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T-34 전차를 막는 법
군에서 장성의 입지는 하늘에 떠 있는 별과도 별반 다르지 않다.
자신이 맡은 부대의 웬만한 일 처리는 대부분 알아서 처리할 수 있다.
“자네를 작전 장교로 임명함과 동시에, 소좌 생포의 공을 상부에 보고해 중위 진급을 제안해보겠네.”
“감사합니다! 사단장님.”
영웅은 난세에 태어난다고 했던가?
나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아무리 내가 특출난 능력으로 여러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한들, 사관학교 출신도 아닐뿐더러 심지어 원산에서 돌아오기 전까지는 계급도 없었다.
1년도 채 되지 않은 시간에 13연대 이등병에서 중위로 진급을 앞둔 것이다.
‘유재흥 이 양반. 사람 보는 눈은 있네.’
유재흥 사단장은 6.25 개전 초기 7사단 의정부 방어선을 말아먹은 뒤, 2군단을 전멸시켜 해체 시키고 역사상 최악의 패전 중 하나인 현리전투로 3군단까지 해체 시켰다는 온갖 악의 굴레는 다 뒤집어썼다만.
경험해 보지 못한 상황에 대처하는 순간적 기지와 명석한 두뇌를 가진 영웅이 아니었을 뿐, 그저 평범한 사단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7사단장에 부임하기 전 제주도에서 부랴부랴 올라온 후, 얼마 되지 않아 북한의 카운터 펀치를 맞고 어버버 댄 건 재수가 더럽게 없었던 것이고.
물론 사단장이 전차로 밀고 내려오는 압도적인 화력을 가진 중과부적의 적에 맞서, 대 전차전에 대한 지식조차 없는 병력으로 방어선을 절대 사수하는 능력의 소유자였으면 아주 좋았겠지만.
과거는 과거일 뿐.
지금은 다를 것이다.
왜?
나를 작전 장교에 임명하는 아주 큰 행운을 얻었으니까.
만약 그가 전쟁에서 살아남아 자서전이라도 쓴다면 한 구절은 미리 써놓은 것이나 다름없다.
[내가 사단장 시절 가장 잘한 선택은 이강산 소위를 중위로 진급시키고 그에게 작전 장교 직을 맡긴 것이다.]
“사단장님. 저는 다시 연대로 복귀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강산 소위, 사단장님을 옆에서 잘 보필하도록.”
“물론입니다. 그간 감사했습니다. 연대장님.”
작별을 고하자 함준호 대령이 아쉽다는 눈망울로 바라봤다.
헤어지기 싫은 연인을 바라보듯.
아쉬워도 어쩔 수 없다.
내가 고작 연대장 밑에 있을 그릇이 아닌 것을.
***
작전 장교에 임명된 후 가장 먼저 할 일은 적 105전차여단의 T-34 탱크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것.
이가 없는 상태에서 잇몸으로 음식을 최대한 아프지 않게 씹을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나노봇, T-34 탱크 상세 제원 검색해.”
[T-34/85. 제작 : 소련. 장갑 : 45mm 균질압연강]
45mm라는 두께는 수치상으로는 충분히 57mm 대전차포나 2.36인치 대전차 로켓으로 저지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특이사항 : 전면 장갑 경사도 30도, 측면 상부 40도, 하부 90도]
빌어먹을 경사 장갑 덕에 수치상 두께보다 훨씬 두꺼웠고, 경사도에 의한 도탄 능력까지.
시뮬레이션 결과를 보니 처참함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시뮬레이션 결과 : 격파 실패]
시뮬레이션으로 2.36인치 대전차 로켓 30발을 T-34 전차 한 대에 쏟아부었음에도, 피격 부위 장갑이 살짝 패여 있을 뿐, 멀쩡히 움직였다.
T-34를 막을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전처럼 기관총으로 쏴 간지럽혀 시간을 벌거나, 목숨을 희생해 맨주먹 육탄전에 뛰어드는 방법뿐이었다.
목숨과 바꿔 적을 막는 용감하고도 유일한 방법이었지만, 효율을 따지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무장을 105mm M3 곡사포로 변경.”
현재 국군이 보유하고 있는 가장 화력이 뛰어난 포였다.
곡사포라는 게 본디 장애물 뒤의 목표를 맞추기 위해 개발된 것이지만,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시뮬레이션 결과 : 궤도에 명중 시 궤도이탈로 인한 구동 불가]
구동 불가.
격파가 아니더라도 구동 불가면 충분하다.
움직이지 못하는 전차는 그저 보병의 앞길을 막는 무겁고 커다란 쇳덩이로 전락하니까.
“문제는 정확히 궤도를 명중시키고 탈출하는 훈련인데···”
곡사포로 전차의 궤도를 정확하게 명중시키는 것도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한 번 발사하면 위치가 적에게 노출되어 재발사가 불가능에 가깝다.
1연대, 9연대를 통틀어 7사단에 배치된 105mm 곡사포는 총 15문.
남하해 올 105전차여단의 전차 숫자보다도 한참 모자란 수였지만, 좁은 길에서 선두 전차들 궤도를 모조리 끊어 구동력을 상실시킨다면?
충분한 시간을 벌 수 있다.
7사단이 극도로 불리한 상황에서 적의 주공을 충분히 지연시킬 수 있다면, 방어 측면뿐 아니라 도착할 미국이라는 큰 형님과 반격시간을 가질 수 있다.
T-34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이제 사라졌다.
남은 건 105mm 곡사포로 궤도를 정확히 명중시킬 훈련이 되어있는가의 문제였다.
-똑똑
“사단장님, 작전 장굡니다.”
아직은 어색하네.
머릿속을 수차례 정리한 뒤, 사단장 집무실 문을 두들겼다.
작전 장교라는 말이 입에 붙으려면,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았다.
-들어오게.
“충성.”
“그래. 이번에도 역시 적 남침에 관한 내용이겠지?”
이 정도 세뇌쯤이야.
이젠 내 얼굴만 봐도 남침이 떠오르는 모양이다.
말해줘도 못 알아듣고 외면하는 다른 머저리들에게도 세뇌가 필요할 텐데.
“그렇습니다. 적 전차를 효과적으로 막기 위한 대책과 그에 따라 사단 방어 계획을 조금 수정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짧은 시간에··· 지치지도 않나? 어디 한번 해 보게.”
“우선 적 T-34 전차에 대한 아군의 대응 무기인 57mm 대전차포와 2.36인치 대전차 로켓으로는 T-34의 장갑을 관통할 수 없습니다.”
“미군 말대로라면 그 무기들로 독일 티거 전차도 거뜬히 잡아냈다는데. 고작 소련 전차가 독일 전차보다 강하겠나?”
경사 장갑이니, 몇 mm니, 관통력이 어떻니 하는 설명으로는 알아들을 수 없을 것이다.
아마 사단장은 전차를 본 적도 없을 테니까.
시간이 걸리더라도 천천히, 인내심을 가지고 설득해야 했다.
“티거 전차가 괴물로 불렸다지만, 2차대전 당시 많은 소모로 빠른 생산을 해야 했습니다. 그로 인해 애초에 설계된 대로 제작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설계대로 만들지 못했습니다. 한마디로 반쪽짜리 전차였습니다.”
고개를 연신 끄덕이는 것을 보니 다행히 알아들은 것 같다.
“음. 계속하게.”
자, 다음.
“소련이 제작한 T-34 전차는 2차대전이 끝난 후 만들어졌습니다. 2차대전 도중 만들어졌던 T-34와는 결이 다릅니다. 따라서 적의 남하하는 전차를 막을 방법은, 적 전차가 다리나 좁은 도로를 건널 때 105mm 곡사포로 전차 궤도를 영거리 사격으로 맞추는 방법뿐입니다.”
“영거리 사격? 그게 가능하겠는가?”
유재흥 사단장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표정의 이유는 듣지 굳이 않아도 알 수 있다.
포병이 영거리 사격을 준비한다는 것은 최악의 상황이거나, 더 최악의 상황이거나.
둘 중 하나니까.
“물론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훈련이 잘 되어있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닙니다. 따라서 포병대대 현 훈련 수준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파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초탄명중(初彈命中)
모든 포병부대의 신조와도 같은 말이지만, 이젠 신조가 아닌 반드시 해내야 하는 일이다.
“알겠네. 전차를 가장 잘 아는 건 자네 같으니 다녀오겠나?”
“예. 제가 직접 다녀오겠습니다.”
대한민국에 나보다 바삐 움직이는 사람이 있을까?
내 직책을 정확히 말하자면 북파 공작원 겸 포병 겸 정보원 겸 작전 장교쯤 되려나?
후.
어째 무엇하나 쉬운 일이 없다.
하긴, 원래 특출난 천재는 괴로운 법이라 했다.
“내가 미리 포병대대에 연락해 놓겠네.”
유재흥 사단장 눈에서 신뢰가 쏟아지고 있었다.
내일은 포병대대에 가야 할 것 같다.
***
7사단 예하 포병대대.
연병장엔 미리 말해 놓은 대로 105mm 곡사포 2문, 57mm 대전차포 2문, 2.36인치 대전차 로켓이 방열 되어있었다.
“어서 오게. 5포대장 하현식일세. 여기는 미군 고문관 맥팔랜드 대위.”
“nice to meet you, lieutenant(반갑네. 중위.)”
하현식 대위와 맥팔랜드 대위가 인사를 건네 왔다.
“충성. 사단 작전 장교 이강산입니다.”
하현식 대위와 맥팔랜드 대위의 표정이 그리 밝아 보이진 않았다.
예정에 없던 사단 작전 장교의 부대 방문이 반가웠을 리 없긴 하지만.
“어제 갑작스레 사단장님 전화를 받고 놀랐네. 자네가 부대 포 사격 훈련을 참관하겠다 했다지?”
“예. 포병대대는 수정될 사단 방어 계획의 핵심입니다. 다만, 일반적인 포 사격이 아닌 영거리 사격이 어떤 수준에 있는지가 궁금합니다.”
맥팔랜드 대위 옆에 있는 카투사 한 명이 열심히 그에게 말을 통역해주고 있었다.
“Shooting at a distance? That's nonsense. (영거리 사격? 개소리야.)”
한국군 출신 카투사가 난처한 표정을 지은 뒤, 통역을 이어갔다.
이미 나노봇이 맥팔랜드 대위가 하는 모든 말을 한국어로 통역해주고 있었지만, 티를 내진 않았다.
“혹시··· 영거리 사격이 왜 필요하냐고 묻고 있습니다.”
하? 이 새끼 봐라?
이곳에 와서 쓸데없는 힘겨루기를 할 생각은 없었다.
맥팔랜드 대위의 무시에 점차 기분이 나빠져 왔다.
“사단장님 지시라고 전해주게.”
“Why did the Korean military do such a useless thing? (왜 한국군은 쓸데없는 짓을 하려 하지?) They can't even do the basics right. (기본적인 것들도 못하는 주제에)”
무시.
무시가 아니라면 도발이다.
말을 못 알아들을 것이라는 확신에서 하는 말이겠지만, 그가 어떤 생각으로 고문관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Hey, Captain. (이봐, 대위)”
내 입에서 나온 영어에 놀란 것은 맥팔랜드 대위만이 아니었다.
옆에서 듣던 카투사는 몸을 부르르 떨며 소스라치게 놀랐다.
“How about a gun shooting match with the Korean military, who can't even do basic things? (기본적인 것도 못하는 한국군과 포 사격 대결 어때?)”
“이보게. 자네들··· 뭐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 충돌을 느낀 하현식 대위가 만류에 나섰다.
“괜찮습니다. 포대장님. 양측 포 사격 실력을 겨뤄보려는 것뿐이니까요.”
이미 늦었다.
저놈은 말을 조심했어야 한다.
감히 국군을 무시해?
영어를 모르거나 듣지 않았다면 모를까, 참을 수 없었다.
저 높게 뻗은 코를 아주 납작하게 눌러버리리.
“All right. What are you gonna bet? (좋아. 넌 뭘 걸 테지?)”
맥팔랜드 대위가 큰 코를 벌렁거리며 물었다.
“Whatever you want.”
자신만만한 표정.
진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안 하는 것 같다.
‘지금 실컷 벌렁대라지.’
배팅은 간단했다.
상호 간 원하는 건 뭐든.
[105mm M3 곡사포 영거리 사격 기술과 정보를 학습합니다. 동기화 진행 중···]
그래.
너도 지기 싫구나?
내 맘을 알고 있다는 듯, 나노봇이 스스로 학습을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없다.
질 자신이.
맥팔랜드 대위를 향해 코를 찡긋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