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화. 지동리 탈환 작전(2)
“연대장님. 가능하답니다. 내일 작전 개시 전까지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능.
통신 장교의 이 한마디로 작전계획은 완성된 것과 다름없었다.
“좋아. 작전 개시 시간은 내일 오전 05시 30분. 매복조는 가장 어두운 황혼을 틈타 미리 잠입한다. 알겠나?”
통신 장교가 말한 지원군은 사람보다 월등히 빠르고, 전차보다 월등히 조용하다.
그런 지원군이 떠오른 마당에, 야산에 눌러앉은 빨갱이들을 혼내주는 일은 시간을 오래 끌 필요가 없었다.
“아마 전례 없는 전투가 될 것 같습니다. 이런 작전을 실제로 행한다는 것 자체가 놀라울 따름입니다.”
놀랍다는 1대대장의 반응과.
“미군 내에서도 이런 작전계획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전투를 앞두고 기대되는 건 처음입니다.”
심지어 전투가 기대된다는 밀러 중위의 반응.
‘밀러 저놈도 정상은 아니야.’
얼마 전에 있었던 전차전은 벌써 새까맣게 잊은 모양이다.
물론 목숨이 걸린 작전을 단순히 놀라움이나 기대감을 얻기 위해 계획하는 미친놈은 없다.
놀라움이나 기대감은 누가 더 신기하고 창의적인지를 가리는 발명품 박람회에나 어울리는 것이니까.
이 작전이 곧바로 실행되는 이유는 지극히 당연하면서도 간단명료하다.
성공 가능성.
당연히 100%의 확률이란 건 세상 그 어디에도 없지만, 무언가 중요한 것을 결정해야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가능성이다.
성공확률 높은 작전이 전례 없이 놀랍고 기대감을 불러오는 것뿐이지.
“밀러 중위는 전차 기동로 다시 확인하고, 1대대장과 2대대장은 매복조 투입 및 병력 정위치 시킬 것. 이상.”
“예! 알겠습니다.”
영어와 한국어가 동시에 들렸다.
다른 언어였지만, 제대로 알아들었단 뜻이었다.
아마도 내일 새벽은, 평소와는 조금 다를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황해도 북단, 평양직할시 10KM 인접 지역.
김동석 중위가 이끄는 GOAT 30명의 특공대가 인민군복과 모신나강 소총으로 무장한 채, 황해도 최북단에 도착했다.
동쪽으로 발 몇 발자국만 꺾는다면 행정구역상은 평양이나 다름없었다.
“여기서부턴 분대 단위로 찢어진다. 돼지 사냥이 최우선이지만, 좌관급 군관을 발견하면 작전 개시해도 좋다. 생포하는 즉시 미리 정해놓은 지역으로 이동하도록. 전달 끝.”
명령을 듣기 위해 모인 2명의 분대장이 대답 대신 고개를 짧게 숙였다가 이내 흩어졌다.
김일성은 돼지, 박헌영은 여우.
이처럼 중요 핵심인사들에겐 미리 암호명을 붙여두었다.
돼지와 여우를 단번에 사로잡아 돌아가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북한에서 배불리 먹어 지방이 풍부하게 낀 특등급 돼지를 찾는 건 매우 어려운 일.
운이 좋아 돼지나 여우같이 암호명이 붙은 인사를 생포한다면 특공대 전원 귀환, 좌관급 군관을 생포한다면 해당 분대 귀환.
작전 특성상 그 외 크고 작은 상황 판단은 분대장이 맡도록 정해놓았다.
“자, 가자. 이제부턴 특별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수신호로 의사소통한다.”
마지막으로 김동석 중위가 선두에 선 1분대가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연합군을 막기 위해 투입된 북한군과 평양을 지키는 북한군들이 패전에 패전을 거듭한 패잔병이라고는 하나, 적지 한복판.
아주 작은 방심이 곧 죽음으로 이어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곳이다.
[서쪽 전방에 보이는 교량으로 이동한다.]
누군가를 생포하거나 제거하겠다며 무작정 적진을 쑤시고 다니는 건, 죽여달라는 광고판이나 다름없다.
이동을 위해 건널 수밖에 없는 교량이나 급격히 꺾여 시야가 제한되는 좁은 도로 같은 곳.
숨죽여 기다렸다 다가오는 먹잇감을 물어뜯기 아주 좋은 장소였다.
‘···’
적지에서는 시간이 느린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모든 움직이는 행동부터 말하는 것까지, 심지어 모든 생리현상을 참아내고 숨소리도 조절해가며 먹잇감을 기다리다 보면 말이다.
그렇게 기다리다 보면···
“동지, 이쪽 입네다. 지금 이쪽 말고는 사방이 온통 막혔습네다. 다른 곳은 아직 검문이 철저히 이뤄지고 있습네다. 이쪽으로 가시라요.”
먹잇감이 찾아온다.
[대기할 것.]
대대적인 정부나 군부의 피난 행렬이라면 모를까, 나라를 버리고 도망가는 것들이 대로변이나 큰 다리를 통해 이동하는 경우는 드물다.
동네방네 소문내며 도망가고 싶진 않을 테니까.
“고맙네. 동무. 내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 돌아 오갔서.”
“동지··· 몸 조심하시라요. 꼭 돌아오셔야 합네다.”
도망가는 주제에 서로 애절하긴.
자의든, 타의든 아마 저 동지가 다시 돌아오는 일은 없을 텐데 말이다.
찾아온 먹잇감을 발견했다면, 사냥해도 탈이 없는지를 판단하는 것이 우선.
[5명 이내.]
사냥하기 딱 좋은 수.
손가락 다섯 개를 편 뒤 아래로 내렸다.
분대원에게 먹잇감의 크기를 알리기 위한 수신호였다.
아직까진 나무와 길게 자라난 풀에 가려져 시야가 완벽히 보이진 않았다.
대화 소리는 둘, 발자국은 많아야 셋이었지만 미처 발견하지 못한 먹잇감이 남아있을 수 있었기에 다섯 이내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동무들. 날래 돌아가라. 서둘러 돌아간다면 아무 일도 없을 테니.”
먹잇감을 사냥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신속, 정확, 완벽의 삼박자를 갖춰 사냥에 돌입한다.
[좌측과 우측에 각 두 명, 후방에 셋. 자네 둘은 나를 따라와.]
오랫동안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보면, 입술 위아래가 붙는 기분이 든다.
조금 힘을 줘 입을 열었다.
“꼼짝 마. 움직이면 쏜다.”
언제나 구관이 명관인 말이다.
이 짧은 말에 사냥에 필요한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함축되어 있다.
“야이! 깜짝이야!”
먹잇감이 놀랐는지 엉덩방아를 찍으며 넘어졌다.
손으로 눈까지 가려가며 기겁하는 걸 보니 많이 놀란 모양이다.
안타까운 건, 눈을 뜨고 인민군복과 모신나강 소총을 보더니 이내 태도를 바꿨다는 것이다.
“뭐야, 동무들 행색을 보아하니 우리 쪽 아들인데, 죽고 싶어 환장한 게야? 당장 어디 소속인지 말하라! 이봐 동무들! 이놈들 당장 치우라.”
뒤를 돌아보며 동무를 찾는 걸 보니, 함께 온 작은 쥐새끼들이 뭔가 해주길 바라는 모양이다.
“동지··· 죄송합네다.”
스스로가 사냥꾼이 아닌 먹잇감이라고 인지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동··· 동무들. 원하는 것이 있으면 말만 하라우. 내 뭐든 들어주갔서. 여기 있는 동무들과 가족들까지 평생 배불리 먹고 살게 해줄 수도 있네. 소속, 소속만 말하라우. 전화 한 통이면···”
거짓말은 아니었다.
군복 상의 깃에 붙은 계급장을 보면, 전화 한 통으로 몇 명 보살피는 것 쯤이야.
“소속? 동무한테는 소속이 그리 중요한가?”
“물··· 물론. 말만 하라우. 뭐든 들어 줄 테니.”
모르는 게 약일 때가 있다.
지금이 딱 그런 상황일 텐데.
벌써 3번이나 소속을 물었으니 답을 해줘야겠다.
“내 소속이 그리도 궁금하다면야··· 대한민국 국군 특공연대 소속 김동석 중위다.”
그렇게 소속을 물어대더니, 시끄럽던 입이 싹 다물어졌다.
나불대던 입 대신 손발을 사시나무처럼 떨어댔다.
“대··· 대체.”
먹잇감 허리춤에서 시작된 작은 물기가 강물 흐르듯 점점 아래로, 아래로 흘러 바짓단을 적셨다.
톡 쏘는 암모니아 냄새가 풍겨오는 걸 보니 지린 모양이다.
아, 이러면 곤란한데.
***
지동리 초입 특공연대 주둔지. 오전 05시 정각.
1대대와 2대대에서 각출한 2개 중대가 가장 어두운 시간을 틈타 지동리 야산 좌측과 우측에 적당한 거리를 둔 채 매복하는 데 성공했다.
해가 뜨기 전이 가장 어두운 법이라더니, 몇십 미터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연대장님, 저기 오는 것 같습니다.”
다그닥. 다그닥. 드그득, 드그득.
말발굽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혹여나 늦는 줄 알았는데, 시간에 맞춰 와 다행이었다.
히이이이이잉!
말 한 마리가 지척까지 다가와 투레질을 하고는 멈춰섰다.
“연대장님, 혹여 늦지는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기마 대대장 장철부 중령입니다.”
정철부 중령이 말에서 내려 경례를 해왔다.
쉬지 않고 달려왔음을 티 내기라도 하듯, 그가 타고 온 말 콧구멍에선 거친 숨이 들락거렸다.
“아닐세. 아직 동이 트려면 시간이 좀 남아있으니. 먼 길 와줘서 고맙네.”
기마 대대는 말 그대로 말에 올라타 전투를 하는 부대였다.
아주 숙련된 기마병은 소총을 쓰는 경우도 더러 있었지만, 일반적으로는 한 손으로 들기 쉬운 권총.
혹은 군도를 사용하기도 했다.
“작전계획은 상세히 전해 들었습니다. 소문으로만 듣던 특공연대와 빨갱이를 도륙 낼 연합작전에 참여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연대장님.”
기마 대대는 강한 화력을 갖추고 있진 않았다.
말 위에서 기관총을 쏘거나 박격포를 쏴 댈 순 없는 노릇이니까.
화력을 조금 포기한 대신 압도적인 기동력으로 적에게 혼란을 선사해줄 것이다.
“군마의 훈련상태는 어떤가?”
기마 대대의 핵심인 말.
말은 생각보다 예민한 동물이다.
훈련이 제대로 되지 않은 말은 큰 소리가 나거나 놀라면, 제대로 제어가 불가해지기도 한다.
지동리는 곧 사방에서 떨어질 폭격과 포격, 총성으로 인해 굉음이 끊이지 않을 터.
잘 훈련된 군마만이 버틸 수 있는 환경이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전쟁 전엔 300필 정도였지만, 이 사단을 겪다 보니 250필 정도 남았습니다. 실상 여기에 온 이 녀석들이 국군에 남은 마지막 군마들입니다. 기마 돌격에도 전혀 주저하지 않을 겁니다. 한번 쓰다듬어 보시겠습니까?”
장철부 중령이 조심스레 고삐를 넘겼다.
“말 뒤로는 절대 가시면 안 됩니다. 천천히, 콧등에서 시작해 목덜미로 손을 자연스럽게 이동하시면 되겠습니다.”
손길에 기분이 좋은지, 말이 콧구멍을 연신 벌렁거렸다.
기마 부대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사람과 말, 모두를 교육해야 하기에 전투 중 손실을 메꾸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웠다.
설사 일반 보병을 훈련 시켜 말에 태우더라도, 말과 교감을 거쳐 실제 전투에 투입되기까지는 엄청난 시간이 소용된다.
이들과 이 말이 국군 마지막 기병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잘 부탁한다.”
말 목덜미를 마지막으로 쓸어내렸다.
“저는 이만 위치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연대장님.”
처음 보는 장철부 중령과 안부를 나누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일출이 몇 분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검었던 하늘이 어느덧 짙은 남색으로, 점점 옅어져 갔다.
“그래. 잘 부탁하네. 못다 한 말은 전투가 끝난 뒤에 나누도록 하지.”
지동리 전투는 전차와 보병, 거기에 기마병까지 더한 연합작전이 될 것이다.
사람보다 빠르고, 전차보다 조용한 그들은 제 역할을 충실히 해내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오는군.’
멀리서 미군 폭격기가 어둠을 뚫고 다가왔다.
빨갱이들이 도망쳐도 상관없다.
어디로 도망가도 그곳이 지옥이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