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쥐 잡기
“가타부타는 가면서 따지도록 하지.”
철모를 허리춤에 챙긴 뒤, 함준호 대령이 신속히 차량에 몸을 실었다.
지휘관으로서 전방에 있는 적을 마주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 보였다.
목표지는 종현산.
38선 남과 북의 경계를 가르는 산이었다.
“자네, 쥐를 잡기 전에 놈들이 왜 종현산을 선택했는지 알 수 있겠는가?”
종현산은 적의 정찰이나 소규모 도발이 빈번하던 곳이다.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다.
쥐를 잡을 덫이나 쥐약을 가지고 있냐를 묻는 것처럼 들렸다.
“종현산은 38선 경계에 위치해 북에서 그리 침투하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반면에 좌측으로는 동두천, 우측으로는 포천을 가르는 전선의 중심지 아니겠습니까. 적이 중서부 전선 주공로로 삼기 아주 좋은 곳입니다.”
“정확하네. 덕분에 적 게릴라가 아주 판을 치는 곳이지. 토벌과 추격이 아주 쉽지 않아. 게다가 이번엔 군관급 인사가 직접 종현산까지 내려와 정찰이라니···”
이미 국군 1연대, 9연대가 종현산 좌측과 우측에 주둔하고 있음에도 그들을 소탕하지 못하는 건, 순전히 게릴라에 대응하는 능력 부족만은 아니었다.
종현산을 기점으로 좌측 동두천 정면을 1연대.
우측 포천 정면을 9연대가 맡고 있었다.
“산악지형인 점, 관할구역 지형 특성상 9연대와 연계 작전이 쉽지 않고, 빨갱이 놈들이 분대 이하 병력으로 치고 빠지는지라 힘든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연대장님.”
쥐새끼를 발견했다고 한들, 산에서 잽싸게 움직이는 쥐 2~3마리를 찾아내기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정확히 알고 있군. 정말 쥐새끼를 살려서 잡아 올 수 있겠는가?”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산 채로 잡는 것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까.
“물론입니다. 대신 몸이 날래고, 작전 투입 경험이 풍부한 인원을 2명만 추격대로 제게 붙여 주십쇼. 반드시 쥐새끼를 잡아 오겠습니다.”
“2명? 고작 2명으로 가능하겠는가?”
크기만 한 무디고 녹슨 칼로 찌르는 것보다, 작지만 날이 제대로 서 있는 칼로 찌르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원산항에서 10명을 추려 침투한 이유와도 같았다.
“칼도 저마다 용도가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쥐를 잡는 데는 저 포함 3명의 추격대면 충분합니다.”
“알겠네. 믿어보지. 대신 한 가지 조건이 있네. 상황이 여의치 않는다고 판단되면 그 즉시 돌아오게. 오랜만에 만난 유능한 장교를 고작 쥐 잡는 일에 쓰다 잃고 싶진 않으니.”
“물론입니다.”
원산까지 침투해 무사히 돌아왔던 나다.
종현산에 들어가 쥐를 잡는 것은, 그저 뒷마당 구경에 불과했다.
***
종현산 인근 1연대 주둔지.
“자네가 왜 여기 있는가?”
추격대로 선발된 2명의 인원 중 한 명은 놀랍게도 구면이었다.
세상 좁다더니, 정말로 좁디좁은 모양이다.
예상에도 없던 일이다.
“아니, 어찌 얼굴만 곱상했지 밥투정이나 하던 자네야말로···”
“이보게. 흠흠. 이거 보이지 않는가?”
어허.
철모에 붙은 빛나는 소위 계급장을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죄··· 죄송하오. 아니, 죄송합니다. 그럼 원산항 북파 작전에서 무사히 돌아왔다는 담화문을 발표한 게 소위님이란 말입니까?”
“그렇네만.”
어깨를 한껏 치켜세운 채 고개를 끄덕였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입을 벌리고 있는 자는 임해순이었다.
13연대에서 어떻게, 왜 이곳에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지나온 날이 평온하지만은 않았다는 건 철모에 붙은 하사 계급장이 말해주고 있었다.
“그 짧은 시일에 하사라니. 자네 출세했네. 출세했어. 어찌 자네가 여기 있는가?”
“소위님만 하겠습니까. 13연대에 있던 중, 호남지역 빨치산 소탕 작전에 참가자를 모집한다는 소리를 듣고 곧장 지원했소···아니, 했습니다. 하사 계급장이야 빨치산 놈들 때려잡았더니 특별진급이라며 저절로 따라왔을 뿐입니다. 이후 소탕 작전이 종료되면서 자연스레 이곳 7사단으로 전출됐습니다.”
1949년 초부터 중순까지만 하더라도 7사단은 후방에서 빨치산 소탕 작전에 투입되었던 사단이었다.
49년 9월이 넘어서야, 주 임무가 동두천과 포천 경계 임무로 바뀌었다.
빨치산 소탕에 혁혁한 공을 세운 모양이다.
‘아는 얼굴이라고 반갑군.’
우연히 만난 임해순이 너무도 반갑게 느껴졌다.
든든함은 덤이었다.
“저 또한 호남지역 빨치산 소탕 작전에 투입되었다, 7사단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김정수라 합니다. 훌륭한 분과 작전을 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반갑네.”
훌륭하긴.
이제부터 시작일 뿐이었다.
“좋아. 남은 이야기는 작전이 끝나고 하도록 하지. 그리 어려울 것 없네만. 반드시 생포해야 한다는 것 명심하게.”
작전은 간단했다.
먼저 항상 그래왔듯 1개 중대 병력이 종현산 초입부터 최초 적 관측지역까지 적을 탐색하며 적을 몰아 올라간다.
추격조는 중대 병력보다 먼저 산 정상에 침투한 뒤, 북으로 돌아가는 적의 흔적을 찾아 적이 38선을 넘기 전, 빠르게 생포한다.
“말했듯이 적의 흔적을 찾아 추격하고 38선을 넘기 전 생포해서 돌아오는 것이 작전의 가장 중요한 사항이네.”
“예. 알겠습니다.”
“출발.”
수신호와 함께 가장 험준한 종현산 서쪽 능선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1연대에서 지금과 같은 작전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소수의 추격대를 편성, 밑에서 몰고 올라가는 병력을 2개 중대로 늘려도 봤지만, 항상 적 관측병은 포위망을 유유히 빠져나갔다.
고도 588M의 그리 높지 않은 종현산이었지만, 적의 흔적을 찾아 추격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정지.
잣나무가 빽빽이 들어서 앞길을 막았음에도, 언제 초입이었냐는 듯 정상에 도착했다.
언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른다는 긴장 속에 동쪽 태백산맥을 뛰다시피 한 경험은 절대 무시할 것이 아니었다.
호남에서 빨치산 소탕 작전에 익숙해진 임해순, 김정수에게도 종현산 588M 고지는 그저 몸풀기에 불과했다.
슬슬 밑에선 중대가 올라오며 쥐를 몰고 있을 것이다.
그때, 신선한 공기만이 가득해야 할 산속에 이질적인 냄새가 풍겨왔다.
‘담배 냄새.’
잣나무가 빽빽한 종현산에서 쥐를 찾는 방법은, 직접 눈으로 보는 시각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감을 비롯해 청각과 후각.
특히, 민감한 사람이라면 산에서의 담배 냄새는 1KM 밖에서도 느낄 정도였다.
-적 발견.
적을 발견했다는 수신호를 보내자, 임해순과 김정수가 사방을 훑고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적지에 침투해 담배를 태운다는 건, 그들이 상당히 방심하고 있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이동.
설명할 시간 따윈 없었다.
빠르게 담배 냄새가 나는 근원지를 향해 이동을 시작했다.
“소좌 동무, 아무리 기래도 산속에서는 냄새가 멀리 퍼집네다.”
“이 보오. 괜찮소. 동무. 지금에서야 우릴 잡아보겠다고 올라오는 쇼하는 걸 방금 눈으로 보지 않았네. 지금부터 38선까지 꼬물꼬물 기어가더라도, 저 느려빠진 남조선 아새끼들 에게 잡힐 일은 없지 않겠소.”
“맞습네다. 동무. 여태껏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정찰 임무를 수행 중이지만은, 한 번도 쫓겨본 적이 없습네다.”
소총 멜빵을 어깨에 멘 채, 담배나 꼬나물며 북쪽으로 천천히 걸어가는 모습을 보니 기가 찼다.
소좌 1명과 상급 병사 2명.
우리나라로 치면 소좌는 소령과 필적한다.
꽤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이었다.
쥐를 발견한 하자 약속이라도 한 듯 임해순이 좌측, 김정수가 우측으로 멀리 돌아나갔다.
그 어떤 긴장도 하지 않고 있는 적을 제압하는 건, 크기만 큰 쥐를 잡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좌, 우, 후방 10M 가까이 근접했음에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커다란 잣나무 뒤에 몸을 숨긴 채 임해순과 김정수는 수신호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펴고 있던 손바닥을 쥐며 앞으로 던짐과 동시에 모두가 신형을 날렸다.
“뭐··· 뭐이네. 이런···”
순식간이었다.
말을 이어갈 새도, 저항할 틈도 없었다.
어깨에 메고 있던 총을 돌려 잡기도 전이었다.
소좌와 상급 병사들의 코와 입이 막히며, 양쪽 경동맥이 눌려 기절하는 데까지는 채 10초가 걸리지 않았다.
“이보게. 설마 죽이진 않았겠지?”
기절한 3명 중 임해순이 기절시킨 상급 병사가 입에 개 거품을 물고 있었다.
“숨은 쉽니다. 아마도.”
임해순이 코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며 말했다.
“아마도? 흠흠···. 이제 서둘러 복귀하지.”
생포한 쥐 팔, 다리를 밧줄로 꽁꽁 묶은 뒤, 입에는 미리 준비해 잘라놓은 옷가지를 한입 가득 쑤셔 넣었다.
-웁웁읍. 으읍읍읍.
소좌가 기절에서 깨어나 온몸을 비비 꽜다.
입에 잔뜩 넣어진 옷가지 덕에 제대로 된 소리도 내지 못했다.
“가만있어. 도착 전에 뒈지기 싫으면.”
임해순의 솥뚜껑 같은 손바닥이 뺨에 날아들자, 이내 평온을 되찾았다.
난 봤다.
나머지 두 새끼.
소좌가 맞은 뒤, 쥐죽은 듯 얌전해지는 것을.
서둘러 산기슭 남쪽으로 이동하자, 저 멀리 중대원들이 눈에 들어왔다.
***
함준호 대령 집무실.
함준호 대령의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정말인지, 자네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모르겠네. 쥐 잡기라 하더니만, 정말 쥐 잡는 것보다 쉽게 소좌를 생포해오다니. 비결이 뭔지 나도 알려주면 안 되겠나?”
“군인정신에 비결이 있겠습니까. 연대장님.”
길게 둘러댈 필요도 없다.
그저 군인정신, 애국심이면 통하지 않는 것이 없으니까.
“사단장님께 보고해 적당한 보상을 조치 받을 수 있도록 하겠네. 정말 자랑스럽군. 이강산 소위.”
“감사합니다.”
“그도 그렇지만 빨갱이 저놈들 아주 독종이야. 그 어떤 질문에도 입 뻥긋하지 않는다네. 몇 번이나 혀를 깨무는 것을 간신히 재갈을 물려 살려놨네.”
이미 세뇌될 정도로 세뇌된 저들에게 정보를 얻어내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웬만한 고문이나 회유로는 입도 뻥긋 안 할 것이 분명했다.
“혹시 녹음기를 좀 구할 수 있겠습니까?”
“녹음기? 녹음기는 어디 쓰려는 건가. 구하기 쉽지는 않을 걸세.”
“저놈들 입을 열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말했던 모든 것을 현실로 만들어 냈다.
연대장의 무한한 신뢰는 당연했다.
이 시대의 녹음기는 흔한 것이 아니었다.
흔하지 않은 것도 문제지만, 커다란 크기도 문제였다.
결국, 인근에 녹음기가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10분. 10분쯤 뒤에 들여보내시면 됩니다.”
“10분이나? 알겠네. 준비되면 말하게.”
간단히 녹음기 사용법을 설명 들은 뒤, 녹음을 시작했다.
[높낮이 조절 완료. 억양 조절 완료. 속도 조절 완료.]
처음 해보는 것 치고 능숙했다.
역시, 나는 실전에 강한 모양이다.
“들여보내시면 됩니다.”
녹음실 문을 열자, 제 분을 못 이기고 힘이 다 빠져버린 소좌가 녹음실로 들어왔다.
“내래 네놈들이 그 어떤 술수를 부려도, 하늘보다 위대하신 영도자 수령 동지를 위해 입을 열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죽여라!”
칵-퉤.
피가 섞인 침이 바닥에 떨어졌다.
“워. 그 정도 충성심이면 하늘도 감동하겠소. 그보다, 이것부터 들어보시게. 그대의 하늘의 답이 무엇인지.”
딸-깍.
재생 버튼이 기분 좋은 소음을 내며 카트리지에 저장된 소리를 내보냈다.
[위대한 인민의 지도자 김일성 수령님은 금일 있었던 종현산 일대에서 일어난 집단 월남 행위에 개탄을 금치 못하셨다. 인민을 배신한 원수들을 끝까지 찾아 도륙 내어 인민의 위상을 되찾으라 명 하셨다. 따라서 인민···]
익숙한 목소리였다.
소좌에겐 더더욱이.
북한 라디오에 나오는 아나운서 목소리였다.
다리에 힘이 완전히 풀린 듯 소좌가 주저앉았다.
“위대하신 당신 수령이 화가 많이 난 모양인데, 다른 수령님 찾아보는 건 어떻소? 오늘이 입을 열 마지막 기회일 게요.”
“아니··· 수령님께서···”
세상을 잃은 듯 멍한 눈을 한 소좌가 입을 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