입니다. 큰일 날 뻔했습니다. 괜찮으십니까?”

나노봇이 제때 충격완화를 해주지 않았다면, 그 영향이 어땠을지는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괜찮다니까. 여길 정리하고 곧장 출발한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어.”

“놀라셨다면 죄송합니다. 부득이 칼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죄송하긴, 김철우가 아니었다면 피 뿜으며 쓰러져 있는 게 내가 아니라는 보장이 없다.

김철우는 생각보다 냉철하고, 판단력이 좋은 군인인 것 같았다.

“김철우. 비켜.”

“예?”

김철우가 단번에 비키지 않자, 강하게 그를 옆으로 밀어낸 뒤 재빨리 소총 가늠쇠에 눈을 가져다 댔다.

타앙-!

메아리치듯 울리는 총성과 거의 동시에 멀어지던 신형 하나가 그 자리에서 풀썩 쓰러져 내렸다.

먼 거리에서 숨소리도 내지 않은 채 숨어, 모든 상황을 보고 달아나던 인민군이었다.

“출발하지.”

그토록 참아왔던 총성이.

듣고 싶지 않았던 총성은 나 스스로가 방아쇠를 당김으로써 일어났다.

자기 자신과의 전쟁을 극복하는 것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까와는 달리 시간이 늦게 가지도, 멍하지도 않았다.

그래.

그렇게 점점 익숙해져 가는 거겠지.

***

얕은 구덩이를 파서 목이 잘려버린 인민군 시체를 땅에 묻었다.

적으로서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아량이기도 했지만, 혹여나 총성을 듣고 침투조를 추격할지 모르는 추격대에게 혼선을 주기 위한 목적이 더 컸다.

“시간이 꽤 지체됐다. 향로봉에서 앞선 대대와 통신을 시도한다. 빠르게 전파할 것.”

38선을 넘는 순간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수신호를 보내 출발을 알렸다.

최종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이미 뚫어놓은 5대대 침투 경로대로 침투하고 있지만, 사실 더 급한 쪽은 6대대다.

5대대보다 열흘은 먼저 전멸하니까.

먼저 위기를 맞는 6대대 뒤를 쫓는다면 작전 성공률은 더 희박해진다.

5대대는 국사봉에서 최후의 결전을 벌였던 반면, 6대대는 그에 비해 절반도 북상하지 못한 가마골에서 포위를 당하고 만다.

최대한 빨리 속초를 지나 향로봉 가장 높은 고지에 올라 6대대와 통신, 현 상황을 알리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최선이다.

“소대장님, 잠시 쉬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분대원들의 피로도가 상당합니다. 다리에 통증을 호소하는 분대원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뒤쪽에 있던 김철우가 옆으로 다가와 속삭였다.

“알겠네. 엄폐물 찾아 휴식하고, 경계조는 사주경계 철저히 하도록.”

“알겠습니다.”

대청봉에서 만난 적은 단순한 시간 지체 이외에 더 큰 피로도를 우리에게 선물했다.

후방으로 침투한 적이 더 있을 수 있기에 경계를 강화하며 북상해야 했고, 대청봉에서의 총성이 어떤 나비효과로 다가올지 알 수 없었다.

향로봉이 코앞인데.

아쉬움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슬슬 체력적 한계에 도달하고 있음이 분대원들 얼굴에 드러났다.

평균적인 침투 속도였다면 아직 힘이 남아돌고 쌩쌩할 그들이었음에도, 체력을 앞당겨 쓴 탓이 컸다.

“오늘은 내일을 위해 이곳에서 개개인 호를 파고 휴식한다. 경계에 틈이 있어선 안 된다. 2분대장, 잠시 이쪽으로.”

원산항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임무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추격해오는 추격대를 따돌리고 접선 장소까지 향하려면 10명의 침투조가 한 몸인 것처럼 움직여야 한다.

부상은 개인뿐 아니라 전체에게 치명적이기에 내린 결정.

“경계병을 제외한 분대원들 충분히 휴식시켜. 여기까지 오면서 개미 한 마리 만나지 않은 건, 놈들의 추격대가 있었다 해도 아직 우리 경로는 노출되지 않은 것 같으니. 나는 다녀올 곳이 있어. 출발 전까지 돌아올 테니 다녀올 때까지만 임시 소대장을 맡아주게.”

김철우가 허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반문했다.

“분대원 한 명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우리에겐 아주 치명적입니다. 하물며 소대장님이 없다면 이 작전은 절대 성공할 수 없습니다. 가셔야 하는 곳이 어딘지는 묻지 않겠습니다만, 소대장님도 많이 지치셨을 겁니다. 휴식하셔야 합니다.”

“만약을 대비해 1분대 무전기를 챙겨 가겠네. 아무 문제 없이 다녀올 테니, 어서 가서 쉬게.”

적지 한가운데서 분대를 이탈하겠다는 것이 이해되는 군인은 없을 것이다.

그래야만 할 이유가 있기 전까진.

현재 위치인 향로봉 진입로에서 6대대가 있을 가마골 인근까지 거리는 대략 40km.

AN/PRC-9 무전기의 통달 거리는 대략 7~8km다.

대략 편도 30km, 왕복 60km를 5시간 안에 달리면 6대대와 통신을 시도해 볼 수 있다.

미친놈 소리 듣기 딱 좋은 계획.

120명이 넘는 6대대가 궤멸할 것을 알고 있는 이상,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말이 휴대용 무전기지 총알이 떨어지면 투척 무기로 써도 될 만큼 무거운 AN/PRC-9를 등에 메고 달렸다.

나뭇가지나 돌에 몸이 긁히는 것은 신경 쓰지도 않은 채 달렸다.

노출되지 않는 한 최대한 직선거리로.

빠르게.

“후···”

신체 강화를 하고 있음에도 숨이 차올랐다.

2시간 7분.

정확히 2시간 7분 만에 가마골과 가까운 산봉우리에 도착했다.

숨 돌릴 틈도 없이 송수화기를 들었다.

“호랑이, 호랑이 여기는 그림자. 응답하라.”

“호랑이, 호랑이 여기는 그림자. 응답하라.”

“호랑이, 호랑이 여기는 그림자. 응답하라.”

···

틀린 건가?

서둘러 돌아가야 한다.

“제기랄···”

-치이이이익. 치익

무전기에서 잡음 섞인 수신음이 들려왔다.

-여기는 호랑이. 그림자 신원을 밝혀라.

가마골에 있는 호랑이를 찾은 것 같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