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서울 탈환(2)
“연대장님, 맥아더 사령관이 서울 탈환에 대한 성명을 발표했답니다.”
아니 벌써?
거참 성격 더럽게 급하네.
중앙청에 게양된 태극기가 서울을 되찾았음을 상징하는 건 맞지만, 아직 서울 곳곳에선 치열한 시가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서울은 다시 UN 연합군의 손에 들어왔습니다. 용맹 무쌍한 미 해병 1사단, 보병 7사단, 한국군 특공연대와 해병대, 보병 17연대로 구성된 연합군이 서울을 포위 점령해 서울 탈환 임무를 완전히 달성했습니다.]
“자네는 이 성명이 무슨 뜻으로 들리나?”
옆에 있던 1대대장 김상옥 소령에게 물었다.
혹시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맥아더가 발표한 성명의 뜻은?
“저의 생각으로는··· 서울 외곽에 남아있는 빨갱이들을 소탕하고, 한시 빨리 완벽하게 서울을 되찾으라는 뜻으로 들립니다.”
역시.
내 생각과 정확히 일치한 것을 보면, 김상옥 소령 역시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은 모양이다.
예쁘게 포장해 보자면 아직은 쉴 때가 아니다. 라는 뜻이다.
“서울 북쪽에 남아있을 빨갱이들을 완전히 소탕한다! 준비해.”
미 해병 1사단과 특공연대는 서울 북서쪽에서 퇴각하는 북한군을, 미 7사단과 국군 17연대는 남동쪽에서 외곽도로를 따라 후퇴하는 적을 차례로 격멸해 나갔다.
수도 탈환은 예상했던 것처럼 국군의 사기를 크게 제고시킴과 동시에 북한군의 전의를 완전히 꺾어버렸다.
전쟁의 국면이 완벽히 전환된 것이다.
“일동 묵념.”
명령으로 하달된 서울 내 최종 작전지에 있는 잔적소탕이 끝난 뒤, 국군과 연합군 전사자의 시신을 향해 묵념했다.
적의 전의를 꺾어버린 것도 좋고, 국군과 연합군의 사기를 증진 시킨 것도 좋았다.
다만, 이 중앙청을 탈환하는 동안 미 해병 300여 명, 국군 50여 명이 생을 달리했다.
서울 탈환 작전은 군사 작전 관점으로만 보자면, 이례적으로 성공한 작전이었다.
미 7사단과 합쳐 북한군 1만 명 이상을 사살하고, 5000명이 넘는 포로, 파괴된 전차만 50여 대에 이르렀으니까.
하지만, 이것으로도 전사한 그들의 목숨과 바꿀 순 없었다.
‘바람불면 바람을 느끼고, 잠이 오면 푹신한 곳에서 편안히 쉬면서 영면하소서.’
1950년 07월 18일 오전.
이토록 숭고한 희생 아래 서울은 완전히 연합군 손안에 들어왔다.
***
연합군이 서울을 완전히 탈환하자, 곧바로 서울시의 시정이 재개됐다.
경찰은 어수선한 민심과 치안을 유지하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한편, 폭격으로 소실된 공공시설을 복구해 나가기 시작했다.
“보고 싶었네. 이강산 중령. 이제 자네를 중령이라고 부를 시간도 얼마 없는 것 같군. 서울을 되찾은 것을 축하하네.”
팬클럽 회장.
맥아더 사령관이었다.
성명을 발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에 도착하다니, 내가 지독할 정도로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어디 회장직을 유지할 자격이 있는지 확인이나 해볼까?
“회장··· 흠. 흠.”
아차 싶었다.
실수라도 끝까지 내뱉었다간, 다시 주워 담을 수 없으니까.
“사령관님께서 신속하고, 정확하면서도 현명한 판단을 내리셨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미 8군, 10군단이 본토에서 신속히 전개되어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재차 감사드립니다.”
미 10군단은 해병대를 포함한 상륙부대로 원래였다면 인천상륙작전이라는 영화에나 나올 법한 작전을 성공시키며 활약하지만, 내가 있는 지금은 인천에 상륙할 필요가 없었기에 육지에 전개해 함께 서울을 탈환했다.
“모든 것은 운명대로 흘러가는 것 아니겠나. 자네가 선봉에 서서 서울을 탈환할 줄 이미 알고 있었네.”
“과찬이십니다. 한데, 사령관님. 부관을 통해 중공군에 대한 움직임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소리를 낮춰 그에게 속삭였다.
태극기 게양 직후, 나에게 중공군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라 지시한 사람은 맥아더였다.
미국 내에도 소련과 중공에서 심어진 간첩이 있었지만, 반대로 미국 역시 소련과 중공에 심어놓은 간첩에게서 정보를 얻고 있었다.
직접 모습을 드러내 적과 전투하는 사람을 백색 유공자라고 한다면, 적대 국가 한복판에 들어가 그 사이에서 정보를 수집하는 흑색 유공자도 존재했다.
상대 국가의 간첩임을 알면서도 일부러 잘못된 정보를 흘려 이용하기도 했고, 투입된 국가에 의해 사상이 바뀌어 전향해 이중 스파이가 되는 등, 물밑작전도 그 어느 때보다 활발했다.
“중공군이 전면 개입할 것이라는 정보는 아니네만, 연합군의 북진을 막기 위해 북한이 새롭게 편성하고 있는 부대에 중공군을 섞고 있다는 첩보가 들어왔네.”
맥아더가 별일 아니라는 듯, 가볍게 말했다.
물론 아직까진 별일 아닐지 모른다.
이미 최정예를 전부 초기에 쏟아부은 북한군 최고사령부가 새롭게 편성할 부대들은, 북진을 지연시키기 위한 총알받이에 불과하니까.
그들은 전투 경험도 전무 할뿐더러, 장비와 보급도 매우 열악할 것이 분명했다.
이런 오합지졸이 목숨을 담보로 실전을 치러낸 국군과 연합군을 상대로 제대로 된 역할 수행을 기대하는 건, 도둑놈 심보 그 자체다.
“매우 소극적인 개입인 건 사실이지만, 절대 방심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북한군 부대에 중공군 몇몇을 끼워 넣는 형식에서 중공군을 전면 투입하는 것은 그리 큰 간격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아주 단호하게 말해둘 필요가 있었다.
딱 한 번만 말해 알아들으면 가장 좋겠지만, 사람은 원래 코앞에 닥치기 전까진 그 위험을 잘 깨닫지 못한다.
소귀에 경 읽기가 아니라면야 뭐 얼마든지.
시어머니의 잔소리 뺨치는 실력으로 잔소리를 해 줄 예정이다.
“알겠네. 모든 경우의 수를 열어두고 있겠네. 일단 그보다··· 가져와.”
맥아더가 알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뒤, 자신의 부관 펀치 소령에게 손짓했다.
뭐지?
“모두 주목! 특별 진급식이 있다.”
펀치 소령이 손에든 나무함에는 국군 계급장이 들어있었다.
3개의 태극 문양.
대령 계급장을 보니, 내 선물을 준비한 모양이다.
근데 왜 이걸 형이 줘?
아무리 우리 사이가 좋다 한들 형은 미군이고··· 난 국군이야.
“놀랐나? 너무 놀라지 말게. 미국에서 날아오고 있는 이승만 대통령을 대신해서 내가 계급장을 수여해도 되겠냐고 양해를 구해놓았네. 물론, 자네 부하들에 대한 1계급 특진 명령이 나와 있더군.”
하기야 계급장이야 누가 달아주던 변하는 건 없다.
아주 감사하지.
이쯤 되면 맥아더 사령관에게 계급장을 받았다고 자랑하기보단, 맥아더 사령관이 최연소 대령 계급장을 달아줬음에 감사하는 게 맞지 않나?
“축하하네. 이강산 대령. 철모에 계급장도 다시 그려야겠군.”
옷깃에 달려있던 중령 계급장을 떼어 손에 고스란히 올려준 채, 새로운 대령 계급장을 깃에 달았다.
“감사합니다! 사령관님.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하겠습니다.”
아무리 전시라도 21살에 대령?
가문의 영광이다.
‘맥아더 가문의 영광 아닙니까? 사령관님.’
홀로 이곳에 떨어진 나는 안타깝지만, 가문이 없다.
그래서 드는 생각인데, 그렇다면 맥아더 가문의 영광으로 하자.
알겠지?
***
서울은 시민과 경찰, 군의 합심 된 노력으로 서서히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반갑네.”
아무래도 특공연대가 북한군을 아주 기가 막히게 요리한다는 소문이 미 8군 사령관 워커 중장 귀에까지 들어간 모양이다.
맥아더 사령관, 워커 중장, 알몬드 소장, 김홍일 총참모장이 북진 계획을 세우기 위해 모인 회의실에서, 그것도 특공연대에 직접 임무를 하달하러 온 걸 보면.
“맥아더 사령관께 얘기 많이 전해 들었네. 이강산 대령.”
불독?
전형적인 무골의 외형을 가진 워커 중장을 보자마자 든 생각이었다.
‘아마 맥아더에게 들었다는 건 거짓말이겠지?’
맥아더와 워커 장군은 그리 사이가 좋은 관계는 아니었으니까.
“맥아더 사령관께서 제 얘기를 직접 하시다니···감사합니다.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워커 중장과는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
여기서 죽더라도 끝까지 한국을 지키겠다던 몇 안 되는 장군 중 하나였으니까.
“일본에서 급히 오느라 챙기지 못한 것이 많네. 혹여 한국군이 작전을 수행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면 언제든 이야기하게. 내가 도울 수 있는 것이라면 도울 테니.”
이제 갓 대령으로 진급한 한국군 연대장을 대하는 것치고는, 매우 호의적이었다.
‘왜지? 뭔가 바라는 게 있는 모양인데···’
단순히 호의를 무시하는 게 아니다.
이런 경우엔 99.9%의 높은 확률로 바라는 게 있는 경우가 다반사니까.
미군 3성 장군이 나에게 바랄 것이라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하나뿐이다.
그가 첫마디로 내뱉었던 맥아더 사령관.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뿐이다.
원래 미 8군은 점령군 임무를 부여받고 일본에 전개되어 있었다.
전쟁이 발발하자 맥아더는 워커 중장에게 미 8군을 최대한 빨리 전투 가능 상태로 만들어 한반도에 전개하라 명령했고, 성공적으로 이행해냈다.
[물러나지 말고 여기서 죽어라.]
이 한마디 내뱉어서 죽도록 미국 의회에서 물어뜯긴 과거와 달리, 지금 한국에 들어와선 티끌 하나 잡힐 것이 없었다.
그럼 에도 나아지지 않는 건?
맥아더와의 관계였다.
“워커 사령관님께서 이토록 한국을 아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사령관님께서 제가 필요하실 일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찾아주신다면 언제든 돕겠습니다.”
한반도와 미국의 전초기지와도 같은 극동 사령부는 맥아더 안방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폐쇄적인 조직이었다.
개고생하던 태평양 사령관 시절부터 함께하던 극동 사령부의 참모들 또한 맥아더의 분신이나 다름없었다.
유럽 전선에 배치되었던 장교들을 꿀 빨았다 생각하는 맥아더에게, 유럽전선 출신 워커 중장은 함부로 다루기엔 조금 애매한 노땅에 불과했으니까.
“사실 자네를 직접 찾아온 것이··· 맥아더 사령관과 돈독한 사이라고 들었네. 맞는가?”
이런 무골 부류는, 성격상 돌려 말하기를 굉장히 어려워한다.
누가 아니랄까 몇 마디 버티지 못하고 본심을 꺼냈다.
“어찌 제 입으로 사령관님과 돈독한 사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사령관님께서 좋게 봐주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혹여 가벼운 문제라면 제가 도울 일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대답을 듣자마자 화색이 돔과 동시에, 워커 중장 얼굴에 깊게 파인 주름이 펴지고 있었다.
“난 그저 맥아더 사령관과 원만히 지내고 싶을 뿐이네. 도와줄 수 있겠나?”
나에게 깊이 빠진 맥아더에게 이 정도 관계개선을 부탁하는 건, 너무도 쉬운 일이다.
한편으로는 전쟁터에서 불같이 타올랐던 노장의 이런 부탁을 듣고 있자니, 마음이 쓰리기도 했고.
게다가 훌륭한 장군을 돕는 일 아닌가?
“물론입니다. 제가 가진 역량을 다해 돕겠습니다.”
“고맙네. 자네는 전투뿐 아니라 처세에도 굉장히 능한 사람이군.”
진작 나를 칭찬하듯 맥아더를 조금만 구슬렸다면, 이런 부탁할 일은 없었을 텐데.
“한데, 사령관님도 제 부탁을 하나만 들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처세에 굉장히 능한 사람인 건 맞다.
그래서 공짜가 없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