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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전쟁영웅이 되었다-30화 (30/149)

30화. 장군 대 장군

“자네에게 궁금한 게 많지만, 일단은 전황파악이 우선이니.”

맥아더가 자연스레 채병덕 참모장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옆자리에 서자 이번엔 맥아더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맥아더 더글라스 입니다.”

“육군 총참모장 채병덕이라 합니다. 혹시 이강산 대위 자네, 통역 가능한가?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자네가 통역하는 것이 낫겠네.”

“물론입니다.”

암.

되고말고.

굳이 통역을 위해 맥아더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카투사를 놔두고 나에게 통역을 시키는 이유도 알다 마다.

군사영어학교를 나와 놓고 영어를 못하는 건 덤이었다.

난 육군 총참모장이고, 넌 통역이나 하는 대위 나부랭이야.

주제를 알라는 시꺼먼 검은 속내가 분명했다.

그러던가, 말던가 알아서 하라지만.

“이 먼 타지 대한민국까지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소. 사령관.”

열심히 영어를 한국어로, 한국어를 영어로 옮겼다.

맥아더와 채병덕이 대화를 나눴다.

“참모장, 현 상황과 현 방어선이 무너졌을 때 다음 방어선 방어 계획이 뭔가?”

“현 7사단 방어선은 1연대가 동두천을, 9연대가 포천을 힘겹게 방어하고 있소만. 수도 경비 사령부 3연대, 대전에서 올라오는 2사단과 함께 오늘 새벽, 역습을 통해 동두천과 포천 지역을 다시 수복할 것이오.”

개떡 같은 말을 찰떡같이 바꿔줄 확실한 통역이 필요하군.

엄연히 따지자면 장군 대 장군.

중과부적인 적에게 밀리고 있다고만 말하긴 창피한 모양이다.

지금은 한미 양측이 정확한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그놈의 염병할 자존심이 밀려오는 북한군을 막아주진 않으니까.

힘겨운 방어를 사실상 함락으로 조금 바꿔 통역했다.

비슷하지만 더 사실에 가깝게.

“역습? 대전에서 올라오고 있다는 2사단이 충분한 병력과 장비를 보유한 채 편제를 유지하고 있는 사단인가?”

“상황이 긴박해 대대 단위로 쪼개져서 올라오고 있소. 도착하는 대로, 전선에 투입될 것이오.”

아.

이 얼마나 개탄스러운 일이란 말인가.

육군 총참모장이라는 인간이 본인 입으로 축차 투입을 내뱉고 있으니.

“이강산 대위. 저 참모장이라는 자는 보병 병과는 거친 적이 없는 인물인가?”

“예. 사령관님.”

맥아더 사령관이 해오는 질문을 보니, 이미 채병덕 참모장에 대한 파악이 끝난 모양이다.

채병덕은 서류상으로는 포병, 일본 육군 복무 시절 병참 과장이나 조병창 등 전투 지원 분야에서 일했을 뿐.

전투부대 지휘관은 고사하고 소대장 경험조차 없었다.

“역시. 그렇군.”

맥아더가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앞으로의 계획은? 턱없이 모자란 병력과 화력으로 수도 서울을 방어해 낼 수 있겠소? 한국군 사령관 위치에서 한국군 병력을 어떻게 지휘할지 궁금하다고 묻게.”

맥아더의 대답만 얼핏 듣더라도, 이미 채병덕 참모장에 대한 평가는 내려진 듯 보였다.

부적합. 매우 부적합.

다만, 많은 참모가 자리하고 있는 자리에서 최소한의 체면을 지켜주기 위함인지, 얼굴과 말투에선 부정적인 티를 전혀 내질 않고 있었다.

“한국군은 기습적인 침략을 당해 잠시 고전하고 있을 뿐일세.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일어날 200만 남한 청년들을 모두 동원해 훈련 시킨 뒤 북한의 침략을 저지할 생각이오. 그러면 어련히 알아서 해결될 일 아니겠소.”

어련히. 알아서.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통역을 하자 마침내 맥아더 입에서 아주 작은 탄식이 터져 나왔다.

‘Fuck, Damn it!’

근처에 서 있던 참모들도 듣지 못할 정도로 작은 소리였다.

목소리를 조절해서 냈다기보다, 속에서 뱉은 말이 몸을 뚫고 튀어나왔다고 보는 게 더 합리적일 정도로.

“한국엔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칠 예비대가 200만이나 있다니, 대단하군. 아주 훌륭하고 멋진 작전 계획이라고 전하게.”

외국말일지라도 욕과 칭찬은 뇌가 아주 정확하게 자동번역하는 신기한 현상이 있다.

맥아더 입에서 나오는 원더풀, 나이스라는 말에 채병덕을 비롯한 참모진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고맙소. 맥아더 사령관.”

지휘봉을 든 손을 올린 채 연신 고개를 흔들었다.

맥아더가 내 귀에 속삭인 말을 듣지 못했으니까.

“형편없군. 저런 자가 육군 총참모장이라니. 당장 이승만 대통령을 만나야겠네.”

진작에 그랬으면 좋았겠지만, 채병덕 참모장이 지휘봉을 든 채 고개를 흔드는 건 지금이 마지막이 될 것 같다.

***

“구제 불능 인간이 하는 말 같지도 않은 말을 계속 들었더니, 귀가 썩은 것 같군.”

지휘실 밖으로 나를 불러낸 맥아더가 처음으로 한 말이었다.

맥아더가 고작 대위인 나와 독대를 원하자 채병덕이 죽일듯한 눈깔로, 참모들은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는 의아한 눈초리를 뒤통수에 쏟아내는 바람에 뒤통수가 따끔거렸다.

“죄송합니다. 사령관님.”

지금 맥아더와 독대하는 이 시간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이 매우 중요했다.

일이 틀어진다면, 이 대화가 처음임과 동시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한 마디, 한 마디 신중해야 한다.’

맥아더가 전쟁영웅 칭호로 불리긴 하지만, 누구나 그렇듯 완벽한 업적만을 가지고 있진 않았다.

누구나 공과가 있기에.

고집불통 자기최면에 걸려있는 맥아더를 아주 조금씩, 구슬려지는지도 모르게 구슬려야 한다.

가장 중요한 점은, 맥아더가 F1머신 뺨치는 급발진 머신이 되도록 놔둬서도 안 된다.

“자네가 운명의 도구라는 문장을 쓴 편지를 나에게 보낸 이유가 뭔가?”

“도구라는 표현이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한국에 전운이 감도는 것을 미리 느끼고 있었지만 제 위치, 힘으로는 그 어떤 일도 바꿀 수 없었습니다. 반면 사령관님은 세계 대전을 지휘해나가며 역사에 한 획, 한 획을 그으시는 모습이 신이 내린 운명의 도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분 나쁠 리가. 내 어머니께서도 어릴 적부터 이 맥아더를 운명의 도구라고 항상 말씀하셨지. 지금껏 이 말을 한 사람은 어머니와 자네. 둘 뿐이네.”

딱 우리 셋만 아는 비밀이야.

맥아더의 표정을 보니 소수만 알고 있는 비밀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의 친밀감이 생기는 게 확실하다.

예상대로 전운이 감도는 것을 어떻게 알았냐는 질문은 나오지도 않았다.

이미 책상 위에 올라갔던 비슷한 보고서만 수십 개.

같은 맥락으로 넘기기 충분했을 테니까.

“상황을 보니 미군과 연합군이 한국에 상륙할 때까지 의정부를 방어하는 건 사실상 쉽지 않아 보이네만, 자네는 언제까지 여기 있을 계획인가?”

이 질문.

아주 익숙하다.

익숙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익숙한 것은, 잘 할 수밖에 없다.

“쉽지 않다고 해서 의정부를 포기할 순 없습니다. 상부의 후퇴하라는 명령이 없다면, 이곳에서 뼈를 묻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조국을 지키는 군인의 참된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부족한 탄약과 식량, 무기가 없어 주먹으로 적 탱크와 싸우고 있는 병사들 역시 같은 생각이리라 확신합니다.”

“오, 주님. 제게 한국이라는 나라를 지키라는 운명을 쥐여주시는 겁니까.”

맥아더가 눈을 감은 채 하늘을 바라보며 탄복하고 있었다.

원래였다면 한강 이북, 후퇴하지 않고 참호를 지키던 병사에게 맥아더가 했을 질문이지만 7사단 사령부 막사 앞으로 장소만 조금 바뀌었을 뿐이다.

“역시, 자네 같은 군인들이 있는 한국은 지킬만한 가치가 있는 나라임이 분명하네. 혹 내게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보게.”

채병덕과 대비되며 극대화돼서일까?

아니면 원래?

눈물이 눈꺼풀에 찰랑거릴 정도로 탄복하고 있었다.

“탄약, 탄약이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적은 충분한 탄약을 지니고 있으나 전방에서 싸우고 있는 아군은 이미 탄약을 거의 소진했거나, 소진 직전입니다. 후방에서 올라오고 있는 2사단, 5사단 병력이 지닌 탄약이 채 20발이 되질 않습니다.”

“20발? 200발이 아니라 20발이란 말인가?”

탄복하던 맥아더 이마에 주름이 깊게 파였다.

2차 대전 당시 미군의 개인 탄약휴대량이 80발에서 100발 사이였다.

당시 탄을 적게 휴대했던 영국군도 50발.

반면 한국군은 많아야 8발이 들어가는 M1 클립 2개를 들고 전투에 임하고 있었다.

2차 대전이 끝난 지 5년이나 지난 시점에 20발이라니, 200발로 오해하기 충분한 숫자였다.

“맞습니다. 제대로 된 보급 없이는 그 어떤 군인도 제대로 싸울 수 없지 않습니까. 배고픔이야 참아가며 싸운다지만, 총알을 만들어 싸울 순 없는 노릇입니다.”

2사단, 5사단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보급, 수송 문제는 거의 모든 지역에 일어나고 있었다.

차편이 없어 전쟁에 투입될 병력도 후방에서 제대로 올라오지 못하고 있는 판국에, 탄약이나 식량이 제때 보급되고 있을 리 없었다.

“알겠네. 이 나라에 은총이 있기를.”

맥아더의 짧은 기도가 끝나자마자, 다시 그를 불렀다.

“사령관님.”

군복 안주머니에서 편지를 꺼냈다.

“여기··· 돌아가시는 길에 읽어보시면 혹 도움이 되실 수도 있을 것 같아···”

맥아더를 만나기만을 기다리며 써놓은 두 번째 편지.

한시가 급하게 돌아가는 상황 탓에 최신화는 못했다만.

그 정도는 크게 상관없지 싶다.

“알겠네. 읽어보겠네. 편지라면 지긋지긋하던 참이었는데, 자네 편지는 기대되는 맛이 있군.”

“감사합니다. 사령관님.”

별말씀을.

처음 보냈던 편지와는 다르게 꽤 빼곡하게 써진 편지.

‘아까 말했던 건, 대한민국에 필요한 거였고.’

첫 만남치고는 썩 괜찮았다.

골칫거리였던 채병덕 덕분에 내 말과 행동이 더 큰 영향력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맥아더가 탄복하며 내게 물었던 원하는 것.

그건 편지에 충분히 적혀있다.

‘내가 원하는 것’이.

***

서울.

맥아더는 의정부지구 시찰을 마친 뒤 곧바로 이승만 대통령을 찾았다.

아직 의정부가 뚫리지 않은 덕에 두 사람이 만난 곳은 서울이었다.

아직은.

“대한민국을 위해 와줘서 고맙소. 맥아더 사령관.”

이승만 대통령이 두 손으로 맥아더의 손을 감쌌다.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해야 할 당연한 결정입니다. 현재는 미 공군, 해군의 제한된 작전만 승인되어 있으나 미 육군 투입을 요청할 계획입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해군, 공군과 달리 육군의 상륙은 미국의 본격 개입을 뜻했다.

“고맙소. 참으로 고맙소.”

“그 전에!”

고맙다며 울부짖는 이승만 대통령에게 맥아더의 일침이 쏟아졌다.

“능력도 없고, 병력 운용에 대한 기본 지식도 없는 자가 어찌 이 나라 총참모장 자리에 앉아있는지 설명하셔야 할 겁니다.”

예상치 못한 일침에 이승만 대통령은 말을 제대로 이어나가지 못했다.

“그건··· 국군을 창설할 당시에···”

“저 맥아더는, 아니 미국은 저런 사람을 우방국 총참모장으로 인정할 수 없습니다. 미국과 척을 지고 싶지 않다면 즉시 그를 보직 해임하시기 바랍니다. 후방에서 군수품을 전방으로 조달하는 역할 정도는 괜찮을 것 같기도 합니다만.”

“알···알겠네. 돌아가는 대로 보직 해임하겠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질문이었다.

미국과 UN군의 참전이 달린 상태에서 맥아더가, 미국이 그렇다는데.

대답을 듣자 맥아더와 이승만 사이에 냉랭했던 분위기는 점차 사라졌다.

맥아더의 말투 또한 한결 온화해졌다.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통령님. 그리고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만난 장교가 한 명 있는데 아주 유능하더군요. 그래서 말인데···”

이승만이 생각하기에 어쩌면 이것도 선택의 여지가 없는 질문이었다.

아주 지독한 외통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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