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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전쟁영웅이 되었다-58화 (58/149)

58화. 북진(3)

어떤 물건이나 사람이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데는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지금 내 눈에 보이는, 마을 한가운데 우물이 그러했다.

“전부 우물 근처에서 떨어져!”

휴식 중 떨어진 불호령에 우물 근처에 있던 병력이 화들짝 놀라 우물에서 멀리 떨어졌다.

“연대장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김상옥 중령이 걱정된다는 듯 옆으로 다가왔다.

영문 모르겠다는 표정을 한 채.

“저기 저 우물. 이상하지 않나?”

김상옥 중령이 멀찍이 떨어져 우물을 살폈다.

어떤 흔적도 없는 깔끔한 마을, 그 안에 나무로 만든 뚜껑으로 덮어진 우물.

참 깔끔한 주민들만 모여 사는 마을인 걸까?

“전투 흔적이나 혈흔도 없이 깔끔한데··· 별다른 특이사항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게 가장 이상하네. 전쟁이나 피난을 가는 상황에, 이렇게 마을 전체가 보란 듯이 깔끔하다? 행여 벌레라도 들어갈까 봐 우물 뚜껑까지 닫아두고?”

시각을 포함한 오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마을에 진입하면서부터 코를 살살 간지럽혔던 악취는, 더운 날씨 탓에 논두렁에 뿌려진 비료나 화장실에 분뇨가 썩어가는 냄새인 줄 알았다.

게다가 다른 사람 눈에는 잘 보이지 않겠지만, 우물을 덮어놓은 뚜껑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혈흔이 눈에 들어왔다.

“저 우물 뚜껑을 열어보면 되겠습니까?”

“열어보지. 다만···”

“어이, 1중대장. 우물에서 멀리 떨어져 뚜껑을 당길 만한 긴 밧줄을 가져와. 없으면 만들어오고. 빨리!”

역시.

말해주기도 전에 아무 생각 없이 직접 우물 뚜껑을 열었다간, 어떤 꼴이 될지 모른다고 본능적으로 느낀 모양이다.

물은 온도에 따라 액체, 수증기인 기체, 얼음 상태의 고체로 존재할 수 있다.

사실, 사람도 가능하다.

연희고지 전투에서 크레모아를 얼굴에 가져다 댔던 북한군이 어떤 형태로 바뀌었는지는 본 사람만 알 수 있는 비밀이지만.

“연대장님. 준비 다 됐습니다.”

1중대장이 가져온 30M는 족히 넘을 밧줄 한쪽 끝을 조심스럽게 우물 뚜껑에 묶었다.

나머지 한쪽은 차량 견인 고리에 묶고, 부대원은 모두 멀리 떨어져 엄폐물 뒤에 몸을 숨겼다.

“출발.”

분명 누군가는 왜 사서 고생이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우물이 위험요소로 판단되면 장소를 이동하면 그만 아니냐고.

전쟁터의 위험요소는 그리 간단하게 볼 문제가 아니다.

그저 장소만 이동한다면, 후속하는 아군 부대가 우물을 열어보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무엇보다 저 우물 하나가 부대원들의 꿀 같은 휴식시간을 잡아먹었다는 것도 반드시 뚜껑을 열어야 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행여 나의 조바심으로 인한 작은 소동으로 끝난다면, 그것이 가장 감사한 일이다.

“출발하겠습니다!”

운전병이 멀리서 출발을 알렸다.

-툭

차량이 앞으로 이동하면서 밧줄이 팽팽해졌다.

마을 아낙네도 여닫을 만한 우물 뚜껑은, 차량과의 줄다리기를 이기지 못하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5.

우물 주변에 인계 철선이나, 도화선 따위는 없었다.

북한군이 어디서 외계인이라도 납치해 먼 곳에서 폭발물을 원격 폭파할 기술력을 갖고 있지 않은 이상, 5초면 결판이 난다.

4.

모두가 숨을 죽였다.

아직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3.

악취가 점점 심해지는 건 기분 탓일까?

분명한 건, 거름이나 분뇨 냄새가 아니었다.

2.

부대원 몇몇이 코를 킁킁거리더니 인상을 찌푸리며 코를 막았다.

1.

쾅!

‘뭐지?’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데는 이유가 있음을 증명하듯, 폭발음이 귀를 때렸다.

한가지 이상한 건, 폭발음이 상당히 둔탁하게 들렸다는 것이다.

폭발음이 왜 둔탁했는지를 알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악! 윽! 씨발 이게 뭐야!”

병사 한 명이 욕설을 내지르며 뒤로 자빠졌다.

그가 기겁해 나자빠진 곳엔, 뼈에 살점이 걸치듯 남은 사람 손가락이 떨어져 있었다.

“뒤로 데려가서 진정시켜.”

전쟁터에서 주변을 조금만 둘러보면 천지인 게 시체인데, 뭘 그리 놀라냐고?

마음의 준비를 마친 채 공포영화를 보는 것과 달콤한 로맨스 영화 중간에 예고도 없이 고어 장면이 튀어나오는 건, 절대 같을 수 없으니까.

“연대장님, 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이 빨갱이 개만도 못한 새끼들이···”

폭발로 반쯤 무너져 버린 우물에 한 발자국씩 다가갈수록, 사방에 뿌리듯 널브러진 시신들로 인해 악취가 점점 강하게 풍겨왔다.

“시신을 수습한 뒤 출발한다. 비위가 강한 병사들로 추려서 투입 시켜.”

우물 속에 시신들이 부패 되면서 발생하는 가스와 냄새로 인해 머리가 어지러웠다.

북한군이 퇴각하면서 남아있는 마을 주민들을 죽여 우물에 던져버린 뒤, 부비트랩을 설치해 둔 것이었다.

멋모르고 우물을 열어봤다면, 수십 명의 사상자가 생겼을지도 모를만한 함정.

‘절대 잊지 않는다.’

38선을 넘으면서부터, 전투가 잠잠했었다.

이건 빨갱이들이 자신을 한시라도 잊지 말아 달라며 보내는 선물 같은 걸까?

아마, 오랜 시간이 지나도 절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조금만 기다려.

선물을 받았으면 답을 주는 게 예의다.

몇 배로 큰 선물을 보내줄 것이라고 다짐했다.

***

미 3 군수 사령부. 인천.

미 8군과 국군의 군수지원을 위해 인천에 세워진 3 군수 사령부는, 전투 부대들이 북진함에 따라 군수지원에 차질이 없도록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로버트 병장님, 여기 리스트에 없는 상자가 몇 개 있습니다. 한번 확인해 주시겠습니까?”

해밀턴 일병이 전방에 가야 할 군수품이 행여 하나라도 빠져선 안 되기에 면밀하게 살피던 중, 리스트에 적혀있지 않은 상자 몇 개를 발견했다.

군수품이 부족하거나, 종종 실수로 빼놓고 보내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리스트에 없는 물건을 더 챙겨 보내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아, 내가 아까 그거 말 안 했나? 거기 섹터에 있는 군수 지원품 전부 한국군 특공 연대로 가는 거 맞지?”

로버트 병장이 실수했다는 듯, 머리를 긁으며 다가왔다.

“예. 맞습니다. 뭔지 한번 확인해 보면 되겠습니까?”

“아냐! 그런 생각일랑 접어둬. 아까 지원 참모님이 직접 여기까지 오셔서 군말 말고, 궁금해하지도 말고 특공 연대에 건네라고 명령하고 가셨어.”

로버트 병장이 절대 안 된다고 온몸으로 표현하듯, 가슴에 팔을 교차에 X자를 만들어 보였다.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고, 열어보지 말라면 더 열어보고 싶은 건 국군이나, 미군이나 마찬가지.

판도라의 상자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해밀턴 일병이 궁금증을 참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로버트 병장에게 물었다.

“로버트 병장님은 안 궁금하십니까? 아시지 않습니까. 살짝 열었다가 닫으면 지원 참모님이 아니라 군수 사령관님이 와도 못 알아본다는 거.”

“지원 참모님 성격 알지? 아마 그 상자 열어본 걸 들키는 날엔, 미국까지 헤엄쳐서 돌아가야 할걸? 아메리칸 핏불테리어 명령을 어길 정도로 궁금하면 열어보던가.”

로버트 병장도 궁금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다만, 아메리칸 핏불테리어 저리 가라 할 지원 참모의 더러운 성격을 아주 잘 알기에 참고 있는 것뿐이지.

“분명 열어보라 하셨습니다?”

“그래. 그 대신 난 절대 모르는 일이다. 알겠지?”

하란다고 진짜 하는 새끼가 해밀턴 일병이었다.

궁금증에 정신이 팔려 상자가 열리지 않게 고정해 둔 장치를 제거하려던 찰나.

“어···?”

군수품 상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던 로버트 병장은 살기를 느꼈다.

마치 핏불테리어가 먹이로 준 생고기를 물어뜯기 전, 먹이를 바라보며 침을 잔뜩 흘리고 있는 느낌이랄까?

“로버트 병장님! 이제 열어보겠습니다!”

이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게 되어 해맑은 표정을 짓고 있는 해밀턴 일병.

그와 눈이 마주친 건, 로버트 병장이 아니었다.

“아메리칸 핏불테리어는 한번 물면 절대 놓지 않지. 한번 직접 볼 텐가?”

아메리칸 핏불테리어, 아니 지원 참모 제이크 소령이 로버트 병장 귀 가까이에 다가갔다.

“아아아아악!”

들려오는 소리를 보니 살짝 깨문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해밀턴 일병이 조용히 상자 뚜껑을 닫았다.

“둘 다 완전 군장으로 내 앞에 집합하기까지 1분 30초 준다. 실시!”

“실시!”

로버트 병장은 물린 귀를, 해밀턴 일병은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막사로 달려나갔다.

***

북한군이 구하리 우물에 설치한 부비트랩으로 인해 국군과 미군 전차 중대에 스며들려던 안일함이, 경각심으로 바뀌어 있었다.

38선을 넘은 지 3일째.

평양에 선봉의 길은 그리 쉽지 않았다.

“출발준비 마쳤습니다.”

“출발해.”

이미 해가 산등성이 뒤로 넘어가 어두워진 지 꽤 오래였다.

특공연대원들은 밤낮없이 걸었다.

시야가 확보되는 주간에는 차량과 패튼 전차에 올라타 진격 속도를 앞당겼지만, 시야가 제한되는 저녁과 밤에는 차량과 전차를 이용한 기동이 불가했다.

주간에 패튼 전차는 아무도 막을 수 없는 맹수였지만, 어디서 적이 매복하고 있을지 알 수 없는 야간에는 그저 귀엽고 큰 고양이로 변했다.

미군 전차 중대는 해가 완전히 저문 야간에는 휴식을, 해가 뜨는 아침이면 주변을 정찰할 최소한의 보병을 전차 위에 태워 전속력으로 본대에 합류했다.

특공 연대가 밤에 평양을 향해 나아갈 수단이라고는 부모님이 주신 두 다리.

그것뿐이었다.

“주간에만 전투가 일어나리라는 법은 없어. 다들 고단한 건 알고 있네만, 지휘관들을 통해 조금만 더 병력을 다독이라 전하게.”

“예. 알겠습니다. 연대장님은 괜찮으십니까?”

1대대장 김상옥 중령이 다리를 조금씩 절뚝거리며 물어왔다.

“나는 괜찮네. 자네는 괜찮은가?”

“물론입니다. 이쯤이야 뭐, 끄떡없습니다. 괜찮습니다.”

3일 밤낮을 쉬지 않고 걸었음에도, 가야 할 길은 아직 많이 남아있었다.

조금씩 절뚝이는 것을 보면, 괜찮을 리 없었다.

괜찮다고 말해줘서 고마울 뿐이었다.

다리에 피로가 누적되며 절뚝이는 건, 김상옥 중령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강한 정신력과 체력을 가진 그가 절뚝일 정도라면, 다른 부대원들도 김상옥 중령과 마찬가지로 밖으로는 북한군 빨갱이, 안으로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하는 중일 테니까.

“조금만 힘내. 해가 뜨면 차량에 타도록 해. 내일 선두 전차에는 내가 대신 탑승한다.”

부대원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 주간엔 두 대대장과 번갈아 가며 선두 전차에 올라타 지휘를 이어나갔다.

걷는 것보단 전차가, 전차보단 차량이 편했다.

원래대로 라면 김상옥 중령이 탑승할 차례였지만, 순서를 바꿔준 것이다.

“감사합니다. 연대장님.”

보병들이 이렇게 아픔을 참아가며 오래, 멀리 행군할 수 있는 이유는 어쩌면 언제 적이 공격해올지 모른다는 긴장감 속에 걷기 때문인 것도 있다.

누군가는 꼬깃꼬깃 품 안에 넣어둔 가족과 부모님 사진을 보며, 누군가는 힘듦에 나오는 욕을 내뱉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복수심에 불타다 걷다 보면, 반갑다는 듯이 해가 얼굴을 내밀어 왔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저기 오는군.”

해가 얼굴을 내밀 준비를 마친 듯 밝아오자, 멀리서 패튼 전차가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밤새 쉬지 않고 걸어 금천군 시변리에 거의 다다르고 있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오늘은 연대장님께서 선두에 탑승하신다고 보고 받았습니다. 탑승하시죠.”

밤새 아주 훌륭한 숙면을 했는지, 얼굴이 뽀송뽀송한 미 전차 중대장이 해치에서 손을 내밀었다.

“오늘이면 시변리를 점령할 수 있겠어. 출발하지.”

덜덜거리는 전차에 올라탄 지 10분이나 지났을까?

구불구불한 도로 때문에 꺾이는 코너 시야가 이따금 가려지고 있었다.

“잠깐! 잠깐! 중대장!”

“왜 그러십니까?”

왜냐고?

바로 앞 급격히 꺾이는 코너.

그곳에서 긴 포신이 먼저 내밀어지고 있었다.

“제기랄.”

북한군 T-34 전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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