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대결
미 군사고문단에 속해있는 맥팔랜드 대위.
그와의 포 사격 대결은 단순한 자존심 싸움,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현재 미국과 대한민국은 우호국의 관계에 있다지만, 우호국의 뜻이 동등한 위치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수도 없이 전면 남침 징후를 정성스레 보고했음에도, 북진은커녕 남침에 대비할 방어적 군사 원조를 지속적 요구했음에도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이게 현실적인 미국과 현재 대한민국의 위치다.
“Are you ready, Captain McFarland? (준비됐어? 맥팔랜드 대위?)”
“At any time. (언제든지.)”
작은 땅덩어리를 가진, 그것마저 둘로 쪼개져 반쪽짜리 반도가 된 나라라는 인식을 조금씩, 아주 조금씩이라도 바꿔야 한다.
‘보여줘야지.’
수많은 외세의 침략과 일제 강점에도 절대 쓰러지지 않고, 딛고 일어났던 나라임을.
나아가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자정할 능력이 있는 나라임을.
무엇보다 주한미군이 철수하며 유일하게 남겨놓은 미 군사고문단은 곧 휘몰아칠 전쟁에 참전하게 될 미국과 나의 소통창구가 되어야만 한다.
-철컥.
105mm M3 곡사포.
다른 이름으로는 똥 포.
견인 고리가 군용트럭과 연결되고 있었다.
구경 : 105mm
전장 : 3.94m / 포 신장 1.88m
전비중량 : 1,130kg
최고발사속도 : 분당 4발, 지속 분당 2발
애당초 공수부대를 위해 헬기수송, 항공수송에 특화되어 경량화된 모델이었지만, 인간의 힘으로 사격장까지 이동시킬 수 있는 무게는 아니었다.
“A practice shell, okay? (대결은 연습용 포탄으로 괜찮지?)”
인근 사격장에 도착하자 맥팔랜드 대위가 연습용 탄으로 대결하자는 의사를 전해왔다.
곡사포는 애초에 직사 형태로 곧바로 적을 맞추도록 설계된 무기가 아니다.
훈련 중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함인 듯했다.
“Sure, That sounds great.”
손가락을 둥글게 말아 좋다는 의사를 전했다.
연습용 탄 사격이라 해서 위험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포탄에 탑재되는 탄약과 장약은 그대로지만, 탄두를 바꿔 폭발력을 없앴을 뿐이다.
“Ready! (준비!)”
준비 구령과 함께 맥팔랜드 대위를 포함한 미 고문단 대표 3명, 나를 포함한 한국군 대표 3명이 신속히 사격 준비를 마쳤다.
“Go! (시작!)”
시작 구령과 동시에 양측 인원 모두가 각자 맡은 곡사포로 달려나갔다.
대결의 방식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직사 사격으로 200m 거리에 있는 가로, 세로 2m쯤 되는 제자리 표적 3개를 개당 1점.
제자리 사격이 끝난 뒤, T-34 전차의 평상시 운행속도인 시속 20~30km 속도로 움직이는 표적 사격 2점.
총 5점으로 승부를 가르는 방식이었다.
“빠르군.”
포를 방열하고, 조준하는 속도는 미 고문단이 당연, 한 수위였다.
미군은 세계 2차대전 당시부터 M3 곡사포를 실전 배치, 사용해 능숙한 방면, 국군이 포를 처음 실사격해 본 시점은 1949년 4월 5일이다.
“포 바퀴 주변, 포 판, 포 견인 고리 주변 땅을 파고 그 위를 파진 흙으로 단단히 덮어라. 반동을 최대한 줄이는 것이 핵심이다!”
서둘러 포를 정비하고 조준경을 꽂는 것 보다, 땅을 파라는 지시를 내렸다.
총을 쏠 때 정확하고 확실한 견착이 결과에 영향을 미치듯 포 역시 마찬가지다.
곡사 방식으로 적이 다수 몰려 있는 곳에 포탄을 듬성듬성 떨어트리는 방식이라면 효과가 미미할지 모르겠지만, 200m 거리에 있는 2m의 작은 목표를 맞추는 데는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작전 장교님, 땅이 얼어서 잘 파지지 않습니다.”
김 하사가 손이 저린 듯 손을 털며 말했다.
1월.
한겨울 추위에 단단하게 얼어붙은 땅이 쉽게 잘 파질 리 없었다.
“그리 깊게 팔 필요까진 없다. 힘닿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 땅을 파라. 완전히 얼어붙은 곳이 있으면 얘기하도록, 그쪽은 내가 대신 파줄 테니.”
지휘관의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는 솔선수범이다.
가장 돌이 많아 보이고, 땅이 단단해 보이는 왼쪽 바퀴 주변을 파기 시작했다.
-깡! 깡! 깡!
땅과 야전삽이 부딪치며 금속성 마찰음을 냈다.
소리만 듣는다면, 삽과 삽이 부딪치는 소리에 더 가까웠다.
“이봐, 김 하사. 뭐 하고 있나. 지금 작전 장교님이 저렇게 땅을 파고 계시는데. 서두르자.”
닦달할 필요가 없었다.
삽질을 몇 번 하기도 전, 김 하사와 정 하사가 각자 맡은 곳을 파고 있었다.
[재생 프로세스 가동]
‘됐어. 지금은 필요 없어.’
[재생 프로세스 가동 중지]
한겨울 계속되는 삽질에 손바닥이 남아나질 않았다.
세 사람 모두 초반의 느껴졌던 저릿한 진동을 넘어, 손바닥이 까지고, 까진 곳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이 상황을 혼자만 나노봇을 이용해 피하고 싶진 않았다.
“What are you doing in the middle of winter··· (한겨울에 저게 무슨 짓이야···)”
무슨 짓이긴.
너희 코를 납작하게 만들기 위한 피나는 노력이지.
“이 정도면 충분해! 고생들 했다. 파낸 흙을 위로 덮어 단단하게 다지고, 서둘러 사격 준비를 마칠 수 있도록.”
작은 야전삽으로 절대 파낼 수 없을 것 같던 단단한 땅이 20cm가량 파내져 있었다.
맥팔랜드 대위와 미 고문단은 조용히 국군이 준비를 마치기를 얌전히 기다려 주었다.
물론 맥팔랜드 대위가 처음부터 얌전히 기다린 것은 아니었다.
땅을 파는 모습을 보고 처음엔 알 수 없는 혼잣말을 연신 내뱉었다.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손에서 피를 흘리며 땅을 파는 모습에 무언가 느껴진 게 있는지,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We'll show you first. (우리가 먼저 보여주지.)”
맥팔랜드 대위가 마지막으로 조준경을 확인한 뒤, 뒤로 물러서 귀를 막았다.
“3··· 2··· 1··· Fire! (사격!)”
사격 구령과 동시에 미 고문단 상병이 줄을 있는 힘껏 잡아당겼다.
잡아 당겨진 줄은, 공이가 장약, 화약을 칠 수 있도록 도왔다.
-쾅!
연습용 탄이라 해서 포성이나 진동이 작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실제 장약과 화약이 들어가기에 귀가 먹을 듯한 굉음과 진동이 땅을 통해 몸에 전달됐다.
“Hit on target! (명중!)”
포탄이 떨어진 자리에 일었던 먼지가 가라앉았다.
먼지가 가라앉음과 동시에 망원경을 통해 표적을 보고 있던 관측병이 명중을 알려왔다.
“It's easy for the U.S. military. (미군에게 이건 쉬운 일에 불과하지.)”
맥팔랜드 대위가 언제 조용했냐는 듯 다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이번엔, 우리 차례였다.
“다들 뒤로 물러서 귀나 막게.”
“마지막으로 조준경 확인 안 해 보셔도 되겠습니까?”
조준경 속 조준선은 이미 표적 정 가운데를 정확히 향하고 있다.
피를 봐가며 파냈던 땅은 추위에 금방 얼어붙어 포 바퀴, 포 판, 포 견인 고리를 단단히 쥐어 감쌌다.
더 필요한 게 있나?
없다.
남은 건 사격뿐.
“삼··· 둘··· 하나··· 발사!”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줄을 당겼다.
한 차례 포성과 진동에 몸이 익숙해진 듯, 떨림이 덜한 착각이 들었다.
“명중! 명중일세!”
관측을 맡은 하현식 대위가 망원경을 높이 들며 말했다.
‘역시 승부는 움직이는 표적에서 갈리겠군.’
양 측 모두 이어지는 2번의 사격에서 과녁을 명중했다.
남은 건, 움직이는 목표물 사격.
승부의 갈림길이다.
“Have you ever fired a gun? (포를 쏴본 적 있나?) That's pretty good. (제법이군.)”
포를 쏴본 적?
없다.
어렸을 적 구슬 동자 장난감 뒤를 힘껏 눌러본 것 빼고는.
두 번 생을 통틀어 첫 포 사격이었다.
“You can look forward to it, Captain McFarland. (기대해. 맥팔랜드 대위.)”
마지막 대결인 움직이는 표적.
군용트럭 뒷부분에 200m가 넘는 긴 줄을 연결한 뒤, 그 끝에 표적을 매달았다.
“It's fun. (재밌군.)”
수많은 경험을 가진 미 고문단도 해본 적 없는 훈련이었다.
군용트럭은 먼지를 내며 미리 약속한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200m 줄이 팽팽하게 당겨지자, 표적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회는 단 한 번.
맥팔랜드 대위가 미세 조정을 마친 뒤, 표적이 조준경에 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Fire!”
제자리 사격과는 달리 준비 구령 없이 곧바로 발사 구령이 떨어졌다.
“What happened? (어떻게 됐지?)”
양 측 모두에게 긴장감이 내려앉았다.
결과는 제자리 사격보다 더 빨리 알 수 있었다.
먼지가 채 가라앉기도 전, 줄에 힘없이 없이 질질 끌려 나오는 과녁이 실패를 알려왔다.
“Failed. (실패.)”
“Damn it. (젠장.) fuck.”
실패를 확인한 뒤 욕을 내뱉던 맥팔랜드 대위는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잠잠해졌다.
자신들도 성공하지 못한 것을 한국군이 성공할 리 없다는 확신에서였다.
포탄이 떨어진 탄착지점을 보니, 매우 간발의 차였다.
그 간발의 차는 T-34 전차의 궤도를 끊느냐, 마느냐의 차이였다.
“준비.”
한차례 포격에서 무사히 살아남은 표적이 다시 출발지점으로 끌려가고 있었다.
온다.
트럭이 출발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풍속 : 남동풍 3.2m/s. 차량 속도 : 26km/h 포구 속도 : 311m/s]
가벼운 총알도 아닌 10kg이 넘는 포탄에 바람이 주는 영향은 아주 극도로 미미하다.
다만, 아주 작은 오차도 허용하고 싶지 않았다.
“발사!”
-쾅!
힘껏 줄을 당기자 이제는 익숙해진 포성이 귀를 때렸다.
사격장에 모인 모두가 귀에서 손을 뗀 뒤, 결과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실패··· 아니 잠깐.”
과녁은 이번에도 역시 줄 뒤에 달려 끌려오고 있었다.
“That's not bad enough. (그 정도면 나쁘지 않았어.)”
위로를 건넨 맥팔랜드 대위가 이번에야말로 명중시키겠다는 듯, 다시 포로 다가가고 있었다.
“명중! 명중이라고!”
“What? (뭐?)”
하현식 대위와 나를 제외한 모두가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깃발을 크게 두어 번 흔들어 복귀 신호를 보냈다.
“OK, we won, didn't we? (자 봐, 우리가 이긴 것 같은데?)”
줄에 매달려 있다고 해서, 맞추지 못했다는 법은 없다.
정확히 과녁의 한가운데.
포탄의 크기와 비슷한 구멍이 뚫려있었다.
맞추지 못한 것이 아니라, 관통해 버린 것이다.
미 고문단은 허탈함을 넘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You're supposed to listen to what you want, right (원하는 걸 들어주기로 했던 거. 기억하지?)”
“Tell me. (말해 봐.)”
“I need you to deliver a letter. (편지를 좀 전해줬으면 해.)”
“Letter? (고작 편지?)”
양 손바닥을 위로 뒤집으며 어깨를 들썩이며 물었다.
고작 편지냐는 듯.
“It's easy, right? (그래, 쉽지?)”
그래.
고작 편지 배달이다.
얼마 남지 않은 1950년 2월 6일.
이승만 대통령은 초청을 받아 미 군사고문 몇몇과 일본에 방문한다.
“그 양반한테 편지 좀 전해주라고.”
편지 수신자를 들은 맥팔랜드 대위가 머리를 쥐어뜯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