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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전쟁영웅이 되었다-60화 (60/149)

60화. 북진(5)

미국 워싱턴.

트루먼이 집무실 책상에 앉아 한국전쟁에 관한 보고서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씁쓸해 보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중이었다.

“그래, 아직까진 이 보고서가 전부란 말이지?”

“예. 대통령님. 아직 각지에서 계속 전투가 진행되고 있어 포함되지 않은 전사자가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만, 크게 벗어나는 수치는 아닐 것입니다.”

“이걸 다행이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군. 신의 가호가 함께 하기를.”

트루먼 대통령에게 보고서를 내민 사람은 애치슨 국무장관.

한국전쟁에 전황과 피해 상황을 직접 보고하기 위해 트루먼 대통령과 대면하고 있었다.

전쟁이란 것이, 아무리 승기를 잡고 우세한 쪽이더라도 피해는 계속 생기는 법이다.

예상했던 것보다 월등하게 낮은 피해 규모였지만, 전사자는 모든 것을 잃은 것이나 다름없기에 가볍게 다룰 부분이 아니었다.

“10군단이 안주에 무사히 상륙을 마쳤습니다. 북한 수도 평양을 점령하는 건 시간문제에 가깝습니다. 다만···”

애치슨 국무장관이 멈칫하자 트루먼 대통령의 안색이 굳었다.

“중공군이 북한 국경선을 속속 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마오쩌둥이 아무래도 북한의 지원요청을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중공의 개입이야 이미 암암리에 알고 작전계획을 승인하지 않았나. 맥아더 사령관은?”

중공의 개입이야 개전 초기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트루먼 대통령 머릿속에서 이 순간 가장 걱정되는 건 맥아더 사령관.

아직은 조용히 사령관으로서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지만, 언제 맥아더가 가진 쇼맨쉽이 터질지 알 수 없었다.

그 쇼맨쉽이 어떤 나비효과를 불러올지 예측조차 되지 않기에, 예의주시할 수밖에.

“총사령관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 외에 다른 특이사항은 없습니다. 문제가 될 소지는 없어 보입니다.”

“이상하군. 맥아더가 그리 조용할 리가···”

트루먼 대통령이 손가락으로 안경을 매만졌다.

고심 끝에 무언가 결정해야 하는 때마다 나오는 그의 습관 중 하나였다.

맥아더의 그간 행실과 나이, 상황 등을 고려했을 때 한국전쟁은 그가 군에서 정계로 손을 뻗을 어쩌면 마지막 기회였다.

그의 성향을 잘 아는 트루먼은, 조용히 임무만을 수행하고 있다는 보고를 완전히 신뢰하기 어려웠다.

“흠···자네는 이 전쟁을 어떻게 끝내야 한다고 보는가?”

전쟁이 길어지는 건, 그리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소련과 전면적 마찰을 빚는 것은 최악에 가까웠다.

적당히 미국이 참전한 것에 대한 체면치레, 한국이 공산주의로부터 지켜지면서, 미국이 전쟁에서 빠져나올 기회가 있다면 빠져나오는 것이 상책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소련이 개입하지 않는 선에서 한국 영토를 확보하고, 그 영토를 한국 정부에 넘겨주고 나오는 것이 최선 아니겠습니까.”

애치슨 국무장관이 당장 답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의 시나리오가 최선이 되길 바라는, 어쩌면 당연한 대답이었다.

일어나지 않은 사건들을 예측해 세계정세를 읽는다는 건 수십, 수백 번에 걸쳐 엉켜버린 얇은 낚싯줄을 풀어내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니까.

그 아무리 똑똑한 인재라도, 이 낚싯줄을 완벽히 풀어내는 건 불가능하다.

“아무래도 직접 맥아더 사령관을 만나봐야겠네. 준비하게. 위치는 어디가 좋겠는가?”

트루먼이 안경을 벗으며 말했다.

안경을 벗은 건, 자신이 내린 결정에 반문은 받지 않겠다는 뜻과 같았다.

“웨이크섬이 좋을 것 같습니다.”

작용과 반작용.

작은 사건이 하나, 하나 모여 작용과 반작용을, 그것이 모여 거대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동북아시아 작은 나라 대한민국에서.

***

38선 이북 신계 일대.

시변리를 점령한 뒤, 남은 점령지를 크게 나누자면 신계-수안-율리.

마지막은 평양이었다.

“입맛에는 좀 맞으십니까?”

국물을 들이마시는 나에게 2대대장 문기준 중령이 물어왔다.

얼마 만에 맛보는 뜨거운 음식, 그것도 국물인지 모르겠다.

맛있냐고?

맹물에 소금 조금, 듬성듬성 콩나물이 들어간 콩나물국이···

“맛있네. 남은 배식은 부상병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조치해.”

“예. 즉각 조치하겠습니다.”

맛있다.

매일매일을 보리와 쌀, 거기에 모래나 돌로 간을 한 주먹밥이나 감자만 먹어대다 보면, 저 맹맹하지만 뜨거운 콩나물국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어떤 날에는 고기 통조림이나 과일 통조림, 부산과 대구에서 만들어지는 건빵이 보급되어왔다.

물론 운이 좋은 날에 한정일 뿐, 매일은 아니었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진 않을지 모르겠지만, 특공연대는 보급상황이 매우 좋은 편에 속했다.

보급로가 잘 지켜지고 유지되고 있을뿐더러 최전방에서 나날이 공적을 쌓아가는 특공연대 보급품에 통조림을 하나라도 더 넣어줬으면 넣어줬지, 빼는 경우는 없었으니까.

“1대대장, 2대대장. 이쪽으로.”

앞으로 있을 수안, 율리 진격을 의논하기 위해 1대대장과 2대대장을 불렀다.

신계-수안-율리를 모두 점령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임무였다.

북한군의 최대 보급로인 평양-원산 보급로를 끊어 버릴 수 있으니까.

미 1 기병 사단이 한포리-서흥-사리원을 통해 평양 남쪽을, 미 10군단이 청천강에 방어선을 구축하며 평양 북쪽을.

특공연대는 동쪽을 막아서는 것이나 다름없다.

남은 곳이라고는 서쪽, 그곳마저 국군 1사단과 미 24사단이 빠른 속도로 진격하고 있었다.

평양은 독 안에 든 쥐.

쥐들이 도망갈 곳이라고는 서해를 유유히 헤엄치거나, 동서남북으로 조여오는 포위망을 뚫고 중국으로 망명하는 것뿐이다.

“이 속도라면 우리는 2일 안에 율리, 3일이면 평양에 도달한다. 이미 평양 남쪽과 북쪽은 완전히 포위된 것이나 다름없어. 그래서 말인데···”

앞으로의 기본적인 작전계획은 두 명의 대대장 모두 제대로 숙지하고 있다.

두 대대장을 부른 것은, 이미 알고 있는 작전계획이나 다시 상기시키려는 것이 아니다.

“평양에 있는 쥐새끼들이 전부 빠져나가진 못하지 않았겠나?”

일반 생쥐가 아닌 뉴트리아 크기 정도 되는 거대 쥐를 잡아놓으면, 정치적인 면이나 혹여 있을 협상 테이블에서 아주 좋은, 훌륭한 무기가 된다.

“맞습니다. 10군단이 북쪽 길을 막아버리면서 쥐새끼들이 도망갈 구멍은 동쪽뿐입니다. 북쪽으로 피난하는 것보다 돌아가야 하기에 아직 평양을 빠져나가지 못했을 겁니다.”

먼저 대답한 사람은 2대대장이었다.

내 말이 옳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당시 김일성은 북한군에게 단 한 대의 열차나 자동차 같은 운송수단, 무기와 군수물자는 물론이고 쌀 한 톨도 남기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

‘문제는 그게 되겠냐는 거지.’

연합군의 북진을 막아보겠다며 새롭게 만든 부대는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보급도 되지 않는 마당에 전투력은 이미 소실된 지 오래였고, 평양의 주요 인사들이 망명하기까지 시간을 벌어줄 고기 방패 역할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시변리를 넘어오면서 교전은 없고 북한군의 숙영 흔적만 숱하게 발견했습니다. 먹던 음식에서 숟가락도 챙기지 못하고 도망간 걸 보면··· 아군의 진격속도가 빨갱이 놈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빠른 것이 분명합니다.”

“맞네. 지난번 T-34 전차와의 전투도 적이 아군의 진격속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지.”

T-34 전차 10대는 사실상 마지막 남은 북한의 기갑 병력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그런 귀한 기갑 병력이 뒤따르는 보병도 없이 내려온 것은, 필시 빠른 속도로 진격해 오는 아군의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북한군 지휘부의 문제일 확률이 다분했다.

“소수 특공대를 조직해 평양을 빠져나가는 거물 쥐들을 잡으면 어떨까 하네만.”

자, 이제부터가 본론.

“북한군 방어선이 잘 구축된 상태라면 모르겠지만 지금 적은 제대로 된 피아식별도 불가할 터, 특공대를 분대 규모 3개 조로 편성해 투입할 생각이네. 김일성을 생포하면 가장 좋겠지만, 꼭 김일성이 아니더라도 고위 군관이나 정치인, 당 지도부를 생포, 혹은 제거하려는 계획이네. 물론 생포할 수 있다면 생포하는 게 가장 좋지.”

사실 이렇게 자세한 설명과 함께 의논할 의무는 없다.

군대라는 게 하라면 하고, 까라면 까는 곳이니까.

다만, 수많은 지휘관이 해왔던 이 답답한 행태를 그대로 답습할 의무도 없기는 마찬가지.

“매우 훌륭한 계획임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걱정되는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북한군이 오합지졸이 되었다고는 하나, 이 임무를 수행하려면 적지 종심에 들어가야 합니다. 어떠한 준비도 없이 특공대를 조직하는 것은 향후 좋지 못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1대대장 김상옥 중령의 말에는 항상 계획에 대한 냉정한 판단, 동시에 나에 대한 걱정이 함께 섞여 있었다.

“설마 이번에도 연대장님께서 직접 가시겠다는 말도 안 되는···”

어허.

내 맘을 들여다보기라도 한걸까?

침투라면 자신 있었지만, 오랜 시간 자리를 비워야 하는 작전 특성상 당연히 직접 갈 순 없는 노릇이다.

“당연히 아니네. 저기, 이번에 보급받은 상자 중 아직 열어보지 않은 상자들이 있을 것이네. 그 안에 이번 작전을 도와줄 물건들이 들어있네.”

뉴트리아들을 생포해보겠다는 계획은 이미 북진하기 전부터 내 머릿속에 있었다.

이젠 그 계획을 실행할 차례고.

상자 크기와 밖에 적혀있을 문구를 말해주자 이내 병사들이 상자를 찾아왔다.

“연대장님, 이 상자가 맞습니까?”

“맞네. 열어보게.”

김상옥 중령과 문기준 중령이 상자 하나하나를 살피기 시작했다.

상자 안에는 북한에서 만들었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똑같은 수준의 새 인민군복, 노획해 보관하던 북한군 무기들이 들어있었다.

“이것들을 연대장님이 직접··· 대체 언제 전부 준비하신 겁니까?”

“적을 만나더라도 무사히 통과하는 것엔 전혀 무리가 없을 것이네. 자네들은 지원자를 받아 특공대를 선발하고, 물건을 나눠주게.”

사실 이 작전과 유사한 작전이 이미 성공한 사례가 꽤 많았다.

무작정 아군을 위장시켜 적지에 보내는 것이 아니다.

멀리서 볼 것도 없는 것이, 얼마 전 영국군 지휘관이 타고 있던 차량이 후퇴하는 대대 규모의 북한군과 정면에서 마주친 일이 있었다.

영국군 지휘관은 당연히 영국 군복을 입은 상태였고.

급히 차를 돌려 후퇴하기엔 매우 수상해 보이기 그지없는 상황.

영국군 지휘관은 대담한 선택을 했다.

차량 속도를 서서히 올려 북한군 대열 한 가운데를 그대로 통과했다.

그는 통과하는 동안, 어떤 의심이나 총격도 받지 않은 채 무사히 지휘소에 복귀했다.

“1대대에 이번 임무를 수행하기 적합한 부대원들이 있습니다.”

내가 연대의 총 책임자라면, 이 두 명은 대대의 총 책임자.

작전계획을 듣고는, 단번에 적합한 부대원들을 떠올렸다.

“누군가? 어디 출신이지?”

“북파 경험만 수십 차례, 군관급 지휘관을 두 명이나 암살했던 친구입니다.”

말만 들어도 든든하다.

북파 경험 한 번도 절대 쉽게 가질 수 없는 경력.

“데려오게.”

1대대장이 말하는 부대원들을 당장 보고 싶었다.

그들이 특공 중에 특공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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