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민국 전쟁영웅이 되었다-45화 (45/149)

45화. 반격의 서막(1)

머릿속에 떠다니던 여러 가지 방법 중,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는 것부터.

그러려면 도움이 좀 필요했다.

‘이봐. 나노봇.’

[?]

눈앞에 보이는 건 나노봇이 띄운 물음표 하나였다.

아마, 요 며칠 이어진 긴박한 전투 속에 자신을 찾지 않아 삐진 모양이다.

‘까딱 방심하면 온몸이 조각조각 날 판국에··· 여유롭게 너를 찾고 있을 시간이나···’

[?]

이 새끼가?

라고 말하려다 참았다.

이내 내 속마음을 읽었는지, 연신 물음표를 띄워댔으니까.

‘미안해. 상황이 상황인지라.’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이었다.

시뮬레이션으로 세세한 작전 계획을 짤 수 있었고, 지금까지 지치지 않는 체력과 시력, 청력과 같은 감각기관들을 위해 나노봇은 24시간, 단 1초도 쉬지 않고 있었으니까.

진심 어린 사과가 통했는지 일단은 넘어가 주겠다는 건진 모르겠지만, 더는 물음표를 띄우진 않았다.

‘중국 인민지원군 군복 이미지 검색 부탁해.’

검색을 부탁한 뒤, 곧바로 펜과 종이를 찾아 막사 안에 앉았다.

이 작전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중국에서 만든 것과 누가 봐도 구별하기 힘든 디테일.

육군은 물론, 공군.

정말 혹시 몰라 만든 해군 군복까지.

내 손끝에서 그려지고 있었다.

아주 디테일하게.

“이 정도면 완벽하군.”

중국이 조금 억울할지도 모르겠다만?

아니, 억울할 자격이 없다.

과거 중국산 짝퉁과 미세먼지에 시달린 나에게, 이 정도는 복수도 아니었다.

야음을 틈타 아무도 모르게 막사에서 몰래 빠져나왔다.

이전에 미리 알아 봐둔 재단사에게 가기 위해서.

이 작전은 오로지 나만이 알고 있어야 했다.

***

미 극동군사령부 전방 지휘소.

완성된 군복을 챙겨 곧장 향한 곳은, 미 극동군사령부 지휘소였다.

“이게 정말··· 추락한 북한 전투기 잔해에서 나온 것이란 말이오?”

주한미국대사 무초의 눈이 처음 인사를 나눴을 때보다 두 배는 커져 있었다.

못 볼 것이라도 봤다는 듯이.

“그렇습니다. 제가 직접 수집한 것이니, 틀림없습니다.”

틀림없다.

내가 직접 수집한 것이란 말에는 한 치의 거짓도 없었으니까.

“특공 연대장 이강산 중령이 직접 수집했다면, 이건 더 조사할 필요도 없다고 봅니다. 필시, 중공군 놈들이 이미 개입했거나, 개입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맥아더 사령관이 무조건 틀림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어줄 것 같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굳이 이렇게 섬세하게 만들 필요도 없었을 것을.

‘다시 봐도 완벽하다.’

물론, 이강산 디자이너가 탄생시킨 특별 제작 군복에 조금의 가공을 거쳤다.

가장 먼저, 완성되어 곱게 다려진 군복을 불에 태웠다.

반쯤 타 없어지고, 빈티지 느낌이 물씬 풍기도록 적당히 그을림이 묻어나올 때, 군복을 불 속에서 꺼냈다.

그 후, 날카로운 전투기 잔해 조각을 주워 이곳, 저곳을 찢고 잘라 마무리.

마무리 작업까지 마치자, 멀쩡했던 군복은 절반도 채 남지 않았다.

누가 보더라도 영락없는 전투기 잔해 속에서 찾은 유실물이었다.

“당장 이 사실을 워싱턴과 국회에 보고해야겠습니다. 그 전에, 한 가지만 더 확실히 해두고 싶군요.”

무초 대사가 단호한 눈빛으로 나와 맥아더 사령관을 차례로 훑었다.

어떤 질문을 하더라도, 완벽히 답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여기 계신 두 분 모두,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에 가기 위해 군용 화물기에 올라탄 사실을 정말 몰랐습니까? 트루먼 대통령께서 상당히 의아해하고 계십니다.”

“물론, 제가 아닌 그 누구라도 알았다면, 그를 말렸을 겁니다.”

맥아더가 두 손바닥을 하늘로 올려 보이며 말했다.

아주 시치미 떼는 연기가 일품이었다.

“저는 감히 꿈속에서도 상상해보지 못한 일입니다. 저는 군인이기 전에 이 나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어찌 그런 행동을 알고도 모른 척할 수 있었겠습니까. 대사님.”

“알겠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최측근조차 몰랐던 일을 두 분께서 알기란 쉽지 않은 일이겠죠.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할 일이 산더미군요.”

무초 대사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맥아더와 눈이 마주쳤다.

따봉.

우리는 서로 엄지를 들어 서로의 연기를 칭찬했다.

삼인성호(三人成虎)

세 사람만 우기면 없는 호랑이도 만들어 낼 수 있다.

맥아더 사령관, 무초 대사, 이승만 대통령.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 국회에선 반공만을 입 아프게 외쳐대며 날뛰고 있는 매카시 의원까지.

작품을 진행하기 위한 섭외는 완벽, 완벽 그 자체였다.

“중공군 놈들의 개입 증거가 나왔으니, 신속한 군사 지원을 기대할 수 있을 걸세. 이 전쟁의 끝이 대체 어디일 런지···”

맥아더 사령관은 말 그대로 나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증거가 내 손안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 듯했다.

“적보다 월등히 앞서는 전력만이, 피해를 최소화하여 전쟁을 끝내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미 공군의 전폭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방어선 고착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여전히 한강 방어선엔 양측에서 쏴대는 포탄이 쉴새 없이 오가며 떨어지고 있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이 안 좋아지는 쪽은 북한군이었다.

제공권을 장악한 미 공군이 북한군의 보급선과 추가 병력을 융단 폭격으로 지워버리고 있었고, 그 덕에 북한군은 악천후의 날씨나 야간이 아니면 제대로 된 기동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제도 임무 중 미 공군 B-29 폭격기 한 대와 머스탱 전투기 2기가 적 전투기와 전투 중 격추됐네. 늙은이들이 애초에 F-80 전투기 배치를 막지 않았다면 이런 피해는 없었을 것을.”

“북한군 조종사들의 실력이 생각보다 뛰어나다고 들었습니다. 고도로 훈련된 미 공군 조종사들이 아니었다면, 제공권을 장악하는데 고전을 면치 못했을 것입니다.”

미 공군 역시 뛰어난 활약을 펼치고 있었지만, 북한군으로 위장한 베테랑 소련 조종사들에게 적지 않은 출혈을 감수하고 있었다.

“수일 내로 일본에 있는 F-80 편대가 한국에 도착할걸세.”

아주 좋아.

신형 전투기는, 언제라도 두 팔 벌려 환영이다.

“이 나라와 자유를 지키기 위한 사령관님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고개를 살짝 숙여 맥아더에게 감사를 표했다.

나에게 구워 삶아졌다 해도, 먼 타지에 와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고생하고 있는 건 달라지지 않는 사실이다.

남은 건, 미국과 트루먼의 결정이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따라, 이 전쟁의 끝이 언제일지.

또 끝이 어디일지 작은 실마리를 예상해 볼 수 있을 테니까.

***

7월 5일.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이었다.

이렇게 맑은 날이면, 북한군은 햇빛을 보면 살이 타는 뱀파이어라도 된 듯,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제공권을 장악한 미 공군의 폭격은 그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기 충분했다.

“우리는 오늘부로 1군단 사령부 직속 특공 연대로 편성되었다.”

김홍일 총참모장 주도하에 실행된 국군 재편이 어느덧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다.

방어선에 어지럽게 혼성되어 있던 수도 사단, 1사단, 2사단, 3사단, 5사단, 7사단을 완전한 편제의 3개 사단으로 재편성해 제1군단 사령부의 예하 부대로.

6사단, 8사단과 동부전선의 혼성 부대들을 재편성해 제2군단 사령부의 예하 부대로 재편했다.

초대 1군단장으로는 김석원 사령관이, 2군단장으로는 김종오 대령이 특별 진급과 더불어 임명됐다.

전시개편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아니었다면?

족히 몇 년은 걸렸을 일이 김홍일 총참모장의 결단 아래 불과 보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내에 완성됐다.

덕분에 혼잡하고 어지러운 야전군의 지휘체계를 바로잡고, 국군이 미군과 연계해 체계적인 작전을 전개할 수 있는 편성을 갖출 수 있었다.

“연대장님, 오늘 같은 날이면 빨갱이 새끼들은 진지 속에 고개를 파묻고, 오줌이나 질질 지리고 있을 텐데, 북진 명령은 언제쯤이나 떨어지는 겁니까?”

특공 연대 2대대장 문기준 소령이 물어왔다.

두 사람 모두 명령에 잘 따르고 현명한 지휘관이었지만, 1대대장 김상옥 소령이 잔잔한 강이라면, 문기준 소령은 거친 바다였다.

특히 문기준 소령은 빨간색만 봐도 질색할 정도로 공산당에 대한 거부감이 심했다.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조금만 더 기다려라! 서울을 탈환할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

부대원들이 환호성을 질러댔다.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깨달아 아는 것이다.

목숨이 하루에도 수도 없이 왔다 갔다 하며, 국군이 고비를 넘겼고, 이제 그 고비는 적에게 넘어가고 있음을.

동네 개싸움이나 전쟁터 어디에서든 통용되는 말이 있다.

선빵필승.

전쟁 초반은, 당연히 치밀하게 전쟁을 준비한 뒤, 먼저 공격을 하는 나라에 유리하게 돌아가기 마련이다.

보편적으로는 그렇지만, 지금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북한군 작전 계획 중 제대로 계획대로 된 것이라고는 찾기 힘들었으니까.

3일 만에 국군 전역 대부분을 와해시키고 서울을 함락한다는 계획?

물거품.

박헌영 부위원장의 말대로 서울만 점령하면 전국적인 인민 총궐기가 일어날 것이라는 계획?

응. 물거품.

전투 중 소모된 병력을 남한 내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세력으로 보충하려는 계획?

안타깝게도 서울은 언제 수도였냐는 듯, 거의 빈집에 가까웠다.

“자네들은 명령이 떨어지기 전까지, 부대원들이 너무 들뜬 마음을 갖지 않도록 주의시켜. 여전히 적의 공세가 위협적이라는 사실을 절대 망각해선 안 돼. 알겠나?”

김상옥 소령과 문기준 소령을 불러 간단한 정신교육 시간을 가졌다.

방심은, 때론 그 어떤 적보다 위험한 법이니까.

잠깐의 방심이 생과 사를 갈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예! 연대장님. 알겠습니다.”

들뜬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미 24사단 34연대, 21연대가 스미스 대대에 이어 속속 도착하며 방어선을 빈틈없이 메꾸고 있었다.

순전히 북한군만을 생각한다면, 이미 전세가 역전됐다고 판단하는 지휘관도 제법 많았다.

물론 소련과 중국이 참전하지 않는다는 조건 아래.

‘아직 갈 길이 멀다.’

내가 생각하는 미래를 현실로 만들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과 뼈를 깎는 노력.

때로는 숭고한 희생이 따를지도 모른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식상한 말이지만 내 사전에 포기는 없다.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 날까지.

***

지구 반대편 워싱턴 D.C

“아. 아.”

누군가 연설을 준비하며 목을 풀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앞에 놓인 종이를 읽고, 또다시 읽어봤다.

“준비되셨습니까?”

“준비됐네.”

지금 이 순간은, 세계사에 한 획을 긋는다는 표현으로도 모자랄 것이다.

시작해도 된다는 사인이 떨어지자, 그가 입을 열었다.

“미합중국 대통령, 트루먼입니다. 오늘은···”

트루먼 대통령의 입에서 역사를 바꿀 선언이 나오는 순간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