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지동리 탈환 작전(1)
깐깐하고 세심한 성격을 가진 1대대장이 자신 있게 추천한 이가 누굴지 궁금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기껏해야 10분 남짓인 기다리는 시간이 왜 이리도 긴지.
딱 10분쯤 지나자 임시로 지어진 지휘부 막사로 1대대장과 함께 누군가 들어왔다.
‘중위?’
예상과 달리 하사관이나 병사가 아니었다.
철모엔 2개의 사각형이 그려져 있었다.
“연대장님 이 친굽니다.”
김상옥 중령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날카롭고 각진 경례를 해왔다.
경례를 받아준 뒤, 손을 건네자 그가 강단 있는 목소리로 관등성명을 말했다.
“1대대 3중대장! 중위 김동석입니다.”
김동석?
익숙한 듯, 아닌 듯.
어디서 들어본 듯한 그런 이름이었다.
“자네 출생지가 어딘가?”
“함경북도 명천, 칠보산 기슭에서 태어났습니다.”
“오! 자네였군. 반갑네.”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화색이 돋지 않을 수가 없었다.
1대대장 말대로, 김동석 중위보다 이번 임무에 적임자는 지금 한반도 안에서 몇 없을 테니까.
최고의 적임자가 내 앞에 있었다.
“예? 저를 알고 계셨습니까?”
물론, 지금은 처음 본 사이.
기쁜 마음에 너무 아는 척을 했던 모양이다.
“김상옥 중령이 그렇게 자네 칭찬을 많이 했었지. 안 그런가?”
김상옥 중령을 바라보며 멋쩍은 웃음을 흘려보냈다.
그를 바라본 이유는 하나.
그냥 그렇다고 말해.
“맞··· 맞습니다. 3중대장은 중대장 사이에서도 특출난 인재이기에, 칭찬했던 것입니다.”
“자, 일단 앉게.”
어떤 세상이 난세인지 딱 부러지게 정의해놓은 건 없지만, 지금 대한민국이 겪고 있는 전쟁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난세 중 최악에 가까운 것만은 분명 했다.
난세에 영웅 난다는 말이 있다.
목숨 바쳐 이 전쟁에 뛰어든 모두가 영웅이란 칭호를 받아 마땅하겠지만, 그중에 돋보이는 몇몇이 있기 마련.
전선이 낙동강까지 밀리지 않아 그의 영웅적인 모습이 아직 드러날 기회가 없었을 뿐이지, 본색은 사라지지 않는다.
“김동석 중위, 오면서 임무에 대해 좀 들었나?”
“그렇습니다. 김일성 빨갱이 모가지를 가장 먼저 비틀어볼 기회라고 들었습니다.”
우선 사상검증 통과.
“지원조차 받기 힘든 적지에 침투해야 하는 아주 위험한 임무가 될 것이네.”
“전쟁터에 위험하지 않은 곳이 있겠습니까. 연대장님께서 훌륭한 명령으로 저희를 지휘해주셨기에 지금 살아있다고 생각합니다. 맡겨만 주시면, 육군첩보부대(HID)를 능가하는 특공대가 되겠습니다.”
더 묻고, 들어봐야 시간만 아까울 뿐이다.
육군첩보부대(HID)를 능가하겠다는 그의 말은 절대 허세가 아닐 테니까.
“좋네. 자네를 이번 평양 침투 작전에 투입될 특공대의 특공대장으로 임명하겠네. 건투를 비네.”
“반드시 김일성 모가지를 손에 쥔 채 임무를 완수하겠습니다!”
김동석 중위 눈에는 강한 결의가 서려 있었다.
“자네를 믿네.”
미 극동사령부 산하 켈로부대(KLO).
합동정찰대(CCRAK)
항공첩보대와 미 CIA 산하 조직 첩보부대들까지.
대부분이 미군에 배속돼 활동 중이긴 하지만, 많은 첩보부대, 공작원들이 한반도 각지에서 활동하고 있다.
첩보부대는 고유명사나 지명 등을 부대명으로 삼기도 한다.
머릿속에 좋은 부대명이 떠올랐다.
아주 멋지고, 어울리는.
“이번 특공대 호출 명은 GOAT. 이름에 부족함 없는 작전 수행을 기대한다.”
“GOAT라면···염···”
2대대장 문기준 중령이 의아한 표정과 함께 입을 열었다.
당장은 소소해 보이지만, 앞으로 얼마나 위대해질지 모르는 이 순간에 염소라는 말을 꺼내기 전에 당장 그의 입을 막아야겠다.
“Greatest Of All Time. 라는 문장의 앞글자를 따 줄인 말이네.”
본래는 스포츠 종목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최고의 선수에게 부여되는 명예로운 칭호.
물론 전쟁은 스포츠가 아니다.
그래서 가지는 뜻도 조금은 다를지 모르겠지만, 큰 틀은 다르지 않았다.
“굳이 해석하자면 세계최강이 되겠군.”
자리에 있는 모두의 얼굴이 한껏 상기되어 있었다.
모두와 한 번씩 시선을 마주치며 바랐다.
이들이 세계최강이 되기를.
***
평양 외곽 30KM 지동리 초입.
내리쬐는 햇볕이 뜨겁다 못해 따갑기 그지없었다.
저 멀리 지동리 야산에 떨어지고 있는 폭격까지 바라보고 있어서일까?
땀샘이 쉴새 없이 땀을 뿜어댔다.
“3중대장 자리는 잘 메꿨겠지?”
“물론입니다. 작전 수행에 전혀 문제가 없을 겁니다.”
특별히 걱정할 사안은 아니었다.
특공연대는 이미 지휘관 유고 시에 혼란이 올 것에 대비해 대체 인원을 완벽히 지정해뒀으니까.
연대장, 대대장을 비롯해 중대장, 소대장, 소대 안에 분대장까지.
톱니가 하나 빠진다 해도 곧바로 다른 톱니가 그 자리를 충분히 메꿀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놈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 같습니다. 그간 안 보였던 빨갱이 놈들이 죄다 여기에 눌러앉은 것 같습니다.”
북한군은 지동리 초입 좌우 양쪽으로 들어선 야산에 수많은 토치카와 박격포 진지를 만든 뒤,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동쪽으로 크게 우회해 다른 진격로를 열어 지동리를 지나는 방법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상당히 많은 시간이 허비된다.
평양 선봉이라는 업적은 자연스레 포기 당하는 것이나 다름없고.
지동리는 반드시 뚫어야만 하는 곳이었다.
“우선 경계병을 배치한 뒤 휴식한다. 대대장들은 지휘 막사로 오도록. 아, 전차 중대장도 막사로 부르게. 이상.”
항공 지원과 전차를 앞세워 지동리를 어찌 점령할 순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피해와는 비교할 수 없는 피해를 감수한다는 전제하에.
야산에 토치카와 진지, 적이 구축한 방어선 특성상 항공 지원과 포격 지원 효율마저 평소보다 떨어졌다.
“우리는 반드시 지동리를 통과해야만 한다. 다만 지금까지 해왔던 전투방식으로 돌파하기엔 큰 전투력 손실이 예상되는바, 좋은 의견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말하게들.”
“연대장님. 제가 먼저 의견을 제시해도 되겠습니까?”
가장 먼저 전차 중대장 밀러 중위 입이 열렸다.
어디 들어보자.
그 입에서 나오는 게 똥인지, 된장인지.
“패튼 전차는 매우 자유로운 기동이 가능합니다. 전차를 앞세운 공격적인 기동을 바탕으로 지동리를 돌파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작정 돌격하자는 것이 아니라 보병과 전차 합동 작전은 생각보다 다양한 방법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똥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된장도 아니었다.
밀러 중위 입에서 다양한 방법이 제시되었으나, 기본 틀은 모두 같았다.
든든한 패튼 전차를 앞세운 뒤 보병이 뒤를 따른다는 기존 작전의 한계를 넘지 못했다.
“연대장님, 밀러 중위의 작전계획은 모두 소수의 전차에 기댄 작전일 뿐입니다. 무엇보다 제가 배우고 느낀 바로는 보병의 전투계획을 우선으로, 다른 병과는 협조와 협력하는 것이 근본 아니겠습니까?”
문기준 중령의 반응은 딱 예상했던 대로였다.
밀러 중위의 계획이 전차를 따르라! 에 가깝긴 하다만, 그 계획을 말한 밀러 중위의 계급이 중위라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었을 터.
두 사람 모두 틀리지 않았다.
달랐을 뿐이지.
밀러 중위는 한국어를 몰랐다.
그가 의기소침해질 수 있었기에 굳이 문기준 중령의 의견을 통역하진 않았다.
“1대대장 자네 생각은?”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 나를 제외한다면, 가장 지략가에 가까운 사람은 김상옥 중령이다.
모두가 알고 있다는 듯, 그에게 시선이 집중됐다.
“참···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동리 탈환의 핵심쟁점은 화력지원과 더불어 신속히 평지를 지나는 것인데··· 최대한 적이 방심한 시각인 야간 기습을 감행한다고 해도 큰 효과는 없을 것 같고··· 죄송합니다.”
그 짧은 시간에 생각을 꽤 많이 한 모양이다.
김상옥 중령이 답을 찾지 못해 죄송하다는 듯, 고개를 살짝 숙였다.
“자네 말대로 패튼 전차를 앞세운 야간 기습은 큰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거네. 패튼 전차가 움직이는 순간 작전 개시를 알리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패튼 전차의 우렁찬 기동소리는 여전히 적에게 지옥과도 같겠지만, 은밀하고 조용히 적의 심장에 비수를 쑤셔 박는 것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우리의 힘만으로 뚫어내기 힘들다면 서쪽에서 북진하고 있는 미군에 지원을 요청하면 안 되겠습니까? 지원이 온 뒤엔 화끈하게 한판···”
이 화끈한 의견은 누가 말했는지 고개를 돌려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대답해주기 귀찮다는 생각이 아주 조금 스칠 찰나.
1대대장 김상옥 중령이 대변인을 자처해 나섰다.
“북방 한계선이 청천강으로 정해졌고, 미 10군단이 북쪽에서 내려오기에 특정 부대가 적지에 돌출되어 포위될 가능성은 줄어들었지만, 현 상황에 미군도 대대 규모 이상의 병력을 지원해주는 것은 꺼릴 것입니다. 말은 안 하지만 미군들도 평양탈환에 선봉이 되고 싶은 건 마찬가지 일 겁니다.”
“저희 머리에서 나온 생각들로는 대책이 없는 거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역시 현명하시고 훌륭하신 연대장님의···”
3개의 시선, 6개의 눈동자가 내 입만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잠··· 잠깐 기다리게.”
사람 부담스럽게.
잠시나마 시선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피해를 줄여 적의 방어선을 돌파한다는 생각 자체가 욕심이라는 건 모르지 않았다.
누군가는 정답 없는 문제를 고민하는 것보다 적의 방어선이 더 견고해지기 전에 공격하라며 나무랄지도 모르겠지만.
‘전차··· 야간··· 지원··· 그리고 핵심은 화력과 기동력.’
답은 이 모든 항목이 각자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며 하나의 큰 장점으로 합쳐지는 것.
지금 내 뇌는 각기 다른 3개의 뇌에서 나온 정보를 교묘하고 정교하게 합치기 위해 혼신의 힘을 쏟아붓고 있었다.
‘자 우선···’
패튼 전차와 기습은 썩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야간과 화력은?
야간과 화력도 마찬가지.
주간엔 항공 지원이 가능하지만, 야간엔 상당히 제한되니까.
병력지원?
1대대장 말대로 1개 보병 대대 이상의 지원을 기대하긴 힘들었다.
‘이런 염병할.’
어디서 아이언맨 슈트라도 하나씩 구해다 입히고 싶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골치 아프게 생각할 필요도 없을 텐데.
아!
뇌에서 번개가 쳤다.
순식간에 온몸을 돌아 나오는 쾌감이 솜털까지 전해졌다.
다시 눈을 떴다.
정확히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을 것이다.
“이번 작전 명령 하달하겠네.”
여전히 그들의 시선은 내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궁금해 미치겠다는 표정은 덤이었다.
“이번 지동리 탈환의 핵심은 조화에 있다.”
이런 생각을 해냈다는 것에, 내가 말하고도 어이가 없었다.
조화.
어울리는 것들의 조화가 아닌,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는 것들을 섞는 조화.
역시, 불가능이란 없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