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북진을 위한 작전 계획
패튼 전차가 주는 안락함은··· 마치 평생을 맨바닥에서 자다 침대에 처음 누워본 사람이 느끼는 기분이랄까?
-팅! 팅! 팅!
패튼 전차의 든든한 장갑이 금속 마찰음을 내며 북한군의 총알을 간지럽다는 듯 모조리 튕겨내고 있었다.
“염병할 빨갱이한테 맛 좀 보여주라고!”
-쾅!
북한군 진지를 단번에 날려버린 패튼 전차의 90mm 주포에서 흰 연기가 새어 나왔다.
수동으로 조준해 발사해야 한다는 단점이 무색하게, 초탄이 적중한 이후엔 자동 조준과 맞먹는 정확도를 보여줬다.
항공 지원과 곡사포 포격이 넓은 지역에 무분별하게 떨어졌다면, 패튼 전차의 주포에서 쏘는 포탄은 한 발, 한 발 정확히 적의 중요 방어 부위를 꿰뚫었다.
“좋았어!”
특공연대원들이 전차와 합동해 능선에 있는 적을 몰아붙였다.
전차는 특공연대원을, 특공연대원들은 전차를 보호했다.
누가 가르친 적도 배운 적도 없었지만, 부대원들은 전차 가까이 다가와 수류탄이나 급조 폭발물을 던지려는 적을 재빠르게 제압했다.
전차는 그런 부대원을 보호하며 적의 공용화기 진지를 묵사발 내버리는, 서로가 능동적으로 활용해 전투를 해 나갔다.
“동무들, 국방군 땅크를 막으라! 몸을 던져서라도 막으라! 도망치··· 윽.”
-쾅!
도망가지 않고 능선에서 열심히 북한군을 독려하며 지휘하던 군관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뭘 좋아할지 몰라 패튼 전차 주포의 매콤함을 준비해 봤는데.
흔적도 없이 사라진 걸 보니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른다는 전설처럼 떠도는 극락의 맛이었던 모양이다.
“연대장님! 적이 고지를 버리고 도망가고 있습니다. 추격하면 되겠습니까?”
“전차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거리 내에서 추격, 격멸한다.”
“알겠습니다.”
북한군이 패튼 전차를 막을 수단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나마 비슷한 체급의 T-34 전차는 항공 폭격과 포격으로 남쪽으로 내려온 대부분이 유실되었다.
개전 초기 국군이 북한군 전차를 맨주먹으로 막았던 것과 같은 초인적 의지를 가진 북한군이 있을 리 만무했다.
패튼 전차의 진격을 저지할 적을 굳이 꼽자면 좋지 못한 도로 상태, 산과 험한 골짜기가 많은 한반도의 지형이었다.
그마저도 기동성이 좋은 패튼 전차는 좁은 진격로를 따라 진격하는 데 큰 문제가 없었다.
“개울을 넘어가선 안 된다! 개울을 넘지 못한 빨갱이를 모두 죽여라!”
김상옥 중령이 명령대로 패튼 전차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거리에서 도망치는 북한군을 쫓았다.
국군과 북한군 모두가 손에 총을 쥐고 있었지만, 총을 쏘는 건 국군뿐이었다.
능선 내리막을 향해 도망가던 북한군들이 서로를 밀치고 넘어졌다.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우리 특공연대는 서울 탈환 선봉에 이어 의정부를 탈환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의 용맹 무쌍함과 지혜로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열심히 포탄을 쏴 포신이 채 식지 않은 패튼 전차 한 대 위에 올라섰다.
전투에 승리한 뒤, 부대원들의 자긍심을 고취 시켜주는 것은 앞으로 전투에 있어 좋은 영양제가 될 테니까.
“수많은 전우의 목숨을 앗아갔던 이 전차마저도 우리의 것이다.”
몇몇 부대원이 손바닥으로 눈을 비볐다.
이 거대한 쇳덩이를 인간의 무른 몸으로 막아냈던 전우들이 떠올라서였을까?
더는, 개전 초기와 같이 전차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할 필요가 없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뿐이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언제나 기회는 있다는 것을 모두가 온몸으로 느끼고 받아들였다.
“북진 선봉! 평양 탈환!”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모를 구호가 부대원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북진 선봉! 평양 탈환!”
“북진 선봉! 평양 탈환!”
모두가 박자를 맞춰 목이 터지도록 외쳐대는 탓에, 한국말을 모르는 미군이 본다면 패튼 전차 위에 서 있는 나를 사이비 교주로 볼지도 모를 정도였다.
오른손을 높이 들어 주먹을 꽉 쥐었다.
구호로 가득 찼던 주변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죽지 말고 살아라! 전우에게 등을 맡기고, 전우의 등을 지켜라. 가자! 평양으로!”
“와아아아아아아아!”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함께 목숨을 걸고 싸워온 부대원들이 서로를 끌어안았다.
서로에게 제대로 씻지 못해 풍기는 사람 냄새, 곳곳에 아직 말라붙지 않은 피가 피비린내를 풍겨댔지만, 끈끈한 남정네들의 전우애 앞에선 향수나 다름없었다.
“가자! 평양으로!”
평양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
서울 임시 합동전략기획단.
서울과 의정부, 수도권 인근 지역이 온전히 국군과 연합군 손에 들어왔다.
어느 정도 안전이 확보됐다고 판단한 연합군 지휘부는 서울에 임시 합동전략기획단을 설치했다.
“사령관님 들어오십니다.”
부관의 작은 속삭임과 함께 들어오는 남자는 맥아더 사령관이었다.
잠깐, 설마 저 찡긋거림.
나한테 한 윙크는 아니겠지?
‘내가 잘못 봤겠지.’
정신이 아찔해지는 저 찡긋거림을 잘못 봤을 리 없지만··· 그래. 잘못 본 게 분명했다.
이곳 합동전략기획단을 보고 있으니, 별들의 전쟁이 따로 없다.
극동 사령관 맥아더 사령관.
미 8군 사령관 워커 중장.
미 10군단장 알몬드 소장.
김홍일 총참모장과 UN군 각국의 최고 지휘관들까지.
이곳에서 평범한 대령은 열심히 티스푼을 휘젓는 게 일상이 될지도 모를 정도였다.
물론 나는 평범한 대령, 연대장의 자격으로 이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 아니었다.
무려 맥아더의 윙크를 유발하는 남자였으니까.
“작전 회의를 시작하지.”
미 국가안보회의에서 결정된 정책을 알고 있는 건 맥아더.
자연스레 그의 주도로 회의가 흘러갈 듯 보였다.
역시 회의에 포문을 연 사람은 맥아더였다.
“미 합동참모본부에서 지시가 내려왔네. 먼저 알려줄 테니 집중들 하시게.”
“38선 이북지역에 대한 군사작전을 승인한다. 중공과 소련 국경선 인접 지역의 작전은 한국군이 전담하고···”
누군가에겐 새로울지 모르겠지만, 이미 나에겐 수백 번 오답 노트에 적어 복습까지 한 문제의 해설을 듣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만일 소련군이 개입한다면, UN군은 즉시 공세를 수세로 전환하고 사태를 악화시키지 않도록 한다. 단···”
단?
지금부터 나올 말은 매우 흥미로울 것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중공군이 개입할 경우, 그들의 공격을 합리적으로 막을 기회가 있다고 판단 될 경우는 전투를 계속한다.”
예상치 못한 말을 들었을 때 웅성거림이 시작되는 건, 이등병이 모여있든 장성들이 모여있든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말은 중공군을 상대로 한 작전이나 공격은 허용한다고 받아들여도 되겠습니까?”
김홍일 총참모장이 질문하자, 맥아더 옆에 있는 통역장교가 열심히 총참모장의 말을 통역했다.
“그렇습니다. 다만 합리적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 만큼, 한국군이 상황에 따라 바른 선택을 하길 바랍니다.”
중공군과 교전이 생긴다면, 그에 대한 명분은 신경 쓸 필요가 없어졌다.
소련과 중공에 대한 대응을 다르게 하는 것은 분명 중공을 무시하는 미국의 기조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소극적인 태도로 전투를 피하는 것보다야 나은 선택이었다.
“다들 이해가 됐다면 가장 중요한 작전 구상을 해볼까 하는데···”
현재 서울을 기점으로 춘천까지의 중서부 전선은 워커 중장이 지휘하는 미 8군, 김석원 군단장이 지휘하는 국군 1군단이.
강원도 일대의 동부 전선은 김종오 군단장이 이끄는 2군단이 맡고 있었다.
계획수립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상륙부대인 미 10군단을 어디에 상륙시킬 것인가에 달려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애써 먼바다를 건너온 상륙함들이 한강에 나룻배 마냥, 인천 앞바다에 둥둥 떠 있을 필요는 없으니까.
“제 생각엔 미 10군단이 진남포에 상륙해 작전을 펼치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진남포에 상륙해 미 8군, 한국군 1군단과 부대를 연결한다면, 적 수도 평양을 탈환하기에 가장 빠른 방법이 될 것입니다.”
10군단장 알몬드 소장의 의견이었다.
실제로 진남포에서 평양까지는 채 200KM가 되지 않는다.
상륙에 성공한다면, 서울과 평양 사이에 있는 북한군의 보급은 물론 병력마저 포위할 수 있는 상륙지.
‘알몬드 소장. 60점 드리겠습니다.’
다소 1차원적인 접근이긴 했지만, 최악은 아니었다.
이 높으신 양반들이 한마디씩 의견을 던진 후 의견을 제시하는 게 상책이기에 근질거리는 입을 애써 집어넣었다.
과묵히 의견을 경청했다는 이미지도 얻을 수 있을뿐더러, 제시된 작전들의 장단점을 단번에 파악할 수 있을 테니까.
물론 내가 생각한 것보다 좋은 의견을 누군가 제시한다면, 당연히 그 의견에 따를 것이다.
있을까 모르겠지만.
“김홍일 참모장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국군 1군단과 2군단이 서해안을 따라 평양으로, 미 8군은 동해안으로, 미 10군단은 원산에 상륙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서울 탈환에 국군 해병대를 미군 사단에 편입시켰듯, 평양 탈환은 반드시 국군이 선봉에 서야 한다는 의지가 담긴 계획이었다.
국군이 전적으로 서해안을 따라 평양에 무사히 도착하면 좋겠지만, 국군과 연합군을 동과 서로 갈라버리면 보급과 군수물자 배분에 문제가 생길 여지가 다분했다.
“자네 생각은 어떤가?”
드디어 내 차례가 온 모양이다.
이런 경우 저 풋내기가 뭘 알겠냐며 무시하는 인간이 나타날 수 있지만, 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표정을 쓱 훑어본 결과 미적지근한 표정의 알몬드 소장을 제외하고는, 귀 기울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자, 정답에 가까운 모범 답안 들어갑니다.
“앞서 말씀해주신 작전계획 중 어떤 작전계획을 실행하더라도 모두 훌륭한 작전이 될 것입니다. 다만 저는 생각을 조금 달리 해봤습니다.”
시작은 바람 한 번 잡아주고.
“현재 군단 단위의 대단위 부대 전선을 이동시킬 경우, 병력의 피로도는 물론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입니다.”
아무리 대한민국이 작은 영토를 가졌더라도, 동과 서를 가로질러 주 공격로를 바꾸는 건 큰 의미가 없었다.
이미 정해놓은 보급로와 병력에 혼선만 가져올 뿐이지.
“국군 1군단과 미 8군은 서해안을 따라 평양으로, 국군 2군단은 동해안 도로를 따라 원산 방향으로 진격하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이 계획엔 단점이 하나 존재한다.
여기서 그 단점을 짚고 넘어갈 것이다.
“한 가지 우려스러운 점은, 적의 수도를 탈환하는 공적에 눈이 멀어 아군끼리 경쟁하는 일은 되도록 피해야 할 것입니다. 적당한 경쟁은 고단함을 이겨낼 힘을 주지만, 아무도 모르는 사이 경쟁이 격해질까 우려스럽습니다.”
평양 탈환에 대한 공적은 지휘관이라면 탐낼 수밖에 없는 아주 달콤한 열매다.
겉으로 드러내진 않지만, 군인으로서 공적을 마다할 사람은 없을 테지.
“옳은 말이네.”
김홍일 참모장이 내 의견에 힘을 실어주었다.
‘어차피 평양 탈환의 선봉은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압도적 1등을 두고, 굳이 아옹다옹할 필요가 있나?
다음으로는 가장 중요한 미 10군단의 상륙지.
“미 10군단의 상륙지는 이곳이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됩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지도에 있는 한 곳을 콕 집었다.
아무래도 상륙하기에 이만한 장소가 또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