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서울 탈환 작전(2)
아무 일이 없길 바랐다.
찝찝한 느낌은 그저 생사가 걸린 돌다리를 두들겨보고 싶었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며, 차라리 괜한 조바심이기를.
토머스 중령이 내 말이 맞지 않냐며 거들먹거리고, 콧방귀나 뀌어 대더라도 말이다.
“다행히도 무사히 잘 건너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LVT가 강 중간 지점을 넘어서고 있었다.
1대대장 김상옥 소령이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직 모른다. 아직은··· 조금 더 지켜봐야겠어. 사수들 정위치에 대기하라고 해.”
사실, 반대편에 거의 다다라가는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LVT가 강에 뜨자마자 적이 포격이나 사격을 해온다면?
그 즉시 되돌아와, 포병대에 화력지원 요청 후 도하 하면 깔끔하다.
‘문제는 지금처럼···’
“적이다! 덕양산 방면 적 사격!”
강변에 다다라서 적이 사격을 해왔을 땐, 대응이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두두두두두두. 쾅!
덕양산에 매복하고 있던 북한군의 박격포와 기관총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예상치 못한 기습에 미리 건너가 있는 정찰대, LVT에 타고 있는 미 해병 수색 중대원들이 할 수 있는 건, 정신을 놓고 떠는 것이었다.
“사격 개시! LVT가 돌아올 시간을 벌어줘야 한다!”
신속히 대응 사격명령을 내렸다.
LVT가 기관총이 쏴대는 총알을 막아주곤 있었지만, 적의 위치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박격포와 기관총이 쏟아지는 강변에 상륙하는 건 그저 자살행위에 불과하니까.
기습에 정신을 놓은 건, 팔짱이나 끼고 무사히 LVT가 건너기만을 바라보던 토머스 중령도 마찬가지였다.
“토머스 중령! 저 LVT와 부하들을 전부 강바닥에 수장시키고 싶지 않으면, 당장 복귀 명령 내리고 포대에 포격 요청해!”
“알··· 알겠소.”
확 그냥.
얼 타고 있는 모습에 뺨이라도 두어대 갈기려다 애써 참아냈다.
미리 방열해둔 1대대의 신속한 박격포, 기관총 사격이 덕양산을 향해 시작되자, 적의 사격이 잠시 주춤해졌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LVT가 일제히 다시 본대가 있는 방향으로 기수를 돌렸다.
모든 LVT가 멀쩡히 돌아왔으면 아주 좋았겠지만, 전쟁이 그리 쉽냐고 비웃는 듯, 8대 중 2대의 LVT가 표류 중 모래톱에 좌초됐다.
“제기랄. 토머스 중령. 현 상황에 대응할 방법이 있나?”
“음··· 음··· LVT가 모래톱 저곳에서 무사히 빠져나오길···”
없다는 소리다.
입에 소가 뜯는 여물을 한가득 집어처넣고 싶었지만, 지금은 LVT를 구해내는 게 먼저였다.
물론 세계 최강 미군이라 해도 사람이기에, 실수하거나 두려워할 순 있다.
그럼에도, 한 번 더 정찰했다면 하는 아쉬움은 지워낼 수 없었다.
“1대대장. 예상 적 규모는?”
김상옥 소령이 기다렸다는 듯 곧장 대답했다.
“현재 예상되는 적의 규모는 200명 이내, 1개 중대로 생각됩니다. 눈으로 식별되는 기관총 진지는 3곳, 박격포 또한 3문에서 5문 사이로 판단됩니다.”
내가 내린 판단과 거의 일치했다.
부대 전체가 숱한 전투를 거치며 경험이 쌓이고 있었다.
아주 정확할 순 없겠지만, 적의 화력과 규모를 파악하고 예측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1중대 준비시켜, 우리가 구하러 간다.”
“예! 연대장님.”
LVT 한 대에 탑승할 수 있는 인원은 24명.
돌아온 6대의 LVT로 한 번에 상륙시킬 수 있는 병력은, 대략 150명쯤.
아주 위험한 작전이 되겠지만, 지휘부에서 이것저것 따져가며 만들어올 작전을 기다리기엔 시간이 없었다.
“남은 1대대, 2대대는 1중대가 무사히 상륙할 때까지, 쉬지 않고 엄호사격을 하도록. 1중대가 도하 한 뒤, 적 공용화기를 제압하면 후속 병력은 신속히 강을 넘는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명령을 마치자마자 가장 가까운 LVT에 올라탔다.
“연대장님! 안됩니다. 연대장님이 왜 거기에···”
“시간이 남아도나? 빨리 탑승시켜!”
김상옥 소령이 못 말린다는 표정을 지은 뒤, 서둘러 병력을 LVT에 태웠다.
‘아까 말했잖아. 우리가 구하러 간다고.’
당연히 우리엔 나도 포함이었다.
***
LVT 내부는 좁고 컴컴했다.
물 위를 달리는 장비다 보니, 물 찌든 내까지 완벽한 궁합을 자랑했다.
무엇보다 가장 엿 같은 건, 빨갱이 새끼들이 쏘는 총알이 장갑에 맞고 튕겨 나가는 소리였다.
“후방 램프가 열리는 즉시, 죽기 살기로 뛰어 엄폐물을 찾아 몸을 보호한다. 어물쩍댔다간, 한강 물귀신이 될지도 모르니까.”
듣기에 희망찬 명령은 아니었을 것이다.
지극히 사실에 입각한 명령이었으니까.
본인이 싼 똥은 본인이 치우라며 미군에 책임을 전가할 수도 있었다.
다만, 결국은 반드시 해야 하는 작전이고, 나와 특공연대가 어떤 부대보다 잘 해내리라 믿었다.
‘아주 납작하게 눌러주지.’
함께 작전을 수행하는 미 해병대에서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오려는 방심과 안일함을 대번에 누름과 동시에, 은혜를 입힐 기회였다.
-덜컹.
LVT 후방 램프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
“가자!”
미리 말하지 않았어도, 모두가 죽기 살기로 뛰었을 것이다.
근처에서 총알이 스쳐 가며 내는 섬뜩한 소리는 직접 들어본 사람만이 아는 공포다.
적의 화력이 분산된 틈을 타, 모래톱에 갇혀있던 미 해병이 탄 LVT도 후방 램프를 열었다.
“1소대는 좌측! 3소대는 우측으로 우회한다! 2소대는 따라와!”
선발대가 탄 LVT 램프가 열리는 것을 확인하자, 1대대가 강 너머에서 쏘던 기관총과 박격포 사격을 멈췄다.
“피해 상황 보고해.”
“부상 2명 외 특이사항 없습니다.”
2소대장이 헐떡이는 숨을 간신히 고르며 말했다.
상륙 중 팔과 다리에 가벼운 총상을 입은 소대원 2명을 제외하면, 사상자는 없었다.
“부상자는 현 위치에서 작전이 끝날 때까지 대기한다. 작전대로 후속 LVT가 강변에 다다를 때쯤, 고지를 돌파한다. 적을 제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상자를 최대한 줄인다. 알겠나?”
고지를 점령하고 있는 적을 향해 돌격하는 건, 아군도 큰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피해를 줄이기 위해 생각해낸 방법은, 후속 LVT가 도하 함과 동시에 덕양산 고지를 향한 전진.
두 가지를 병행해 적의 화력을 분산시키는 방법이었다.
“돌격 준비!”
특공연대원 한 명, 한 명은 이미 첫 전투에 사시나무 떨리듯 떨던 풋내기가 아니었다.
명령대로 훌륭히 해내는 건 기본이고 소대장, 중대장급 지휘관들의 지휘능력 또한 월등히 향상되어 있었다.
좌, 우, 정면에서 각각의 소대가 하나의 유기체처럼 맞물려 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돌격!”
두 번째 LVT가 강변에 도착하자, 3개 소대가 일제히 고지를 올랐다.
“좌측에 토치카!”
-펑!
누군가 던진 수류탄이 토치카에 명중하는 소리였다.
전투는 예상했던 그대로 진행되어 갔다.
압도적으로 불리한 지형이었음에도, 고지 아래쪽을 향해 날아오는 적의 총알이 그리 많지 않았다.
“연대장님! 다음 상륙정도면, 추가 병력과 함께 고지를 탈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좋아. 흥분을 가라앉히고 지금처럼 전진한다. 이제, 시간은 우리 편이야.”
두더지 잡기 뺨치는 기발한 작전으로 북한군의 화력을 분산시켜가며 고지를 올랐다.
그렇게 3번째 LVT가 후방 램프를 열었을 땐, 더는 강변에 적의 총알이 닿지 않았다.
-쿠르릉! 쾅!
마른하늘에 벼락이 쳤다.
고지를 버리고 후퇴하는 적 머리 위에 폭격기가 날벼락을 내려치고 있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고지 탈환에 막대한 공을 세운 1중대가 뒤꽁무니 빠지게 도망가는 적을 보며 함성을 질러댔다.
“각 소대장 피해 상황 보고해.”
-1소대 부상 2명. 이상입니다.
-2소대 부상 3명. 이상입니다.
-3소대 부상 1명. 이상입니다.
3명의 소대장이 각자 보고를 마치자, 서로 되묻기 시작했다.
“이봐, 1소대장. 확실해?”
“아니, 3소대야말로 부상 1명이 끝입니까?”
적이 매복한 곳에 상륙한 것도 모자라 덕양산 고지를 탈환했음에도, 전사자는 없었다.
역사상 이런 전투가 있었나?
아무리 좋은 작전이었다고 한들, 기적적인 일임이 분명했다.
“서둘러 주변을 정리한다.”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는 소대장들의 눈빛이 모두 같았다.
기적을 본듯한 눈빛.
그들에겐 내가 기적으로 보인 모양이었다.
***
덕양산을 점령하자, 도하를 방해하는 다른 북한군은 없었다.
1중대가 목숨 걸고 뚫어낸 교두보를 통해 본대가 모두 강을 건널 수 있었다.
“고맙네. 이강산 중령, 덕분에 병력을 살렸어.”
당연히 고마워해야지.
단순히 LVT 두 대와 병력을 살린 게 전부가 아니라 본대가 강을 건너올 수 있도록 교두보까지 다 세워줬는데.
“한국엔 이런 말이 있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멋지게 넘어갈 수도 있지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나 혹시.
이 나이에 벌써 꼰대가 되어버린 건가?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봐야 아는가? 어때, 자네가 내린 결정은 똥이었나 된장이었나?”
“냄새가 아주 지독하더군.”
토머스 중령이 코를 막는 시늉을 했다.
실상 그가 느끼기에 똥이나 된장 둘 다 지독한 냄새로 느껴지겠지만, 뜻을 충분히 알아먹은 듯했다.
“이번엔 미 해병대가 자네와 한국군에게 신세를 졌지만, 혹시나 한국군에게 위기가 닥친다면 오늘 이 신세를 잊지 않겠네.”
“알겠네.”
진심 어린 그의 말에 타박은 이쯤 해두기로 했다.
한강을 무사히 건너긴 했지만, 서울을 완전히 탈환하기까지 많은 고비가 남았다.
“연대장님, 내일 오전 미 32연대와 국군 17연대가 서빙고에서 도하작전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쉬지 말고 부지런히 움직이란 소리였다.
“알겠네. 자네는 상부에 정확히 이렇게 보고하게. 특공연대와 국군 해병대가 선두에 서서 미 해병대와 함께 도하에 성공했다고.”
국군 해병대는 아직 전투경험이 많지도, 장비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상태였다.
서울 탈환의 주공 부대에 국군 해병대를 투입 시킨 것은, 분명 국군의 사기를 높이려는 정치적 이유도 가미되어 있었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타쌍피 작전으로 간다.’
국군 해병대가 그 어떤 부대보다 용감하고 용맹하게 전투에 임할 것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용감하고 용맹함은, 전투경험과 장비의 부족함을 조금은 메꿔줄지언정, 넘어서게 해줄 순 없다.
전쟁은 지독할 정도로 현실이니까.
불필요한 피해를 줄이고, 국군과 한국인의 기상도 높일 훌륭한 방법이었다.
“연대장님.”
전쟁이 끝나면 그때 불리는 이름으로 개명부터 해야 할 것 같다.
지금은 성은 연이요. 이름은 대장이지만, 곧 이름이 바뀔지도 모르니까.
“그게···연대장님을 꼭 만나야겠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게 누군가?”
그새 기가 막힌 도하작전을 주도한 주역이라고 소문이라도 났나?
갈 길이 먼데.
어째 이놈의 인기는 사그라들 줄 모르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