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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전쟁영웅이 되었다-51화 (51/149)

51화. 서울 탈환(1)

북한군 입장에선 듣도 보도 못했을뿐더러, 느껴보지 못한 파괴력일 것이다.

쇠 구슬이 시야에 있던 모든 것들을 인수 분해했다.

아.

파괴력을 직접 느낀 사람은 존재하지 않지.

맛을 본 북한군은 모두 주님 곁으로 가버렸으니까.

직접 격발한 특공대조차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연대장님, 대체 저 조그마한 것이 어찌···”

수류탄과 비슷한 원리를 가졌지만, 그 파괴력은 비할 것이 아니었다.

TNT 폭약 700g과 두꺼운 철판, 몸에 구멍을 송송 뚫어줄 쇠 구슬과 이것들을 담을 플라스틱 통이면 크레모아를 만드는 데 충분했다.

조금 개량을 거친다면, 밀집한 적 보병 전력을 상대하기 아주 좋은 무기가 될 것이다.

“서둘러 고지 반대편 잔당들을 소탕해. 폭격 이후 아군 본대가 연희고지 탈환에 나설 것이다.”

“예! 알겠습니다. 1소대 따라와!”

단번에 56고지 정상이 뚫리자, 나머지 북한군들은 속수무책으로 쓰러져갔다.

오히려 특공대가 더 높은 고지에서 북한군을 내려다보는 상황이었다.

‘온다.’

-쾅!

안개가 걷히고 발화통 연기마저 시들자, 전투기와 폭격기들이 기다렸다는 듯 나타나 불비를 내렸다.

56고지를 빼앗긴 북한군은, 3면이 포위된 형국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4면.

남쪽엔 특공대가, 서쪽엔 특공연대 본대와 해병대 1대대, 북쪽엔 안산을 점령한 미 해병 3대대가 자리 잡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하늘에서 떨어지는 공중 폭격까지.

북한군 입장에선 싸던 똥도 끊고 튀어야 할 판이 벌어졌다.

“연대장님, 고지 아래쪽에 아군 본대가 보입니다.”

고지에서 내려다본 광경은 얼핏 보면 치열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북한군 25사단이 쳐놓은 바리케이트와 진지가 한겹 한겹 무너지고 있었다.

“1소대는 점령한 고지를 방어하고, 2소대와 3소대는 남쪽에서 적을 기습한 뒤, 본대와 합류한다.”

미 해병 5연대가 예비로 빼둔 2대대가 나설 필요도 없었다.

본대에 맞서기에도 밀리던 찰나, 특공대 2개 소대가 남쪽에서 나타나 기습을 가하자 전투 의지를 상실한 채, 지키고 있던 진지를 버리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손들어 이 새끼야! 손 똑바로 들어!”

미처 똥을 끊지 못한 북한군들이 사방에서 총을 버린 채 포로가 되고 있었다.

아주 운이 좋은 놈들이다.

-쾅!

미리 후퇴한 북한군들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온갖 폭탄을 온몸으로 느껴야 할 테니까.

뭐, 폭탄 사이로 막 갈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

같은 시각. 평양.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으셨소. 동지.”

인민군 최고사령관이자 북한 수상, 김일성이 가벼운 목례를 건넸다.

그가 동지라 칭하며 먼저 목례를 할만한 인물은, 북한 내 몇 없었다.

“전선 상황이 좋지 않네만, 국방군 놈들의 도청을 피해 깊은 대화를 나누려면 직접 오는 방법뿐이라 생각했네.”

전선 사령관 김책이었다.

김일성과 반말로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유일한 인물.

상징적인 의미만 가진 채 평양에 죽치고 있는 김일성과 달리, 전선 사령관의 직책을 맡아 총참모장 강건과 함께 전선에서 북한군을 총지휘하고 있었다.

“서울이 다시 남조선 놈들에게 넘어갈 위기라고 들었는데 사실 입네까?”

박헌영과 대화할 때와 달리 화를 내거나, 다그치지 않았다.

오히려 말 한마디에 신중을 다했다.

“솔직히 말하겠네. 현재 우리 인민군대만으로는 남진이 불가해. 게다가 추가적인 연합군 병력이 남조선에 당도하고 있네. 이대로 가다가는 서울이 문제가 아니라 여기, 평양이 남조선 수중에 떨어지는 것을 걱정해야 할 판이야.”

평양 함락.

감히 누구도 함부로 입에 올리기 힘든 말이었지만, 김책은 달랐다.

김일성이 제대로 상황을 판단할 수 있도록 조금도 돌려 말하지 않았다.

“정녕 방법이 없다는 말씀이십네까?”

김일성이 고개를 떨구자, 김책이 김일성의 어깨를 토닥였다.

“방법은 자네도 알고 있지 않은가.”

“스탈린 동지와 모택동 동지에게 숱한 부탁을 하고는 있지만, 정확한 답을 주지 않습네다.”

북한이 붙들어 잡을 바짓가랑이는 당연, 스탈린과 모택동이었다.

미국이 연합군을 구성해 참전을 알린 순간부터 숱한 구애를 하고 있지만, 돌아오는 건 미지근한 반응뿐이었다.

38선을 돌파하기에 충분한 연합국 병력이 한반도에 전개되고 있었지만, 만약을 대비해 발 뺄 곳을 만들어 두는 건, 소련과 중국 둘 다 마찬가지였다.

“부탁할 때는··· 상대가 원하는 게 뭔지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아니겠나. 그들이 우리 부탁을 들어줄 만한 명분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서?”

대화 내내 김책의 성격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말에 높낮이가 적고, 무거움이 느껴졌다.

“이보게 마두. 자네는 이 나라 수상이야. 언제까지 누가 알려줄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잘 들어보라.”

김일성은 과거 마적단이라는 단체의 두목이었다.

김책이었기에 부를 수 있는 별명.

“그들에게 부탁하려면 말이야. 이 전쟁이 왜 이렇게 됐는지, 우리 북조선의 잘못을 먼저 반성해야지. 썩은 싹을 도려내야 한단 말이야. 그저 조그마한 것으론 턱도 없지. 어차피 우리 인민군대의 힘만으로는 버티기도 어려운 마당에, 찬물 더운물 가릴 처지 간?”

소련과 중국이 받아들일 만한 전쟁이 이렇게 된 이유, 즉 썩은 싹을 먼저 도려 전쟁에 대한 의지를 표하라는 뜻이었다.

조그마한 것으로 턱도 없다는 것으로 보아, 거물급 인사를 도려내란 뜻도 내포되어 있었다.

“잘 알갔습네다. 김책 동지.”

김일성 머릿속에 떠오르는 인물 몇몇이 있었지만, 이내 한 명으로 추려졌다.

자신과 사사건건 부딪치고, 전쟁의 책임이 있으면서도 표면적으로 거물로 비치는 인물.

“그리고 모택동 동지에게 전하시게. 우리 북조선이 내전에 10만이 넘는 병력을 지원한 사실을 잊지 말라고, 남조선과 국경을 맞대는 것은, 미국과 국경을 맞대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이네. 그러다 장개석이라도 혹시 날뛴다면야···”

김책이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 말을 다 마친 그는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이 보라. 박헌영 동지 지금 어디 있네.”

명분?

박헌영을 숙청할 명분은 충분하고도 남았다.

혹여나 충분하지 않아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만들면 그만이다.

어차피 죽은 자는 말이 없을 테니까.

***

7월 15일 오후 5시.

총성과 폭격 소리가 잠잠해졌다.

연희고지를 온전히 탈환한 특공연대와 해병 1대대는, 원래 목적지인 의령 터널까지 진출할 수 있었다.

“의령 터널까지 진입하는 동안, 북한군의 반발은 극히 미미했습니다. 아군 피해 상황 보고된 바 없습니다.”

“수고했네. 내일 새벽 미 해병 1연대가 당산을 통해 도하 할 걸세. 미 7사단 병력까지 도하에 마치면, 곧 시가전에 돌입할 테니 병력에 충분한 휴식 부여하게.”

“예! 알겠습니다.”

김상옥 소령에게 명령을 내린 뒤, 지휘소 막사로 발을 옮겼다.

미 해병 5연대가 와우산 일대를 탈환한 덕분에, 미 해병 1연대가 당산에서 적의 저항을 받지 않고 도하 할 교두보가 마련됐다.

미 해병 1연대가 무사히 당산을 통해 도하에 성공해 79고지만 점령한다면, 그 뒤를 이어 미 7사단 32연대와 국군 17연대가 영등포를 통해 도하 하면서 서울을 완전히 감쌀 수 있게 된다.

“서울이 코앞이다.”

말 그대로 서울 탈환은, 시가지에 숨어있는 북한군만 몰아내면 마무리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게 나으려나? 아니면 이 자세가···”

지휘봉을 태극기 삼아, 자세를 여러 번 바꿔가며 연습했다.

맥아더가 콘 파이프를 물고 있는 사진이 유명한 만큼, 서울 중앙청에 태극기를 거는 장면은 역사에 길이 남을 테니까.

샤워할 때마다 몸 이곳저곳에 힘을 줘가며 자기 근육에 도취 되는 건 사내의 기본인 마당에, 어려울 것 없지.

이왕이면 멋진 자세로 찍힌 사진이, 나중에 어떤 도움으로 다가올지도 모르는 거고.

“연··· 연대장님. 아··· 아닙니다. 잠시 뒤에 오겠습니다.”

김상옥 소령이 못 볼 것이라도 본 듯 부끄러운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인가.”

이럴 땐 침착해야 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근데 언제부터 보고 있었던 거지?

제기랄.

***

16일 오후 2시.

특공연대와 해병대 1대대는 아현동 고지를 넘어 서울 시가지에 들어서고 있었다.

저항이 거세다 느껴진 지형엔, 후방 포격과 항공 폭격을 요청한 덕에 큰 피해 없이 전진해나갔다.

특히 폭격의 효율이 떨어지는 계곡이나 진지를 깊이 파둔 지형을 마주쳤을 땐, 연희고지에서처럼 1개 소대를 우회시켜 남아있는 크레모아로 적을 기쁘게 했다.

크레모아가 격발된 순간, 적은 좋아 죽었다.

뭐, 정말 좋아서 죽은 건 아니겠지만.

“3시 방향 건물, 적 발견!”

시가전은 아군과 적군 모두에게 많은 시간과 희생을 강요했다.

강력한 항공 지원과 화력이 시가지를 휩쓴다 한들, 건물 하나하나를 수색하고 점령하는 건 보병의 몫이었다.

“죽어! 죽으라우! 이 국방군 개새끼들아!”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탕!

정확히 조준해 사수의 머리를 맞췄음에도, 모래주머니를 쌓아 만든 호 안에서 쏴대는 기관총은 멈추질 않았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뭐지? 좀비도 아니고.”

잘못 봤을 리가 없다.

내가 쏜 총알은 정확히 머리 한가운데를 뚫고 지났다.

소대원 3명이 진압을 위해 우회하려는 순간, 총알 세례가 멈췄다.

“으··· 이런 빨갱이 개새끼들. 여기 좀 보셔야겠습니다.”

기관총이 멈추자, 재빨리 3인 1개 조로 건물에 진입해 잔적을 소탕했다.

건물 확인이 끝나자, 참혹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까지 참혹한 광경이야 수도 없이 봤다.

사람이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는 시신도, 젖먹이 갓난아이가 엄마와 함께 죽은 모습도, 온갖 끔찍한 광경이 일상이 되는 게 전쟁터니까.

이번엔 약간 다른 느낌이었다.

“이 새끼들이···”

진지 안에 죽어있는 북한군 기관총 사수는 몸과 손이 굵은 말뚝에 묶여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날 수도, 손을 기관총에서 뗄 수도 없게 만들어 놓았다.

머리에 총을 맞아 죽고도, 손에 악력이 풀리기 전까지 기관총 방아쇠가 눌려 총이 발사된 것이었다.

북한군 자신들이 퇴각할 시간을 벌기 위해 강제로 전우를 묶어 국군과 연합군을 지연시키는 잔인한 광경에 말문이 막혀왔다.

“출발한다.”

말뚝에 몸을 묶어놓은 줄, 기관총에 묶은 줄을 대검으로 잘랐다.

줄을 자름과 동시에 북한군 시체가 옆으로 픽 쓰러졌다.

적을 떠나 인간으로서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였다.

그 후에도 총을 맞고도 쓰러지지 않는 좀비 같은 북한군을 여럿 볼 수 있었다.

“중앙청! 중앙청이 보입니다!”

바람에 흔들려 나부끼고 있는 빌어먹을 인공기가 보였다.

선두에 선 특공연대 1대대가 중앙청에 진입하는 순간이었다.

“1대대장, 2중대 2소대 이진태 일병. 아직 살아있나?”

“바로 확인하겠습니다. 혹시 이진태 일병은 왜 찾으십니까?”

“그냥 데려오게.”

중앙청 주변 건물에 남아있던 북한군 잔적들은 모두 사살되거나, 포로로 잡혔다.

“저기 있군.”

우연히 한 건물에서 북한군 뒤통수에 총을 겨눈 채 나오고 있는 이진태 일병이 눈에 들어왔다.

어제 생각했던 멋진 자세 말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태극기를 잘 휘날릴 것 같은 이 잘생긴 형제와 태극기를 게양하는 것이 최고인 것 같단 말이지.

“따라와.”

이진태 일병과 어디선가 불려온 이진석 일병.

두 명 모두 살아있었다.

오가는 말 없이 조용히 인공기가 게양된 곳으로 향했다.

게양된 인공기를 내린 뒤, 차고 있던 대검으로 갈기갈기 찢어 내렸다.

“와아아아아아-! 대한민국 만세!”

각자 어딘가에 숨어 전투가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시민, 중앙청 탈환을 위해 목숨을 내걸었던 국군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군인 아저씨. 이거 엄마가 아저씨 주래요.”

일곱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내게 건넨 것은 곱게 접힌 태극기였다.

“감사하다고 전해드려.”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자, 아이가 부끄럽다는 듯 엄마 품을 향해 돌아갔다.

“내가 가운데, 자네가 양옆. 자 준비됐으면 당기게.”

사실 혼자 당겨도 충분했지만, 세 사람이 손을 모아 태극기를 게양대 끝까지 올렸다.

태극기를 손에 쥔 순간부터 함성은 지금까지 잠시도 끊기지 않았다.

“수고 많았네. 다음엔 평양에 태극기를 휘날릴 때 만나지. 이 일병, 후방 5시 방향 카메라.”

카메라라는 말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뒤를 돌아 날이 바짝 선 거수경례 자세를 취했다.

해가 지며 노을을 만들어 내는 걸 보니, 아침 일찍 시작한 시가전이 저녁에 거의 다다라서야 끝난 모양이다.

“하늘 한 번 아름답군.”

참으로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태극기가 노을에 물들어 불그스름한 빛을 뿜었다.

“연대장님··· 바쁘신 와중에 죄송하지만, 중공···”

1대대장이 곁에 다가와 산통을 깼다.

“알겠네. 가지.”

중공?

새끼들, 다 뒤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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