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한민국 전쟁영웅이 되었다-65화 (65/149)

65화. 평양(3)

“마지막으로 묻겠네. 혹시 문화재와 포로 관련 부탁으로 인해 그러는 것이라면 말하게. 지금이라도 작전지를 바꿔줄 테니. 이 순간의 선택이 평생의 후회로 남을지도 모르네.”

지휘소 막사를 나오는 그 순간에도 워커 중장은 재차 의사를 물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

“흔쾌히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만 사령관님, 저는 대동교 도하를 양보했을 뿐이지 평양을 양보한 것이 아닙니다. 이만 출발해 보겠습니다. 대동강 너머 평양에서 뵙겠습니다.”

“그래. 몸조심하게.”

그 누구에게도 평양을 양보할 생각은 없었다.

다른 연합군 부대를 악의적으로 위험에 빠트리거나, 앞서가는 부대의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길 생각은 더더욱 없다.

30시간 뒤 복구될 대동교를 통해 평양 중심부에 입성하는 작전보다 더 좋은 작전이 있는 것뿐이다.

“10분 뒤 출발한다! 1대대장. 포로들 데려와.”

미 1 기병 사단에 포로 대부분을 맡기긴 했지만, 전부 맡긴 것은 아니었다.

350명 중 지동리를 넘어 생포한 20명의 포로를 특공연대에 남겼다.

그들이 해줘야 할 일이 있었다.

“연대장님. 데려왔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1대대장이 20명의 포로를 2열 종대로 세웠다.

데려온 모든 포로의 손에 포승줄이 묶여있었다.

“풀어줘.”

“예. 알겠습니다. 풀어.”

포승줄을 꽤 세게 묶었는지 손목에 자국이 그대로 남았다.

포로들은 줄을 풀어줬음에도 도망가거나, 해코지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오히려 왜 풀어주는 것인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한 눈동자에서 엿보이는 감정은 공포와 두려움이었다.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너희를 해할 생각도 없다.”

고분고분 말을 잘 듣는다면 말이지.

“우리는 이제 미립 비행장을 거쳐 대동강 상류로 진격할 것이다. 진격에 앞서 너희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은 것이 있다. 도움을 준다면 포로로서 받을 수 있는 최대한의 대우를 해줄 것을 약속한다.”

포로들끼리 눈으로 의사소통을 시작했다.

논밭 매다 억지로 끌려와 총을 든 그들에게 대우라는 단어는 익숙해 보이지 않았다.

“우···우리처럼 힘없이 투항한 포로들이 뭘 할 수 있겠습네까. 혹시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다 버릴 생각 아닙네까?”

새끼들 의심은.

“내 이름 석 자를 걸고 약속하지. 다만, 나는 약속을 어기는 사람을 아주 끔찍이 싫어하네. 만약 동무들이 약속을 어긴다면··· 지옥에 가서도 약속을 어긴 것을 후회하게 해주겠어.”

표정을 지운 채 말했다.

몇몇 포로 목에 누워있던 솜털이 빳빳하게 선 걸 보니, 말귀는 제대로 먹힌 모양이다.

“뭘 하면 되겠습네까?”

“지뢰가 설치된 길목을 피하고, 불가피하게 지나야 한다면 지뢰를 설치한 위치를 우리에게 알리면 된다.”

북한군은 연합군을 지연시키기 위해 평양 인근에 목함지뢰를 무더기로 매설했다.

지금까지는 패튼 전차를 앞세워 지뢰를 쉽사리 제거했지만, 패튼 전차가 대동강 상류를 건널 수 있는지는 직접 봐야만 판단할 수 있었다.

만약 패튼 전차가 강을 건너지 못한다면 지뢰탐지기에도 걸리지 않는 목함지뢰를 찾는 방법은 일일이 탐침봉으로 수색하는 방법과 지뢰를 매설한 이에게 직접 물어보는 것뿐.

당연히 전자보다 후자가 빠르다.

“그저 길 안내만 하면 되는 것이라면야··· 안 그렇습네까 동무들?”

고개를 끄덕이는 표정들을 보아하니, 이 자리에 북조선 만세를 외치며 지뢰밭으로 인도할 포로는 없어 보였다.

“자. 그럼 출발하지.”

각 부대에 포로들을 골고루 나눠 배치한 뒤, 진격에 나섰다.

포로들은 가장 선두에서 평양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

대동강 물줄기가 햇빛을 반사하며 푸른 빛을 뿜어댔다.

보고만 있어도 온몸이 시원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여기가 가장 수심이 얕고, 강폭이 좁아 건너기가 쉬울 겁네다. 이쪽 건너부터는 지뢰가 매설되어있지 않습네다. 함께 지뢰를 심은 동무들과 함께 혹시나 도망갈 길목으로 쓸까 하여···”

“수고했네.”

선두에 섰던 포로가 굳이 물어보지 않은 것까지 아주 세세하게 설명했다.

불과 반나절 만에 포로들의 태도는 달라져 있었다.

어떤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서두르라며 윽박지르거나 총구를 들이대지 않고, 먹을 것을 나눠주며 기본적인 도리를 했을 뿐.

물론 나 역시 포로들을 무작정 믿은 건 아니었다.

지뢰가 매설된 길목을 최대한 피해 조금 경로가 달라졌을 뿐, 포로가 안내하는 길이 미리 생각해둔 경로와 도착지에 매우 근접했다.

“어떤가. 전차가 건널 수 있겠는가?”

밀러 중위가 강에 직접 들어가 수심을 확인했는지 군복 하의가 젖어있었다.

상의에는 물이 몇 방울 튄 자국만 있는 것으로 봐선, 수심이 그의 다리보다 낮은 것이 분명했다.

“들어가 보니 가장 깊은 수심이 70 CM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전속력으로 기동해 도하 시간을 줄인다면 충분히 도하가 가능하다고 판단됩니다.”

좋았어.

전차는 곧 있을 시가전에 매우 중요한 요소다.

포격과 엄폐물, 쏴주고 막아주고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아주 기가 막힌 요소.

“알겠네. 혹시 모르니 한 대씩 도하 해 보는 게 어떤가.”

“예! 준비하겠습니다.”

패튼 전차는 수륙양용차가 아니다.

보통의 경우라면 공병대가 부교를 개설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정답에 가깝다.

아니, 정답에 가까운 게 아니라 정답이다.

드릉!

드드드드드드드.

언제는 정답대로만 했냐고 반문이라도 하듯, 최대 속도를 내기에 적당한 거리에 멈춰있던 패튼 전차 한 대가 거친 배기음을 뿜으며 움직였다.

“갑니다!”

매섭게 달려온 패튼 전차의 궤도가 물에 닿자, 강이 쪼개졌다.

흡사 강을 가르며 나아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조금만 더.’

몇 초 지나지 않아 강 중간쯤을 지나고 있었다.

처음 달려왔던 속도보다는 줄어있었지만, 여전히 일정 속도를 유지해 나갔다.

“연대장님! 됐습니다. 성공입니다.”

물에 잠겨있던 궤도가 슬슬 물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수심이 가장 깊은 곳을 무사히 통과한 것이다.

“오! 동무, 축하합네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당신이 환호하는 건 좀 그렇지 않아?

패튼 전차가 부교 없이 강을 건너는 신기한 광경에 자신이 포로임을 잠시 망각한 모양이다.

선두 전차의 성공에 힘입어 나머지 5대의 전차들도 거침없이 대동강 물살을 갈라냈다.

그 뒤를 기마대와 보병이 따라 건넜다.

“김일성 대학으로 진격한다! 시가지에 돌입하면 전차 중대와 합동 작전을 펼친다. 장철부 중령. 기마대는 대열 후미에 위치하게.”

“예. 알겠습니다. 기마대는 후방을 맡겠습니다.”

각기 다른 병과를 전투 상황에 알맞게 운용하는 것은 지휘관의 기본이다.

넓은 들판에서 장철부 중령이 지휘하는 기마대는 최고의 전투를 벌여 지동리 탈환에 공헌했다.

빼곡하게 건물이 들어찬 평양 시가지에서는 포격 지원 아래 전차 중대와 보병의 합동 작전이 빛을 발할 것이다.

“적의 저항이 거의 없는 수준입니다. 이대로라면, 평양 시내까지 곧장 진격하더라도 무리가 아닐 것 같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대동강 상류를 건너자 적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북한군은 선교리에 도착한 미 1 기병 사단을 막아내는 것에 온통 신경이 쏠려 있었다.

길에 깔아둔 지뢰와 미리 폭파해둔 교량을 지나치게 믿은 것인지 급소가 될 수 있는 동쪽은 거의 비워진 수준이었다.

“아마 도하 장비 없이 강을 건널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 했겠지. 우리가 동쪽을 치면, 도하 준비를 마친 미 기병 사단이 비교적 쉽게 대동강을 건널 수 있을 것이네.”

6대의 패튼 전차를 선두에 세운 채 김일성 대학을 향해 나아갔다.

그렇게 평양 시가지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쾅!

시가지에 가까워질수록 적의 저항이 거세졌다.

모래 포대를 쌓아 만든 기관총 진지를 향해 패튼 전차 주포가 불을 뿜었다.

-두두두두두두두.

“좌측 10시 방향 옥상에 적 기관총!”

흡.

호흡을 멈추고 가늠쇠에 눈을 가져다 댔다.

[시력 강화 프로세스 가동. 호흡을 조절합니다. 적과의 거리 320M.]

건물 옥상에서 아군을 향해 기관총을 난사하는 기관총 사수가 가늠쇠 안에 들어왔다.

아무리 나노봇의 도움을 받더라도, 서서쏴 자세에서 320M 거리에 있는 북한군을 맞추는 건 쉽지 않은 일.

가늠쇠 안으로 보이는 기관총 사수의 머리는 작게 찍은 점처럼 보일 뿐이었다.

[호흡 정지 시간 5초 남았습니다. 4, 3, 2···]

방아쇠를 천천히, 아주 천천히 검지로 잡아당겼다.

호흡을 조절하고 매우 천천히 방아쇠를 당겼기에,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언제 공이가 뇌관을 때려 총알이 튀어나갔는지는 나도 알지 못할 정도였다.

탕!

[명중.]

명중이라는 알림과 거의 동시에 점이 가늠쇠 안에서 사라졌다.

“적 공용화기는 전차 중대가 제압한다! 가까운 건물부터 확실히 청소하도록.”

시가전은 매우 위험한 전투에 속한다.

건물을 엄폐물로 쓸 수 있는 시가지 특성상, 어디에서 총알이 날아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적과의 거리 476M]

나노봇이 찍은 다음 목표물은 M1 개런드 소총의 최대 유효 사거리인 500M에 육박했다.

명중은 둘째치고, 사실 괜찮은 성능의 스코프 없이 476M 거리에 있는 적을 보는 것 자체가 기적에 가깝다.

‘더럽게 작네.’

아까도 작았는데, 더 작은 게 있었다.

320M 거리에 보이는 적 머리가 점이었다면, 476M 거리에 있는 적은 찍으려다 포기한 점이라고나 할까?

절대 쉽지 않은 거리였지만, 왠지 자신이 있었다.

[호흡 정지 시간 5초 남았습니다. 4, 3···]

오히려 아까보다 빨리 격발이 됐다.

거리가 멀어져서인지, 나노봇이 명중을 알려오는데도 시간이 더 걸리는 것 같았다.

[명중. 당신은 백발백중 명사수!]

‘시끄러워.’

이 자식이?

이게 무슨 노래방에서 100점 나왔을 때처럼 기쁜 상황도 아니고.

나노봇의 추임새는 무시한 채, 차근차근 건물 창이나 옥상에서 아군을 조준하는 북한군 머리를 저격했다.

[명중.]

“열다섯.”

자리를 조금씩 옮겨가며 저격을 하다 보니 어느덧 열다섯 번째 점이 사라졌다.

더 쏘고 싶어도, 눈에 보이는 적이 없었다.

“연대장님. 1대대가 김일성 대학을 점령했습니다. 주위 건물 또한, 모두 아군이 장악했습니다.”

이미 서울에서 한차례 시가전을 경험한 특공연대원들은 전차 중대와 함께 압도적인 전투력으로 북한군을 찍어 눌렀다.

“주변 정리가 끝나면, 휴식 부여하도록 해. 잠깐··· 뭐야?”

후방에 있던 기마대 쪽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났다.

총성이나 포성은 아니었다.

“1대대장. 따라와.”

1대대장과 함께 천천히 소란의 근원지로 향했다.

장철부 중령이 누군가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뭐야?”

“연대장님. 소란을 피워 죄송합니다···”

장철부 중령 얼굴에 억울함이 역력했다.

그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들겨 준 뒤, 앞으로 나섰다.

“아니 자네는 뒤로 가 있어. 묻잖아. 뭐냐고,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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