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민국 전쟁영웅이 되었다-34화 (34/149)

34화. 기회

송우리 인근 북한군 3사단 지휘부.

“내래··· 그걸 나보고 믿으라는 것이네? 대체 어떤 멍청한 천치 짓거리를 하면 이럴 수 있냔 말이야!”

“인민군 전사들이 최선을 다하였으나···”

“뭐야? 최선? 이 샹간나 새끼 죽고 싶어 환장한 게야?”

3사단장 리영호 소장이 보고를 듣던 도중 분노에 찬 고함을 질러댔다.

고함으로는 화가 풀리지 않는 듯, 허리춤에 차고 있던 권총을 꺼내 겨누었다.

“면목 없습네다. 죽여주시라요.”

길어야 2일이면 의정부를 함락하고 최선봉에 서서 서울로 직행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미 2일이 지난 지금, 서울은 고사하고 의정부 북쪽 송우리에 사단 발이 묶여있으니 미치고 팔짝 뛸 것 같았다.

단순히 발이 묶였다기엔 무시하기 힘든 정도의 피해는 덤이었다.

“후···인민 1사단과 제2군단의 동향이나 보고해 보라우.”

화를 가라앉히려 심호흡을 한 리영호 소장이 목을 가다듬은 뒤 말했다.

“그··· 그것이···”

박상진 소좌의 양 볼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축석령 돌파 실패에 이어 1사단, 2군단의 소식까지 전했다간 리영호 소장이 들고 있는 권총이 머리에 박힐 것 같았다.

“당장 말하라!”

“인민군 1사단이 임진강에서 방어선을 뚫으려 공세를 퍼붓고 있습네다. 제2군단 또한 현재 춘천과 홍천 방어선을 뚫···”

-탕! 탕!

보고를 들은 리영호 소장이 권총을 바닥에 두 발 갈겨댔다.

공세? 방어선을 뚫으려?

결국엔 아직 못 뚫었단 소리다.

압도적인 전력에 눌려 남조선 군대는 추풍낙엽보다 더 힘없이 쓰러져야 정상이었다.

땅크 한 대 없는 남조선 군대를 뚫지 못해 막혀있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북한이 6월 25일을 작전 개시일로 결심한 이유에는 단순히 일요일이라는 이유가 아닌, 다른 이유도 숨겨져 있었다.

38선으로부터 부산까지의 거리를 대략 잡아 500km라고 가정했을 때, 하루에 10km씩 남하.

3일이면 서울, 부산까지 50일이면 조국 통일이 완수된다.

계획에 맞춰 조국 통일이 완수된 50일째 날은 8월 15일.

광복절이었다.

광복절에 통일이라는 구색을 맞추기 위해 인민군 총 9만 명을 비롯해 야포 6백 문, 1천 문의 박격포, 무엇보다 소련의 지원을 받아 남조선엔 한 대도 없는 T-34를 주력으로 하는 전차 여단까지 꼼꼼히 계획해 준비해 밀고 내려온 참이다.

그 계획이 서서히 물거품이 되고 있었다.

“이런 멍청한 종자들이···”

분명 인간의 어떤 의지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을 전력 차이가 분명했다.

이대로 시간을 더 지체했다간, 당에 명령에 따라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곳에 좌천되거나 심할 경우 숙청될 가능성까지 염두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장 땅크 부대와 모든 인민 전사를 집합시키라. 멍청한 아새끼들 대신 내래 직접 선두에서 지휘하갔서. 후퇴란 없다. 내 뒤로 도망가는 전사들은 모조리 사살하라.”

축석령에서 잠시 주춤했을 뿐, 충분한 병력과 화력이 남아있다.

인민군 1사단, 2군단이 버벅거리고 있는 건 생각하기에 따라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가장 먼저 서울을 점령한 뒤, 남조선 1사단, 6사단 놈들 측면을 와해시켜 포위 섬멸한다면?

그 공을 전부 몰아받을 수 있다.

그렇게만 된다면 전쟁이 끝난 뒤 이깟 사단장쯤 동네 똥개 부르듯 부를 수 있는 자리에 오르는 것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진 조금 방심한 탓일 것이다.

사람이 힘껏 땅에 있는 지렁이를 밟아 죽이려 해도, 한 번에 안 죽는 경우의 수도 있기 마련이니까.

“사단장 동지. 이래 보고하는 것이 참으로 죄송스러운지는 알지만··· 땅크 부대를 가용하려면 시간이 조금 걸릴 것 같습네다.”

“왜! 왜! 왜이야! 이 간나 새끼야. 지금 이 자리에서 죽기 싫으면 이유까디 붙여 말하라. 알갔네?”

리영호 소장이 점점 격한 반응을 보였다.

그의 인내심이 곧 완전한 바닥을 드러낼 것만 같았다.

“죄···죄송합네다. 남조선 공병대가 송우리에서 축석령으로 향하는 모든 다리와 교량을 폭파··· 시켜 버렸답네다. 땅크가 지날 수 있도록 복구하는데 시간이 조금 소요될 것으로 판단···”

“좀 전까지 멀쩡하지 않았네? 그걸 이제 이제야 알았다고 나불대는 것이네?”

북한군 3사단이 송우리 인근과 축석령으로 향하는 교량이 파괴되었음을 알았을 땐, 이미 이강산 소령의 지시를 받은 독립 공병대대와 16연대 공병들이 모든 다리와 교량을 파괴한 뒤였다.

축석령에 이어 회암령에서 연타를 얻어맞아 정신없이 후퇴하는 틈을 타 병력을 추격하는 대신 교량 폭파를 선택한 것이었다.

“내래 이런 천하에 멍청한 것들을 데리고··· 당장 눈앞에서 사라지라.”

북한군 최정예라 불렸던 3사단.

지금 리영호 소장 눈에는 밥이 떠진 숟가락 하나 제힘으로 먹지 못하는 멍청이로 보일 뿐이었다.

물론, 그런 멍청이 없이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

맥아더를 오만, 방자함에 물든 늙은 사령관이라 생각한 사람들은 지금의 맥아더를 봐야 한다.

생각이 싹 달라질 테니까.

지금 표정은 마치 음···

부뚜막에 얌전히 앉아 집사를 기다리는 고양이 같달까?

물론 그렇게 귀엽다는 뜻은 아니고.

“기적적으로 한차례 적의 공세를 막아냈다곤 하나, 여전히 병력과 화력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도로와 다리가 복구되는 즉시 북한군은 이곳 3번 도로와 43번 도로를 점령하기 위해 대공세를 감행해 올 것입니다.”

이번 적 공세를 막아낼 수 있었던 건 국군의 결사 항전도 중요했지만, 적의 방심과 실책도 큰 몫을 했다.

사전 정찰 없이 대가리부터 들이민 4대의 선두 탱크를 M20 슈퍼바주카로 박살 내 길목을 막은 덕에, 후속하는 탱크들은 제대로 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멀리서 전차포만 갈겨댈 수밖에 없었다.

“우선 28일 오전쯤이면 일본에서 출발한 미 전투기들이 도착할걸세. 이 맥아더가 진즉에 명령해 뒀으니까.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연대 규모의 미 전투 부대와 그를 지원하기 위한 지원부대가 긴급 투입준비를 마치고 곧 이곳으로 출발할걸세. 그때까지만 버티면 놈들은 침략 의지를 상실하겠지.”

참, 이 양반.

한시도 안심할 틈을 주지 않는다.

공군과 해군 위주의 소극적 지원을 지시한 미 수뇌부의 지시를 지상군 투입으로 바꾼 것까진 훌륭했다.

UN 역시 강 건너 불구경하듯 구경하고 있지 않았다.

59개의 회원국 중 33개국이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을 지지했고, 영국, 오스트리아, 캐나다, 뉴질랜드, 네덜란드가 자국 군대 파견을 선언했으니까.

‘1개 연대로는 턱없이 부족해. 이 양반아.’

국군이 잘 버티고 있고, 압도적으로 밀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파병 규모를 줄이는 것은 곤란했다.

엎어지면 코 닿는 거리에서 오는 거라면 모르겠지만, 거의 지구 반대편이다.

부족하면 나중에 더?

이렇게 돼서는 곤란하지.

압도적 화력의 격차로 줄일 수 있는 피해는 생각보다 엄청나거든.

“미국의 지원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사령관님. 사령관님의 이러한 빠른 판단과 결심이 아니었다면, 대한민국은 어떤 위기를 겪어야 했을지··· 어쩌면 위기가 아니라 저 빨갱이들에게 나라를 통째로 빼앗겼을지도 모릅니다.”

“천만에. 이 나라는 충분히 지켜내야 할 가치가 있는 나라일세.”

1개 연대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당장 파병 규모를 늘리지 않는다면 전선이 어디까지 밀릴지 모른다.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아는가?

이런 말들로 맥아더를 설득하는 건 오히려 그의 반항심을 자극하는 셈일 뿐.

나는 그의 사용법을 알고 있다.

형, 착하지?

내 말 듣자.

“사령관님, 이번 전투는 정말인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과도 같았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오! 이 맥아더도 그렇게 생각했다네. 특히 다윗 같은 자네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지. 사실 이곳 축석령-의정부 방어선이 지켜진다는 확신이 없어 참모들과 한강 방어선 구축 계획을 논의하던 참이네.”

맥아더 내면 깊숙한 곳.

그곳에서 꿈틀거리는 무언가를 간지럽혀야 한다.

아주 부드럽고, 섬세하게.

“다윗이라니, 과찬이십니다. 사령관님. 저는 여기 있는 모든 이의 바람에 편승했을 뿐입니다. 이 나라의 평화, 나아가 민주주의가 이룩할 평화. 사실 가장 평화를 절실히 원하는 자들은 우리 군인들 아니겠습니까.”

“자네···”

그의 표정을 보니 여기가 급소다.

정확한 위치를 포착한 이상, 집요하게 그 부분을 파고들어야 한다.

“저는 미리 그분이 계획하신 운명이 닿는 그 순간까지, 이 나라와 국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최전방에서 목숨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그 과정 속 그분의 은총이 내려지길 바랄 뿐 아니겠습니까.”

단순히 전쟁에서 이기는 것만이 목적이었다면, 이렇게 배우 뺨칠 연기까지 해가며 그를 구워삶을 필요가 있나 싶을 테지만.

이건 어쩌면 대한민국에 다시 없을 기회다.

전쟁의 아픔을 딛고 일어나는 것은 물론, 과거에 청산하지 못하고 바로잡지 못했던 문제들을 해결할 우리 민족에게 주어진 두 번 다신 없을 기회.

아무리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도, 이미 과거와 달라진 흐름 안에서 ‘이제 난 몰라’나 하는 건 영웅이 할 행동이 아니다.

‘됐다.’

대답도 마다한 채 혼자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맥아더.

입 밖으로 소리는 내지 않았지만, 그가 혼자 읊조린 말을 입 모양 통해 알 수 있었다.

prophet.

선지자.

아직 완벽히 요리됐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맥아더가 그 단어를 떠올린 것만으로도 엄청난 성과임이 분명하다.

“미안하네. 잠시 무언가 떠올라서. 이 맥아더는 이 나라와 자네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네. 필요한 것이 있다면 언제든. 밤낮 가릴 것 없이 말하게.”

이 나라에 최선.

이 나라와 자네에 최선.

맥아더 입에서 간단히 단어 하나 추가된 것이지만, 그 단어 하나가 일으킬 파급력은 어떤 단어보다 강력하게 작용 될 것이다.

“영광입니다. 저와 국군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미군의 지원이 올 때까지 이 방어선을 지켜낼 것입니다. 사령관님, 방어선을 지켜내려면 급변하는 상황에 맞게 전 부대를 지휘할 전투경험과 지휘경험이 풍부한 노련한 지휘관이 필요합니다.”

그나마 내 말을 무시하지 않았던 덕에 방어선을 지켜내고 있지만, 유재흥은 유능하고 노련한 지휘관과는 거리가 멀다.

내가 하는 요구를 흔쾌히 들어준다면, 적어도 똥별 지휘관이 언제 어디서 사고 칠지 몰라 노심초사하는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다.

“돌아가는 즉시 고려해 보겠네. 자네가 생각하는 적임자가 혹시 있나?”

적임자? 물론 있다.

조용히 맡은 임무를 훌륭하게 소화해내는 재야의 고수들.

언제 별똥별이 되어 떨어질지 모르는 똥별 말고 진짜 별.

“있다면 말해보게.”

아, 정말인지 영광스러운 순간이 아닐 수가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