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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전쟁영웅이 되었다-13화 (13/149)

13화. 원산항

국사봉 고지를 무사히 빠져나오자, 작은 물고기도 빠져나갈 수 없을 것 같았던 북한군의 그물은 군데군데 터지고 찢어진 허름한 그물로 변해있었다.

그 사이를 헤집고 북진하는 건 지금까지 해온 작전에 비하면 그저 쉬운 장난에 불과했다.

“포위망을 뚫었다 해서 긴장을 늦추면 안 된다. 다시 남으로 돌아갈 때까지 초심과 같은 정신 상태로 작전에 임한다. 그리고 여기에 우리를 위해 희생한 5대대, 6대대 대원을 기리는 무덤을 만들어 주자.”

무덤을 만들라는 지시에 모두가 근처에 있는 돌, 나뭇가지를 주워오기 시작했다.

땅을 깊숙이 파고, 그 안에 시신을 넣는 무덤이 아니다.

시신을 수습할 수도 없거니와, 땅을 팔 시간도 없었다.

5대대와 6대대가 대청봉 1708고지에서 각자의 침투로로 헤어지기 전 손톱과 머리카락, 담배 종이를 안에 넣고 돌을 쌓아 동지들의 생 무덤을 만든 것 대신, 돌과 나뭇가지를 쌓아 그 안에 절대 잊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심어 넣었다.

“목표 지점이 코 앞이다. 빨갱이 총탄에 스러져간 동지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임무를 완수하자. 그리고 살아서 그들의, 우리의 업적을 알리자.”

아. 이런.

눈물샘이 참아왔던 고통을 눈물로라도 쏟아내라는 듯 눈물을 밀어냈다.

참아야 했다.

지금은 눈물을 보일 때가 아니다.

[변연계 호르몬 양을 조절합니다. 50%]

‘안 되겠어. 조금 더.’

[40%]

나노봇이 뇌에서 감정을 담당하는 변연계 호르몬을 40%까지 조절하고 나서야 눈물샘이 말라 갔다.

주변을 둘러보니 거의 모든 조원의 눈시울이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적어도 지금만큼은 빨리 출발 준비를 하라며 재촉하고 싶지 않았다.

“소대장님, 참 이 전쟁이라는 게 신기하지 않습니까?”

김철우가 조용히 말을 걸어왔다.

그도 눈물을 훔쳤는지 소매 끝이 살짝 젖어있었다.

“우리는 고작 이틀, 그것도 총 몇 번 쏴본 게 다인 훈련 상태로 북파했습니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소대장님의 기적적인 계획과 명령이 있기에 가능했습니다. 너무 자책하거나 슬퍼 마십쇼.”

그새 봤어?

변연계 호르몬을 조절하는 그 짧은 찰나에 서렸던 표정과 눈물을 본 모양이다.

“그 어떤 위대한 지휘관이나 장군들도 모든 병력을 살릴 순 없는 법입니다. 한데 보십쇼.”

김철우가 침투조 한명 한명을 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저기는 어디에 머리를 박았는지 머리를 붕대로 둘둘 감고 있고.”

“저기는 어디 혼자 좋은 곳이라도 다녀왔는지 군복이 반은 찢어져 온데간데없고.”

“아, 이건 비밀인데 저기 앉아있는 분대원. 사실 담배 태운답니다. 하루에 두 갑씩. 지금껏 아무 티 내지 않고 참고 있는 것이죠.”

이 정도면 먹이는 건가?

사실 이곳까지 오면서, 상태가 멀쩡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조차도 속은 문제 없었지만, 겉은 치료되지 않은 여기저기 긁히고 잘게 찢긴 상처로 가득했다.

“하고 싶은 말이 뭐지?”

“머리를 다쳤어도, 옷이 찢어져도, 담배 없이는 못살던 놈이 참아내며 살아있는 것도. 모두 소대장님 덕이라는 겁니다. 진짜 명예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진짜 명예라···”

진짜 명예.

사람마다 명예에 대한 생각은 각각 다를 것이다.

대답을 조금 뜸 들이자 김철우가 대답을 이어나갔다.

“진짜 명예를 얻으려면 위가 아닌 아래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들 눈빛을 보십쇼. 소대장님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면, 불지옥에라도 따라 들어갈 겁니다. 아래가 위를 진심으로 따를 때, 명예를 얻게 되는 겁니다. 소대장님은 이미 우리에게 명예를 얻으셨습니다.”

오글거리긴.

하지만 싫지 않았다.

벌겋게 물들었던 눈들에서 더는 눈물을 찾아볼 수 없었다.

눈물 대신 그 자리를 채운 건, 비장함을 되새기는 각오였다.

“출발 준비. 더 쉰다고 나아질 건 없다.”

대답 대신 들려온 출발 신호에 그 누구도 기분 나쁘거나 힘든 내색을 보이지 않았다.

“출발.”

언제나 그랬듯 머리 위로 손을 뻗어 내렸다.

그리고는 뒤를 돌아 웃음 지었다.

처음으로.

***

“소대장님. 드디어 바다입니다! 바다! 바다가 보입니다.”

지구의 70%는 바다라는데, 바다를 보는 게 이렇게 흥분되고 기쁠 줄이야.

이젠 산이라면 지긋지긋했다.

수많은 위험을 제치고, 마침내 회양, 고산, 안변을 지나 원산 앞바다에 도착했다.

시야엔 저 멀리 원산항도 눈에 들어왔다.

회양, 고산, 안변을 지나 침투하는 건 국사봉에 도착하기보다 오히려 쉬웠다.

침투가 오히려 쉬웠던 건, 6대대를 전멸시키고, 5대대가 모두 흩어져 남쪽으로 향하자 북한이 인제군 전역에 걸린 비상을 철회했기 때문.

북한군은 국사봉에서 포위망을 빠져나가 북진한 침투조가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있을 것이다.

“2분대장, 우리가 가진 TNT가 얼마나 되지?”

“인원당 10KG 씩. 100KG 쯤 될 겁니다. 빨갱이 새끼들이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첩보가 사실인 것 같습니다.”

김철우가 이를 악물었다.

“일단 사진기로 사진 정보부터 수집하게.”

원산항에는 평원선을 통해 북한 각지의 군부대로 흩어질 수많은 군수물자가 쌓여 있었다.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문제는 TNT가 너무 적다는 건데···’

원산항은 동네 작은 어선들이 모여 자급자족하는 용도의 작은 항이 아니다.

평원선을 통해 군수물자를 이동, 보관할 만큼의 큰 규모를 가지고 있기에, 고작 TNT 100KG으로는 심각한 타격을 입힐 수 없다.

TNT 설치, 폭파는 반드시 야음을 틈타야 한다.

시간이 어둠을 몰고 오기 전,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 어떤 고난과 역경도 극복하는 영화 속 주인공처럼.

영화?

영화를 생각하다 보니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실제로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나노봇, 영화 스텔스 검색해줘.’

[스텔스를 영화 카테고리에서 검색합니다. 검색 결과 1건.]

머릿속에 영화 스텔스가 상영되듯 선명하게 떠올랐다.

오래전, 케이블 TV에서 봤던 개연성은 개나 줘버린 채 볼거리만을 챙긴 3류 영화.

‘빨리 재생해··· 더 빨리. 더 빨리··· 여기. 그만. 이거 현실에서도 가능해?’

빠르게 감기던 영화가 순간 어느 한 장면에서 멈췄다.

미군의 무인 연료 보급선이 교전에 휘말려 연료를 공중에 뿌리며 비행한다.

공중에 뿌려진 연료에 불이 붙고, 불길이 거대한 연료 보급선을 흔적도 없이 날려 버린다.

[자체 시뮬레이션 결과. 최소 필요 연소 온도 2,000도 이상. 테이밋 계열 소이탄 사용 시 성공률 72%]

전부터 느껴왔던 건데.

가끔 재수 없을 때가 있다.

불가능을 참 고급스럽게 돌려 말하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다.

고민을 비웃기라도 하듯 어둠이 슬그머니 다가오고 있었다.

2분대와 함께 정보 정찰을 나간 김철우가 돌아왔다.

“고생했네.”

“아닙니다. 현재 원산항에 경비 병력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엿들어 보니 인제군에 걸린 비상이 해제되면서 경비 병력도 다른 곳으로 빠져나간 것 같습니다.”

듣던 중 다행이다.

적의 숫자는 적으면 적을수록 좋으니까.

“군수창고도 조금 확인해 봤는데 서쪽에는 유류창고, 남서쪽에는 탄약 창고가 있었습니다. 동쪽은 경비가 비교적 삼엄해 야음을 틈타 침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잠깐. 유류창고와 탄약창 사이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알고 있나?”

“눈대중으로는 그리 멀지 않아 보였습니다. 물자가 워낙 많은 탓에 창고 밖까지 물자를 쌓아 놓은 것 같았습니다.”

머릿속을 때리는 종이 울렸다.

예술적 영감이 떠올랐달까?

나노봇이 내 영감이 예술이 맞는지 확인해 줄 차례였다.

[성공 확률 92.7%]

김철우에게 계획을 전달하며 밤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

밤 11시.

시끄러운 기계 소리와 파도 소리가 뒤섞여 시끌벅적했던 원산항엔 가끔 부딪치는 파도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점검 결과.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벌써 도화선을 3번이나 점검했다.

관객의 눈물을 짜내려는 장치로 쓰는 도화선 문제로 인한 불발을 애초에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미리 정해둔 수신호를 뿌리자, 침투조 전원이 야음을 틈타 그림자가 되었다.

“1번 완료. 2번 완료. 3번 완료···”

정해진 장소에 TNT 설치를 마친 조원들이 연속해서 설치 완료 수신호를 보내왔다.

밤이 오기 전까지 TNT 설치만을 연습한 터라 이미 모두 설치에 숙달되어 있었다.

‘좋아. 모두 복귀’

9명의 조원이 모두 복귀한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금 그들이 왔던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가뜩이나 부족한 TNT가 하나라도 불발이 된다면, 성공률은 급격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마지막 확인.

설치가 완벽한지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했다.

‘하··· 다행이군. 다시 확인하길 잘했어.’

1개의 TNT에 도화선이 제대로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누가 했는지는 중요치 않다.

문제를 발견했고, 그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에 안도했다.

“고맙네.”

확인을 마치고 재빨리 침투조가 대기하고 있는 곳으로 빠져나오자, 김철우가 잘린 철조망 아랫부분을 들어주고 있었다.

각각 개인이 가지고 있던 200M 길이 도화선을 모두 하나로 연결했다.

“철수.”

도화선이 닿는 한 최대한 멀리 떨어져 몸을 숨겼다.

물론 폭발 후폭풍이 미치지 않고, 후퇴에 유리한 곳을 미리 선점했다.

“모두 잘 보게. 호림부대원의 피로 만들어낸 결과물을.”

-철컥.

손에 쥐고 있던 격발장치를 힘껏 눌렀다.

모두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빨갛다 못해 검붉은 화마의 폭발이 서쪽에서 점차 남쪽으로 번져 나갔다.

서쪽에 있는 유류고로 시작해 남서쪽 탄약창으로.

고막을 찢을 듯한 폭발음이 질 수 없다는 듯 그 뒤를 이었다.

쾅! 쿠르르르르 콰과광!

국사봉에서 듣고 느꼈던 폭발과는 비할 수도 없이 큰 폭발이었다.

화마는 군수물자, 사람, 심지어는 원산항에 있는 건물까지 그 어느 것도 가리지 않은 채 잠식해나갔다.

쾅!

마지막이 아니었다.

몇 번인지도 모를 폭발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연쇄적으로 계속됐다.

서쪽에서 남쪽을 향했던 화마는 더는 동서남북 따위 가리지 않았다.

“100KG TNT로 이런 폭발이 일어나다니··· 하늘이 도운 것 같습니다.”

하늘이 돕긴.

내가 하늘이라면 모를까.

철저히 계산된 TNT의 정확한 위치와 개수.

우선 폭발 지점까지.

한 치의 우연 없이 모든 것은 나와 나노봇에 의해 설계된 것이었다.

다이너마이트는 서쪽 유류고와 남쪽 탄약창에만 설치되어있었다.

이어지는 연쇄 폭발이 마치 원산항 전체에 빼곡히 다이너마이트를 설치한 효과를 냈다.

“사진만 남긴 뒤 어서 돌아가세. 38선 이남에 도착할 때까진 긴장을 늦춰선 안 돼.”

사진기 렌즈를 통해 불타는 원산항을 보니 알겠다.

‘폭발 광 마이클 베이가 왜 연쇄 폭발은 예술이라고 했는지.’

임무를 완성하고 남은 건 무사히 귀환하는 것뿐이었다.

불가능하다고 느꼈던 지금 임무와는 달리 귀환은 너무도 쉽게 느껴질 뿐이었다.

뒤돌아섰음에도 낮보다 뜨겁고 아름다운 밤은 우리를 계속 감쌌다.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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