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민국 전쟁영웅이 되었다-56화 (56/149)

56화. 북진(1)

“제가 생각하는 상륙지점은··· 안주입니다.”

손이 향한 곳은 청천강, 안주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만 한 곳이 없다니까?

“안주? 자네 생각은 원산보다 안주가 낫다는 것인가?”

맥아더가 재차 물었다.

정말 확실하냐는 듯.

안주가 생각지도 못한 지점이었다기 보다는, 본인 의견이 원산 상륙에 가까웠기에 되묻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예. 그렇습니다.”

사실 원산에 상륙하겠다는 계획은, 사랑스러운 우리 형의 평판을 다시 전쟁광 미친놈으로 만들어버리겠다는 계획이나 다름없다.

지금껏 말 잘 들어온 우리 형의 마무리가 해임으로 끝나게 놔둘 순 없지.

“지금까지 상륙지점으로 제시된 원산, 남포, 혹은 신의주도 각각의 장, 단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원산.”

원산은 사실상 중공군이나 소련 개입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더라도 선택해선 안 될 최악의 선택지였다.

“원산은 대규모 물자를 운송하기에 가장 적절하지만, 적이 충분히 예상하고 대비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10군단이 원산에 상륙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입니다. 지금 당장 출발한다 해도, 지상군보다 빨리 원산에 상륙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습니다.”

미 10군단이 원산에 상륙하려면, 현재 군함이 정박하고 있는 인천에서 출발해 서해, 남해, 동해를 거쳐 원산까지.

최소 2주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이미 한차례 TNT로 연쇄 폭발이 예술임을 뼈저리게 느낀 원산항을 무방비 상태로 둘리도 없다.

상황이 좋지 못한 빨갱이들이 직접 상륙군을 매복 공격하진 못하더라도, 원산 앞바다에 기뢰를 잔뜩 던져 놓는다면?

10군단 전력은 상륙은 꿈도 못 꾼 채 군함 위에서 발만 동동 굴러야 한다.

“이보게, 병력과 물자는 철도를 통해 부산으로 이동시킨 뒤 군함에 실어 시간을 단축할 수 있네. 사령관님, 평양과 원산만 연결된다면 연합군은 완벽한 보급로를 얻게 됩니다. 적의 허를 찔러 원산으로 상륙함이 어떻겠습니까?”

알몬드 소장, 이 눈치 빠른 새끼.

맥아더가 원산을 마음에 품고 있는 사실을 알아채고는, 손을 비벼대는 솜씨가 일품이었다.

잘못된 생각을 하는 상관에게 손을 비벼대는 건, 파리나 할 짓이다.

그리고 감히 내 완벽한 맥아더 조련에 똥을 뿌리려 하다니.

두고 보자. 알몬드.

“일단 이 대령 생각을 좀 더 들어보는 것이 어떻습니까? 시간은 절대 간과해선 안 될 변수니까요.”

“제 생각도 워커 중장과 같습니다.”

워커 중장과 김홍일 참모장이 든든하게 뒤를 받쳐주었다.

“말을 끊을 생각은 없었네. 계속하지.”

맥아더의 눈초리가 알몬드 소장을 흘겼다.

말을 끊은 건, 맥아더가 아닌 알몬드 소장이었으니까.

“안주를 상륙지점으로 꼽은 이유는 진남포에 상륙하는 것보다 더 공격적인 작전 계획 수립이 가능하며, 무엇보다 여기 지도를 한번 보시겠습니까? 먼저 청천강과 원산입니다.”

펜을 들어 지도에 청천강과 원산을 선으로 이었다.

한반도의 지형 특성상, 청천강과 원산을 잇는 선은 매우 짧았다.

짧은 선은 방어선 구축과 보급에 매우 유리함을 뜻했다.

“다만 이 청천강과 원산을 넘게 되면···”

맥아더의 북진계획대로 북한 정주와 함흥을 잇자, 선의 길이가 거의 두 배에 육박했다.

선의 길이가 두 배라는 건, 방어선이 두 배로 늘어나는 것과 같았다.

가장 중요한 건, 청천강이 중공이 전면 개입을 결정할 인내심의 꼭대기.

뚜껑이 열리냐 마느냐를 결정할 선이 될 확률이 매우 높다.

“청천강과 원산 방어선이 완벽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북진은 최악의 경우 이런 결과를 낳게 될 겁니다. 첨언 하자면, 이 선은 청나라를 비롯한 외세가 한반도를 침략할 때 아주 애용했던 공격로입니다.”

가로로 그어진 두 개 선, 정 가운데를 세로 선으로 그었다.

완벽한 단절.

선 3개로 연합군이 무리한 북진을 피해야 할 이유를 설명함과 동시에, 평양을 위아래로 쌈 싸 먹을 수 있는 안주가 가장 적합한 상륙지점이라는 사실을 각인시켰다.

원산을 강력히 밀어붙이던 알몬드 소장도 어느새 잠잠해져 있었다.

“다들 이견 없나?”

전쟁광 미치광이로 향하는 버스를 잘못 탈뻔한 우리 형이 돌아왔다.

‘동생 허들 더럽게 높네.’

“그럼 이대로 대통령께 보고해 북진계획 최종승인을 받아보겠네. 이미 북진을 결심한 마당에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테니.”

가장 먼저 의자에서 엉덩이를 뗀 사람은 맥아더였다.

그가 일어서자, 다른 장군들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 참모장님은 참 든든하시겠습니다. 한국군에 저렇게 작전 구상과 실행 두 가지 모두 능한 지휘관이 있으니 말입니다.”

“그저 감사하고 고마울 따름이지요.”

김홍일 참모장이 나를 바라보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살짝 고개를 숙여 최소한의 예를 표했다.

“저도 이 대령에게 참 감사하고 고맙군요.”

입에서 나오는 말과는 달리, 맥아더의 시선은 알몬드 소장을 향하고 있었다.

표정이 진짜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해주는 듯했다.

에라, 이 등신아.

***

같은 시각,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

자리에 있는 사람 모두의 행색은 멀쩡했지만, 어디선가 코를 찌르는 침 냄새, 지린내가 풍겨왔다.

“이제 결단을 내려야 하지 않겠나. 어쩌면 좋을지 말해보게들.”

마오쩌둥이 입을 열자 나오는 건 소리뿐만이 아니었다.

아주 지독한 냄새가 입에서 함께 뿜어져 나왔다.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았다면, 그의 몸에서 열린 구멍이 입이 아니라 다른 구멍이라 착각할 정도.

“남조선 군대만 진격해 오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미국이지요.”

국무원 총리 겸 외교부장 저우언라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우선은 연합군 측에 경고문을 전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내전에 간섭할 생각은 없으나 미국이 38선을 넘는 것은 중화인민공화국에 대한 도발로 간주하겠다고 말입니다.”

말투와 표정으로 보아 북조선에 군대를 출병시키는 것이 그리 달가워 보이지 않았다.

국공내전 이후 국가를 재건하는 중책을 맡고 있던 그에게 출병은 독이었다.

가뜩이나 경제가 안 좋은 상황에 많은 자원과 인력이 출병으로 집중되어 재건이 늦어지고, 미국과 전면전에서 승리하리란 보장도 없었다.

“북조선 땅이 남조선 수중에 들어가면, 그건 미국 주머니에 들어가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겠습니까. 지금 출병해 일을 막는 것이, 미국과 국경을 맞대는 것보다 몇 배는 나을 겁니다.”

앞선 저우언라이의 말이 가당치 않다는 듯 반문한 남자는 펑더화이.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을 맡고 있었다.

“김일성 동무가 이번만 도와주면 발바닥이라도 핥겠다더군. 사실 김일성 동무와 약속은 생각할 필요 없네, 그저 어떤 선택이 중화인민공화국에 득이 되는지 생각해보면···”

연합군이 38선 일대에 부대 정렬을 마쳤다는 보고를 받은 후였다.

북한군은 연합군의 공세에 바다 위 모래성처럼 사그라질 것을 모르지 않았다.

이미 전세는 완전히 기운 뒤였으니까.

“동지, 이건 어떻겠습니까? 출병할 부대 이름을 인민해방군이 아닌 중국 인민지원군으로 바꾸는 겁니다. 인민들이 미 제국주의자들에게 죽임당할 조선 인민들을 가엾게 여겨 스스로 출병했다는 인상을 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펑더화이가 굉장히 기발한 생각이 났다는 듯 무릎을 치며 말했다.

“그거 좋은 방법이군! 저우언라이 자네 생각은 어떤가?”

마오쩌둥이 화색을 지었다.

사실 좋은 방법이라기엔, 5세 이하 아이들이나 떠올릴 방법에 가까웠다.

갑작스레 대규모 인민이 스스로 모여 군대를 조직하고, 무엇보다 전쟁에 필수인 공군 전투기는 인민끼리 직접 한두 푼씩 모아 샀다는 얘기가 된다.

그저 마오쩌둥은 출병에 마음을 굳혀가고 있었기에 화색 한 것에 불과했다.

“정 출병을 해야겠다면, 명확한 명분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보다 중요한 건 경고를 건네 의사를 확실히 밝힌 후, 연합군이 침범했을 때 참전할 가상의 선을 정해야 합니다.”

함께 해온 세월이 수십 년이다.

그 정도 세월이면, 말투나 굴러가는 눈동자만 봐도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다.

저우언라이는 이미 마오쩌둥이 출병으로 마음을 굳혔음을 파악하고는, 반문보다는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래, 그 선이라는 것을 어디에 그으면 좋겠나?”

“청천강···”

“청천강입니다.”

저우언라이와 펑더화이, 두 사람이 동시에 대답했다.

“연합군이 38선을 넘어 곧바로 청천강까지 넘보는 순간, 범의 아가리 속에 머리를 들이미는 것과 같습니다. 그 전까지는 부대를 적당한 곳에 숨긴 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게 최선입니다.”

침착하게 계획을 수립하는 저우언라이.

“어차피 놈들은 청천강을 넘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통일에 눈이 멀어 발정 난 개처럼 뛰어들지 않겠습니까?”

펑더화이는 연합군이 대책 없이 청천강을 넘으리라 확신했다.

“자네 둘이 의견이 통하는 걸 보니 기분이 통쾌하군. 그렇다면 주석이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하지 않겠나. 펑더화이, 내 장자인 마오안잉을 데리고 북조선으로 가게. 소련 말에 능해 통역을 맡기면 될걸세. 그놈이 힘들어하거든 계란 몇 개 던져주면 돼. 계란볶음밥을 아주 좋아하거든.”

“알겠습니다! 동지. 계란을 꼭 챙기겠습니다.”

“잘됐어. 순망치한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북조선이 사라지면, 우리도 언제 침략당할지 모르는 판에. 이번 기회에 누런 싹을 뽑아내야지.”

마오쩌둥이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옆머리를 쓸어 넘겼다.

***

7월 25일 오전 09시.

국군과 연합군 전 부대가 38선 일대를 탈환하고, 전선에 맞춰 나란히 정렬했다.

“상부로부터 떨어진 명령이네. 부대원 한 명도 빠짐없이 숙지하라고 단단히 이르게.”

“예! 알겠습니다.”

1대대장 김상옥 중령과 2대대장 문기준 중령이 작전 명령서를 받아들었다.

1. 미 10군단은 서해를 통해 안주에 상륙한다.

2. 국군 2군단은 38선을 돌파해 원산을 점령, 원산 점령 시 진격을 멈추고 평양과 보급로를 연결할 준비에 돌입한다.

3. 미 8군과 국군 1군단은 평양 탈환 후 청천강 일대에 방어선을 구축하며, 정지한다. 연합군 모든 부대는 청천강 이북에 대한 어떠한 공격이나 포격을 불허한다.

맥아더를 통해 미국에 전달된 작전 계획이 마셜 국무장관과 트루먼 대통령의 승인 아래 모든 연합군 부대에 전파됐다.

“연합군 최대 목표가 청천강-원산 라인이 되는 겁니까?”

김상옥 중령이 조금은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물어왔다.

“지금으로선.”

미안하지만 반쪽짜리 대답을 해줄 수밖에 없었다.

멀리뛰기를 보면, 가속을 붙여 빠르게 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구름판 끝에 맞춰 정확하고 강력한 도약 추진력을 얻는 것 아니겠는가.

진짜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가자! 평양으로.”

패튼 전차 6대가 굉음을 뿜으며 38선을 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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